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onderful World

[슬램덩크] What a Wonderful World 2

우성명헌 스파이물au (선동과 날조만 가득한)

3RD by 자엉

(빨리 쓴다고 했던 사람 손)(저요)(탕)(거짓말쟁이는 처리햇으니 안심하라구)

기술학교에서 이런 말이 우스갯소리로 돌았던 적이 있었다. 스파이란 족속은 엄마는 배신해도 파트너는 배신하지 못한다고.

사설용병, 업계 용어로 스파이라 불리는 이들이 풀어야 하는 딜레마는 많았다. 의뢰인이 원하는 것이 정의가 아니어도 감내했고 폭력은 최악의 수단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써먹었다. 피와 살을 나눈 혈육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경계하게 됐다. 인정에 흔들려 정보를 흘렸다가는 본인만 죽고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용병으로서 제 몫을 하려면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는 애착 관계를 포기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럼에도,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랑할 상대는 필요했다.

기술학교에서 만난 ‘파트너’는 세상물정 모르는 용병들에게 허락된 신뢰와 애정의 대상이었다. 손발을 맞추다 보면 눈이 맞았고, 그러다 배 맞는 거야 금방이었다. 종일 붙어 지내는 파트너는 가족 이상으로 소중해졌다―이성끼리 파트너가 되었을 경우에는 진짜 가족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가족을 살리겠다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용병이 많아지자 상부는 같은 성별끼리 파트너로 묶었다. 애가 생기지 않으면 극단적으로 구는 용병이 줄어들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상부의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파트너끼리의 자식이 없어도 파트너는 파트너였다. 평생 파트너 한 명에게 충성하는 용병은 드물었으나 파트너를 배신하는 용병 역시 없었다. 제 파트너를 버리고 혼자 살아남는 자가 간혹 있기는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면서. 동료들도 어쩔 수 없이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파트너조차 배신한 용병을 어떻게 믿고 일을 하겠는가?

당시 사와키타는 일본의 지역 유지가 의뢰한 상속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후계자가 한 명으로 정해지면 상속 문제는 평화롭게 해결된다. 의뢰인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한 밑작업이 한창일 때, 상부에서 말도 안 되는 제안을 건넸던 거였다.

“지금 저한테 파트너를 배신하라는 겁니까?”

차라리 은퇴하고 잠적하라는 지시였다면 몇 초 고민해봤을 터였다. 높으신 분들의 사정으로 파트너를 바꾸라는 제안이라면 코웃음치고 고개를 조아리는 시늉이라도 했을 거다.

“무엇을 우선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당신은 파트너를 배신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충성하는 거죠.”

개소리도 정성스럽게 포장하면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렇다고 현혹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사와키타는 거절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일에 섣불리 답변할 필요는 없었다. 역정 내어 적을 만들어봤자 부평초 같은 삶이 더 피로해질 따름이었다. 하지만 상부는 어떻게든 후카츠를 제거하고 싶었는지 사와키타 앞으로 성분이 모호한 마취제를 보내 왔다. 후카츠를 무력하게 만들면 이후는 알아서 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때 사와키타―우성의 나이 스물 둘. 기술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이었지만, 발을 담가도 괜찮은 곳을 구분할 줄 아는 만큼은 머리가 굵어 있었다. 마취제를 받은 날 후카츠는 숙소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엄지 손톱만한 캡슐을 손 안에서 굴리며 밤새 생각했다. 후카츠에게 경고해야 했다. 상부는 피를 보아야 포기할 거였다. 이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누군가 죽어야만 했다.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후카츠를, 그의 파트너를 넘기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상부를 직접 만나 담판을 짓고 오게끔 하는 거다. 어쩌면 그게 누명을 벗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후카츠를 다치게 내버려두기 싫었다. 그건 배신이었다. 설령 후카츠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용서해줘도 그랬다.

사와키타는 후카츠 몫의 마취제를 대신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연락 수단으로 받은 선불폰을 눈에 띄는 자리에 두어, 재수 없게 식중독으로 몸져누운 것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죽음 같은 잠을 품었다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나비처럼 생긴 곰팡이를 보아 하니 병원이나 다른 숙소로 이동한 것 같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리다 물을 떠 오던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남자는 한숨도 못 잔 것 같은 얼굴로 물주전자를 사이드 테이블에 내려놓고 앉았다.

