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명헌] 어미(語尾)가 가닿는 곳은
2023.04.13
삐뇽.
새로 바꾼 어미를 정우성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명헌은 산왕의 현 주전 중 유일하게 두 번의 인터하이 우승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다. 산왕의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도 1학년부터 스타팅 멤버가 된 선수는 드물었고, 그중 눈에 띄는 스코어러가 아닌 선수는 더 드물었으며, 극단적으로 득점을 줄이고 감독의 신뢰 아래 경기를 이끄는 형태로 플레이하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거기에 더해 (3학년 인터하이 직전까지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 모든 외부 경기에서 패배한 적이 없다는 조건까지 더해지면, 이명헌이 유일하다. 물론 이상한 어미를 붙이는 버릇이 있다는 조건만 쳐도 유일해지긴 한다.
그 이명헌이 주장이 된 해의 산왕은 전설과도 같았다. 고등학교 수준을 훌쩍 넘는 선수가 셋이나 있었으며 그중 한 사람은 고교 전국 넘버원이라 칭하는 데 누구도 이견을 내지 않을 정우성이었다. 사실상 대학 올스타팀이나 다름 없는 OB와의 경기에서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그야말로 '산왕 타도'를 외치는 모든 팀의 목표가 되기에 마땅한 팀이었다.
그리고 그해 산왕은 인터하이의 첫 경기인 2차전에서 탈락했다. 신문과 방송으로 경기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날 그곳에서 경기를 직접 본 사람들조차, 그날 산왕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어났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니까. 아직도 어리둥절해. 이때 한 실수가 문제였다느니, 감독이 전략을 잘못 짰다느니, 공을 다르게 돌렸어야 했다느니 등등 수많은 호사가들이 온갖 말을 보탰지만, 그럼에도 단 하나만은 다들 부정하지 않았다.
그날의 산왕은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그날 코트 위에 있던 선수들은 모두 한 명 한 명이 산왕다운 선수였다. 그들은 분명 산왕의 경기를 했고, 명확한 까닭을 모른 채로 졌다.
삐뇽.
정우성이 떠나는 날, 공항에는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정우성을 미워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저 학생들이 왕복하기에는 학교가 공항에서 너무 멀어서다. 가족끼리 보낼 시간에 끼지 말자는 현철과 성구의 의견도 있었고. 그래서 농구부는 출국 이틀 전에 따로 모여서 축하 및 작별 파티를 벌였다.
그날 정우성은 계속 울었다. 마지막으로 기술이나 한번 걸어보자고 농을 거는 신현철의 팔에 눌린 채로도 울었고, 가서도 꼭 건강하시라며 울먹거리는 신현필을 달래다가도 울었다. 우리 에이스 한번 안아보자고 팔을 벌린 정성구의 품에 안겨서는 거의 통곡을 했고, 잠시 진정했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최동오와 등을 두들겨주는 김낙수의 손길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우성이 겨우 울음을 그친 것은 명헌이 주장이자 농구부 대표로서 악수를 청했을 때였다. 너무 울어서 퉁퉁 붓고 짓무른 눈으로도 우성은 똑바로 명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훌쩍거리면서도 손을 내밀어 명헌의 손을 붙잡았다.
- 넌 잘할 거야.
잘하고 올게요. 울먹거림이 잦아든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지만 그만큼 단단했다. 상대의 흔들림 없는 결의를 잠깐 빌려 명헌은 우성을 힘껏 안아주었다. 그래, 그 어떤 것도 너를 흔들 수는 없으리라. 흔들리지 않는 정우성이라는 사람을 이명헌은 진심으로 응원했다.
......삐뇽.
주장의 특권으로 명헌은 약간의 시간을 더 받았다. 다들 모여 있던 기숙사 방에서 우성을 데려갈 부모님의 차가 서 있는 교문 근처 주차장까지 느긋하게 걸으면 20분 정도. 단둘이 걷는 동안 함께 보낸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그 안에 고요히 접혀들어온다.
