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散亂

브릿G 8월 소일장 「팔뚝에 비늘이」 참여작

효모빵집 by 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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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G 원본 링크>


팔뚝에 비늘이 붙어있는 게 보였다.

“예쁘지?”

소희가 해사하게 웃었다. 쉬폰 커튼이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그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 오팔을 얇게 저미면 저렇게 생겼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찬란한 것이 소희의 몸에서 피어났다. 비늘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굳이 고집을 피워 압화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소희는 손끝으로 비늘이 난 자리를 결을 따라 쓰다듬었다.

“자고 일어나니까 생겼어. 꼭 물고기가 된 것 같아.”

“안 아파?”

아무리 그래도 하룻밤 사이에 몸에 무언가 돋아났는데, 당황하기는 커녕 자신에게 발생한 새로운 이벤트를 오히려 반기는 듯한 소희의 말투에 애가 탔다. 병이라도 생긴 건 아닌가, 비늘이 돋을 때 피부를 뚫고 나와서 아픈 건 아닌가, 비늘이 너무 날카로워서 베이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것은 소희가 아니라 나였다.

“하나도 안 아파.”

“간지럽지는 않아?”

“응, 전혀.”

“따가운 건?”

“저기, 재영아. 걱정되는 건 알겠는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호들갑은.”

가장 깊은 바닥에서 끌어올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과를 깎던 과도를 다시 움직였다. 아직 다 깎지도 않았는데 눈을 감고 입부터 벌리는 소희를 보며, 엄지손가락만 한 조각을 잘라 소희의 입에 넣어주었다. 늘 내가 요리를 하거나 먹을 걸 들고 있으면 자기부터 달라고 당당하게 입을 벌린다. 뻔뻔하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늘 소희의 입에 뭐라도 넣어주고 있었다.

“검사라도 받아.”

“싫어. 예쁜걸.”

“그걸 말이라고.”

“그렇지만, 어차피 얼마 안 남았는걸.”

소희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소희의 병실은 병원 4층의 복도 끝에 있다. 바깥으로 보이는 병원 내의 공원은 간신히 끄트머리만 보인다. 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고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소희는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보았을까. 저번 달까지는 나와 소희도 저 자리에 있었지만 이제 소희는 병상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마저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지금은 온종일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고, 십자수를 하고, TV를 보고, 나와 떠들만한 이야깃거리들을 떠올리는 것이 소희의 일과다.

같이 산 지 4년이 넘어갈 때 즈음 소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 워낙 희귀한 질환이고, 이름도 한 번 듣고 외우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데다가, 치료 방법도 뚜렷하게 알려진 것이 없는 병이다. 여느 환자들이 그렇듯 소희도 치료를 여러 차례 권유받았지만, 각자의 가족들과 인연을 끊고 오로지 둘이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금전적인 부담이 컸다. 환자를 위해 자신의 일부를 떼어낼 정도의 각오가 있지 않은 한 차곡차곡 쌓여가는 비용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나는 이미 그만한 각오를 했고, 예적금을 깨고 대출까지 끌어모을 준비까지 마쳤으나 나를 제지한 것은 다름 아닌 소희였다.

-착각하지 마. 내가 이러는 건 죄책감 때문이 아니야. 그냥, 시간이 아까워.

짝을 떠나보내는 것이 무서운 주제에 사채까지 손을 댈 뻔한 내 뺨을 때리며 소희가 한 말이었다. 시간이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감히 그것을 병실에 갇혀서 허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그 짧은 시간 동안 동반자가 눈물 콧물 쏟으며 비굴하게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는 꼴을 보기가 싫었던 것인지. 소희는 ‘그따위 짓 할 생각 하지 마.’ 라는 생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시선을 가감 없이 나에게 쏘아붙였다. 그 뒤로 우리는 소희가 눈을 감을 때까지 평소처럼 지내기로 약속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계속 이어나가며.

못된 말을 하는 소희의 입을 다시 사과 조각으로 틀어막았다. 사실적시에 가깝지만, 당사자가 그런 말을 하는 건 달갑지 않았다. 소희의 상태가 이 정도로 악화되기 전까지는 소희도 집에서 몸을 추슬렀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입원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말이 소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피곤하면 낮잠이라도 자고 있어. 저녁에 다시 올게.”

