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놀

좋아하는 것들.

백호열

너의 신중치 못한 행동이 좋아. 벽에 등밖에 붙일 수 없을 정도로 꼼짝없이 몰렸을 때에 되려 큰 소리를 치는게 좋아. 단정하지 못하게 옷을 흩어놓곤 와서 허리띠를 만져달라 하는 말이 좋아. 아랫턱에 힘을 주고 입술을 삐죽이는 모양이 좋아. 집중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몸을 기울여서 가까워지는 얼굴이 좋아. 꽃을 고를 때엔 철에 맞는 것을 고르려 용을 쓰는 손이 좋아. 넥타이를 매주겠다고 앞으로 왔다가 안된다며 네 목에 직접 해놓고 걸어주는게 좋아. 과일을 깎을 때 껍질을 얇게 깎는게 좋아. 접시를 닦을 때 한번에 거품을 내 모아놓는게 좋아. 열쇠는 꼭 화분 아래에 밀어넣는게 좋아. 그 화분도 꿋꿋하게 물을 줘서 기르는게 좋아. 창가의 커튼을 항상 밝은 색으로 맞추는게 좋아. 바람의 앞에서 양 팔을 벌려 만끽하는게 좋아. 음악을 들을 때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게 좋아. 너의 따스한 체온이 좋아. 피부에 코를 묻었을 때 약간 슴슴하게 느껴지는 묽은 땀냄새가 좋아. 옷을 살 때 보지도 않고 얼마나 큰게 있느냐고 물어보는게 좋아. 그래놓고도 몇 벌은 작아서 악소리를 내는게 좋아. 떨어진 단추 다는 방법을 배우려 드는게 좋아. 바늘귀에 실을 제대로 못 끼우는게 좋아. 자기 손이 커서가 아니라 바늘이 작아서 안된다고 화내는게 좋아. 네 잘못이 아니라고 박박 우기는게 좋아. 나중에 사과를 하러 오는게 좋아. 정직하게 맞다고 인정하는게 좋아. 울적할 때 몸에 파고들려 드는게 좋아. 큰 몸을 구기겠다고 어깨를 옹송그리는게 좋아. 길가에 떨어진 유리조각이 있으면 발로 차서 가장자리로 치우는게 좋아. 해변에 앉아서 물을 바라보는 등이 좋아. 파도를 마주하는 옆얼굴이 좋아. 불타는 것 같은 머리카락이 좋아. 자랑처럼 올리던 머리를 짧게 자른 것도 좋아. 뭉특하기만 하던 손톱이 조금 긴 것이 좋아. 네가 고백을 하려 들 때 마다 종이를 자르는 순간이 좋아. 뒤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는 날이 좋아. 차이고도 나서 새로운 사랑을 준비하는게 좋아. 눈매가 선명하고 사나운 인상이 좋아. 검지 끝으로 매만지면 빽빽하게 차오른 것이 느껴지는 눈썹이 좋아. 카키빛이 도는 갈색 눈이 좋아. 시선 끝이 항상 곧은게 좋아. 서툴어도 다정하게 대하려는게 좋아. 손이 뺨에 닿을 때 느껴지는 새로운 굳은살이 좋아. 엉터리여도 해내는게 좋아. 계속 나아지려고 생각하는게 좋아. 잠버릇이 나쁜게 좋아. 아침마다 뒷머리가 빳빳하게 눌려있는게 좋아. 생각 많은 바보여서 좋아. 첫사랑이 너라서 좋아. 너를 좋아할 수 있다는게 좋아. 네가 날 좋아하는게 좋아. 네가 좋아. 

호열은 종이를 접어 펼쳐놓은 책 사이에 끼워 넣는다. 이인분의 집 안은 반이 덜어져서 영 미적지근했다. 그럼에도 차오른 글만큼 가슴이 빼곡해지는 것은 어떤 법칙인가. 덮은 책 안에서 훈기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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