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와 부주장의 육아사정

[태웅준호] 에이스와 부주장의 육아사정 2

-태웅이와 준호가 육아(?)하고 썸도 타는 이야기-

세준이 잠에서 깬 건 30여분이 지난 후였다. 좀처럼 일어날 기미가 없어서 태웅이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다. 태웅의 품에서 꼼지락거리던 세준은 눈을 비비며 삼촌의 품에서 내려왔다. 아직 졸린지 아니면 울어서 눈가가 쓰린지 세준은 눈을 연신 깜박이며 말했다. 

"삼초온....농구해...."

눈물이 말라서 푸석푸석한 뺨과 아직 졸음을 떨쳐내지 못한 눈을 하고도 세준은 농구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아까 슛하는 거 못 보여줬어... 라고 웅얼거리는 모습에 준호는 무심코 웃음이 났다. 얼굴만 닮은 줄 알았는데 농구를 좋아하는 것도 똑같네 라는 생각을 하며 이마에 붙은 세준의 머리카락을 쓸어줬다. 

"농구하려면 얼굴부터 닦고 와야겠는 걸. 여기서 오른쪽으로 좀 더 가면 공용화장실 있더라. 가서 세수시키고 와."

짐은 내가 보고 있을게. 라는 준호의 말에 태웅은 잠시만 부탁드린다며 세준을 데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미리 챙겨온 손수건에 물을 묻혀 눈물이 말라붙은 세준의 얼굴을 태웅은 조심스럽게 닦아줬다. 얼굴 구석구석 닦아주는 태웅의 손길을 받고 있던 세준은 다 됐다는 삼촌의 말에 거울을 쳐다봤다. 아직 눈가가 빨갰지만 조금 전보다는 한결 나은 제 얼굴에 만족한 듯 했다.

"세준아"

"응?"

"농구장에 가면 선배한테 제대로 인사해야 돼. 아까 인사 안했잖아."

우웅.. 하고 대답하며 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는 커녕 대뜸 울면서 삼촌을 혼내달라고 했으니 그러면 안된다고 한마디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겨우 진정된 세준이 울 것 같아 태웅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나중에 누나한테 얘기해두면 되겠지.. 

"삼촌, 선배도 농구할 줄 알아?"

"응, 선배도 농구부야."

"정말?"

태웅의 손을 잡은 세준은 준호가 농구부라는 말에 눈을 빛냈다. 아쉽게도 세준의 아빠 그러니까 태웅의 매형은 운동신경이 그리 좋지 못한 사람이었다. 농구 역시 전혀 할 줄 몰랐기에 세준이 태웅에게만 농구를 하자고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세준의 아빠도 아들과 놀아주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애초에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이 갑자기 잘하게 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세준의 농구 상대는 항상 태웅이었고 그외에 다른 이와 농구를 한 적은 없었다. 유치원에는 농구골대가 없어서 친구들하고 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런 세준에게 준호는 자신과 농구를 해줄지도 모르는 존재였다.

"그럼 선배랑 농구해도 돼? 삼촌이랑 하고 선배랑도 할래"

"...허락 받고 해."

허락 받으라고 말한 태웅이었지만 조금 전까지 세준을 대한 준호의 태도를 보면 준호가 세준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선배를 너무 귀찮게 하는 것 같지만... 솔직히 준호가 어울려주는 게 태웅은 맘이 편했다. 태웅의 말에 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준호가 앉아있는 벤치 쪽으로 뛰어갔다. 말끔한 얼굴이 돼서 온 세준을 보고 준호는 다녀왔어? 하고 상냥하게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 세준은 양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윤세준이구 나이는 6살이고 별빛유치원 은하수반이에요. 삼촌이 제대로 인사해야된댔어요."

"아... 나는 권준호야. 북산고교 3학년 6반이야. 잘 부탁해 세준아"

씩씩한 얼굴로 자기소개를 하는 아이를 보고 준호는 웃으며 답했다. 태웅과 닮았는데 무뚝뚝한 태웅과 달리 세준은 솔직한 아이였다. 태웅이도 어렸을 때는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드는 준호였다. 만약 그랬다면 필시 주변에서 사랑받는 아이였을 거라는 생각도 함께. 자기소개를 마친 세준은 뒤늦게 온 태웅과 함께 코트장으로 들어섰다. 이번엔 꼭 연습한 슛을 보여주겠다고 하는 세준을 보며 태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시선을 돌려 준호를 쳐다봤다. 둘을 쳐다보고 있던 준호는 태웅과 시선이 마주치자 입모양으로 말했다.

'봐주면서 해.'

준호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접으며 웃었고 태웅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농구 코트에 서면 상대가 누구든 전력을 다하게 되는 건 태웅에게 있어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지만 세준이 또 울음을 터뜨리는 건 사양이었다. 공을 든 세준을 앞에 두고 태웅은 심호흡을 한 번했다. 봐줘야 해, 봐줘야 해.. 울리면 안돼, 울리면 안돼... 그렇게 속으로 몇번 되뇌이고 태웅은 자세를 낮췄다. 