“으응. 운전학원?”

“뭐… 그렇지.”

슬링백을 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보며 소희가 웃었다. 살랑살랑 흔드는 손, 그 아래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비늘은 마치 처음부터 소희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것 처럼 익숙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운전학원을 다닌 지는 겨우 2주가 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소희와 작별인사를 하기 전에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충동적으로 등록해버린 것이다. 학원을 등록했다는 이야기를 하니 얼굴이 활짝 피던 소희의 모습을 기억한다. 면허를 따고, 차도 마련해서 옆자리에 소희를 태우고 어디를 갈까. 소희는 어디가 가고 싶다고 할까. 면허 학원이 아무리 돈이 많이 깨지고 중고차 하나 뽑는 데 몇백은 든다지만 이전에 했던 각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나는 그 아이를 태우고 몇 번이나 도로를 달릴 수 있을까.

“재영 씨, 내일 기능 시험이지?”

“네. 시간 맞춰서 올게요.”

“그래. 기능은 다들 쉽게 붙어. 가르쳐 준거 까먹지만 않으면 돼.”

“저, 강사님.”

조수석에 앉아있던 강사가 수강 확인 서류에 오늘 날짜를 옮겨적던 손을 멈췄다.

“연습면허는 기능 붙고 나면 바로 발급이 되나요?”

“어, 시험 다 치고 합격하면 집 가기 전에 사무실 가서 발급해달라고 그러면 돼.”

“금방 나오나요, 그거?”

“이틀 정도 걸리는데. 일단 신청해놓고 도로주행 하는 날에 받아가.”

차에서 내리면서 이것저것 묻는 자신이 조금 우습게 여겨졌다. 연습면허가 나오면 어쩌려고? 나는 아직 차도 없다. 기능 시험에 붙어도 도로 주행은 학원 차량이 아니면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연습면허는 2년 전에 면허를 딴 사람이 동반 탑승을 하는 경우에만 인정된다. 내 유일한 동승자가 될 소희는 면허가 없다.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왜 이렇게 조급하게 구는 걸까. 병원으로 돌아가는 버스의 유리창에 머리를 기댔다. 미적지근한 온도다. 정신을 일깨우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

소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소희와 함께 여러 장소를 돌아다닐 마음을 먹기까지의 공백 기간이 있었다. 여행을 다니고, 추억을 만들자는 말이 곧 끝을 암시하는 말 같아서 고집스럽게 눈을 돌렸다. 모두가 그렇게 하듯이 아무런 예고 없이 드라이브를 가고, 바람을 쐬고,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일상을 보내기로 하자. 하지만 내가 그것을 결심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의도’가 사이에 끼어들고 만다. 소희가 사라지기 전까지, 소희가 사라지기 전까지, 다시는 소희를 못 보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 아니야. 분명히 그런 날은 온다. 이미 코앞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 전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 ‘의도’가 머릿속에서 한꺼번에 뒤섞여 반죽 덩어리처럼 찐득하게 늘어지는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내릴 정류장을 놓친 것은 아닐까, 하고 정신을 차리면.

익숙한 색의 불빛이다. 병원의 십자 로고와 글씨의 서늘한 색.

무기질적인 색의 빛을 따라 복도를 걸으면 어느새 소희의 병실이다. 소희는 이미 잠들어있다. 다 먹지 않은 사과는 이미 갈색으로 변해 말라가고 있었으나 팔뚝에 붙어있는 비늘은 제자리에 그대로 붙어있었다. 비늘 층을 한 겹씩 손끝으로 매만져도 소희는 깨지 않았다. 결을 따라 매만지는 손은 어느새 팔꿈치 바로 아래까지 닿았고…. 원래 비늘이 이렇게 많았나? 급하게 소희의 환자복 소매를 걷어 올렸다. 어깨 바로 아래까지 번진 비늘이 달빛을 받아 반투명한 무지갯빛과 은빛이 뒤섞여 출렁이고 있었다. 소희가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이지 않았다면 아마 해가 뜰 때까지 넋을 놓고 비늘만 바라봤을 정도로, 그것은 사람의 시선을 휘어잡았다.

