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知
이율배반 커뮤니티 1.5기 시점 계약 연애 서사
그에게 사랑이란 이렇게도 생경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경로이자, 어젯밤 잠시 스쳐 지나간 꿈보다 허황된 감정이었으며, 부유하는 공기만큼이나 의식하지 않았던 개념이었다.
낳아준 이들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과거의 자신들을 제 피붙이에게 투영하기 바빴고, 기대와 의무감에 갇혀 내몰리다 죽음의 문턱 앞에 섰다. 비로소 그곳에서 선뜩하니 커다란 보름달과 마주했다. 평생 달만을 눈에 담겠다 맹세한 뒤로 주욱, 그는 사랑이란 감정을 경험할 새가 없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에게 있어서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아주 복잡하고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던가? 사랑을 정의한 사상가만 해도 수백은 될 것이고, 사랑을 다루는 책만 해도 수십억을 웃돌 것이다.
그는 로맨스 장르가 주류라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여태까지 경험한 감정들만 해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있을 만큼, 그는 통상적인 감정들에도 무딘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속내를 감추는 것을 평상시 습관으로 하던 터다. 그에게 감정이란 때에 따라 조정하는 껍질 같은 것이었고 필요한 감정은 달을 향한 존경 하나면 족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부질없고 염치없는 행위는 평생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햇살 한 조각이 마음에 비쳐왔다. 自覺.
이것은 바보 같은 미디어에서 떠들어대던 찰나의 운명적인 순간에 일어난 일도 아니거니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일어난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서서히,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스며들어왔다. 눈에 띄고, 걸리고, 신경 쓰이고, 챙겨주고 싶고, 더 오래 보고 싶고.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지독히도 무디게 자각했다.
달밤에 나앉아 심신을 가다듬으면 잠시 잊는가 싶다가도, 해가 벌건 대낮에는 오직 만남을 기약했다. 떨쳐내려다가도 그 천연한 목소리가 귓가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죄인이 되어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경험해 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점차 커져가는 마음을 숨기고 매일 밤 달을 눈에 담자니 상념이 흘러들어 걷잡을 수 없었다. 분연히 고민하고 사투했다. 마침내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인간의 욕심은 무한하다. 나도 곧 인간이라, 이 원을 어찌할 수 없다. 속죄하고자 억지로 떨쳐내면 도리어 병이 된다. 그저 수용하고 분에 맞게 살아감이 옳다. 是認.
오래전 보름달에 굳게 맹세한 그 자리에 서서 곧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결같이 밝은 달빛이 흰 머리칼 위에 내려앉아 보석처럼 살랑거렸다. 그는 달에서 눈을 떼지 않고 천천히 입을 떼어 한 자 한 자 말했다.
달만을 눈에 담겠노라 맹세했건만 어리석은 치가 햇살 한 조각을 마음에 품게 되었나이다. 부디 이 찬란한 존재를 동시에 눈에 담을 수 있게 허락해 주소서. 包容.
사랑에 무지한 이의 무딘 사랑이 시작을 고했다. 貴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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