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츄어리

태섭대만 / 생츄어리 1

센가 au

714 by Ha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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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다의 선택을 받은 일족이래. 남들보다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보고, 더 큰 힘을 쓸 수 있어.”

태섭은 형인 송준섭의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에 송준섭은 장난기가 많았고, 태섭에게는 가끔 짓궂다 할 정도의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래서 그 동굴에서 비밀스레 꺼낸 말도 과장 된 장난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못 믿는 얼굴을 하는 태섭을 보며 준섭은 픽 하고 웃으며 그래. 아직은 모르겠지. 하고 웃어 넘긴 게 어쩌면 태섭이 더 불신하게 만든 반응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태섭도 실없는 소리로 치부하며 금세 잊었다.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준섭을 바다에서 잃고 나서 어린 태섭은 혼자 동굴에 앉아 눈 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다시 준섭의 그 말을 떠올렸다. 실없이 농담으로 치부했던 그 말.

바다의 선택을 받은 일족.

언젠가 저도 그 바다에 선택을 받아 삼켜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듣는 것.

준섭의 흔적이 남은 장소에서 어머니는 오래 버티질 못했다. 참다못해 태섭과 한바탕 큰소리가 오가고 나서, 그녀는 도망가듯 남매 둘을 데리고 그곳을 떠나왔다. 그곳을 떠나 도망친 곳도 바다 근처였다. 다 잊을 듯이 굴었지만, 결국 바다는 떠나지 못했다.

이사를 와서 처음 바다를 본 날, 태섭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면서도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태섭은 이즈음에 보다 많은 소리를 들었다.

처음엔 착각이나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좀 더 정확하게 시기를 나누자면 전학 첫날 시비가 털리고 나서 들렸고, 누군가 바로 옆에서 말을 건 줄 알고 돌아보면 근처엔 아무도 없고 멀리 떨어진 곳에 타인이 대화를 나누는 게 보였다. 대화의 내용에 태섭이 대답해줘야 할 내용은 없어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빤히 바라봐도 자신에게 말을 거는 건 절대 아니었다. 자신들을 빤히 보는 태섭의 시선을 눈치챈 두 사람이 태섭을 꺼리는 시선을 바라보고 나서야 그는 눈길을 돌릴 수 있었다. 착각이나 환청 취급 하는 것도 한 두 번이나 가능했다. 태섭에게 종종 시비를 거는 무리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작게 자신의 흉을 보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는 착각도, 환청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귀가 밝다의 차원이 아니었다. 절대 큰 소리가 아니었는데, 정말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렸다.

이런 상태를 어머니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병이면 어쩌지. 아픈 거면 어쩌지. 고칠 수 없는 거면? 태섭의 두려움은 이것이었다. 무엇이든 지금의 태섭은 평범하고 멀쩡해야 했다. 적어도 지금은 어머니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 견딜 수 있으니 함구해야겠다는 선택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때, 태섭이 듣는 소리의 종류는 사람의 말 뿐만이 아니었다. 사람 한 명이 내는 소리는 목소리 뿐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숨소리는 물론, 심장의 고동과 피가 순환하는 소리마저 들렸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열네 살이 견딜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

태섭은 떠나온 고향의 동굴을 떠올렸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오직 파도 소리만이 가득했던 그 동굴을 떠올리며 기억 속 파도 소리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기억 속 파도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면 괜찮아질 거야. 어쩌면 지금 바다가 날 삼키고 싶어 하는 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야! ―괜…아?”

마구잡이로 들리는 소리 중에 한 목소리가 튀어 올랐다. 태섭이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갑자기 밝은 빛에 눈이 찔리고, 제 앞에 누군가 흐릿한 형체가 보였다. 그는 태섭에게 손을 뻗어 어깨를 잡았다.

“꼬마야. 내 말 들려?”

태섭이 어깨에 그의 손이 닿는 순간,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이고 모든 소리가 사라지더니 그의 목소리 하나만 들렸다. 태섭이 놀라 눈을 깜박이고 앞에 있는 사람을 봤다. 짙은 눈썹 또렷한 이목구비 짧은 머리카락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는 태섭을 심히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어디 살아? 엄마 불러줄까?”