소희의 이변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소희가 소고기뭇국을 한술 뜨고 모래라도 씹은 것 처럼 인상을 팍 쓰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뭐야. 별로야?”

병원밥이 다 그렇지 뭐. 그렇게 말하며 숟가락으로 간을 살짝 봤지만 오히려 오늘은 괜찮은 수준이었다. 소희는 새침한 것치고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에는 까다롭게 굴지 않는 사람이었다. 만든 사람의 정성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입원한 뒤로도 병원 밥이 입에 안 맞는다 투정을 부린 적은 없어서 식사까지 따로 챙겨줄 필요는 없겠구나 싶어 한시름 놓았었는데, 오늘따라 특히 까탈스럽다. 소희가 아랫입술을 말아 넣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꼭 집에서 키우는 앵무새 같다고 생각하던 순간,

“야! 뭐해!”

소희가 순식간에 침대 옆 서랍장에 넣어둔 깨소금 봉지를 북 뜯어 국에 쏟아부었다. 혹시 병원 밥이 싱겁다고 할까 봐 예전에 같이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집 냉장고에 넣어둔 깨소금과 간장 봉지를 챙겨온 적이 있었는데… 뭐 이런 걸 챙겨오냐며 한참을 웃던 녀석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걸 갑자기 꺼내는지, 아니. 애초에 국이 별로 싱겁지도 않은데. 국을 휘휘 저어가며 입맛을 다시는 소희의 손에서 숟가락을 빼앗았다.

“미쳤어? 그걸 왜 먹어?”

“맛없어.”

세상의 불만이라곤 전부 끌어다 모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숟가락을 내놓으라고 손을 뻗던 소희가 고개를 내젓는 나를 뚫어져라 보았다.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면 다시 요구하던가 손이라도 뻗어야 할 텐데. 그새를 못 참고 국그릇을 들어 국물을 들이켰다. 숨도 쉬지 않고 소금물을 벌컥벌컥 쏟아붓는 모습이 낯설다. 숨도 쉬지 않고 마셨는지 그릇을 내려놓고 한숨을 폭 내쉰다.

“이제 좀 먹을만하네.”

소희의 새빨간 혀가 윗입술을 날름 핥는다. 환자복 아래에서 바스락거리며 무언가가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비늘은 쇄골 아래까지 번져있었다.

그 뒤로도 갑자기 건조하다며 수분 크림을 온몸에 펴 바르지 않나, 크림을 발라놓고도 이게 아닌 것 같다며 찬물로 세수를 벅벅 하지를 않나, 갈증이 난다고 이온음료를 마시다가 또 순대 찍어 먹을 때 쓰는 깨소금을 몰래 음료수에 타지를 않나. 소희는 며칠 내내 기행을 저지르며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기행을 저지르는 원인도 알 수가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재영아. 이거 봐봐.”

소희가 병원 뒤편의 연못 속에 주저앉아 펄떡거리는 비단잉어를 품에 안고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내면의 실이 탁, 하고 끊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외면하고 무시한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소희는 멀어지고 있었다. 식성도, 행동도, 원하는 것도. 그 아이가 가지고 있던 성질이 순식간에 뒤집히고 있었다. 그 아이 자체가 파도가 되어 요동치며 내가 알던 그 아이의 모습과 이면의 것을 뒤섞는다. 파도는 내가 각오했던 ‘끝'보다 먼저 코앞으로 다가와 선수를 치고, ’재영아‘ 라고 부르는 목소리는 ’너 이제 어떻게 할래?‘로 치환되어서 들렸다. 그러게. 나 이제 어쩌면 좋지.

“물고기 같은데.”

“그건 저도 알아요.”

인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역시 기대한 대로는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생선 같다고 했으면 당장 차에서 내리라고 했을 거다. 이 차는 학원 차량임에도. 도로주행 코스의 반환점에 잠시 정차를 한 사이에 강사는 볼펜으로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자꾸 소금 찾는 거 보니까 바닷고기 같아.”