미완성인 것들은 때로는 다듬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아직 언어로 온전히 정제되지 않은 농도가 있었다. 옅게는 눈이 마주치지 않아도 당연하다는 듯 던지고 받아드는 패스가, 짙게는 대화 중 조심스레 내밀어 스치는 손끝이. 그러다 그 위로 더 선명한 색이 덧칠되기 전, 우성의 미국 유학이 결정되었다. 담기는 그릇에 따라 형태와 이름이 정해질 터인 그 감정을 명헌은 차마 심장에 담지 못했다.
- 이기고 싶었어요.
그러나 누군가는 그보다 훨씬 더 용감하다. 떠나는 입장에 서기로 결정한 우성은 기꺼이 다시 울었다.
- 정말 이기고 싶었어요. 형들이랑 현필이하고 같이 뛴 인터하이에서, 정말로 이기고 싶었다고요. 전국대회 같은 거라서가 아니에요. 다같이 뛰는 마지막 시합이고, 형이...... 형이 주장으로 뛰는 인터하이라서 꼭 이기고 싶었던 거예요.
스치듯 닿았다가 떨어지는 손끝은 익히 알고 있는 온도를 띠고 있었다. 익숙하다는 것은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도전한다는 것은 낯섦을 기꺼워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아이가 박차고 나아갈, 고작 익숙함에 불과한 기억들이 될 것이다. 머뭇거리는 명헌의 손을 눈치챈 듯, 우성은 한 발 물러서더니 깊이 숨을 들이쉬고 눈물을 닦았다. 그런 다음 단호히 눈을 마주쳐왔다.
- 형이랑 같이 이기고 싶었어요.
거짓을 모르는 성정은 우성의 단점이면서도 뛰어난 장점이었으며, 그 꾸밈 없는 명료함은 여러 번 명헌의 계산을 무의미하게 만들곤 했다. 헤어짐도 그랬다.
명헌이 형.
- 보고 싶을 거예요.
지나치게 굳세고 깨끗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잔뜩 흐트러뜨리고야 만다. 겨우 스스로를 달래 가라앉힌 진심이 다시 부옇게 떠올랐다.
+
대부분의 다른 학교들과는 달리 산왕은 주전이 아니라 벤치로 낙점되더라도 무조건 수많은 대학에서 러브콜이 온다. 원하는 대학이 있다면 학교장 추천도 문제가 없다. 그만큼 벤치에 앉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수험 걱정이 덜한 산왕에서는 3학년 은퇴는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 보통은 윈터컵 이후다. 인터하이 전부터 주전들은 대부분 원하는 대학 입학이 확정되다시피 하고.
기이하게 전국대회 첫 경기에서 패배했다고는 하지만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대회 전부터 러브콜을 보냈던 어느 학교에서도 스카우트를 무르지 않았다. 인터하이의 처참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이명헌과 신현철은 다들 기대했듯 청대 라인업에 올랐다. 예년에 비해 몇 가지가 비었음에도 다행히 8월은 여전히 바쁜 달이 되었다.
이명헌은 1학년부터 산왕의 주전이었다. 그 얘기는 함께 달리고 서로를 믿고 매일을 공유한 사람들을 두 번이나 떠나보냈다는 뜻이며, 두 번이나 남겨진 적이 있다는 뜻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붙들고 있어봤자 의미는 없다. 아쉬워해봤자 겨울의 산왕에 정우성이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가드 이명헌의 특기는 코트 위에 있는 사람과 상황을 적절히 이용해서 경기의 흐름을 잡는 일이었다. 아무리 강력한 말이라 해도 코트 위에 설 수 없다면 그것은 사용할 수 없는 말이다. 정우성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명헌 자신을 포함한 산왕의 다른 말들도 충분히 강하다. 전략을 수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고, 우성의 유학이 결정된 순간부터 모두와 논의한 바도 있다. 겨울에는 최강의 이름을 되돌려받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야 마는 문제 또한 생기기 마련이다. 아무리 끈질긴 마음이라 해도 가닿을 곳이 없다면 그것은 길을 잃은 마음이다. 생각이 길어지면 자꾸만 거품 같은 것이 떠오른다. 예를 들면 몇 시간 후 하늘로 떠오를 비행기와, 그 비행기에 올라탈 어떤 사람 같은 것. 그래서 명헌은 다른 것을 고민하기로 했다.
