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와 부주장의 육아사정

[태웅준호] 에이스와 부주장의 육아사정 4

-태웅이랑 준호가 육아(?)하고 썸도 타는 이야기-

세준과의 만남이 있고 2주 뒤, 북산은 결승리그 첫 경기를 치렀다. 상대는 현 내 최강자라고 불리는 해남대부속고였다. 분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치열한 경기였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의 북산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2점 차 패배. 예선 리그 서부터 승승장구해왔던 북산의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 시합이 끝난 후, 침울해진 분위기에서도 팀을 챙긴 건 준호였다.

"오늘 다들 수고했어. 들어가서 푹 쉬고 내일 보자."

발목 부상 때문에 먼저 경기장을 떠난 치수를 대신해 준호는 부원들을 챙겼다. 한 명씩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는 그의 상냥함에 다들 기운을 조금은 기운을 차렸지만 백호는 그게 견디기 어려웠는지 준호와 눈도 안 마주치고 도망치듯이 대기실을 떠났다. 그런 백호를 준호도, 다른 부원들도 붙잡지 않았다. 지금은 혼자 있게 해주는 게 그를 위한 것이라고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준호의 격려를 받으며 부원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태웅아, 고생 많았어. 들어가서 쉬어."

준호는 마지막으로 태웅에게도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고 태웅은 대답 대신 묵례로 답하며 경기장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태웅은 습관처럼 이어폰을 끼고 있었지만 무슨 노래가 나왔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몰랐다. 집에 도착한 태웅은 자신을 반기는 엄마의 인사에도 대꾸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가방을 의자에 대충 던져두고 태웅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그제야 누적된 피로가 몰려오는지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몇 번 눈을 깜박이던 태웅은 잠이 들었고 그런 그를 깨운 건 세준의 목소리였다.

"삼촌~ 삼촌~! 일어나! 나왔어~"

익숙한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뜨자 보이는 건 반바지 정장을 입고 있는 세준의 얼굴이었다. 

"...언제 왔어?"

"방금! 엄마랑 같이 왔어."

태웅은 몸을 일으켰고 세준은 그런 태웅의 옆에 앉았다. 침대 머리맡에 있는 시계를 확인하니 시간은 오후 3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2주 전 준호와 만났을 때부터 세준은 오늘 시합을 보러 오겠다며 노래를 불렀었다. 삼촌 시합 언제야? 언제해? 라고 매일같이 제 엄마를 귀찮게 굴었다는 건 태웅도 누나에게 전해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준의 친가 쪽에서 행사가 있는 날이라 세준은 올 수 없었다. 전날 세준은 시합 보러 못 간다고 우는 소리를 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자신의 경기를 처음 보는 세준에게 패배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태웅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세준은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태웅의 곁에 더 바짝 붙어 앉았다.

"삼촌 오늘 시합 이겼어?"

물어볼 거라고 예상했던 질문이 나오자 태웅은 세준의 시선을 피했다. 가능하다면 패배했다는 소식 자체를 전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직접 물어보면 대답을 안 해줄 수도 없었다. 태웅은 세준을 살짝 밀어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졌어."

"졌어???? 삼촌네가???"

"응"

"왜?? 삼촌이 있는데 왜 졌어???"

세준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세준이 아는 한 태웅은 가장 농구를 잘 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태웅이 에이스로 있는 북산이 졌다는 소식은 아이에겐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못 했어?? 그래서 졌어??"

"아니, 그런 거 아냐."

"그럼 왜 진거야??"
".....삼촌이 잘못해서 그런거야."

겸손의 말 같은 아니었다. 팀이 패배한 건 에이스로서 자신이 맡은 바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태웅은 그렇게 생각했다. 세준은 태웅의 말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지 뚱한 표정을 지었다. 태웅은 그런 세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서 다음엔 꼭 이길거야."