“얼마 지났어요?”

“이틀.”

남자가 그의 왼손을 양 손으로 붙잡았다.

“왜 그랬어?”

그는 남자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명료하지 못한 정신이 입에 발린 거짓을 거부했다. 설마 약물에 자백제도 섞여 있었나? 의심이 어렴풋이 일었다가 흩어졌다. 거짓을 말하고 싶지 않은데 진실이 하나가 아니었다. 당신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당신이 내 파트너니까. 악몽을 꾸던 나를 구해줬으니까. 두려운 건 죽음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남자는 붙잡은 손을 뺨에 가져다댔다. 손끝에 물기가 묻었다.

“다시는 그러지 마.”

남자의 눈물은 낯설지 않았다. 기술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몇 번이고 몸을 섞으며 생리적으로 흘리는 눈물을 봐 왔다. 그렇지만 남자가 진짜로 우는 것은 그날 처음 보았다. 그는 남자에게 처음으로 미안해졌다.

사와키타가 예상했던 것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그는 살아남았고, 남자는 위기를 모면했으며, 얼마 후에 기술학교의 누군가가 아주 불행한 사고로 명을 달리했다. 그러니까, 전날 전화한 사람은 일전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그를 ‘사와키타’라 부르며 요청한 내용도 조금 달랐다. 임무를 마치는 즉시 상부로 오라는 호출이었다. 다만, 명헌은 호출 받지 못했다. 그를 방임하던 상부가 새 파트너를 소개해주려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단독 임무를 맡기거나.

‘단독은 어지간해서는 안 주니까 전자겠지.’

그런데 우성은 지난 삼 년간 파트너 없이 지내왔었다. 새 출발을 하라는 타이밍이 공교로웠다.

그는 요즈음 기본적인 2인 1조 시스템조차 불필요한 하찮은 잡무만 맡아 왔다. 말이 스파이이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설탐정이 된 것과 비슷했다. 상부는 우성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렇게 인재를 썩히다 드디어 결심이 선 거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상부는 명헌과 우성의 관계가 어그러졌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체 했다. 아예 작정하고 이간질을 했을지도. 임무에 실패하고서 간신히 귀환한 명헌에게 그를 내버려두라고, 우성 없이 임무를 계속하라고 명령한 건 윗선이었나? 그들의 헤어짐은 비극의 결말이 아니라 명령의 결과에 불과했단 말인가?

그럼, 우성이 다시 나타난 명헌을 용서하면 모든 게 괜찮아지는 걸까?

 


 

 

센트럴 플라자는 기본적으로 쇼핑센터에 사무 공간이었다. 즉, 일반인들의 출입이 잦다. 그러나 세미나를 주최한 이들은 대중의 이목을 꺼렸던 모양이었다. 케이터링 사설업체를 고용하여 세미나 장소와 가까운 로비에 작은 파티 공간을 꾸미고 이어지는 출입구를 통제했다. 높으신 분들의 가벼운 여흥을 책임진 업체는 신원이 명확하고 입이 무거운 자들만 추렸다고 아부했겠으나 우성이 보기에는 순 허점투성이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얼쩡거릴 필요는 없었다. 얼굴을 알리지 말라는 당부를 받기는 했으니까. 우성에게는 노출을 피할 수 있는 폐쇄적인 작업 공간이 필요했다.

세미나가 개최되는 당일 오전이었다. 참석하는 학자로 신분을 꾸몄던 명헌은 센트럴플라자와 가까운 호텔에서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오전 아홉시 사십분. 체크인하며 다림질을 맡겼던 정장 한 벌이 정확히 요청한 시각에 룸으로 전달되었다.

“왜 이걸로 했어요? 당신에게 쿨톤은 안 어울리는데.”

