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와 부주장의 육아사정

[태웅준호] 에이스와 부주장의 육아사정 3

-태웅이랑 준호가 육아(?)하고 썸도 타는 이야기-

"내가 주문할래 내가~!"

공원을 빠져나온 세 사람은 모 버거집에 있었다. 키오스크 기기 앞에서 세준은 제가 직접 하겠다며 태웅을 향해 손을 뻗었다. 주문을 하려던 태웅은 키오스크 앞에서 물러나더니 세준을 번쩍 안아들었다. 

"헤헤.. 선배, 잘봐요 나 이거 잘해~"

키오스크 주문이 익숙한 지 능숙하게 세트메뉴에서 어린이 세트를 담는 세준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사소한 거지만 아이는 그것이 매우 큰 자랑거리인 듯 싶었고 준호는 그런 세준에게 맞장구쳐줬다.

"그러게, 엄청 잘 하네. 선배꺼도 주문해줄래?"

"응! 선배는 뭐 먹을거야? 삼촌 꺼도 내가 주문할래!"

세준은 태웅에게 뭘 먹을지 묻지도 않고 바로 메뉴를 골랐다. 묻지 않아도 뭘 먹을지 알고 있다는 듯 세준은 메뉴를 고르고 수량 추가 버튼을 다다닥 눌렀다. 수량이 10개가 넘어갈 때쯤 태웅이 그 정도면 됐어 라고 말했다. 준호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안경을 밀어올렸다. 별로 그래보이지 않지만 태웅이도 많이 먹는구나... 라고 중얼거린 말을 그가 들었는지 준호를 쳐다봤다.

"선배는 많이 안 드세요?"

"그런 건 아닌데 햄버거는 많이 못 먹겠어."

중학시절 포함해서 6년간 운동부였으니 먹는 양을 일반 고등학생과 비교하면 준호도 많이 먹는 편이었다. 대신 음식 종류를 좀 가리는 편이었는데 햄버거는 준호가 많이 못 먹는 음식 중 하나였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입에 잘 안 맞는달까? 준호의 말에 태웅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지더니 그럼 다른 거 먹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세준이가 심각한 표정이 되더니 태웅을 쳐다봤다. 

"나 햄버거 먹고 시푼데.."

"하지만 선배가.."

"아니, 나는 괜찮아."

많이 못 먹는다는 거지 못 먹는다는 건 아니니까 라고 말하며 준호는 울상이 되려는 세준을 달랬다. 선배는 이거 먹을게 라며 준호는 자신이 먹을 버거세트를 추가했다. 

"정말로 괜찮아요?"

"응, 괜찮아. 얼른 시키자. 뒤에 사람들이 벌써 기다리고 있네."

태웅은 그제서야 자신들 뒤로 주문하러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눈치챘고 빨리 결제창으로 넘겨 계산을 하고 키오스크 앞에서 물러났다. 주문이 끝나자 세준은 태웅의 품에서 내려와 비어있는 자리로 달려가 앉았다. 

"여기 우리 자리!"

"세준인 기운이 넘치네."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맞은 편에 앉는 준호를 보고 세준은 다시 자리에서 폴짝 내려오더니 반대편으로 넘어가 준호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선배 옆에 앉아서 먹을래요!"

"정말? 세준이가 옆에 안 앉아줬다고 삼촌이 삐지면 어떡하려고~"

"아....삼촌 삐졌어?"

반쯤 장난 섞인 말이었지만 세준은 심각하게 생각했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맞은 편에 앉은 태웅을 쳐다봤다. 아니 라고 대답하는 그를 보고 세준은 안심한 표정을 짓더니 준호를 쳐다봤다. 안 삐졌대요! 라는 아이에게 준호는 조금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그래? 선배는 삼촌이 옆에 안 앉아줘서 삐졌는데?"

토라진 척 팔짱을 끼자 아이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 그리고 동시에 태웅의 미간에도 살짝 주름이 졌다. 이런 표정도 닮았네. 준호는 웃음이 나려는 걸 꾹 참았다. 세준은 테이블 너머로 팔을 뻗어 태웅의 손을 잡았다. 