결승리그에서 치러지는 경기는 각 팀마다 3경기씩이고 오늘 패배했으니 남은 경기를 전부 이겨야 전국대회에 나갈 확률이 높아졌다. 다음주 주말에 연달아 있는 무림과 능남전에서 무조건 이겨야 했다. 경우의 수를 따지는 건 나중문제였다.

'...거기에 슈퍼루키 서태웅이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을거야.'

'.....선배의 기대를 배신하는 건 한 번이면 충분해.'

말없이 가만히 서 있는 태웅을 보고 세준은 삼촌이 화가 났다고 생각했다. 경기에 져서 화났나봐.. 화 풀어줘야돼! 세준은 태웅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응! 다음엔 삼촌이 이길거야~ 오늘은 내가 응원을 안 가서 그래! 다음 시합은 꼭 갈게."

다리에 매달려 애교를 부리는 세준을 보고 태웅은 그를 안아올렸다. 

"응, 다음엔 꼭 응원하러 와. 다음주 주말에 시합 있으니까."

태웅은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봤다. 26일과 27일 연속으로 무림과 능남전이 있었고 같은 날에 해남과 능남 그리고 해남과 무림의 경기가 있었다. 세준은 손을 뻗어 27일 일요일을 가르켰다.

"이 날 시합해? 토요일엔 소풍가서 나 못가..."

"일요일에도 있어. 그 날 와."

"웅! 엄마한테 가서 얘기하구 올게!"

세준은 태웅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려 문을 열고 나갔다. 엄마! 하고 부르면서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소리가 방 안까지 들렸다. 


***


다음 날 방과 후, 체육관에 모인 농구부원들은 모두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한나가 체육관 벽면에 붙인 절체절명이라는 말 그대로 북산은 위기였지만 그 누구도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한 사람, 체육관에 오지 않은 이가 있었다.

"백호는 오늘 학교를 안 나왔어요."

"그 녀석.. 마지막 패스를 아직도 신경 쓰고 있는 건가"

백호가 등교를 하지 않았다는 말에 대만은 혀를 차며 말했고 준호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체육관 문쪽을 바라봤다. 역시 그때 붙잡아서 얘기하는 게 좋았을까..

"가서 찾아보는 게 좋을까?"

"안그래도 소연이가 이미 찾으러 갔다."

"그래? 그럼 다행이긴 한데.."

치수의 말에도 준호는 좀처럼 마음이 편치 못했다. 차라리 평소처럼 난 잘했다는 식으로 나왔으면 나았을텐데 다 제 잘못이요 하고 자책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안쓰러움과 걱정이 밀려들었다. 치수도 다친 마당에 백호까지 나오지 않으면 큰일인데.. 연습을 하면서도 준호의 걱정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연습 도중에 체육관에 온 소연으로부터 백호를 만나고 왔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지만 연습이 끝날 때까지 백호는 체육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백호가 오지 않은 거랑 별개로 부원들은 모두 성실히 연습에 임했다. 부상이 있는 치수는 중간에 소연이랑 돌아갔기에 마지막까지 남아서 연습하는 이들을 살피는 건 부주장인 준호의 몫이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다들 수고했어. 내일도 열심히 하자."

창 밖으로 맑았던 하늘에 어둠이 드리우는 게 보이자 준호는 부원들을 불러모아 연습 종료를 알렸다. 후배들은 체육관 뒷정리에 들어갔고 대만은 지친 얼굴로 먼저 간다며 체육관을 떠났다. 수고했어, 대만아. 라는 준호의 말에 답할 기력이 없는지 대만은 대답 대신 손을 흔들어보였다. 대만을 보내고 준호는 한나와 오늘자 훈련표를 보며 앞으로 훈련 스케쥴을 어떻게 짜야할지 얘기를 나눴다. 태웅은 그런 준호를 힐끔 보더니 정리에 열중인 동기들에게 잠깐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리곤 진지하게 대화 중인 두 사람 곁으로 다가갔다.