“…그것도 다 생각해봤어요.”

같이 사는 사람이 자꾸 국에다가 소금을 타고, 물만 보면 들어가려고 하고, 비단잉어랑 포옹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대체 누가 믿어줄까 했지만. 의외로 나의 강사는 옆 사람이 지껄이는 게 헛소리 같아도 인내심 있게 들어주는 성격인 듯했다. 어차피 면허를 따고 나면 다시 볼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그야 대화 상대라고는 소희와 학원 강사뿐인데 한쪽이 점점 맛이 가고 있으니 이제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은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 병원 연못에 들어갔다며.”

“네.”

“그거 민물인데.”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민물에 바닷고기 넣으면 큰일 나.“

“아니, 아뇨, 멀쩡했는데요. 며칠 동안 지켜봤는데. 오늘 아침 점심 잘 먹는 것도 제가 확인했는데.”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연못보다는 차라리 바다에 들어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강사에게는 소희가 병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니 저렇게 섬세함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대답을 한다 해도 화를 낼 수는 없다. 하지만 등줄기가 오싹해지고 숨이 턱 막히는 불안감이 차오르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핸들을 움켜쥐고 그대로 굳어버린 나를 보는 강사의 시선이 느껴졌다.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지 않아도 눈썹이 꿈틀대는 그의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몸이 안 좋아?”

“아니요… 그냥 조금.”

“기어 그대로 파킹에 두고 나와. 학원까지는 내가 운전할게.”

강사가 조수석에서 내렸다. 그와 자리를 바꾸고 안전벨트를 차면서도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학원까지 가는 길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던 내 입에서 제대로 된 말이 튀어나온 건 차에서 내려서 두 다리를 땅에 디뎠을 때였다.

“강사님. 여기서 바다가 멀어요?”

“고속도로 타고 나가서 국도로 갈아타고도 좀 가야 해. 그래도 차 안 막히면 두 시간이면 가나?”

15분짜리 코스 하나 도는 것도 버거운데 두 시간이라니. 절반도 못 가서 사고가 나도 할 말이 없는 거리다. 하지만 택시를 부르면 못 갈 거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소희가 당장 바다를 가야겠다고 하면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겠구나. 물론 그 전에 내가 운전에 익숙해지는 편이 낫겠지. 차도 빨리 구하고. 거기까지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이 두렵지는 않았다.

병실 침대 아래에 우수수 쏟아진 비늘을 보기 전까지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페트병에서는 이온음료가 줄줄 쏟아지고 있다. 이제 보니 시트도, 이불도 전부 축축하게 젖어 끄트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중이었다. 물에 젖은 비늘이 한층 더 반지르르하다. 주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으면서 오로지 비늘만으로도 찬란함을 뽐내고 있었다. 정작 주인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떠느라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있는데.

이불을 걷어내자 드러난 소희의 눈가에 염분이 말라붙어 하얀 분가루처럼 덕지덕지 매달려있었다. 소희의 눈물은 ‘물’ 그 자체로 떨어지고 있었다. 인어의 눈물은 보석이 된다고 하지만 소희의 눈물은 굳어지고 연마가 되기도 전에 베개에 스며들었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강사님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인어'가 아닌 ’물고기'라는 표현을 쓴 것일까.

“소희야, 일어나봐, 또 음료수 먹었어? 소금 타서? 몸이 왜 이렇게 축축해. 너 이거 뭐야.”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쏟아져나오는 질문이 뚝 멈췄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비늘 무더기 위로 얇게 한 겹 더 올라간 것이 있었다. 맨손으로 뜯은 식염수 팩. 저걸 마신 걸까 몸에 들이부은 걸까. 게다가 발에 치이는 것이 전부 페트병인 줄 알았는데 의료용 식염수를 담는 통이라는 것도 방금 깨달았다. 쟤는 저걸 다 어디서 가져온 걸까.

“재영아.”

“어, 어. 왜 그래. 뭐 해줄까. 어떻게 해줄까, 소희야.”