오로지 한 사람의 목소리만 들리자 태섭은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 자리에서 열 살 남짓 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귓가엔 제가 우는 소리만 들렸고, 태섭이 울자 저를 걱정하던 그가 당황해하며 어어. 울지 마. 역시 어디 아픈 거지? 하는 소리만이 들렸다. 잠시 그렇게 울다가 다시 울음을 멈추고 눈물 젖은 눈으로 앞에 있는 남자아이를 봤다. 뭘까. 왜 갑자기 딴 소리가 안 들리게 된 걸까. 그는 제 소매로 태섭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집이 어디야? 데려다줄게.”

아무래도 아픈 것 같으니까 엄마랑 병원에 가봐. 그렇게 덧붙여 말하고는 태섭의 손을 잡아 당겨 일으켰다. 그제야 태섭은 제가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태섭의 집에서도 한참 떨어진 놀이터의 미끄럼틀 아래 구석진 곳에 오만 소리를 피해 온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는 걸, 그는 용케 발견한 모양이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서 하늘은 어두운 밤이었다. 그가 태섭의 손을 잡아당겼지만, 태섭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 안 가.”

“어?”

“집에……안 갈래…….”

“엄마가 걱정하실 텐데.”

태섭은 대답하지 않고 입을 꾹 닫았다. 걱정하지 않을지도 몰라. 날 찾지 않을지도 몰라. 내가 귀찮을지도 몰라. 생각나는 대답을 꺼내게 되면, 정말 그렇게 되어버릴 것 같아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입을 꾹 닫은 태섭을 잠시 바라보던 그가 먼저 태섭에게 물었다.

“그럼 오늘은 우리 집에 갈래?”

그의 말에 시선을 피했던 태섭이 고개를 들어서 다시 그와 눈을 맞췄다.

“대신, 너희 집 전화번호를 알려줘야 해.”

“……안 알려주면…?”

“음……경찰에 신고할 거야. 미성년자 가출로.”

“미쳤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말에 태섭이 소리를 꽥 질렀다. 태섭이 놀라 소리를 지르자 그도 잠시 놀라더니 이내 큰소리로 웃었다. 쫄기는. 아니면 집으로 가던가! 하하! 태섭이 분한 얼굴로 웃는 그를 흘겨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제 손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을 잡아 당겼다.

“우리 집 전화번호 알려주면 되잖아.”

입술을 비죽 내밀며 대답하는 태섭을 보며 그가 웃음소리를 멈추고 작게 미소 지었다.

“내 이름은 정대만이야. 네 이름은 뭐냐?”

“……송태섭.”

“송태섭.”

대만은 태섭의 이름을 따라 불렀고, 제 이름이 불리자 태섭은 무언가에 홀린 듯 다시 대만을 올려다봤다. 정말 오랜만에 자신을 편한 표정으로 봐주는 사람을 마주하자 또 목이 메여왔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형이라고 불러.”

대만이 이어서 하는 말에 목이 메이는 건 사라지고 한 쪽 눈썹을 치켜떴다.

송태섭은 정대만을 형이라고 불러야 하긴 했다.

하지만, 준섭 외의 사람을 아직까진 형이라고 부르긴 싫어서 태섭은 형이라 부르라는 대만의 말에 싫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래봤자 일 년밖에 차이 안 나는 주제에. 태섭이 하는 말에 대만은 피식 웃으며 건방진 꼬맹이네. 하고는 더 강요하지 않았다. 대만은 그 사이에도 놓지 않은 태섭의 손을 끌어당기고 제집으로 향했다. 대만이 조금 앞에서 걸었고, 태섭은 조금 뒤에서 그를 따라 걸었다. 대만의 손은 뜨끈하다 싶을 정도로 태섭보다 온도가 높았다. 그 손의 온기가 너무 신기해서 태섭은 대만의 손을 자꾸만 바라봤다. 원래 이렇게 따뜻할 수 있는 거였나. 여름엔 뜨겁게 느껴지는 건가. 고개를 들고 대만의 뒷모습에 시선을 뒀다.

분명 이 사람 때문에 괴상한 소리가 안 들리는 것 같은데. 한 가지는 확신하며 태섭은 생각에 잠겼다. 소리가 들리는 게 일반적인 질병은 아닌 것 같았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나아지는 병은 없으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더는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고. 태섭은 다시 잡고 있는 대만의 손을 봤다. 문득 만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사람 손에 이끌려 전혀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하면서도 태섭은 자신이 크게 불안해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들이 아이 하나를 데려와 오늘 같이 자고 갈 거라면서 소년의 어머니에게 사정을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밤늦게 돌아와 꾸짖으려고 현관문이 열리기 전에 그 앞에 서 있던 대만의 부모는 아들이 데려온 소년과 아들을 놀란 눈으로 번갈아 보다가 아들의 요구에 그의 아버지가 먼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아들의 귀를 잡아 올렸다. 이 자식! 늦게까지 같이 놀았으면 애는 집에 데려다줘야지! 저 집 부모가 걱정하게 이게 무슨 짓이냐! 아! 아파! 놔! 집에 안 가겠다는 거 달래서 데려온 거거든!! 대만이 억울하게 외치는 소리에 아버지는 잡았던 대만의 귀를 놓고 다시 소년을 봤다. 그는 대만 부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그, 그게.”

