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태웅] 시바, 처음이냥? (上)
여우, 늑대, 그리고 고양이
수인au
시바견 백호 X 깜고 태웅
북산고등학교 농구부에는 3대 미스터리가 있다. 버려도 버려도 다시 돌아오는 낡은 농구공, 절대 열리지 않는 마지막 락커, 그리고 서태웅. 서태웅은 유일하게 부원으로서 그 안에 들어갔으면서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알아도 관심 따위 주지 않았겠지만.
서태웅의 성씨로부터 유추해보면 수인인 게 분명한데, 아무도 그의 혼현을 모른다. 그에게 물어도 소용이 없다. 여타 다른 질문에는 거리낌 없이 답해주면서, 혼현에 대해서만큼은 입을 꾹 다물고 절대 얘기해주지 않는다. 부원들은 종종 서태웅의 혼현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토론하곤 했다.
강백호는 서태웅을 여우라 불렀다. 확률로 따지자면 50퍼센트의 정답이다. 부원들, 그 중 강백호와 송태섭, 정대만 세 명을 주축으로 서씨 가문에 대한 은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서씨는 흔치 않아 지인들의 종족으로부터 유추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조사범위를 넓혔다. 송태섭의 공으로, 수인학을 전공하였다는 생물학 교사에게서 답을 얻었다. 여우 서씨와 늑대 서씨. 서씨는 두 종이 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 반쯤은 확신하며 말할 수 있었다. 서태웅은 여우다. 혹은, 늑대다.
농구부 내에서는 서태웅 늑대 수인이 설이 압도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오로지 강백호만이 서태웅 여우 설을 밀었다. 저 놈이 늑대일 리 없다며, 늑대답지 않다며 꿋꿋하게 서태웅을 여우라 불러댔다.
"씁... 여우보다는 회색 늑대지, 저 녀석은."
정대만의 말에 송태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초등학생 때 친구 형이 늑대였다니까. 서태웅한테서 비슷한 냄새가 나."
"섭섭! 코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개 실격이야! 늑대는 개랑 친구잖아. 여우한테서는 묘하게 다른 냄새가 섞여난다니까?"
"가족이 다른 종이겠지. 그리고 백호야... 여우도 갯과야."
강백호가 입을 크게 벌리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송태섭을 바라봤다.
"야, 솔직히 말해 봐. 늑대가 개보다 크니까 그런 거지? 서태웅이 너보다 큰 거 인정하기 싫어서."
정대만이 옆에서 키득거리자 강백호가 길길이 날뛰었다.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높여 정대만의 말을 부정하다가 결국 체육관 벽에 기대앉아 졸고 있는 서태웅을 불렀다.
"여우! 너 여우잖아! 빨리 여우 맞다고 해!"
가물거리는 눈이 강백호를 응시한다. 잔뜩 흥분해서는 빨간 머리칼 사이로 갈색 귀까지 드러내며 서태웅을 닦달한다.
"흥."
서태웅은 고개를 팩 돌리곤 다시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강백호의 목소리가 머리를 울린다. 눈을 감아도 강백호의 얼굴이 생생히 그려졌다.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있겠지. 눈썹은 위로 치솟아있을 거고. 웃긴 놈.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여우 맞다니까!"
강백호의 억지스러운 주장도,
"백호야. 이제 그만 인정하자. 쟤는 누가 봐도 늑대다."