"치수 선배 훈련량은 천천히 늘리는 게 좋겠죠? 별 거 아니라고 하지만 괜히 훈련하다가 부상이 덧나면 안되니까요. 그리고 오늘 평소보다 체력 훈련을 조금 더 길게 했는데 다들 무난하게 따라오네요. 대만 선배는 조금 지친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지. 대만인 공백기가 있으니까 예전 폼을 찾는데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거야. 대만이 훈련량도 천천히 늘리는 게 좋겠어."

"준호 선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준호는 고개를 돌려 태웅을 쳐다봤다. 준호와 시선이 마주치자 태웅은 손을 내밀었다.

"...좀 더 연습하고 가도 될까요? 열쇠 주고 가시면 제가 뒷정리하고 갈게요."

"더 연습하고 간다고? ...혼자서?"

그의 말에 준호보다 먼저 한나가 대답했고 태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팔짱을 끼며 태웅을 올려다봤다. 

"안돼. 여기서 더 훈련하면 오버워크야. 너도 잘 알고 있잖아."

"...1시간 정도는 더 해도 괜찮아요."

"뭐가 괜찮다는 거야? 얼굴에 지친 거 다 보이거든?"

자기보다 20cm 이상 큰 남자 후배를 앞에 두고도 한나는 조금도 기죽은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태웅이 한나의 말에 기가 죽은 듯 했지만 그래도 태웅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잠깐 쉬면 돼요."

"안된다고 했지. 무리라니까."

"1시간이야."

"선배!"

태웅과 한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준호는 바지 주머니에서 체육관 열쇠를 꺼내 태웅의 손에 올려뒀다. 그리곤 그의 손을 잡았다. 어리둥절해하는 태웅이 자기를 쳐다보자 준호는 시선을 맞추고 미소를 지었다.

"딱 1시간만이야. 이 이상 하면 내일 훈련에서 뺄거야. 훈련도 중요하지만 컨디션 조절도 중요해.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네가 제일 잘 알겠지만."

"..네, 감사합니다."

태웅이 고개를 꾸벅거리며 인사하자 준호는 그제서야 태웅의 손을 놔줬고 태웅은 제 자리로 돌아갔다. 정리 중이던 부원들에게 먼저 들어가라 하고 다시 농구공을 잡는 그를 바라봤다. 

"괜찮겠어요?"

"괜찮을거야. 그리고 안된다고 했으면 허락해줄 때까지 안 가고 있었을 껄?"

"그건.. 그렇네요. 태웅인 은근히 고집이 쎈 녀석이니까요."

다시 슛 연습에 들어간 태웅을 보고 한나는 못 말린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태웅은 혼자 체육관에 남았고 다른 부원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어둠이 드리운 하늘에 슬금슬금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이내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준호는 자신의 락커를 닫았다. 부원들이 모두 체육관을 떠나고 비가 온 것이 다행이었다. 지금쯤이면 다들 전철 역이 있는 번화가까지는 갔을테니 비맞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준호는 자신의 가방에서 3단 우산을 꺼냈다. 아침에 챙겨가라는 어머니의 말에 가방에 넣어왔는데 말 듣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태웅인 우산 있으려나.."

비가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은데.. 준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비어있는 락커 하나를 열었다. 락커 안에는 부원들이 공용으로 쓰는 물건들이나 부상을 대비해서 사둔 구급약과 스포츠 타올 등이 들어있었다. 분명 여기 하나 뒀던 것 같은데... 락커를 계속 뒤지던 준호는 타올 아래에 묻혀 있던 3단 우산을 꺼냈다. 망가지진 않았겠지 싶어 펴보니 노란 땡땡이 무늬가 잔뜩 그려진 게 보였다. 비 오는 날을 대비해서 넣어둔 것인데 무늬 때문인지 아니면 있다는 걸 잊은 건지 최근에 누구도 쓴 적이 없는 우산이었다. 방치된 것치곤 우산 살에 녹슨 부분도 없었고 어디 찢어진 곳도 없었다. 준호는 매고 있던 가방에서 포스트잇을 꺼냈다. 

[비가 많이 오니까 쓰고 가. 우산은 나중에 공용락커룸에 넣어줘.]