“놀다 보면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잘 수도 있잖아.”

태섭이가 어물대며 돌아가겠다고 말하려던 순간, 대만이 끼어들면서 말했다. 엄마가 태섭이네로 전화 한 번만 해줘. 대만이 술술 꺼내는 거짓말에 태섭이 놀란 눈으로 그를 봤다가 너무 티 나게 행동했나 싶어서 다시 대만의 부모를 봤다.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저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고, 어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늦었으니까 그렇게 해. 전화번호 알려주고.”

어머니의 허락이 떨어지자 대만이 쓱 들어가서 그녀에게 태섭의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자 곧장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가서 전화번호를 눌렀다. 연결이 됐는지, 어머니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태섭을 보면서 오라는 손짓을 했다. 태섭은 그 손짓을 보고 대만을 봤고, 다시 태섭의 옆에 서 있던 대만이 눈을 마주하자 가보라는 턱짓을 했다. 태섭이 쭈뼛거리며 다가가 어머니가 건네는 수화기를 받아서 귀에 가져다 댔다.

[“……태섭아.”]

수화기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조금 지친 듯했다. 마른침을 삼키고 태섭이 조금 늦게 네. 하고 대답했고,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

[“아픈 곳은 없지?”]

이 질문에 태섭은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없다고 해야 하는데. 말도 없이 남의 집에서 잔다고 하는 저를 혼내지도 않고 걱정하는 물음에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침묵이 이어지자 다시 그녀가 먼저 말했다.

[“집에서 이야기 할까?”]

“……네.”

[“그래. 그러자. 끊지 말고 다시 아주머니 바꿔줄래?”]

태섭이 엄마의 말대로 전화기를 아주머니에게 건네려는 순간, 수화기에서 다시 다급하게 태섭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태섭은 다시 귀에 수화기를 댔고, 잠깐의 정적 후에 그녀의 말이 들렸다.

[“잘 자렴.”]

“……네. 안녕히 주무세요.”

태섭이 가까스로 대답하자마자 곧장 대만의 어머니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태섭이 건네는 걸 받아 들고 전화를 걸기 전에 그녀가 말했다.

“대만아. 아직 저녁도 못 먹었지? 우선 둘 다 씻고 와.“

“네~. 야. 따라와.”

대만이 어머니의 말에 대답을 하고는 태섭에게 말했고, 대만의 모와 대만을 번갈아 보다가 태섭은 그의 말대로 대만을 따라갔다. 대만이 이끄는 2층으로 올라가면서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전화를 받는 대만의 어머니를 지켜봤다.

2층집. 태섭에겐 정말 낯선 구조였다. 이사 오기 전에 집은 마당이 있었지만, 단층 주택이었고, 이사를 온 집은 멘션이었다. 집에 막 도착했을 때, 대만의 집 외관을 보고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집이라 조금 놀랐지만, 안으로 들어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대만은 저를 따라온 태섭에게 2층 복도를 따라 욕실과 자게 될 방을 소개해주고는 태섭을 욕실에 밀어 넣고 욕실 선반의 새 칫솔과 치약, 샴푸 등 세면도구를 어떤 것을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주고는 욕실을 나갔다. 덩그러니 욕실에 남겨진 태섭이 어리둥절 하게 욕실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손에 쥐어진 칫솔을 보고 홀린 듯 치약을 짜서 이부터 닦았다. 쓱쓱 하고 이를 닦는 소리가 욕실에 울리고, 거울 속 자신이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꼴사납게 생겼네. 양칫물을 뱉고 물로 입안을 행군 후에 세면대에 물을 틀고 바로 세수를 했다.

“갈아입을 옷 여기 있어.”

대만이 욕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는 선반에 태섭이 갈아입을 옷을 올려뒀다. 세수를 하다 깜짝 놀란 태섭이 쳐들어온 대만을 보고 욱해서 외쳤다.