호텔 직원의 유니폼을 입은 우성이 안으로 들어와 옷장에 정장을 걸어놓았다. 셔츠 차림으로 문을 열어준 명헌은 욕실로 돌아가 분장을 마무리했다. 액체형 라텍스로 코를 살짝 높이고 피부색과 비슷한 왁스를 엷게 바른 다음 화장품으로 어색해 보이는 부분을 손봤다. 그러고 보니 헤어스타일뿐만 아니라 머리카락도 짙은 갈색으로 바뀌었다. 주변을 둘러본 우성이 텔레비전 옆에 둔 대한민국 여권을 발견했다. LEE MYUNG HEON. 욕실에 있는 남자와 꼭 닮게 생긴 사람이 반짝반짝 빛나는 사진 속에 있었다. 안경을 쓰고 정장을 갖추면 영락없이 대학교로 출근하는 교직원처럼 보일 것 같았다.

양말과 가터는 이미 착용하고 있었던 명헌이 정장 바지를 입었다. 검은 가죽 벨트를 채우기 전에 셔츠의 소매를 정돈하고, 욕실의 수건걸이 앞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청록색 넥타이와 다홍색 넥타이가 걸려 있었다.

욕실 문가로 돌아온 우성이 제안했다.

“빨간색.”

“촌스러워 보이잖아.”

“세련된 교수도 있어요?”

명헌이 말없이 청록색 넥타이를 집어 우성에게 건넸다. 우성에게 반박하지는 못했어도 강렬한 보색 패션은 피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바싹 다가간 우성이 능숙하게 넥타이를 매 주었다. 매듭을 완전히 조이기 전에, 우성은 두툼한 노트에 도청기를 부착했다. 턱 끝을 살짝 올린 채 가만히 있던 명헌이 입을 열었다.

“채널.”

명헌의 숨결이 우성의 입술에 닿았다.

“3번이요.”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었지만, 우성은 성실하게 대꾸했다. 이런 식의 작전에서는 목표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 곳으로 의사전달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접촉’하는 사람과 ‘숨는’ 사람은 일방향으로 소통하게 되어 있었다. 뒷걸음질로 욕실에서 벗어난 우성이 오른 손목에 착용한 디지털시계로 초소형 통신기를 조작했다. 들려? 익숙한 목소리가 오른쪽 귓가에 담긴다. 고개를 끄덕인 우성이 바지 뒷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형광색의 가스라이터는 아무데서나 구입할 수 있는 싸구려처럼 보였지만, GPS가 내장된 첨단기술의 집약체였다.

재킷까지 걸친 명헌이 의아한 듯 우성을 돌아봤다. 목표에게 부착해야 할 장치는 명헌이 별도로 준비해놨었다.

“이건 당신 거예요. 또 물가에서 헤어지면 추적해서 찾아가려고요.”

명헌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읽은 우성이 희미하게 웃었다.

명헌과 재회했어도 우성의 개인 채널은 내내 죽어 있었다. 이 임무를 왜 맡았는지, 하필 우성을 골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명헌은 그와 예전처럼 지낼 마음이 없어 보였다. 가장 깜깜한 밤에 작전이 시작되는 파란 새벽을 기다리며 서로의 손과 뺨, 어깨, 입술을 위로했던 시절은 영영 과거에 두겠다는 것처럼. 그 사실이 우성을 슬프게 만들면서도 오기를 부리게 했다.

그러니 호텔을 찾아온 거였다. 그깟 도청기, 별 거 아닌 위치추적 장치는 사람을 시켜 전달할 수 있었는데도 추억을 쫓듯 손수 넥타이를 고르고 도청기를 달아줬다. 하지만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오전 아홉시 오십분. 호텔 직원이 복도로 다시 나왔다. 직원용 계단을 통해 뒷문을 빠져나간 직원이 검은 재킷을 벗어 쓰레기더미 옆에 던졌다. 구김 없는 검은 슬랙스 바지에 흰 셔츠차림이 되니 별 네 개짜리 호텔 직원의 단정한 맛은 사라져버렸다. 그는 미리 숨겨놓았던 스크램블러에 올라타 헬멧을 썼다. 목표를 사살하는 작전이었다면 이 온오프로드 겸용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편했겠으나 오늘은 달랐다. 디지털시계로 방위를 확인한 가짜 직원이 동쪽으로 핸들을 틀었다. 스크램블러를 반납하고 은폐 가능한 중형차를 구해오기 위해서였다.