- 뿅에 조금 질렸다뿅.
정우성과의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조금 버겁다.
- 그렇다고 아예 새로운 어미를 쓰고 싶은 건 아니다뿅. 살짝만 바꾸고 싶은 거다뿅.
그렇다고 그 시간을 아예 지워버리고 싶진 않다. 살짝만 밀어두고 싶다.
그렇기에.
- 괜찮은 거 생각났어?
- 삐뇽.
그건 자신의 코트 위에 있는 말들로만 판을 짤 수밖에 없는 이명헌 나름의 전략이었다.
그해에도 모든 3학년이 윈터컵까지 남았다. 정우성 없이도 산왕은 윈터컵 우승을 차지했다.
+
기숙사 사감실에 놓인 전화가 울렸다. 미리 예고된 덕에 다들 시간을 빼어 와글와글 모인 장면이 인터하이 전 비디오 분석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와 다른 점은 한 사람이 빠진 대신 낡은 전화기가 있다는 것이다.
- 윈터컵 우승 축하해요!
형들 다 잘 지내요? 나도 잘 있어요! 감이 멀고 지직거리기까지 했지만 오랜만에 들은 반가운 목소리에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문짝만 한 덩치들이 작은 전화기 앞에 우르르 몰려들어 서로 수화기를 잡겠다고 티격대는 뒤에서, 명헌은 물러나 그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특별했던 동료를 심히 아낀 마음은 모두 같았던지라, 누구 하나가 수화기를 부여잡고 몇 마디 채 하기도 전에 다른 손이 수화기를 채간다. 누군가 수화기를 귀에 대고 말하노라면 뒤에서 세 명쯤 고래고래 코러스를 넣는다. 그러는 가운데 띄엄띄엄 수화기 안에서는 울음기 어린 웃음이 터진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수화기는 한소끔 달아오른 흥분이 가라앉은 후에야 겨우 옛 주장의 손에 들어왔다.
- 뿅.
와악, 명헌이 형이다! 그 이상한 말투를 들으니까 진짜 형이랑 얘기하는 것 같아요. 지금 나랑 통화하는 거 맞다뿅. 아니이, 그게 아니고요! 산왕에 있을 때처럼 형이랑 얘기하고 있는 거 같다고요. 너무 좋아요! ......그래뿅?
전화선 너머로 자그르르 부서지는 목소리는 명헌이 익히 알고 있는 울림이었다. 수화기를 건네받고 지금은 쓰지 않는 어미를 뱉은 건 의도는 아니었다. 그저 이 목소리와 연결된 몇 안 되는 것이었기에, 무심코.
4개월쯤 지난 후에야 겨우 한 번 이어진 전화. 그동안 오간 편지는 두세 통. 거리와 시간의 간격이란 얼마나 많은 어긋남을 가져오는지. 멀리 있어도 괜찮을 거야, 그런 막연한 낙천관으로 막기에는 사소한 균열은 반복해서 쌓인다. 자주 통화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전화 요금, 편지가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짧지 않은 시간, 마음 가는 대로 연락했다가는 잠을 깨워버리고 마는 시차, 가볍게 근황을 전하고 싶어도 처음부터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배경지식의 부재...... 더는 일상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상대방이 당연히 달려올 곳에 공을 던질 수 있는 건 그 사람과 그의 주변을 모두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가 여기로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다른 이가 스크린을 걸어줄 것을 알고 있고, 수비수가 미처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에. 주변에 대한 이해를 잃고 나자, 명헌은 우성이 자신의 공을 받을 곳으로 달려와줄 것을 더는 확신하지 못하게 되었다.