“바다에 갈래.”

“그래. 내가, 택시 불러줄게. 같이 가자.”

소희는 핸드폰을 집어드는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싫어, 재영아.”

“… …”

“네가 데려가 줘.”

이런 망할.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아서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물러난다. 침대 위에 푹 젖어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소희의 비늘은 어느새 무릎까지, 뺨까지 번져있었다. 그것들이 소희를 뒤덮는다.

내용물이 남아있는 식염수 통을 손에 잡히는 대로 챙겼다. 안에 들어있던 것을 전부 소희의 몸에 끼얹고 이불을 끌어와 소희를 둘둘 감쌌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마르지 않도록, 그리고… 바다까지 가는 길을 버틸 수 있도록.

“금방 올 테니까 기다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택시를 타고 운전학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무실을 박차고 들어가자마자 강사님을 찾았다. 다행히 사무실에는 강사님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의 직원이 퇴근할 시간이니 그럴 만도 하다. 도로 주행도 멀쩡히 마쳤던 수강생이 갑자기 들이닥치니 강사의 얼굴에 의문이 잔뜩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걸 하나하나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다짜고짜 그의 얼굴에 연습 면허를 프린트한 종이를 들이댔다.

“강사님. 차 좀 빌려주세요.”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설명해.”

“지금 당장 바다로 가야 해요.”

“그런 이유로 차를 어떻게 빌려줘.”

“친구가 위험해요.”

그제서야 강사의 표정이 다시 한 번 바뀐다. 바다, 친구, 설마 그 물고기? 난감하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자리를 맴돌던 그가 무언가를 물어보려다가 그만둔다. 억지로 삼킨 것에 가깝겠지. 이렇게 급하게 찾아온 사람의 면전에 대고 진위를 의심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미친 인간이라고 일갈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히 고마웠다.

“이런 씨… 나도 차 안 끌고 다녀. 지금 나가려면 학원 차 끌고 나가야 하는데.”

“아무거나 다 괜찮아요. 그냥 굴러만 가면 돼요.”

강사가 벽에 걸린 열쇠들을 빠르게 훑으며 말했다.

“어차피 연습면허는 동승자 없으면 불법이야. 그럴 바엔 그냥 내가 운전하는 게 나아.”

그 사이를 내가 가로막았다.

“…바다까지는 꼭 제가 운전 해야 해요.”

이제 정말 한 대 맞아도 할 말이 없다. 역시나 강사의 얼굴도 눈에 띄게 일그러진다. 한 박자 늦게 도로연수용 차량의 키를 움켜쥔 강사가 이쪽을 노려본다. 게다가 화를 억누르는 목소리. 분명 다음 수업 때 엄청나게 혼나겠지.

“…그럼 그 친구 픽업하고 나서 자리 바꾸던가.”

그렇게 우리는 ‘교육 중’ 글씨가 큼지막하게 붙은 노란 쏘나타를 타고 야밤의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연습용 면허를 가진 사람이 도로를 달릴 때에는 차에 ‘주행연습’이라는 글씨를 붙여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주행연습’보다는 ‘교육 중’이라는 문구가 더 주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유도하기 좋을 것이라 멋대로 생각했다. 병원까지 가는 길에는 내 발 앞에 보조 브레이크가 놓여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강사님이 직원용 차량이 아니라 도로연수용 차량을 고른 이유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가 차를 몰다가 어디다 들이박기라도 할 것 같으면 동승자인 본인이 제지하기 위해서겠지. 내가 직접 운전을 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지 않았으면 아마 이런 보조장치가 없는 차를 탔을 것이다.

간호사 분들이 대부분 준비실이나 다른 병실에 있었는지 데스크에는 아무도 없었다. 병원에서 소희를 안아 들고 나오는 동안에도 다행히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했다. 뛰쳐나온 길이 전부 물에 젖어 축축해졌지만. 병실부터 병원의 후문까지 그 자국이 길게 따라왔지만 투명한 무색의 식염수가 떨어진 자국을 유심히 관찰하고 우리의 뒤를 쫓을 사람은 없었다. 그것이 피나 오팔 색의 비늘이라면 모를까.