오늘 밤 연회가 끝나고 손님을 뒷좌석에 태울지 트렁크에 실을지, 그것은 이제 무정한 옛 파트너에게 달렸다.

 

 


 

세미나는 오전 열한시부터 시작이었다. 명헌은 가짜 신분으로 사전참가신청을 해 두었고, 명헌을 보조하는 또 다른 사설용병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참석할 예정이었다.

초소형 이어피스로 전해들은 개최사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고 기조발표는 그냥 그랬다. 정오 쯤 되자 잠시 휴식을 알리는 사회자의 멘트가 현실의 소음과 뒤섞였다. 센트럴플라자 인근은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로 인산인해였다. 우성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실패하지 않는 맥도날드에서 해피밀 세트를 두 개 포장한 뒤 대관람차가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날씨는 적당히 포근했고 오후나 저녁 무렵에는 약간 구름이 낀다고 했다. 비 오는 날 시체 처리하는 것만큼 구질구질한 일은 드물었으니 차라리 잘 되었다. 목표를 산 채로 배달해야 할 경우에는 비 오는 날씨가 나을 수도 있겠지만.

‘역시 죽일 것 같은데.’

이건 다년간 명헌과 함께 작전을 해 왔던 사설용병으로서의 감이었다. 목표를 반드시 심문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목표와 접촉한 용병이 작전을 진행하는 것이 나았다. 중간 인수인계는 목표에게 꼬리가 붙었거나 번거로운 놈들―인터폴 따위가 붙었을 때에나 하는 짓이다. 그리고 그런 놈들이 붙었다면 명헌은 사전에 고지를 해 주고도 남았을 남자였다. 물론, 목표를 은밀하게 추적하는 국제기관이나 정부요원의 존재를 몰랐을 수도 있긴 한데……. 우성은 피식 웃었다. 그 정도로 녹이 슬었다면 작전이고 뭐고 명헌을 납치하여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치는 게 서로에게 무사한 결말이 될 터였다.

우성은 햄버거 하나를 세 입에 먹어치우고 엄지를 핥았다. 이런저런 가정을 소거하여 나오는 유력한 결론은 하나였다. 명헌은 목표에게서 정보를 빼 낼 의욕이 없었다. 목표로 한 인물이 정보를 누설한 건 기정사실일 거다. 심증이 있을 뿐 물증을 찾아야하는 단계―그보다 더 나아가 심증과 물증 모두 확보했지만 본인에게서 확인사살을 받아야 하는 단계일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제3의 용병. 어쩌면 그 자가 상부에서 파견한 심문가일수 있었다. 명헌과 함께 목표의 자백을 확인하고, 처분 전 건져야 할 정보가 있다면 즉석에서 심문할 계획이라거나. 우성이 추측만 하는 건 명헌이 제3의 용병에 대해서는 최소한으로 정보를 전달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생물학적 성별이 여자인 건 확실한데. 상부에서 파견하였으되 기술학교 출신이 아닌 자였기에 우성도 아는 바가 적었다. 용병으로서의 인상착의는 알고 있었으나 의미가 없었다. 명헌처럼 분장하고 있을 테니까. 명헌은 화장에 서툴러 필요하다면 코와 머리색만 조금 바꾸는 정도였는데, 우성처럼 본격적으로 변장술을 배웠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짜고 기름진 감자튀김이 물릴 무렵 우성이 기다리던 인물이 벤치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현지의 조력자였다. 다른 말로 하면 온갖 커넥션 사이에서 줄 타며 중개업을 하는 브로커. 우성이 작전 동안 사용할 거처와 밀반입 무기, 이동수단 등을 제공해주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해결사. 영상 통화로 인사할 때마다 꼬질꼬질한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간만에 직접 얼굴을 보게 된 오늘은 옷차림이 달랐다. 그래도 지저분해보이는 40대 아저씨인 건 변함이 없었지만 말이다.

