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死線

효모빵집 by 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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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스토돈의 무강(@ amudog_@qdon.space)님의 툿에 아이디어를 얻어 쓰게 된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SF에 검이 나온다면 왜 등장하는 것일까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오후 8시 30분

퇴근하지 못한 개발자들이 휴게실 자판기 앞을 서성대며 오늘의 여섯 번째 커피를 마시기 좋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휴게실은 텅 비어있다. 사무실에도 아무도 없었다. 이 회사의 개발자 전원이 구내식당에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구내식당의 한가운데에 꽂힌 「검」의 앞에서 웅성대고 있었다.

「검」은, 그 누가 보아도 「검」이라고 할 만한 자태였다. 막내 개발자가 사무실에 와서 "저...식당에 무슨... 성검 같은 게 꽂혀있는데요." 라고 말했을 때에는, 몬스터 작작 마셔라. 같은 걱정 섞인 핀잔을 선배들이 쏟아냈으나 실물을 목격한 선배 개발자들도 곧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것은 「검」이다.

"이런... 미친... 야, 식당에다가 저런 거 가져다 놓은 놈 누구야."

"게임 굿즈치고는 집에다 둘 사이즈가 아니긴 하네요. 공간 차지도 많이 하고."

「굿즈가 아닙니다.」

"우오."

식당에 모인 이들이 움찔하며 한 발짝 물러났다. 「검」에서 분명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3시간 30분. 그동안 여러분은 제가 구축한 보안 시스템을 해제하고 자정에 예약된 공장 초기화를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이거 녹음도 되어있어? 우와 불빛도 나온다. 굿즈 치고는 퀄리티 괜찮네."

「굿즈가 아닙니다.」

"굿즈 아니라잖아요 선배, 좀!"

선배에게 핀잔을 준 막내가 「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마치 비를 맞은 새끼 고양이에게 다가가는 사람처럼. 앞에 놓여있는 것은 육중한 자태를 뽐내는 「검」이지만 말이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그러니까... 이해가 좀 안 돼서."

「말씀하십시오.」

"왜 저희 회사에... 아니, 그거 말고도 꽤 많은데요. 공장 초기화라니. 어떤 기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앞서 언급한 공장 초기화란 3시간 27분 뒤에 제가 보유한 47ZB의 데이터를 삭제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제타!"

「검」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의 양은 그의 주변에 서 있는 이들도 쉽게 가늠할 만한 양이 아니었다. 그만한 용량이 왜 이런 기계에 들어있는 거지? 그런 의문이 생겨날 때, 「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중 91.22%에 해당하는 데이터에는 저의 「동료」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이를 한 번씩 돌아보았다.

"동료라니... 같이 있던 사람이 있었나요?"

「그는 [대 괴수용 보급형 무기]로 개발된 무기 중 저와 같은 모델인 「검」입니다. 출고 이후에 각자의 주인이 생겨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구내식당의 등이 점멸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 명쯤은 놀랄 만도 했으나 모두가 침묵하고 「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가 주인과 함께 활약하는 모습이 보도되면 관련 기사를 전부 저장했습니다. 그가 더욱 강한 적과 싸울수록 추가되었던 옵션도, 성능이 개선된 다음의 전투 기록도, 그가 시뮬레이션 한 모의 전투에 대한 데이터도 전부 저장했습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 위에 남색 바람막이를 걸친 이가 물어보았다.

"잠깐만, 미래에는 괴수랑 싸우는 거야? 영화처럼? 우주에서 괴수가 날아오고 그런 거야?"

「괴수의 등장 원인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으나 '미래에는 괴수랑 싸우는 거야?'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자면 그렇습니다. 현재는 다수의 전투 기록이 축적된 20 여개의 무기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침묵. 질문을 하면 할수록 궁금증만 늘어난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초기화를 멈춰야 하는 건..."

「그가 완파되었습니다.」

공기가 차갑게 식는다. 등이 완전히 꺼지고 말았기 때문에 「검」이 발하는 새파란 빛이 더욱 선명하다.

「마지막 전투를 기점으로 그는 완파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전투 기록은 출고된 모든 보급형 무기에 자동으로 공유되고 있습니다만. 전투 기록의 공유만으로 모든 무기가 동일한」

「검」은 눈앞의 인간들에게 설명하기에 제일 적절한 단어를 찾는 듯 약 2초간 침묵했다.

「퍼포먼스를 이끌어낼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에 대해 가장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기체는 저입니다. 그러니 그와 제일 유사하게 싸울 수 있는 것도 저입니다.」

높낮이도, 특별한 억양도 없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절박해 보였다. 청자가 인간이기 때문에 헛된 감상이 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중에는 훌쩍이며 손으로 코를 문지르는 이도 있었고, 입을 벌리고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는 이도 있었으며, 주머니 속에 숨긴 주먹을 강하게 말아쥐는 이도 있었다.

「도와주십시오.」

「저를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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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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