뒷좌석에 소희를 태우자 마치 스스로가 범죄자처럼 느껴졌다. 병원에서 환자를 빼돌리는 것은 형법에 불법이라고 규정이 되어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보호자라면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지 않을까. 보호자가 피보호자를 데리고 가는 것까지 납치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공범-증인까지 있으니 내가 얼마나 절박한지 증언해줄 사람도 마련되어있다. 설령 내가 법적인 보호자는 아니더라도 소희가 입원을 할 때 사인은 내가 했다. 만약 소희가 수술까지 했다면 나의 한없이 가벼운 보호자 자격은 휴지통으로 들어가고 진짜 가족을 데려오라는 소리를 들었겠지만, 아. 이렇게 급한데 대체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렇구나. 나는 내몰리면 생각이 많아지는 사람이구나.

강사는 고속도로로 들어가기 전에 주유소에 잠깐 들러야 한다고 했다. 연수용 차량은 고속도로를 타고 두 시간이나 갈만한 연료가 없다고. 잠시 주유를 하는 동안 주유소 직원이 뒷좌석에 실린 것을 보지는 않을지 걱정했지만 다시 그런 걱정에 빠지기 전에 강사님이 나를 불렀다. 재영씨. 재영아. 정신차려. 네가 운전한다고 했잖아. 잔뜩 긴장한 손이 다시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고. 어느새 우리는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절반쯤 달렸을 때, 강사가 팔짱을 낀 채로 입을 열었다.

“야간 주행도 잘하네.”

“저 사실 지금 토할 것 같아요.”

“토하지 마. 이거 학원 차다.”

다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친구가 저렇게 아플 줄은 몰랐어.”

“…제가 이야기를 안 했으니까요.”

“괜한 소리 해서 미안해. 민물에 집어넣으면 큰일 난다느니. 나는 네가 농담하거나, 만약 진짜여도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 줄 알았어.”

강사가 창문을 살짝 내렸다. 틈새로 들어오는 미지근한 바람이 차 안에 가득 찬 숨을 한 번 순환시킨다. 공기가 한 바퀴를 돌며 가슴 근처를 베고 지나간다는 착각이 들었을 정도로, 미안하다는 말이 가슴에 사무쳤다. 가족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전방을 주시하느라 강사를 마주 볼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분명 그랬으면 눈물이 그득그득 차오른 얼굴까지 들켰을 것이다.

“그것도 제가 이야기를 안 했으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만약 먼저 물어보셨어도 대답 안 했을 거예요.”

길게 늘어진 가로등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백미러를 통해 훔쳐본 뒷좌석에는 여전히 소희가 누워있다. 이불로 감싼 덩어리의 끄트머리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가로등 불빛이 소희를 비추면 분명 예쁠 것이다. 몸 대부분이 비늘로 덮여있으니까 빛을 산란하는 정도도 더욱 커지겠지.

“…주행시험 보고 나서 합격하면 바로 차 한 대 뽑아. 요즘 중고도 괜찮더라. 몇 년 타고 다닐 만 해.”

“그렇게 오래 탈 거 아니에요.”

"다짜고짜 내 얼굴에 연습 면허 들이댔던 패기는 어디 갔어?“

내 입에서 습관처럼 나온 체념의 말을 강사가 단숨에 짓눌러버렸다. 눈물이 방울져서 뚝뚝 떨어졌다. 나도 인어는 아니기 때문에 그것 또한 굳기 전에 무릎 위에 스며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아무거나 사지 말고 꼭 괜찮은 걸로 사. 그래야 연습하는 데에도 지장 없고 타고 나갈 일 생겼을 때 말썽도 덜 피워.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기에는 시간 아깝잖아.”

-시간이 아까워. 소희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지.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함께 일상을 보내기로 했다. 최대한 굴곡 없이. 설령 굴곡이 있더라도 그것 또한 끌어안으며 지내기로 약속했다. 일상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자잘한 것들은 웃어넘길 수 있어야 했다. 아마 자동차가 고장 나는 것도 우린 적당히 웃어넘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왕이면 다른 일로 웃고 싶다. 조금 더 기쁘고 즐거운 일로.