"삼촌, 일루와! 선배 삐졌대. 일루 와서 앉아"

세사람이 앉기에는 조금 좁은 의자였지만 세준은 얼른 앉으라며 다급하게 태웅의 손을 잡아끌었다. 빨리이~ 선배 삐지면 안돼~ 하는 세준의 성화에 태웅이 일어나 옆으로 오려하자 준호는 팔짱을 풀고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세준아 선배 안 삐졌어~ 괜찮으니까 다시 앉아. 태웅아"

"진짜? 진짜루 안 삐졌어요?"

"응, 안 삐졌어. 선배가 장난친거야."

준호의 말에 세준은 인상을 피며 장난치지 말라며 준호의 팔을 콩 때린 후에 그에게 기댔다. 태웅 역시 찌푸렸던 미간을 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선배가 말하면 거짓말도 진짜 같아요. 라는 조금 불만 섞인 말과 함께. 

"미안. 세준이 보고 있으니까 괜히 장난치고 싶어졌어."

"그래두 거짓말 하면 안돼요! 엄마가 거짓말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랬어!"

"응, 앞으로는 거짓말 안할게~"

약속이야! 세준은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제 앞에 내밀어진 작은 손을 보며 준호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세준의 말대로 도장까지 꾹 찍어줬다. 

"약속한거에요? 거짓말 하면 안돼? 삼촌이 증인이야. 그치?"

그렇게 말하며 세준은 조용히 둘을 보고 있던 태웅을 쳐다봤다. 태웅은 준호를 한번 힐끔보더니 응 하고 대답했다. 선배가 거짓말하면 말해줄게. 라는 말에 세준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거짓말하면 큰일 나겠는데~ 조심해야겠다."

말만 그렇지 전혀 큰일난 것 같지 않은, 오히려 즐거운 듯한 표정으로 준호는 말했다. 그리고 때마침 태웅의 손에 들려있던 진동벨이 울렸다. 세준은 자기가 가겠다며 의자에서 일어났지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태웅에 의해 다시 자리에 앉혀졌다. 무거우니 삼촌이 가져오겠다는 태웅의 말에 세준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옆자리의 준호를 쳐다봤다. 제 편을 들어달라는 눈빛이었지만 준호는 이번엔 삼촌 말 듣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삼촌이랑 선배가 가서 얼른 들고 올게."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짓는 세준이었지만 떼쓰는 대신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세준을 두고 두 사람은 픽업대로 갔다. 치즈버거가 산처럼 쌓인 쟁반 옆에 어린이 세트 1개와 치킨버거 세트 1개가 놓인 쟁반이 보였다. 주변에선 버거산을 보고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태웅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따윈 개의치 않은 듯 쟁반을 들었다. 준호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이해가 간다고 생각하며 다른 쟁반을 들었다. 저 얼굴로 저렇게 먹는다고 하면 시선이 안 갈 수 없지.. 아까 주문할 때도 다들 태웅이랑 세준이를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만약 태웅이 친위대 애들이 있었으면 세준이한테도 관심을 보였을려나.. 태웅이 미니 버전이라고 그 아이들도 좋아했을지도.. 그러다 문득 준호는 자신이 태웅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태웅은 그의 시선을 눈치 못 챈 듯 했다.

'나 진짜 뭐하는 거지 아까부터..'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들어 준호는 혼자 빠른 걸음으로 태웅보다 먼저 자리로 돌아갔다. 세준은 의외로 자기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두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 오라며 손짓하는 세준의 손에는 아까까진 없었던 막대사탕이 들려 있었다.

"이것 봐! 아까 어떤 누나들이 주고 갔어~"

쟁반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는 준호에게 세준은 막내사탕을 보여주곤 창 밖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켰다. 밖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세준이 자신들을 가르키자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세준은 그런 누나들을 향해 마주 손을 흔들어줬다. 대충 어떤 상황이 아이에게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누나들이 귀찮게 안 했어?"

"응! 사탕 주고 머리 쓰다듬어주고 갔어~ 하나도 안 귀찮았어."

