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효모빵집 by 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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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동안 정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실무자 대표로 미팅까지 나갔다고는 하지만 공사는 정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9개월의 작업 동안 자신과 같은 입장의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다시 나누고. 조율하고. 싸울 일이 수두룩했다. 그것을 증명하듯, 계절이 한 차례 바뀔 때쯤의 정은 그야말로 물먹은 솜처럼 전신이 과로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현장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땀이 비죽비죽 흘러 눈을 따갑게 하는 시기가 되었을 때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날도 정은 안전모를 쓰고 도면을 든 채로 옥상과 옥상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아래를 바라보니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광학 미채 설비가 없다 해도 지상의 사람들이 정과 다른 인부들을 발견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 사장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이 옆 건물 옥상을 바라보았다. 자신과 똑같은 안전모를 쓴 지선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 날씨에 두꺼운 작업복을 입고 덥지도 않은지 겅중겅중 뛰어와 소형 플랫폼 위에 올라탔다. 지선은 난간도 없는 플랫폼에 서서 정이 서 있는 건물로 넘어오는 내내 산만하게 굴었다.

“떨어진다, 지선아. 가만히 있어.”

“에이, 제가 이거 한두 번 타봐요? 그리고 아시잖아요. 플랫폼 바깥으로 압력 가해지면 자동으로 척력 발산하는 거.”

“그래도 나는 그거 못 믿는다. 추락하면 끝이야. 아무리 기술이 좋아져도 현장에서 사고 나는 사람 매일 나와.”

“또 잔소리.”

정의 옆으로 건너온 지선의 입이 댓 발 나왔다. 영락없는 오리주둥이다.

“이제야 좀 현장이 돌아가네요? 앞으로 얼마나 남았더라? 행사까지….”

“6개월.”

“빠듯하네요.”

“빠듯하지. 독촉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다음 주부터는 힘 좀 더 써야 해.”

안전모를 벗고 머리에 찬 뜨거운 공기를 손으로 헤집던 지선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은 땀에 축축하게 젖었지만 지선의 표정은 상쾌해 보였다. 정은 지선을 볼 때마다 ‘요즘 애들답지 않다.’ 같은 생각을 했다. 입 밖으로 꺼냈다간 요즘 젊은 애들을 어떻게 보는 거냐며 가루가 되도록 욕으로 얻어맞을 발언이다. 하지만 고정관념의 산물인 ‘요즘 애들’ 같은 표현을 치운다 해도 정은 지선에게 늘 감탄했다. 몇십 년을 공사판에 바친 베테랑보다도, 지선은 현장에서 훨씬 끈질겼다.

“어쩐지. 요즘 정 사장님 너무 봐준다 했다.”

“까불고 있네.”

“그래도 일하는 보람은 있으니까 계속 사장님 밑에 있는 거잖아요.”

지선이 내뱉은 단어가 정에게 쿡 하고 박혔다.

지선이 내뱉은 단어가 정에게 쿡 하고 박혔다.

“지선아. 너는 지금 하는 일이 마음에 드냐?”

“네? 뭐가요? 노가다 뛰는 거요?”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성취감이 드냐고. 보람 있다며.”

“아, 완전 있죠. 게다가 이번에는 지역구 행사라면서요. 이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볼 건데 당연히 보람 있죠. 그리고 다른 것도 아니고 ‘마법’을 만드는 작업인데.”

지선은 마법을 믿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자기 손에 넘어온 일감이기 때문에 믿음 없이 책임으로 작업을 하는 것일까. 정은 당연히 후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일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당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고개를 내밀었다. 현실에 ‘마법’을 끌어내는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법을 믿지 않을 것이다. 정과 지선이 하늘을 배경으로 설치한 발광 섬유를 보며 진짜 마법진이라고 믿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발광 섬유를 깔고 있는 자신들조차 마법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사람들은 이 자리에 모여서 마법진을 보고 탄성을 지르겠지. 믿음 없는 사람끼리 옹기종기 모여 하늘을 보는 광경을 상상하니 우스꽝스러운 동시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래. 다들 좋아하겠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일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이 제일 편하다는 사실을 정도 잘 알고는 있지만, 정체불명의 마법사와 대면한 이후로 쓸모없는 고민이 늘었다. 현대인이라면 ‘마법’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 당연한데도. 지선은 정이 자신의 대답에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챘다. 지선은 정과 같은 사람과 일을 같이 하는 동안 상대가 말로 꺼내지 않은 내용을 파악하는 요령이 늘었다.

“정 사장님.”

“응?”

“사장님은 드론 쇼 같은 거 본 적 있어요?”

정이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너무나 까마득했다. 대학 MT였던가, 지금 와이프랑 연애하면서 여수로 놀러 갔던 때였던가. 심지어 그때에도 드론 쇼는 슬슬 유행이 지나 끝물이었다.

“저는 다섯 살 때 처음 봤어요. 그때 사촌오빠가 저건 전부 요정이라고, 지선이가 놀러 와서 요정이 반겨주는 거라고 했는데요. 저는 그 말을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믿었거든요.”

“완전히 속았네.”

“네. 완전히 속았어요. 그런데요, 사장님.”

지선이 옥상의 난간에 기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은 텅 비어있는 하늘이었다.

“속았다는 걸 알았어도 분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아쉽지도 않았고, 그냥….”

“그냥?”

“아, 뭐야. 그랬던 거야? 그래도 진짜 멋있었지. 아무튼 좋은 추억이니까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고 끝. ”

지선의 시선이 하늘에서 산꼭대기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보다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정이 아직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시선이 교차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추억을 쌓을 시간이 없잖아요.”

정은 숨을 들이켰다. 두 사람은 천천히 다가오는 종착점을 앞에 두고 있는 이들이었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저,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죽어요.”

“지선아.”

“그러니까 죽기 전에 한 번만 더 그렇게 속아보고 싶어요.”

지선이 해사하게 웃었다. 자기 죽음을 입에 담았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전혀 작위적이지 않은 표정이다.

“제 손으로 직접 거짓말을 쌓았어도, 실제로 볼 때에는 진짜처럼 느껴지니까요. 그런데 남들도 그 잠깐을 보고 ‘마법’이라고 속아준다면 당연히 기쁘고 보람도 있죠.”

인터넷에 ‘마법’을 구현하는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도, 그런 영상을 찾아서 보는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인 걸까. 비현실을 현실에 불러내는 과정을 세세하게 뜯어볼수록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은 명료해진다. 하지만 거짓이라도 괜찮은 것이다. 적어도 ‘마법’을 구현하는 동안은 ‘거짓’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그것은 진실보다도 아름답다.

난간 너머에서 누군가 지선을 불렀다. 작업을 재개할 시간이 된 것이다. 허둥지둥 안전모를 쓰며 플랫폼에 오른 지선이 정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속이려면 작정하고 속여야 해요. 누가 봐도 구분 못 하게. 그러니까 현장 꼼꼼하게 봐주세요!”

여전히 정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명확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대로도 괜찮다고, 정은 그렇게 여겼다. 지선이 건너편으로 넘어간 것을 확인하자 정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정이 전화를 받자마자 상대가 선수를 쳤다.

“현 중연이네. 이번 달 내로 한 번 봤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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