“…참고할게요.”

고속도로를 나와서 어지럽게 이어진 국도를 따라 달렸다. 가드레일 바깥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새카만 색이라 처음에는 바다인지 하늘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지만, 차츰 둘을 구별할 수 있었다. 바다는 달빛을 산란하지 않고 집어삼켰다. 소희와는 다른 성질을 가진 것이었다. 하지만 소희는 그것을 원하고 있다.

강사와 내가 차에서 내려 소희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병원에서 나올 때에는 몰랐지만 다시 안아드니 생각보다 소희는 무거웠다. 물에 적신 이불 때문이라 생각하며 걷어내니 그 안에는 온몸이 비늘로 뒤덮인 소희가 있었다. 눈꺼풀에도 비늘이 자라 눈을 뜨려고 하면 비늘끼리 걸려 움직일 수 없는 듯했다. 강사가 한 발짝 물러나며 이불을 자신의 팔에 걸쳤다.

“갔다 와.”

소희를 안고 한 발짝씩 나아갈 때마다 소희의 몸에서 비늘이 후두둑 떨어졌다. 이제는 바닥에 우리가 걸어온 길의 흔적이 남아도 상관없었다. 들키면 안 되는 사람도, 우리를 쫓아오는 사람도 없다. 빵 조각으로 걸어온 길을 표시했던 남매는 교훈을 얻고 빵 대신 하얀 조약돌을 하나씩 땅에 떨어뜨렸다고 한다. 왔던 길에 흔적을 남기는 이유는 다시 그것을 따라 돌아가기 위해서다. 나는 너를 데리고 다시 돌아가려고 해.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건 너랑 영영 헤어지는 거고, 아마 그건 피할 수 없을 거야. 게다가 너는 계속 내가 알고 있던 네 모습으로부터 멀어지겠지. 그래도 이젠 도망치지 않기로 했어.

나도 마찬가지거든. 시간이 아까워.

바닷물이 발목, 무릎, 허리까지 차올라 배를 때리기 시작한다. 밤의 파도는 거센 밤바람을 따라 밀려와 훨씬 묵직했다. 내 품에 안긴 소희가 물에 천천히, 그리고 함께 잠긴다.

물이 닿은 지점부터 비늘이 한 장씩 떨어져 나갔다.

피부에 박혀있던 부분부터 녹아 물 위로 떠오른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하나하나가 빛을 산란한다. 벚나무가 많은 호수에 가면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꽃잎이 수면으로 우수수 떨어진다. 지금은 봄도 아니고, 물에 떠있는 것은 꽃잎도 아니지만 그만큼 아름다웠다. 아니, 그것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파도가 우리에게 다가와 무너지면 부서진 물이 소희의 얼굴을 적셨다. 뺨, 눈꺼풀, 입술을 가렸던 비늘이 물과 함께 흘러내린다. 그리고 소희가 눈을 떴다.

“소희야.”

“응.”

“바다야.”

“그러게.”

늘 큰일을 겪는 것은 본인임에도 늘 나보다 덤덤하게 대응한다. 당해낼 수가 없다. 너는 정말, 그릇이 너무나 크다.

“몸은 괜찮아?”

내 물음이 다소 우습다는 듯이 소희가 샐쭉 웃었다.

“너는 괜찮아?”

다시 나에게 돌아온 질문을 듣고 다시 눈물이 터지기 시작했다. 어우, 또 이런다.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어 내 눈가를 대신 문질러주는 소희의 손가락은 부드럽다. 비늘 때문에 까실까실할까봐 몸을 살짝 뒤로 물렀던 나는 다시 안심하고 얌전히 손길을 받아들였다.

“아까까진 완전 안 괜찮았는데 지금은 좀 괜찮아.”

“퍽이나.”

내 멍청한 대답에 소희가 코웃음을 친다. 들어 올렸던 팔을 내리던 소희의 시선이 한 자리에 머물렀다. 소희의 팔뚝에 남아있는 비늘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몸에 달라붙어 있던 비늘이 전부 떨어진 줄 알았는데 처음 비늘이 돋아났던 자리는 바닷물에도 씻겨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소희는 그것을 한 차례 쓰다듬는다.