송태섭의 근거에 기반한 주장도, 진실에 근접하지 못하였다. 서태웅이 제 종족을 밝히지 못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서태웅은 고양이였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지만, 고양이가 불길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시대는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었다. 수인들의 인권 문제가 사회에 만연해있었을 시절, 그중에서도 고양이 수인에 대한 문제는 심각했다. 오랜 시달림 끝에 고양이 수인들은 자연스레 자신들을 향한 인식을 바꿀 방법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공공의 적을 정한다.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차별의 뿌리를 짚어보면 결국 상당수가 외형적 차이에 근거한다. 고양이 수인들은 불길함이란 수식어를 그에 가장 어울리는, 새까만 동족에게 몰아주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외래종은 고씨, 토종은 나씨. 고양이 수인들이 그들끼리 종을 분류하여 성씨를 정할 때에, 검은 고양이는 오직 색을 이유로 묘씨를 택하였다. 애당초 고양이 수인들 사이에 섞여들지 못하고 소외당하던 검은 고양이는 그렇게 불길한 존재로 취급받으며 온갖 박해와 핍박을 받게 되었고, 나머지 고양이들은 서서히 과거의 이미지를 벗어나게 되었다. 고양이가 까탈스럽지만 사랑스러운 동물로 여겨지며 사회에 완전히 자리 잡았을 무렵에는 한국에서 더 이상 묘씨 성을 가진 이를 볼 수 없었다.
"네가 고양이 수인이라는 건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돼."
서태웅은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묘씨 성을 가진 마지막 고양이였던 고조할머니에 대해. 그 자손들은 친부의 혼현을 받아 묘씨 성을 잇지 못하였으나, 혼현이 격세유전되는 희귀 케이스로 인해 검은 고양이로 태어난 할아버지에 대해. 할아버지가 사라진 성씨인 묘씨가 아닌, 제 아버지의 성씨인 서씨를 받으며 새로이 생겨난 검은 고양이 서씨가문에 대해 달달 외울 만큼 잘 알았다. 다시 생겨나 봐야 한 줌. 검은 고양이 수인은 서태웅을 포함해도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아주 적었다. 옅어졌으나 사라지지 않은 차별적 시선 때문에 고양이 서씨를 받은 이들은 제 정체를 숨길 수 밖에 없었다.
"아무한테도?"
"응.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안돼. 소문이라는 건 순식간에 퍼지거든."
"응."
서태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누나는 어린 동생의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어주며 다정히 덧붙였다.
"태웅아. 답답할 거야. 그래도 꾹 참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놓는 거야. 그러다 때가 되면 딱 한 사람한테만 말해."
"누구?"
"태웅이가 결혼할 사람."
서태웅이 잠시 망설이다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작지만 단호하게 대답한다. 어린 서태웅의 얼굴에서 어떠한 결의마저 보인다. 서태웅은 어릴 때부터 그랬다.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이 세지만, 그건 아주 일부분의 경우에 불과했다. 자신이 고집하는 부분을 제외한 모든 일에는 주관이 없다시피 했다. 딱 한 번, 어린이 농구 교실 그만두면 안 되겠냐는 누나의 걱정 어린 권유를 거절한 적을 제외하고는, 누나의 말을 거역한 역사가 없었다. 누나가 그러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엄마도, 아빠도. 서태웅은 머릿속에 꼭꼭 새겨넣었다. 내가 고양이인 건 결혼할 사람에게만 말해야 해.
만약 강백호였다면 못했을 것이다. 아마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에 이미 들통나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태웅은 별 어려움 없이 제 혼현을 잘 숨겼다. 원체 감정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성격이라, 어린 시절 많이들 그렇듯 갑작스레 귀나 꼬리가 튀어나오는 일이 없었다. 서태웅의 사교성도 한몫했다. 꾹 다문 서태웅의 입을 열만큼 그와 막역한 관계인 사람이 없었다. 혼현이란 곧 본 모습의 일부분이다. 그걸 숨기고 사는 데에 답답함을 느끼는 게 당연할 텐데, 서태웅은 괜찮았다. 서태웅은 고양이이기도 하지만, 인간이다. 학교에 가는 건 인간 서태웅이고, 농구를 하는 것도 인간 서태웅이었다. 동물과 인간 사이의 개념이 모호한 어린 시기를 벗어나 완전한 수인이 된다는 2차 발현까지 마쳤으면서도 서태웅은 아직 혼현의 자아 인식이 부족했다. 남에게 보인 적 없는 혼현이니, 그냥 없는 셈 치고 살았다.