그게 귀찮은 건데.. 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올 뻔했지만 태웅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사탕을 받아 기쁜 듯한 세준의 앞에서 그런 눈치 없는 발언을 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과 닮았지만 성격은 전혀 다르다는 걸 실감하며 태웅은 햄버거를 한 입 베어물었다. 세준은 막대사탕을 내려놓고 제 몫의 햄버거를 집어들었다. 포장 벗겨줄까? 하고 묻는 준호에게 자신이 할 수 있다며 세준은 직접 햄버거 포장을 벗겨냈다. 와앙하고 햄버거를 베어먹는 모습도 태웅을 닮은 세준이었다. 햄버거를 먹으며 준호와 태웅은 앞으로 있을 현내 결승리그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지난 주 북산은 강호 상양을 꺾고 결승리그에 진출했다. 전국대회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것이다.

"첫 상대는 해남이네."

"네"

"현 내 최강자라 불리는 팀이니까 전력을 다 해야할거야. 사람들은 우리가 이변을 일으켰다고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야. 그치?"

준호의 말에 태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없었지만 준호를 보는 눈빛이 모든 걸 말해줬다. 승리를 향한 집념이 느껴지는 그 눈빛이 한없이 든든했다.

"멍..."

태웅은 세준과 눈이 마주치자 혼잣말을 하듯이 ..청이만 잘하면 괜찮을 거에요. 라고 말했다. 세준은 태웅의 말을 듣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햄버거를 먹는 데 집중했다. 준호는 그 광경을 보고 피식 웃었다. 조카 앞이라고 조심하는 태웅이가 조금 귀여웠다. 

"백호는 괜찮을거야. 백호의 어설픈 부분은 치수가 잘 커버해주고 있으니까. 태섭이랑 대만이도 복귀한 지 얼마 안됐지만 자기 몫을 충분히 해주고 있어. 거기에 슈퍼루키 서태웅이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을거야."

자신의 자리를 뺏은 초짜 후배임에도 준호는 잘 해낼 거라며 신뢰를 보냈다. 그 신뢰를 알기에 백호가 준호를 잘 따르는 거라고 태웅은 생각했다. 근데 한 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선배는..."

분하지 않냐고. 초짜에게 주전 자리를 뺏긴 건데 화나지 않냐고. 그렇게 묻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않았다.

"응?"

"..아니에요. 아무것도."

하지만 묻지 않았다. 물어도 준호는 웃으며 그런 적 없다고 답할 것만 같았고 그게 왠지 싫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준호를 앞에 두고 태웅은 남은 햄버거를 마저 먹었다. 태웅이 마지막 햄버거를 다 먹을 때쯤 세준도 햄버거를 다 먹었다며 준호를 쳐다봤다.

"안 남기구 다 먹었어여!"

"정말이네. 편식도 안하고 잘 먹었네."

"헤헤.. 나 잘했지 삼촌?"

"응, 잘했어. 엄마한테 삼촌이 얘기해줄게. 세준이 밥 잘 먹었다고."

준호에 이어 태웅까지 칭찬해주자 세준은 뿌듯한 얼굴을 했다. 더 칭찬이 받고 싶은지 쟁반도 자신이 치우겠다고 나선 세준이었지만 퇴식구 높이가 높아 치우는 건 준호의 몫이 됐다. 가게 밖으로 나가니 어느 새 해가 다 저물어 하늘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맞다, 이거 선배 가져요~"

세준은 아까 받은 막대사탕을 준호에게 건넸다. 포장지에는 레몬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준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르키며 되물었다.

"나한테?"

"응! 이거 줄테니까 다음에 또 같이 농구해요. 어..그니까 이거 뇌물? 뇌물이야!"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거야."

"엄마가 보는 드라마에서 봤어! 선물 주고 이렇게 해주세요~ 하는 거 보고 뇌물이라 그랬는데"

태웅은 누나가 대체 무슨 드라마를 보는 건지 궁금해졌다. 아이 앞에서 찬물도 함부로 마시면 안된다고 한 건 누나였으면서... 

"고마워 세준아~ 사탕도 받았으니까 또 같이 농구해야겠네."

