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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모빵집 by 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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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 급하게 말린 머리를 손으로 탈탈 털며 한정식 가게에 입을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여 숙소에 구비해둔 정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직원 숙소의 쿰쿰한 냄새가 옷에 배지 않았을까 잠시 걱정했으나 밥 먹는 자리니 음식 냄새에 가려지겠거니 하며 고민을 그만두었다. 오랜만에 입은 정장은 몸에 익지 않았으나 그는 그런 것을 신경 쓸 만큼 섬세한 사람이 아니었다. 장지문을 열자마자 아는 얼굴이 하나. 모르는 얼굴이 셋. 서류상으로 확인한 배우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쪽이 제가 말한 정 사장입니다. 아, 이 친구가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해서 제가 아주 신뢰하는 친구거든요. 예, 신뢰 말입니다. 허허!”

양 부장이 과장되게 손짓하며 자리에 앉길 권했다. 정이 짧은 목례와 무뚝뚝한 자기소개를 마치자 높으신 분들의 과장된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야, 양 부장이 보는 눈이 있네. 정 사장이 손댄 동네가 벌써 몇이야. 정은 애써서 자신의 칭찬을 하는 늙은이들의 얼굴을 알지 못했다. 그야 당연한 일이다. 굳이 말하자면 일을 주든 기업에서 일을 주든 결국 이쪽은 머나먼 하청 취급이다. 업무를 직접 미팅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는 이제 없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곧 세상이 망한다고 하는데 월급 따박따박 주는 곳이 어디 있냐.’가 그들의 논리였다. 밥이나 먹고 가자. 실무자가 일단 합석은 했으니, 자기들끼리 이야기 실컷 하다가 마무리되겠지. 정은 그렇게 생각하며 보리굴비 살을 입에 넣었다.

“자네는 마법을 믿는가?”

분위기를 한순간에 얼어붙게 만든 것은 뮤지컬 배우의 한 마디였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 정이 젓가락을 내려놓을까, 한마디를 할까 고민하던 중. 양 부장이 급하게 말을 끊었다.

“아이고, 그런 거 여쭤봐도 모릅니다. 물론 저희가 하려는 일이 그런 부류긴 한데 믿느냐 마느냐 그런 건…”

“손으로 빛을 수놓을 자의 대답을 직접 듣고 싶네. 그래서 이 자리에 부른 것이 아닌가.”

정은 배우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치자 배우는 조용히 웃었다. 올라간 입꼬리에 기대감이 잔뜩 걸려있었다.

“믿고 말고가 뭐가 중요합니까.”

“중요하지는 않지만 궁금하네. 자네의 대답이.”

그보다 ‘자네’ 같은 단어 선택이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뱉는 반말이나 어떻게 좀 해라. 정은 그렇게 생각하며 대답했다.

“믿지 않습니다.”

“그럼, 왜 이번 계획에 동참했지?”

“믿음으로 맡을 일을 골라잡았다면 지금쯤 길바닥에 나앉았을 겁니다.”

양 부장이 복화술로 웅얼대며 식탁 아래로 정의 발을 쿡쿡 찼다.

“믿지 않는데도 맡은 일은 끝까지 마칠 수 있다는 건가?”

“당연하죠. 그건 책임 아닙니까.”

배우는 얼굴 가득 웃음을 퍼뜨리며 정에게 몸을 기울였다. 무언가 빠뜨린 사람처럼 자신의 가슴팍과 주머니를 더듬던 배우가 명함을 정에게 건넸다. “현 중연” 이라는 이름 하나만 검은 글씨로 박힌 명함. 정이 명함을 받아 들고 요철로 도드라진 이름을 뚫어져라 보고 있으니, 현은 정의 코앞에 손을 쑥 내밀며 말했다.

“마법사. 현 중연이네. 자네가 수놓을 마법이 기대되는군. 잘 부탁하네.”

한참의 정적 끝에 양 부장이 결국 참지 못하고 정의 등을 퍽퍽 떠밀자 그제야 정 또한 손을 내밀었다. 배우를 고용했다더니. 싸가지 없는 정신이상자를 고용했나? 서류상에 실수가 있었던 건 아닌가? 나만 빼놓고 자기들끼리 작당 모의라도 한 것인가? 급하게 정장까지 빼입고 밥이나 먹으러 온 실무자를 위한 이벤트?

정이 먼저 손을 놓기 전까지. 현은 단단하게 마주 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마치 평생의 친구와 재회한 사람이라도 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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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댓글 1


  • 인사하는 사자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쪽에서도 이미 떠들었지만, 여기서는 조금 침착한 감상문을 써볼까 합니다(1~3편 우르르 읽음)! 3편까지는 무제 세계관의 윤곽이 쌓이는 즈음이구나, 싶어요! 저는 편법으로 선생님께서 무엇을 보고 싶어 첫 글자를 뗐는지 알고 있으니, 더더욱 편하게 회색 댐이 쌓이는 모습이 상상이 가더랍니다. 정교하게 매끈하게 만들어진 회색 콘크리트 구조물이요. 그리고 이제 3편에 와서, 정과 현이 대립하게 될지 파트너 관계로 발전할지는 가늠이 안 가지만... 저 회색 댐 너머에 극채색이 있어서, 무덤덤한 영혼들이 깜짝 놀랄만한 극채색이 쏟아져나와주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되었어요. 이런 방향으로 가지 않더라도, 선생님께서 마저 자아주실 활자길을 저는 즐거이 걸어볼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기 바라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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