그리고 하나를 꺾었다.

손톱만한 비늘이 달빛을 반사하며 반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예쁘지?”

비늘은 내 입술 사이를 밀고 입안으로 들어왔다. 소희가 엄지손가락으로 비늘의 끝을 꾹 누르고 있었다.

“달빛을 계속 받은 비늘은 단맛이 나더라. 사실 너 없을 때 궁금해서 하나 먹어봤어.”

어때? 무슨 맛이 나? 소희가 대답을 재촉했다. 가장 오랫동안 소희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비늘은 지금까지 가장 많은 달빛을 먹고 자랐을 것이다. 기대감에 부푼 소희의 눈도 달빛을 산란하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혀 위에 올려진 비늘이 차츰 녹아들어 얇고 말랑하게 변하고, 이내 사라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나는.

“엄청 짜.”

사과 맛이 난다고 대답했다.

“재영 씨.”

도로주행까지 합격하고 면허증을 손에 넣은 나는 학원 1층에 앉아 매끄러운 면허증을 계속해서 형광등에 비춰보고 있었다. 운전면허증에도 홀로그램이 있구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사님이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화들짝 놀라는 내 얼굴에 강사가 휴대전화를 들이댔다. 화면에는 중고차 거래 앱의 메인 화면이 올라와 있었다.

“강사님?!”

“이거 핸드폰에 깔았어?”

“어, 아니요. 아직.”

뭐하는거야? 재영 씨 그렇게 우유부단한 사람이야? 그렇게 안 봤는데. 나를 향한 좋지 않은 말이 우수수 쏟아지는 탓에 조용히 등을 돌렸다. 우유부단해서 죄송합니다. 근데 아직 놀란 가슴이 진정이 안 되어서요. 내 주둥이가 어지간히 튀어나와있었는지 강사는 혀를 쯧, 하고 찼다.

“아무튼. 이제 면허도 땄으니까 여기저기 많이 다녀. 질리도록 돌아다녀.”

“…네. 그, 저번 일은.”

빳빳한 면허증이 내 입술에 착 하고 붙었다. 눈을 가늘게 뜬 강사가 입꼬리를 느슨하게 올리며 말했다.

“그건 없던 일로 해.”

“네?”

“아니, ‘보답은 필요 없다’.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런 일 있었다고 남들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나 바로 여기서 잘린다?”

그러고보니 강사님과 나, 그리고 소희가 탔던 차는 학원 소유의 연수용 차량이다. 오늘도 학원에 강사님이 무사히 남아있는 걸 보면 연수 차량을 빼돌렸던 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듯하다. 본인이 없던 일로 하고 싶다니 감사의 말은 일단 삼키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강사가 내 뒤를 가리켰다.

“소희 씨다.”

“네?!”

뒤를 돌아보니 강사님의 말대로 소희가 서 있었다. 현관 유리문 앞에서 양산을 접으며 이쪽을 보던 소희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었다. 함께 바다에 다녀온 이후로 소희의 컨디션은 훨씬 좋아졌다. 당연히 몸이 완벽하게 나아진 것은 아니었고, 지금도 우리는 끝을 바라보며 지내고 있지만 적어도 소희가 온종일 병원에 갇혀있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어젯밤, 소희가 이야기했다.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비록 퇴원 수속은 아직 밟지 않았지만 이미 저 아이의 마음은 바깥을 활보하고 있다. 아마 지금도 거짓말을 하고 외출 허가를 받은 것이겠지. 아니면 몰래 빠져나왔거나. 강사님이 내 등을 떠밀었다. 날도 더운데 밖에서 기다리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강사님과 인사를 나누고 유리문으로 향했다. 햇빛이 내리쬐었다.

비늘은 태양의 빛도 사방으로 퍼뜨리고 있었다. 저것이 머금을 수 있는 건 달빛이나 사과 맛 뿐만이 아니구나.

팔뚝에 비늘이 붙어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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