"응! 다음에도 나랑 팀해요! 다음엔 삼촌 이길거야!"

"그래, 다음엔 꼭 이기자."

준호는 세준에게 손바닥을 펴보였고 세준은 짝 하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태웅은 그런 둘을 지켜보다가 세준의 손을 잡았다. 

"선배, 저희 먼저 들어가볼게요. 이제 부모님이 오실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응, 조심해서 들어가."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세준은 준호에게 목례를 하는 태웅을 따라 고개를 숙였고 태웅과 함께 자리를 떴다. 태웅과 함께 걸으면서도 세준은 뒤를 돌아 준호에게 바이바이~ 하고 손을 흔들었고 준호도 마주 손을 흔들어줬다. 준호는 멀어져가는 두사람의 뒷모습을 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세준이 준 막대사탕을 만지작 거리다가 포장지를 벗기고 입에 물었다. 새콤한 맛이 입안에 퍼졌고 그 뒤로 은은한 레몬향이 따라왔다. 잠깐의 산책이었던 것이 어느 새 반나절이나 지나 있었지만 가끔은 이런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예상치도 못했던 만남도 있었고 전혀 몰랐던 태웅의 일면도 알았으니까. 다음 만남이 또 언제가 될지는 몰랐지만 준호는 벌써부터 그 때가 기대됐다.

"다음엔 세준이 선물이라도 사줄까."

막대사탕을 몇번이고 입 안에서 굴리며 그는 웃었다. 한편, 준호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을 외출했었던 태웅의 부모님이 그들을 반겼다. 신발을 벗자마자 할무니~ 할부지~ 하면서 안으로 뛰어가는 세준의 뒷모습을 보며 태웅도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어요."
"어서 와. 세준이 혼자 보느라고 힘들었지? 네 누나도 참.. 갑자기 애를 맡기고 가면 어쩐다니~"

"혼자 안 봤어! 선배도 있었어!!"

"공원에서 학교 선배를 만났어요. 같이 밥먹고 왔어요."

태웅은 가방을 거실 소파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세준은 태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준호와 같이 농구한 얘기부터해서 같이 햄버거 먹고 온 것까지 하나하나 얘기했다.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손을 씻는 와중에도 아이는 준호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했다.

"그래서 다음에 또 농구하기로 했어!"

"그랬구나. 세준인 그 선배가 맘에 들었나보네."

"응! 에 그니까...하나..둘...셋...."

세준은 손가락을 접었다 펴면서 숫자를 세더니 손가락을 다 펴고는 다섯번째로 좋아! 라고 말했다. 처음 보는 준호를 다섯번째로 좋다고 말하는 세준을 보고 태웅의 어머니는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세준이 좋아하는 사람은 가족을 제외하면 유치원 선생님 정도였는데 처음 본 준호가 그 자리를 밀어내고 당당히 5위가 된 것이었다. 태웅 역시 놀란 표정이었지만 이내 납득한 듯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 동안 세준을 대하던 준호의 행동을 하나씩 돌이켜보면 납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는 세준을 능숙하게 달래는 것부터 해서 아이의 무례한 질문에도 어른스럽게 대답한 점이나 세준에게 장난을 치는 모습 등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자신보다 준호가 더 삼촌 같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삼촌삼촌, 나 다음주에 또 선배랑 농구할래!"

"다음주는 안될 것 같은데.. 삼촌 연습있어서."

"아...그럼 또 언제 돼? 언제?"

자신의 다리에 매달려 묻는 세준의 말에 태웅은 달력을 쳐다봤다. 해남과의 경기는 앞으로 2주나 남았지만 다음주부터는 해남과의 경기를 대비해 특훈에 들어가기로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태웅은 자신의 연습량을 늘릴 생각이었다. 해남과의 경기를 치르고 나오면 그 다음주엔 토,일 연이어서 경기가 있었다. 

"이번 달은 안돼."

"힝... 선배도 시간 안돼?"

"응, 선배도 시간안될 거야."

세준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태웅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다른 일이었으면 농구하자고 졸랐겠지만 경기가 있다고 하니 그러지 못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럼 시합 보러 갈래! 그건 괜찮지?"