그랬던 서태웅이, 처음으로 제 안의 고양이를 의식하게 되었다. 원인은 서태웅과 달리 툭하면 귀를 쫑긋거리고, 펄쩍거리며 꼬리를 흔드는 시바견 수인, 강백호. 서태웅을 힘들게 하는 건 여우가 맞지 않냐는 그의 추궁도, 자꾸 감정적으로 만드는 그의 괴롭힘도 아니었다. 강백호 앞에만 서면 자꾸만 가슴이 울렁거렸다. 저 바보 같은 얼굴만 보면 짜증 났다. 그런데 또 안 보이면 보고 싶었다. 서태웅은 이제 조금 알았다. 강백호가 좋다. 결혼을 할 만큼인가? 그건 모르겠다. 그래도 결혼이 뭔지는 안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하는 거다. 그러니까 어쩌면, 강백호와 결혼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강백호는 서태웅의 혼현을 거부감 없이 잘 수용할 수 있을까?
강백호는, 고양이를 좋아할까?
"갯과 수인들은 같은 갯과 수인들한테 호감을 느낀다던데. 진짜냐?"
여우거리며 날뛰는 강백호를 진정시키고자, 정대만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졸업이 다가오며 쌓인 시간만큼 저 팔딱거리는 강아지를 다룰 방법도 조금은 터득했다.
"그거 다 편견이에요. 저는 늑대니 여우니 너구리니 다 별로던데."
송태섭이 그러지 않아도 삐죽 올라간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야, 너는 더 해. 개만 좋다며."
"아니, 내 말은 갯과면 다 좋다는 게 아니란 거지. 같은 종 수인 좋아하는 거 우리만 그래요? 수인 아닌 놈들이 더하더만. 야! 강백호. 자는 애 괴롭히지 말고 이리 와 봐. 넌 이해하지? 개 수인끼리 좀 편하다니까. 안정감이 든다고 해야 하나."
"엉? 나는 별로 상관...."
강백호가 말끝을 흐리며 뒤를 힐끔 쳐다봤다. 서태웅은 여전히 벽에 기댄 채 앉아있다. 겨우 세발짝 남짓한 거리. 서태웅의 얼굴이 저를 향해있었다. 눈을 감으니 늘 보던 새초롬한 눈매가 누그러지고, 말간 얼굴이 더욱 희어 보인다. 자는 건가. 여우라면 그 새 잠들었을 수 있지. 강백호는 자고 있을지도 모를 동급생의 눈치를 보며 말을 바꿨다.
"흐흠. 나, 나는 개 비슷한 것도 좋던데. 그... 있잖아. 여우라든가, 아니면... 늑대나, 뭐 그런...."
강백호의 시선이 다시금 뒤를 향한다. 서태웅의 표정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과 같았다. 뭐야. 진짜 벌써 자냐. 실망할 틈도 없이 정대만의 웃음소리가 뒤통수에 꽂히듯 들렸다.
"아하학, 늑대? 서태웅?"
"태웅이랑 그렇게 싸우더니, 사랑싸움이었냐?"
선배들의 놀림에 얼굴이 머리색을 닮아갔다. 시뻘게진 얼굴이 김이 날 듯 뜨거웠다.
"아니거든! 여우가 좋다는 게 아니라! 여우가 좋은... 아니, 그게 아니라!"
"여우가 그렇게 좋아서 어떡하냐? 서태웅은 너한테 관심도 없어 보이던데."
"이익, 아니라니까아! 나느은! 여우 수인이 좋다고! ... 느, 늑대 수인이나!"
"어어 그래, 그래. 여우나 늑대 수인인 어딘가의 서씨가 좋은 거지?"
강백호가 분에 찬 얼굴로 씩씩거렸다. 정대만이 이렇게 약올라보이긴 처음이었다.
"나는 서태웅이 좋은 게 아니라니까!"