- 와, 산왕에 있을 때 얘기 진짜 오랜만에 해요. 형들 다 보고 싶다. 현필이도.
- 그러냐뿅.
결국은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들기보다 한때 공유했던 과거로만 말을 붙잡고 만다. 경기 전체로는 최악의 전략임을 알면서도, 이 순간에는 그게 결코 실패하지 않을 유일한 전술임을 안다는 이유로. 막 손을 떠난 공이 분명 림을 맞고 튕겨나오리라는 사실을 절감해버리고 마는 순간.
내려놓은 수화기는 다시 한동안 울리지 못할 터였다. 멀어졌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 근데 아까 통화할 때, 명헌이 너 그거 바꾼 거 아니었냐? 뿅, 그거.
- ......우성이 듣고 싶대삐뇽.
- 여기 있던 시절이 그립나보네, 짜식.
그저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으리라는 두려움.
+
1년 반이 채 되지 않던 시간은 생각보다도 짧고. 그 안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말은 생각보다도 적었다. 하기야, 더는 흐르지 않는 것이 어떻게 계속 미래를 붙들 수 있을까.
담을 수 있는 기억이 바닥을 보인다. 한계란 각오한 것보다도 더 처참한 단어다. 글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알 수 없어 답장을 미룬다, 말로 무엇을 전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전화를 피한다. 그만큼 편지가 도착하는 간격도 길어진다. 부재중 전화의 횟수는 차근차근 줄어간다. 자신의 일상은 어느새 바다 건너의 추억과는 다르게 나아간다.
더는 패싱 레인을 읽지 못하는 가드는 결국에는.
명헌이 형, 잘 지내요? 나는 잘 지내요.
대학 생활은 재밌어요?
그래서 지금의 일상을 묻는 언어에는 조금 겁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 형하고 연락하기가 힘들어진 것 같아서요. ...
글자 여기저기 쓰다가 멈추고 숨을 고르느라 뭉친 잉크가 번져 있다. 우성이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을 명헌은 알고 있다. 그렇게 손을 떠난 공은 매번 깔끔하게 들어간다. 누군가가 도망치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었다. 떠나서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 형 얘기는 하나도 알려주지 않고 연락도 잘 안 받으니까. ...
그 명료한 눈동자가 명헌에게 다시 묻는다. 우리는 서로의 과거에 불과해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형의 시간을 나한테는 알려주지 않을 거예요?
... 뭔가 형이 화 난 게 있대도, 확실히 말로 듣고 얘기하고 싶어요. ...
나는 이제 형한테 아무것도 아니에요?
명헌이 형, 보고 싶어요.
정우성이 최고의 플레이어인 이유는 그저 슛을 잘 넣어서가 아니다. 때로는 그에게 공을 맡긴 이명헌 자신조차 발견하지 못한 돌파구를 찾아내, 수비수들을 제치고 림을 공략해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이명헌은 문득 깨닫는다. 자신의 어딘가가 모든 것이 그들의 마지막 인터하이 전에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고. 함께 달리는 이들의 주변을 읽을 수 있고, 어떤 공도 어긋나지 않고, 모두 승리를 확신하며, 정우성이 자신의 곁에서 당연히도 함께 달리고 있던 그 시간으로.
우리는 그날 왜 패배했을까. 이 질문은 분명 더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음에도 오직 한 사람에게만 어떤 상흔을 남겼다.