세준은 고개를 번쩍 들고 물었다. 결승리그는 주말에만 있으니 누나만 괜찮다면 구경 오는 건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세준은 아직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는 태웅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응, 시간되면 보러 와. 선배도 경기에 나올거야."

"정말? 좋아! 나 꼭 보러 갈게. 가서 제일 크게 응원할거야!!"

태웅이 해남에게 질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


이틀 뒤, 평화로운 북산고등학교의 점심시간. 준호는 점심을 먹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봉지가 하나 들려 있었다. 중간에 마주친 치수가 어디 가냐는 말에 준호는 잠깐 볼일이 있어서 라고 답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착한 곳은 1학년 10반 앞이었다. 

"어...준호선배"

"안녕 호식아."

친구들과 잡담을 하던 호식은 준호를 보자 복도로 나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라며 놀라는 호식에게 별 거 아니라며 준호는 손사레를 쳤다. 혹시 안에 태웅이 있니? 라고 묻자 호식은 아.. 태웅이 지금 자요. 라며 복도쪽 자리를 가르켰다. 문 너머로 고개를 내미니 그의 말대로 책상에 엎드려서 쿨쿨 자고 있는 태웅의 뒷모습이 보였다. 

"깨울까요?"
"아냐, 괜찮아."

이것만 주고 갈 생각이었으니까 라고 말하며 준호는 교실 안으로 들어와 태웅의 책상 앞에 섰다. 가지고 온 봉지에서 500ml짜리 포카리와 작은 쪽지를 그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어리둥절해하는 호식에게도 같은 크기의 포카리를 건넨 준호는 이따 연습 때 보자며 인사하곤 교실을 떠났다. 손에 쥔 포카리와 멀어져가는 준호의 뒷모습을 번갈아 보던 호식은 정말 안깨워도 괜찮나...라고 중얼거렸다. 혹시나 해서 태웅을 흔들어 깨워봤지만 그는 일어날 생각을 안했다. 태웅이 눈을 뜬 건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직전이었다. 

"...."

엎드린 채로 눈만 뜬 태웅은 책상 위에 놓여진 포카리를 바라봤다. 이거...누가 가져다놓은 거지.. 눈을 깜박이며 상황파악 중인 태웅을 발견한 호식이 가까이 다가왔다.

"아, 일어났어? 아까 준호선배가 왔다갔었어."

"...선배가..?"

"응, 이것만 두고 가시긴 했는데... 혹시 몰라 아까 깨웠는데 안 일어나서 말 못했어. 미안 ...혹시 선배랑 할 얘기 있었어?"

호식의 말에 태웅은 몸을 일으키며 생각해봤지만 자신은 따로 준호와 만날 약속같은 건 하지 않았다. 오늘은 농구부 연습이 있는 날이어서 할 말이 있다면 그때 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근데 굳이 점심시간에 찾아왔다는 게 조금 의문이었다. 호식도 그렇게 생각해서 묻는 거겠거니 싶었다. 태웅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고 호식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럼 다행이다... 난 또 중요한 얘기가 있는 줄 알았어. 아, 포카리 말고 선배가 뭐 더 두고 가셨어. 쪽지 같은던데"

호식은 포카리 옆에 놓인 쪽지를 가르키며 말했고 그와 동시에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호식은 자리로 돌아갔고 태웅은 작게 접은 쪽지에 손을 뻗었다. 

[진 사람이 음료수 사기였지? 까먹기 전에 두고 갈게. 수업 열심히 듣고 연습 때 보자.]

쪽지에 적힌 글씨는 준호의 성격만큼이나 반듯했다. 솔직히 말하면 잊고 있었다. 내기에서 이겼다고 꼭 얻어먹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도 아니고 세준과 함께 어울려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런 거였으면..

'깨웠어도 좋았을텐데..'

태웅은 손에 쥔 쪽지를 매만졌다. 쪽지에 적힌 잉크가 번져 손가락에 묻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준호가 두고 간 포카리를 태웅은 수업이 끝나고 농구부 연습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마시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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