잔뜩 흥분한 15세 소년의 목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채울 듯 울려 퍼졌다. 강백호는 제 소리에 짐짓 놀라 뒤를 힐끔 쳐다봤다. 자고 있겠지? 여우가 이 정도 소음에 깰 위인이...
"... 아니, 그게 아니라."
강백호가 기어들어 갈듯한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저를 직시하는 까만 눈동자를 피해 갈 데 없는 시선을 저 멀리 농구공에 고정했다.
"그러니까... 여우 수인이랑 늑대 수인이랑... 그런 게 좋은데, 왜 계속 똑같은 말 하게 만들어서! 으아악! 이게 다 만만군 때문이야!"
강백호가 돌진했다. 사람, 아니 개에 가까운 수인이 마치 전차처럼 돌진했다. 바람 빠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넘어가는 정대만과 그에게 있는 힘껏 달려든 강백호. 서태웅은 평소 같지 않게 졸음기 없는 눈으로 둘의 소란을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 없는 듯 맹한 표정이었지만, 머릿속은 강백호의 말을 곱씹느라 분주했다. 멍청이는 여우나 늑대를 좋아하는군. 갯과에 또 뭐가 있지... 고양이는 갯과 아니겠지. 아주 조금, 가슴 한쪽이 따끔거렸다.
강백호의 사랑은 늘 공공연했다. 부끄럼 없이 주위에 제 사랑을 알렸다. 서태웅을 향한 마음을 자각한 날, 강백호는 생각했다. 이 감정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앞뒤 생각 없이 사랑만 하기에 강백호에겐 과오가 많았다. 서태웅과의 첫 만남을 생각하면 눈이 질끈 감긴다. 괜히 찔러대고 놀려댔던 나날이 반년도 넘게 쌓였다. 그는 사랑에 가능성을 재단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사랑했다. 첫눈에 반했던 과거의 사랑들은 그리 무모할 수 있었다. 서태웅에게도 첫눈에 반했다면 그럴 수 있었을 텐데. 여우 녀석, 그러게 왜 하필 그날 옥상에 있어서 내가 오해하게... 잘 거면 편하게 보건실 가서 잘 것이지 그 차가운 바닥에서 말이야. 그러니 괜히 시비 걸려서 다치지. 이마가 찢어졌었나, 얼굴에 피가... 으아악, 여우한테 때릴 데가 어딨다고 영걸이 녀석들! 그 녀석들만 아니었어도 내 박치기 정도로 여우가 그렇게 다치지는 않았을건데! ... 아팠겠지?
"하아아...."
강백호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비품 창고 문을 열었다. 정대만 때문에 들킬 뻔했으나, 아직은 안된다. 가망 없는 짝사랑이라고 포기할 거였으면 이리 힘들지도 않았다. 사랑이 10이라면, 지금 서태웅과의 관계는 마이너스 10이다. 아니, 이제 마이너스 8정도? 강백호는 노력했다. 서태웅에게 밉보인 만큼, 다시 잘 보이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다. 서태웅과 그냥 친구 사이만이라도 된다면, 그와의 관계가 지하 밑바닥에서 올라와 땅을 밟고 선다면 그때는 좀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도 전에 괜히 서태웅이 제 마음을 알았다가 징그럽다며 피해버리면 그대로 이 관계는 끝이다.
"야, 안 가?"
등 뒤에서 사랑하는 그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백호는 밀대를 집어던졌다. 밀대가 쓰러지며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알 바 아니다.
"어, 여우! 다 됐어. 가자!"
히히. 강백호가 싱글거리며 서태웅을 따라 체육관을 벗어났다. 오늘로 일주일 차. 강백호는 서태웅과 함께 하교 중이다.
서태웅에게 잘해주려고 마음 먹고서 할 수 있을 만한 일은 다 했다. 1학년 담당인 마무리 청소 때 전력을 다해서 서태웅이 청소 덜 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서태웅이 든 밀대를 뺏어 들고 대신 창고에 넣어준다거나. 그러나 이건 도박이나 다름 없었다. 말을 뱉는 순간, 거절당할 각오를 했다.