"세준아, 힘내~"

준호는 북산의 시합을 응원하던 때마냥 세준을 보고 크게 외쳤다. 세준은 응원에 준호의 응원에 응! 하고 크게 대답하고는 드리블을 시작했다. 요리저리 눈을 굴리며 자신의 빈틈을 찾는 걸 보고 태웅은 세준을 압박하는 척 자신의 오른쪽에 세준이 빠져나갈 공간을 만들어줬다. 삼촌에게 보여주려고 열심히 연습했다던 세준이 이 빈틈을 놓칠 리 없었다. 세준은 빈 틈으로 파고들어 태웅을 따돌리고는 점프슛을 던졌다. 태웅의 방해를 의식해서 조금 빨리 던진 탓에 백보드에 부딪히긴 했지만 빗나가지 않고 림 안으로 쏙 들어갔다.

"들어갔다!"

"잘했어 세준아!"

준호의 칭찬에 세준은 헤헤 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공을 주웠다. 이번엔 더 깔끔하게 넣을 거라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는 조카를 보며 태웅은 한 번 해보라는 듯 다시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원온원을 준호는 즐거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태웅이가 봐주고 있지만 세준은 그 나잇대 아이들 보다는 자세도 기술도 좋았다. 

'농구는 태웅이가 가르친 걸까? 크면 태웅이 같은 슈퍼루키가 되겠는 걸.'

태웅처럼 어느 학교 농구부의 에이스로 자랄 세준을 상상하며 준호는 웃었다. 이왕이면 북산으로 와주면 좋겠네.. 세준이가 고등학생이 될 때면 북산은 강팀일까? 태섭이도 대만이도 돌아왔으니까 주전들의 능력치는 나쁘지 않지만 선수층이 얇은 게 단점이니까.. 그걸 커버하려면 나도 다른 애들도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돼. 그런 생각들을 하며 준호는 코트를 바라봤다. 태웅은 세준을 잘 봐주고 있었지만 역시나 지는 건 싫은지 세준이 골을 넣으면 자신도 바로 골을 넣어 점수를 만회했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며 점수를 따던 세준은 벤치 쪽을 보더니 원온원 그만할래 하고 말했다. 그리곤 준호에게 쪼르르 다가와 공을 내밀었다.

"선배도 같이 농구해여!"

"나도?"

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준호의 손을 잡고 코트쪽으로 그를 끌고왔다. 아이가 잡아당긴다고 해서 맥없이 끌려갈 그가 아니었지만 왠지 그 손에 저항할 수 없어서 그대로 이끌려 코트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들용 코트에 건장한 고교생들이 들어오니 코트가 꽉 차는 느낌이었다. 

"선배도 농구부라구 삼촌이 그랬어요 그니까 같이해요 농구! 삼촌이랑은 많이 했으니까 이제 선배랑도 할래!"

"...아까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얘기해줬어요. 세준이가 물어봐서요."

아까 오는 길에 뭔가 얘기하던 게 이거였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선배도 농구부야. 삼촌만큼 잘하진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어."

그 말에 세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

"왜요? 선배면 삼촌보다 잘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린 아이의 머리론 '선배'라는 건 삼촌의 윗사람이니까 당연히 농구도 더 잘 할한다 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준호는 아이의 순진한 생각을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태웅의 생각은 달랐다. 

"세준아"

혼내려는 듯 조금은 엄한 목소리로 태웅은 말했다. 근데 막상 부르고나니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 선배한테 그런 말 하면 안돼. 라고 말하면 이해해줄까 되려 왜? 라고 되물어오는 건 아닐까 오히려 자기가 혼내는 걸 보고 선배가 더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구를 할 때는 이기고 싶다/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몸을 맡기면 됐는데 세준과 있을 때는 혹시 모를 경우의 수까지 생각해야 했다. 거기에 선배인 준호까지 있으니 생각의 과부하가 걸릴 것 같았다.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태웅이 삼촌은 농구부 에이스니까 선배보다 잘 하는 게 당연한 거야. 아니었으면 선배가 에이스였을껄?"

그렇게 말하며 준호는 웃었다. 원래라면 농구실력에 선후배는 없는 거라고 설명해야겠지만 세준이가 그 뜻을 이해하기엔 아직 일렀다. 그래서 준호는 세준이가 이해할만한 가장 손쉬운 대답을 했다. 준호의 생각대로 세준은 제 삼촌이 에이스라서 그렇다는 말에 납득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태웅이 에이스라는 것 자체가 그 말을 증명하는 셈이니 그가 딱히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후배에게 비교당해 분하지 않냐고 물으면 조금은 분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만큼 그의 실력에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도 열심히 해야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범한 사람이 천재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행동하길 멈출 생각은 없었다. 멈추기엔 농구가 너무 즐거우니까.

"그렇지만 세준이랑 같은 편하면 삼촌한테 이길지도 모르겠는 걸. 우리 같이 삼촌 이겨볼까?"

