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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모빵집 by 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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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저녁. 정은 침대에 누워 식사 자리가 파한 뒤 양 부장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배우라면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서나 연기에 충실하면 될 것 아닌가. 업무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마법을 믿느냐와 같은 질문을 하는 배우가 어디에 있을까. 마치 정말 마법사라도 된 것처럼. 양 부장님, 불러주셔서 오긴 했지만 정말 저런 사람이 이번 계획에 동참하는 겁니까? 연기 실력은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다른 부분이 문제인 것 같은데 말입니다. 대체 뭡니까? 에이, 이 사람이. 정 사장이 무슨 생각 하는지는 나도 이해하는데 말야. 그래도 정 사장이 만들어줄 판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떠들어 줄 사람 같잖아. 사소한 건 넘어가자고. 자네는 연출에 집중해. 지금은… 그런 시대잖아.

그런 시대.

정은 한숨을 쉬며 몸을 구부렸다. 앞으로의 미래가 5년가량 남은 시점에서 새로운 유행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마법이나 오컬트와 같이 한 때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이라며 외면받았던 분야들을 다시 들춰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마법이나 오컬트를 현실에 ‘연출’하는 것이 유행을 탔다. 첨단 기술이 새롭게 갱신될수록 이전의 기술은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상을 재생할 수 있는 스크린 필름, 질량과 부피를 재현할 수 있는 홀로그램 장비 등은 초등학교 교과서의 학습 부록으로 딸려서 제공될 정도로 단순하고 저렴한 물건이 되었다. 책 한 권을 공중에 띄우는 것은 온라인에서 엄지손톱만 한 소형 부유 장비만 주문해도 가능했다. 인터넷 쇼핑몰로 LED 섬유를 주문하고 배송이 오는 동안 코딩만 몇 줄 짜면 미리 설정해 둔 영창 문구 음성을 인식하고 마법진을 전개하는 연출 정도는 중학생도 해냈다. 이제 누구나 구식 기술로 마법을 연출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몇몇 오컬트 마니아들만이 이러한 연출에 손을 댔지만, 이제는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도 제일 인기 있는 콘텐츠가 될 정도였다.

어째서 멸망 5년 전이라는 애매한 시기에 오컬트 연출이 유행을 타게 되었을까. 누군가는 이것을 소극적인 도피행위라고 불렀다. 두려움에 떨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기 때문에, 특이한 영역의 취미생활에 손을 대는 것이라고. 또 다른 이는 불가능을 간단하게 가능한 것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효능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멸망이라는 대형 사건은 막을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손 안에서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으니까.

이유가 무엇이 됐든 오컬트 연출은 멸망 직전의 세상에서 사람들을 지탱하는 하나의 유흥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정부 주관의 대규모 지역구 행사가 기획되었다. 수도권과 광역시를 포함한 몇몇 도시에서 대규모의 마법을 연출하는 행사가. 정이 담당하는 행정구역에서는 하늘에 주거지역 근처의 공원을 중심으로 한 마법진을 그리기로 했다. 허공에 뼈대가 될 카본 파이프를 연결하고 발광 섬유를 이어 붙여 배선 작업을 하면 이 정도의 연출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공사 규모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9개월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자네가 수놓을 마법이 기대되는군.’

수놓는다. 정은 자기 일을 그런 아름다운 말로 포장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유행을 따라 개최된 행사를 위해 공사를 하는 것뿐이다. 무대에 서는-인공적으로 연출한 마법이 진짜인 것처럼 연기를 하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현은 최소한 카메라 앞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의 역할을 꾸며서 말할 필요가 있었지만, 기술자인 자신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수놓는다는 표현은 현의 말과 행동만큼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어째서 현은 벌써부터 마법사를 연기하고 있는 것일까.

업무에 불과한 것에 왜 그렇게까지 몰입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정말로 마법사가

“크흠.”

건조한 공기에 정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 기침을 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생각이 뚝 끊어졌다. 우선은 잠을 자야 한다. 행사 당일까지 마법진 공사 현장을 공개하지 않기 위해 광학 미채 설비를 설치한다고는 했지만, 그것도 내일이면 마무리된다. 바로 그다음부터 작업을 시작해야 하므로 내일은 바쁜 하루가 될 것이다. 정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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