브로커는 우성의 옆에 나란히 앉아 포장지를 뜯지 않은 햄버거 하나를 집어 들었다. 물물교환 하듯 건넨 것은 그가 기다리던 중형차의 열쇠였다.

“SUV에 표지판은 위조이고. 방탄은 아냐. 가볍게 쓸 만 해.”

“1층?”

“자리 없어서 2층에.”

영어 발음은 또렷했는데 먹으면서 말하느라 제대로 안 들렸다. 그래도 우성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동 기어?”

“자동 싫다며.”

“혹시나 싶어서.”

브로커가 햄버거를 느리게 씹다 손사래를 쳤다.

“수동 맞아.”

“알겠어.”

본인 몫의 쓰레기를 챙겨 일어나려던 우성이 브로커를 돌아봤다.

“무기는 어떻게 반납해야 하지?”

“그건 선물이야.”

브로커가 우성을 흘끔 올려다봤다.

“넌 까다롭지도 않고 값을 후려치지 않으니까 서비스로 알려주는 거야. 너희가 사전에 요청한 건 다섯 개였어. 이동수단, 변장용 도구, 위성 노트북, 선불폰, 임시 거처. 이렇게.”

“……서비스가 너무 후한데.”

홍콩은 이제 무법도시가 아니다. 중국 공안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무기 밀매는 까다로워졌고, 그래서 더욱 돈을 부르는 사업이 되었다. 그렇더라도, 일련번호가 지워진 자동권총까지는 아슬아슬하게 서비스의 영역이었다. 국지전이 한창인 전쟁터에서나 쓰일 법한 저격총은 공으로 먹기 부담스러웠다.

“네 형(brother)이 널 무장시키라면서 돈을 줬어.”

“뭐?”

“후하게.”

햄버거를 한 입 더 먹은 브로커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맥밀란은 선물인 거고 나머지는 이따 거처로 배송할 거야. 아니면 직접 받아 갈래?”

우성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럴 여유는 없어.”

브로커가 다시 손사래를 쳤다. 이제 할 말이 없다는 수신호였다. 등 돌려 걷던 우성은 멈춰 서서 멍하니 옆을 돌아봤다. 야경이 잠든 빅토리아만의 수면이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우성은 다시 길을 재촉하였으나 인근의 공영 주차장 2층에 다다르기까지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추기를 반복했다.

형이 나를 무장시키려 했다? 어째서?

총기류를 소지하는 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혹은 닥쳐오는 위험을 처리하기 위해. 우성은 전자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번 작전 목표의 목숨이 바람 앞의 등불이었으니까. 하지만 후자가 되면 지금까지 넘겨짚었던 것들을 죄 다시 돌아봐야 했다. 브로커가 거짓을 말한 게 아니라면, 명헌은 우성이 공격적으로 방어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브로커가 준비해 놓은 자동차는 검은색의 한국 SUV로 기본적인 작업이 끝나 있었다. 앞 유리를 비롯한 창문은 짙게 선팅했고 조수석에는 공안 무전을 엿들을 수 있는 기기가 비치되어 있었다. 우성은 명헌의 주변을 도청해야 했으므로 무전까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없는 것보다야 나았다. 운전석 등받이에 무너지듯 기댄 우성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가능성이 나타났다.

상부는 명헌과 우성이 지지고 볶든 어쨌든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의뢰받은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면 그만 아닌가? 그러나 명헌에게는 달랐던 거다. 되는 대로 살던 그는 저도 모르는 새 위험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고 옛 파트너는 그걸 어떻게든 저지하고자 했다. 무슨 위험인지는 알 수 없다. 솔직히, 일개 사설용병을 노리는 집단이나 킬러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은밀하게 다가오는 미지의 위험이라는 건 현역 용병이 감내해야 하는 부수적인 피해였다.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는, 신경 써서 처리해주어야 하는 과태료 고지서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 그럼 이번에도 날 먼저 보내고 죽을 생각인가요?’

왜 그 사람의 대가리 속에는 같이, 살아서 위기를 모면한다는 생각이 없을까? 과거의 일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 대뜸 작전용 호출을 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자초지종을 얘기해주어야 했다. 또 한 번의 한숨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기를 밀어낸 우성이 차의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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