"이러면 되겠다."

메모한 포스트잇을 우산을 붙이고 준호는 태웅의 락커에 손을 댔다. 남의 락커를 열자니 왠지 나쁜 짓하는 기분이 드는 준호였지만 우산만 넣어둘 거니까 태웅이도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하며 준호는 조심스레 락커를 열었다. 제 주인의 성향을 말해주듯이 락커는 살짝 휑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말 필요한 물건들만 있었다. 교복과 가방, 타올과 신발 정도가 다 였다. 이런 데서도 성격이 보이네 라고 생각하며 준호는 우산을 가방 위에 올려두고 락커를 닫았다. 그렇게 준호가 떠나고 몇 십분 뒤, 락커룸을 찾은 건 태웅이 아니라 백호였다. 백호가 락커룸에 오고 얼마 안 지나서 태웅이 타올을 챙기러 락커룸으로 돌아왔다. 

"뭐하고 있냐? 멍청아."
"서태웅!"

쫄딱 젖어서 앉아있는 백호를 보고 태웅은 그렇게 말했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백호를 무시한 채 락커를 여니 가방 위에 올려진 처음 보는 우산이 보였다. 포스트잇에 적힌 글씨체는 전에도 한 번 본 적 있는 것이었다. 노란 병아리가 연상되는 색깔의 우산을 가방에 집어넣으며 태웅은 구석에 있는 백호를 곁눈질로 살폈다. ..멍청이가 왔었다고 내일 선배한테 얘기하는 게 좋겠지.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라며 타올을 꺼내 얼굴을 닦고 락커룸을 떠나려 했다. 뒤에서 들린 백호의 말이 아니었다면 체육관으로 돌아가 조금 더 연습을 하고 귀가했을 것이다.

"..동정할 생각이라면 필요없어. 그딴 것!!"

"동정?"

동정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백호가 초짜인 건 다른 부원들도 태웅도 잘 아는 사실이었고 그걸 감안하면 이만큼 해준 게 초짜치곤 잘한 일이었다.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러니 해남 전의 패배를 백호의 탓이라고 태웅은 조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네 실수가 승패를 좌우하거나 하진 않아."

"진 건 내 책임이다.."

태웅의 입장에선 누가 뭐래도 이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백호는 납득하지 못했는지 태웅에게 주먹을 날리며 자신의 탓이라며 주장했고 태웅 역시 백호에게 주먹을 날리며 자기 탓이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누군가 봤다면 바보들의 싸움이라며 말렸겠지만 모두가 돌아간 체육관은 둘 뿐이었고 싸움의 결과로 둘 다 얼굴이 만신창이가 됐다. 한바탕 싸우고 시계를 보니 준호가 말했던 1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너 때문에 시간 낭비했어."

"뭐?"

상처가 가득한 얼굴로 다시 자길 향해 달려드려는 백호를 무시하고 태웅은 뒷정리에 들어갔다. 싸우다 말고 청소하는 태웅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백호였지만 태웅은 신경쓰지 않았다. 자기 탓만 하고 있는 멍청이 보단 준호와 한 약속이 더 중요한 태웅이었다. 정리가 끝날 때까지 체육관에 서 있는 백호를 내쫓고 태웅은 체육관 문을 잠궜다.

"쓸데 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 거면 그만둬라. 그런 마음 가짐으론 전국대회엔 못 나가니까."

태웅은 그렇게 말하고 락커룸으로 돌아가 자신의 짐을 챙겨 나왔다. 비가 그칠 생각을 안하는 하늘을 올려다보곤 가방에서 준호가 챙겨준 우산을 꺼냈다. 노란 땡땡이 무늬의 우산이 어딘가 준호를 생각나게 했다. 준호 얼굴을 떠올리니 얼굴에 난 상처가 조금 신경 쓰였다. 괜히 선배가 걱정할 일을 만든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먼저 시비 건 건 멍청이니까."

선배가 물어보면 멍청이 잘못이라고 해야지. 태웅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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