“노, 노크 좀 해!”

“뭐? 아. 미안미안. 근데 뭐 옷을 벗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렇게 화를 내냐.”

대만이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자 태섭이 이를 갈다가 들어온 그를 밀어내고 다시 문을 닫았다. 문밖으로 밀려난 대만의 웃음소리가 들렸다가 곧 멀어졌다. 태섭은 한숨을 쉬고 다시 씻기 시작했다.

태섭이 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후에는 대만이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로 들어가면서 태섭에게 아까 알려준 방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욕실에서 나온 태섭은 대만이 알려준 그의 방으로 향했다. 아까 잠깐 봤을 때도 그랬지만, 대만의 방엔 무언가 많으면서도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태섭은 천천히 방을 구경했다. 은은하게 나는 향기가 안락한 느낌을 줬다.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며 벽면 선반에 농구화와 농구공이 있는 걸 보며 태섭은 대만이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농구가 재미있나? 태섭은 책장에 꽂힌 농구 잡지 하나를 빼서 펼쳐봤다.

[82-79. ㅇㅇ전자 승리. …후반전 17분, ㅇㅇㅇ선수의 자유투는 승리를 이끈 중요한 열쇠가 되었으며…]

“너도 농구 좋아해?”

다 씻고 어느새 들어온 대만이 집중해서 잡지를 보는 태섭에게 대뜸 말을 걸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대만의 목소리에 태섭이 깜짝 놀라서 몸을 들썩이고 들고 있던 잡지를 떨어뜨렸다. 태섭이 너무 놀라 하자 대만도 덩달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고, 태섭이 인상을 쓰고 자신을 보자 대만이 입을 쭉 내밀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 방도 노크해서 들어와야 하냐?”

“기척 좀 내고 다녀.”

태섭이 하는 말에 대만이 크게 웃으면서 얼마나 더 요란스럽게 들어와야 하는 건데? 하고 반박하며 물었고, 태섭은 당연히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비죽이며 떨어진 잡지를 주워다 다시 책꽂이에 넣었다. 꼬르륵. 그때, 태섭의 배에서 소리가 들렸다. 제어 못한 소리를 냈다는 게 어쩐지 창피해서 태섭은 아닌 척하고 대만이 못 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꼬오르으윽. 하고 더 길고 큰 소리가 방에 울리자 태섭은 고개를 푹 숙이고 한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쭉 태섭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던 대만이 가까스로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엄마가. 내려와서 뭐 좀. 먹으래. 내. 려가. 자.”

“……그냥 웃든가.”

“크. 하하!!”

대만의 어머니가 만든 주먹밥을 맛있게 먹고 다시 2층으로 올라와 양치를 또 한 후에 대만의 방에 들어갔다. 바닥에 두 개의 이부자리가 깔렸고, 대만이 한 쪽에 앉아서 다른 쪽 이부자리를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여기에서 자면 돼. 태섭은 쭈뼛거리며 다가와 대만이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태섭이 앉자 대만이 자기 자리에 벌렁 누웠다. 태섭도 따라서 누우려고 했는데, 대만이 아. 잠깐! 하고 태섭이 눕는 걸 저지해서 기울이던 몸을 팔로 버텼다.

“눕기 전에 불 꺼줘.”

대만의 요구에 태섭이 눈썹을 치켜떴지만,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켜 방의 전등을 끄고 나서 누웠다. 자리에 누워서 희미한 빛으로 보이는 낯선 천장을 빤히 바라봤다. 내일 집에 가서 말해야지. 몸이 이상했다고. 너무 괴로웠다고.

“내일 집에 갈 거지?”

졸음이 묻은 나른한 대만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섭의 시선이 천장에서 대만에게로 향했다. 그도 천장을 보며 눈을 끔벅이고 있었다. 응. 하고 대답하자 대만이 눈을 감았으나 이어서 말했다.

“그래. 그럼 다음에… 나랑 농구 하자. 재밌어…. 농구.”

“……응.”

늘어지는 목소리에 하품까지 하는 대만의 말에 태섭이 대답했다. 어떤 이유로든 다시 만나야 할 것 같았다. 다른 말이 없자 태섭은 다시 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태섭도 졸음이 쏟아졌다. 오랜만에 아무 소리도 안 들렸기 때문이었다.

“잘 자.”

대만이 마지막으로 건넨 인사가 주문처럼 태섭은 바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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