"여우야. 그...."
"뭔데."
"집에 같이 갈래?"
물론 강백호에게도 변명이랄까,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아니, 너랑 나랑 가는 길이 같으니까... 근데 여우 너 계속 졸면서 자전거 타니까 그러다가 다치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같이 걸어서 가면 졸리지도 않고, 그리고 다치지도 않고, 눗, 그리고 걷는 거 몸에 좋다고 한 거 같기도 하고... 싫으면 혼자 가든가아...."
강백호는 긴장한 나머지 서태웅을 바로 보지 못하고 저 멀리 걸어가는 송태섭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응."
강백호가 눈을 땡그랗게 뜨며 서태웅을 바라봤다.
"진짜? 같이 가?"
"... 응."
이번엔 서태웅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강백호의 무릎 언저리를 본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둘을 덮쳤다. 서태웅의 새까만 머리칼이 바람을 따라 살랑거렸다. 그 사이로 드러난 귀 끝이 고운 분홍색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많이 춥나? 여우 녀석, 추위 잘 타게 생기긴 했지. 비실해가지고.'
내일 목도리 챙겨와야지. 강백호의 작은 다짐과 함께 서태웅과의 첫 하교가 시작되었다.
"여우야, 그럼... 갈까?"
도르륵도르륵. 자전거 끄는 소리를 들으며, 언젠간 저 자전거도 자연스럽게 뺏어 끌 작전을 생각하며 서태웅과 함께 나란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성공했다. 여우와의 하교 일주일 차인 오늘, 드디어. 강백호의 작전이 성공한 건 아니고, 하늘이, 아니 고양이가 내려준 귀한 기회 덕분이지만 아무튼 성공했다.
"잠시만. 나 아는 고양이야."
서태웅이 강백호에게 자전거를 맡기며 골목 사이에 쭈그려 앉는다. 강백호는 혹여나 고양이가 도망갈까, 조심스레 자전거를 끌고 서태웅 뒤에 섰다. 새끼고양이인가, 아니면 다 큰 어른 고양이인가. 강백호의 눈에는 거기서 거기였다. 고양이는 다 작다. 노란 고양이가 연신 울음소리를 낸다. 서태웅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가방을 뒤적거렸다.
"응. 잠시만. 아, 미안. 오늘은 다른 거 가져왔어."
여우녀석, 지금 고양이랑 얘기하나? 지가 고양이야? 허, 참. 하, 웃기네... 귀엽다.
"자.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먕. 고양이가 서태웅의 말에 대답하듯 울음소리를 낸다. 서태웅이 고양이도 아니고, 저 고양이랑 대화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강백호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괜히 질투가 났다. 왜 나 빼고 얘기해?
"뭐가. 왜 비밀인데?"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서태웅과 낯선 고양이의 의미 없는 대화에.
"엄마가 이거 일주일에 하나만 준댔는데, 얘가 이거 엄청 좋아해서. 내가 몰래 일주일에 하나씩 더 챙겨주고 있어."
"그, 그르냐... 근데 그래도 돼?"
강백호는 의외로 순순히 돌아오는 대답에 당황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
"두 개까지는 괜찮아. 이거 맛있는데... 하나만 먹는 건 불쌍하잖아."
"그거 고양이 간식 아니냐? 먹어봤어?"
"... 몰라. 아무튼 얘가 맛있대."
이쯤되자 아무리 둔한 강백호라도 눈치를 챌 수 밖에 없었다. 서태웅 이 녀석 혹시...
"고양이 좋아해?"
"응. 얘는 제일 친한 고양이인데. 이름은 먀아... 조던이야."
강백호의 속이 드글드글 끓기 시작했다. 아니, 여우는 어떻게 여우면서 고양이를 좋아하냐? 여우면 같은 여우나! 아니면 친척인 개를 좋아해야지!