그날 코트 위에 섰던 사람 중 그 패배를 여전히 품고 있는 사람은 없다. 이명헌 또한 그렇다. 놀라운 적을 만나 진심을 다해 달렸고 명백하게 졌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자책했으며 누군가는 고민했다. 그래도 결국에는 미련은 남지 않았다. 명확한 이유를 끝까지 찾아내지 못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산왕은 틀리지 않았다. 적이 더 뛰어났을 뿐이다. 마침내 그날은 산왕의 모두에게 바르게 남았다.
그러나 명헌의 안에는 조금 다른 것이 머무르고 말았다.
그날 우리는 왜 졌을까, 윈터컵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되짚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왜'는 형태가 달라졌다. 센터 라인을 넘어가버린 고민들, 울리지 않는 타임아웃. 그날 우리는 왜 졌을까. 우리는 왜 정우성에게 마지막 승리를 안겨주지 못했을까. 승리를 품에 안기에 그날의 산왕은 왜 충분하지 않았을까. 산왕은 왜 정우성이라는 별을 담기에 충분하지 못했을까.
왜, 이명헌은 정우성이 곁에 남기에 충분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삐뇽.
바꿀 수 없는 것을 붙들고 있어봤자 의미가 없다. 아쉬워해봤자 자신의 곁에 정우성이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이명헌의 특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로 충분히 판을 운용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일부는 잘못된 곳에 남았다.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야 말았다. 우성이 떠난 지금도 그의 주장인 척하고 싶어서. 여전히 정우성에게 그의 길을 이끄는 유일한 지남침으로 남고 싶어서. 마치 정우성과 일상을 공유하던 시간만을 붙들면 그때처럼 우성을 제 안에 가둬놓을 수 있다는 양.
그러나 이명헌 또한 농구를 사랑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정우성, 누구보다 뛰어난 그 선수가 미국을 떠나 이 작은 곳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느냐고 묻는다면 거기에만은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다, 결코 그렇지 않다고. 그가 곁에 있기를 바라면서도 그가 돌아오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다는 모순이, 명헌을 오래도록 낡은 곳에 묶어두고 말았다.
여기저기 꾹꾹 눌린 잉크 자국들은 이미 자기보다 한참 앞으로 달려나간 눈부신 소년의 발자국이었다. 그저 그렇게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우성은 굳이 뒤를 돌아봐주었다. 이름을 불러주었다. 발을 멈춘 채 멍하니 서 있는 낙오자의 손을 잡으러 달려와, 눌러쓴 볼펜만큼이나 강하게 한 마디 한 마디 꾹꾹 눌러 외쳐주었다.
날 놓지 마요.
같이 앞으로 가요.
+
몇 시간 뒤 바다 너머 누군가가 있을 곳에 아침 해가 뜰 즈음 이명헌은 이미 어두워진 밖으로 나갈 것이다. 그런 다음 수화기를 들고, 진작 외워버렸지만 한 번도 감히 누른 적은 없는 번호를 누를 것이다.
전화가 연결되고 목소리가 들리면 우선 인사를 건넬 것이다. 삐뇽, 하고.
그리고 작년 겨울 산왕이 윈터컵에서 어떻게 승리를 거두었는지, 정우성이 없는 코트를 모두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말해주고, 더는 산왕의 이명헌이 아닌 자신이 어느 대학에 왔으며 얼마 남지 않은 인카레를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도 모두 말해주고 나서, 마찬가지로 더는 산왕의 정우성이 아닌 정우성에 대해 잔뜩 들려달라고 할 것이다. 미국은 이곳과 뭐가 다른지, 여기와 비슷한 것도 있는지, 많이 외롭거나 힘들지는 않은지.
그런 다음 마침내, 바다를 건너 14시간이 뒷걸음질치더라도 결코 변하지 않을 한 가지를 전할 것이다.
그 한 가지 진실이 서로의 안에 여전히 뿌리박고 있음을 누군가가 알려주었기에. 그 진실이 서로의 안에 있는 한 우리는 달라져도 여전히 연결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에. 그리하여 같이 앞으로 걸어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에.
정우성.
- 보고 싶다삐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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