준호가 세준을 향해 주먹을 내밀자 세준은 눈을 깜박이다 환하게 웃으며 응! 하고 준호의 주먹에 제 주먹을 콩하고 대었다.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



"너무해 삼촌!"

림을 통과한 공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세준이 말했다. 이거 아까의 데자뷰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공을 줍자 세준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태웅을 보고 있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었는데!"

"하하, 역시 못 당하겠네~"

2대1로 한 10점 내기 승부는 10 대 8로 태웅의 승리로 끝났다. 세준이가 있었다고 해도 실질적으론 준호와 태웅의 원온원에 가까웠다. 처음엔 세준을 의식해서 태웅은 아까와 같이 조금은 봐주면서 했지만 준호가 공격적으로 득점을 시도하자 슬슬 진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지막 슛을 성공시켰다. 불만이 가득해보이는 세준과 다르게 준호는 땀이 맺힌 안경을 닦으며 웃었다. 

"삼촌이 너무 잘해서 우리가 졌어!"

"그러게, 역시 태웅이 삼촌은 에이스야. 그치?"

세준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진 건 분하지만 삼촌이 에이스 소리 듣는 건 좋은 모양이었다. 태웅은 세준이 더 토라지기 전에 공을 들지 않은 손으로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도 잘했어 라는 말과 함께 세준을 쓰다듬는 손길은 덤덤했지만 애정이 묻어나 있었다. 세준은 삼촌의 칭찬과 손길에 뾰루퉁했던 얼굴을 풀고 웃었고 그런 조카를 보는 태웅의 얼굴 역시 조금 풀어져 있었다. 입가를 살짝 올려 웃는 태웅의 모습은 한결 편해보였다.

'태웅이도 저런 표정을 짓는 구나. 귀한 장면인 걸..'

농구부에서 태웅의 평가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에이스였다. 태웅은 선배들의 말에는 고분고분한 편이었고 같은 1학년들과의 교류도 백호를 제외하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을 털어놓는 일은 드물었다. 정말 필요한 게 아니면 태웅은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기보다는 흐름을 따라가는 걸 선택했다. 말로 표현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표정으로도 드러나는 것이 거의 없는 태웅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조금 대하기 어려운 후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입부한지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불필요한 걱정이었지만. 농구부원들은 상상도 못할 태웅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색다른 기분이었다. 자신이 알던 후배와는 다른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게만 보여주는 모습을 자신이 훔쳐본 것 같다는 기분도 들어 왠지 머쓱해졌다. 

"....선배"

"..."
"...준호선배"

"..어? 어.. 왜?"

"아뇨, 선배가 절 빤히 보고 계시길래요."

태웅의 말에 준호는 민망함을 감추려 안경을 고쳐썼다. 태웅이 표정이 인상 깊어서 계속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도 참... 뭐하는 거람.. 태웅은 준호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준호를 보며 눈만 깜박거렸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 세준이 쏙 끼어들더니 준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선배, 우리 햄버거 먹으러 가자~"

"햄버거?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어느 새 시간이 5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날이 더워지는 만큼 해가 떠 있는 시간도 길어지는 시기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됐을 줄은 몰랐다. 곧 저녁시간이라고 걸 생각하니 준호도 배가 출출해지는 걸 느꼈다. 방금 전까지 신나게 농구를 했으니 허기를 느껴지는 것도 당연했다. 

"선배도 괜찮으시면 같이 가요. ..누나가 카드 주고 갔어요."

"나는 괜찮은..."

"선배도 같이 가자~ 응?"

거절의 뜻을 밝히려던 준호는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흔들며 같이 가자 조르는 세준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부모님도 일이 있어 저녁 이후에나 들어오시니까.. 이렇게 된 거 저녁까지 후배랑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승낙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준호는 세준을 다리에서 떼어내고 대신 손을 잡았다.

"근데 진 건 난데 밥을 사려면 내가 사야 하지 않나?"

10점 농구 내기. 그냥 하기 아쉬우니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음료수 사주기 라는 벌칙이 걸려 있었다. 물론 준호는 세준한테 음료수를 사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 지면 자신이 사려고 했었다. 얻어먹어도 괜찮나 하고 중얼거리는 준호에게 태웅은 짐을 챙기며 말했다.

"그건 다음에 사주세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선배한테 도움 많이 받았으니까요."

준호가 없었다면 아마 태웅은 울고 토라진 세준과 집에 돌아가서 어색하게 그의 부모가 돌아오길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 해준 것만으로도 준호에게 큰 도움을 받은 거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같이 농구까지 해줬으니 밥은 물론이고 디저트까지 사다바쳐야 할 판이었다. 태웅이 가방을 어깨에 매자 세준은 비어있는 다른 손으로 태웅의 손을 잡았다.

"빨리 햄버거 먹으러 가자~ 나 어린이세트 먹을래!"

햄버거~ 햄버거~ 하면서 흥얼거리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두 사람은 공원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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