"친한 개는 없냐? 고양이보다 개가 더 멋지잖아!"
"... 고양이도 멋있는데."
"아니거든! 고양이는 까탈스럽고, 성격도 더럽고, 별로거든! 개가 더 멋지고 착해서 좋거든!"
서태웅이 표정을 굳혔다. 퉁명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강백호를 올려다보던 고개를 다시 고양이를 향해 돌렸다.
"흥. 그러든가."
"왜! 왜 고양이가 좋은데!"
여우면서!
강백호는 납득할 수 없었다. 개가 얼마나 멋진 동물인데, 고양이가 더 좋다니. 서태웅은 가만히 고양이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뜸 들였다.
"... 귀여워서."
서태웅이 고개를 돌려 강백호를 올려다봤다. 고양이가 잘 보이도록 몸을 옆으로 비키며 강백호를 재촉했다.
"봐. 먀, 조던. 귀엽잖아."
"흥, 별로! 넌 귀여운 게 좋냐?"
서태웅이 이번엔 강백호를 빤히 쳐다본다. 강백호의 들끓던 흥분이 가라앉고, 차분해진 머리로 지금 서태웅이 친하다는 고양이를 귀엽지 않다고 말해버리는 아주 큰 실수를 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한참을 조용히 쳐다봤다.
"여우, 내 말은..."
"그런 것 같은데."
"뭐?"
"귀여운 거... 좋다고."
서태웅의 뺨이 옅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강백호는 그런 사소한 변화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큰일이다. 서태웅은 개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면서, 심지어 귀여운 게 취향이었다! 강백호는 절망했다. 서태웅 앞이라 티를 안 내려 노력했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강백호는 저 자신을 잘 안다고 자부했다. 자신은 절대 귀여울 수 없었다. 인간으로서의 모습도, 시바견 혼현을 드러냈을 때도, 멋지고 용맹하고 든든하고 강인하기만 하지, 귀엽지는 않았다.
"귀여운 거 말고, 멋진 거는?"
먀앙. 다리에 머리를 톡 치는 고양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며 서태웅이 일어섰다. 강백호를 수 초 바라보더니 이내 자전거 핸들을 뺏어 쥐며 퉁명스레 대답한다.
"몰라."
파사삭. 바짝 마른 심장이 가루가 되어버렸다. 다시 시작된 둘만의 하굣길, 강백호의 절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일요일에 같이 원온원하자는 서태웅의 한마디가 강백호의 얼굴에 다시금 햇살을 가져다주었다.
일요일 낮 11시. 약속 시간은 강백호가 정했다. 가볍게 몸 풀고, 여우랑 (마치 데이트하는 것처럼) 둘이서 점심을 먹을 수 있을 만한 시간. 서태웅은 농구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니, 잘 하면 저녁까지 같이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금요일 오후, 강백호는 서태웅과 약속을 잡으면서 그런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서태웅과 주말에 따로 만나다니. 기분이 하늘을 찔렀다.
토요일 밤까지만 해도 괜찮을 줄 알았다. 일요일 아침, 아니 아침이라 하기도 이른 새벽녘에 강백호는 깨달았다. 이대로는 서태웅을 만나러 나갈 수 없다.
>>>>> 서말님 시바배코 보러가기 <<<<<
(해당 장면은 하편에 등장)
안녕하세요. 또 오랜만이에요....
서말님과 약속했던 시바배코가 몇 개월 만에 겨우 세상에 나왔어요. 적다 보니 제 안의 설명충이 계속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세계관 설정을 나불거리는 걸 자제하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딱히 자제되진 않은 것 같네요. 아무렴 취미 활동이니 그런 거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저 좋을 대로 쓰겠다는 뻔뻔한 생각까지 하며 겨우 이번 글을 마무리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봐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하편도 곧 들고 올게요! 하편은 성인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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