충동, 1분

"테츠오."

"브레이크를 밟아."

"세게 밟아."

"콱, 세게 밟아서, 아예 어쩌지도 못하게 끊어 버려…"

"나를"

"여기서-"

미츠이는 달리는 친구의 뒤에 앉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날은 여느 때처럼 하늘은 푸르고 햇빛은 내리꽂고, 미츠이가 근 일 년 만에 어떤 농구 시합을 보고 온 날이었다. 미츠이는 어쩌다 마주친 테츠오의 바이크 뒤에 앉아 저도 가겠다고 우겼다. 그것도 그냥 앉는 게 아니라, 거꾸로 타고 앉아 뒤를 보면서 달리겠다고 우겼다. 시체 만드는 취미 없다던 테츠오는 결국 미츠이의 고집에 두 손 내리고 자리를 내주었다. 책임 안 질거라고 하면서도 나름 부드럽게 출발해 주었다. 

뒤로 달리는 느낌은 상쾌했다. 아스팔트 위에 그어진 선이 그의 앞이 아니라 뒤로 사라지고, 꼭 달리는 게 아니라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 등받이를 믿고 구부정하게 앉아있던 미츠이는 바퀴가 길가의 돌을 차면서 덜컹, 몸이 진짜로 살짝 떴다가 말자 허리를 아주 조금만 폈다. 테츠오는 틈이 날 때마다 어이, 하면서 알면서도 미츠이를 확인했다. 미츠이는 그게 웃겼다. 그래서 몸을 더 뒤로 기대면서 (그러니까, 테츠오와 등과 등을 더 깊게 밀착했다는 뜻이다) 고개를 위로 꺾고, 공연히 더 빨리 달릴 수는 없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진짜 시체가 되어야 정신을 차릴 거냐는 말이 돌아왔다. 

그 일은 그러다 바이크가 터널에 진입했을 때 일어났다. 만들어진 어둠 속을 빠르게 스치고 있는 미츠이의 마음 속에 아까의 시합이 자꾸 떠올랐다. 한심해, 한심해, 한심해, 놀고 있네. 그게 뭐야? 사람도 아니고 고릴라를 하나 가지고 있으면서. 기대되는 녀석도 하나 있다며? 그런데 그게 뭐야? 한심해. 시간만 낭비했어. 

다들 뭐하러 거기서 버티고 있는 거람.

차라리 나처럼…

그때 갑자기 미츠이에겐 어떤 생각이 들었다. 급작스러운 충동이었다. 그는 테츠오에게 말했다. 이대로 콱, 브레이크를 밟아 달라고. 지금 여기서 브레이크를 밟으면, 바이크는 그대로 앞으로 뒤집어져서- 나는 도로에 뒹굴게 되겠지. 그는 한낮의 어두운 터널을 뒹굴고 뒹굴 것이다. 그리 오래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꽤 버틸지도 모른다. 그대로 누워서 저쪽에서 달려오는, 멈출 생각이 없는, 멈출 이유를 알지 못하는 차의 헤드라이트를 지켜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러니까, 어쩐지 뭔가 편안한 기분. 그래, 그게 맞을지도 몰라. 

그래서 그렇게 계속 말하고 있는데 확, 소리가 나며 오토바이가 터널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동안 흙과 돌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천장에 막혀 있던 햇빛이 기다렸다는 듯이 미츠이의 눈을 찔렀다. 전까지 움직이던 미츠이의 혀가 순식간에 굳었다.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손끝 살갗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 등받이의 느낌이 유독 선연했다. 

테츠오가 물었다. 터널이라서 안 들린다는데 계속 말하니까 좋냐. 안 들린다니까. 너 대체 계속 뭐라고 한 거냐? 

미츠이는 눈이 부시다고 대답했다. 테츠오가 그런 말 아니었잖냐, 되묻자 눈이 너무 부셔 빠질 것 같다며 등받이 위로 엎드렸다. 대체 무슨 이유로 태운 건지 모르겠다고 저한테 말하는 건지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 테츠오의 말을 들으며 계속, 계속 그렇게 있었다. 바이크가 결국 멈출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얘들아."

"우리."

"도망칠까?"

미토는 그렇게 말하며 웃은 적이 있다. 평소와 같고 평범하고, 매우매우 시덥잖던 날,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 날. 사쿠라기는 아무말 없이 그곳에 서 있다가 찾아온 그들을 보고 그 자리에서 사라지려고 했다. 언뜻 본 그의 얼굴에는 눈물이 조금 고여 있었다. 다들 아무 말도 못하고 그를 지켜만 보는데 미토는 그래도 발을 움직여 그를 쫓아갔다. 그에게는 그래도 되는 특권 비슷한 게 있었다. 

얘기할 기분 아니다, 요헤. 울음 잔뜩 메인 목소리로 사쿠라기가 말하는데도 옆으로 척척 다가가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슬쩍 섰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잠시 다른 곳을, 하늘을, 뜬 달을 보다가 지나가듯 물어보았다. 괜찮아?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었다. 때로는 그럼에도 물어보는 것이 낫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어서 그랬다. 사쿠라기 역시 아니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코를 크게 킁! 훌쩍였다. 

거짓말 같아. 사쿠라기가 그랬다. 꼭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게 꿈일 것 같아. 어떻게 이런 일이 이렇게 일어날 수 있지? 어떻게 이래 놓고 내일이 오지? 요헤. 사람은 원래 이렇게 눈 깜짝하게,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는 건가.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지겹게 얼굴 내밀고 그러는 게 아니었어? 왜 그런지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하나미치. 요헤이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지금 말을 해도 좋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입을 열었다. 걱정 마, 우리는 네가 좋든 싫든 죽을 때까지 네 곁에서 얼굴 비칠 거니까. 특히 내가. 그러니까 우리에 대해서는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우린 친구잖아? 네가 우릴 버릴 생각이나 하지 마. 

그래, 임마 하나미치. 안 따라올 것처럼 굴더니 어느새 슬금슬금 따라온 녀석들이 맞장구쳤다. 우리만 믿으라고!

이른 새벽,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앞에 도로가, 아직 미토가 가본 적 없는 방향으로, 멀리 멀리 뻗어 있었다. 저 길을 따라 걷고 걸어서, 이대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춤추듯 흔들흔들, 사라져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면 어떨까. 그것도 하나미치에게 영원을 약속한 직후에. 

그러면 안돼. 누군가가 속삭인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의무도 없지 않아? 다른 누군가도 속삭인다. 

그래서 미토는 그렇게 한 번 말이라도 해 보았다. 어째서인가 웃음이 같이 나왔다. 당연히 무슨 소리냐며 핀잔을 들었다. 이상한 눈빛을 받았다. 미토는 무언가 여전히 우스운 것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 이상의 선은 넘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예감이 강력히 들어 구태여 티를 내지 않았다. 꾹 참았다. 그랬더니 십 분 정도 지나자 그런 생각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기억도 금세 날아갔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러하므로, 이 이야기의 요점은- 2월 추운 날 미츠이의 졸업식, 저 뒤뜰 화단 뒤에서 두 소년이 나눈 키스 역시(건조하면서도 축축하고 따뜻하면서도 차가웠던), 따지고 보면 결국 그때와 같은 1분 정도의, 때없는 충동같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무엇이 사랑이며 무엇이 이끌림이고, 무엇이 영원하며 무엇이 끝없는 것이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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