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G(카디그)

Ghosts - (1)

카디그 앙헬라 영입 로그

115호 by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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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그레이야드, 그러나 언제나 코드네임 ‘트로이’로 불러야 하는 한 뒷세계 특수요원이지만 결국은 한낱 직장인에 불과한 그는 씨발, 돌아버릴 것 같았다. 팀 인원을 증원해달라 요청했는데도 상부에서 기각했기 때문이다. 기각 사유도 터무니없었다. ‘현재 인원으로 충분함.’ 장난하나? 뭐가 충분해? 그러니까 나보고 지금 이 새끼들만 데리고 이 개좆같은 임무들을 계속 헤쳐나가라 이거지? 트로이는 조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런던에서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가 벌어지는데, 고작 팀장 포함 세 명이서 런던 전체를 커버하라고? 결국 트로이는 상부에 다시 길고 정중한, 그러나 본인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항의 메일을 보냈다. 이번엔 답장조차 오지 않았다.

결국 트로이는 어떤 결심을 했다. 탁월한 해커였던 그는 대재해사무국(CDG)의 서버에 쳐들어가 그들의 팀을 증원 대상자로 다시 지정해 주었다. 들키면 어쩌려고? 안 들킨다. 자신 있었다.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안 들킬 자신이 있었다. 비-기술적인 문제는 어쩔 도리가 없었지만, 좆까. 너희들이 먼저 시작했어.

트로이가 잠시 우려했듯이 비-기술적인 문제로 그의 행각은 들통났다. 사무국은 지부가 수도 없이 많았고 그걸 다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말투만 격식체이고 숨쉬듯이 무례한 이메일을 두 차례나 받은 인사담당자는 런던 지부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권한을 벗어난 이 문제에―적어도 보안 담당자 열 명 이상은 박살이 날 것이다―대해 인사담당자는 상부와 함께 대응을 고민했고, 결국 징계를 내리는 대신 그들의 팀 상성을 엄격하게 고려해 신중하게 고른 멤버를 배치해줬다. 트로이는 귤을 달라고 했고 결국 상부는 귤을 주었다. 그게 파치귤일지라도, 어쨌든 귤은 줬잖아?

그리하여 CDG 런던지부에 새로 배정된 인원 ‘엔젤’은 흠 잡을 데가 많았다. 이 런던 지부의 모든 멤버들처럼.

트로이가 자신이 엿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 엔젤은 런던 지부에 도착했다. 엔젤은 런던 지부 건물을 둘러보았다. 평범한 오피스 빌딩들 사이에 있는 조금 작은 8층건물이었다. 립토 코퍼레이션 간판을 보고 엔젤은 CDG가 제법 많은 유령회사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엔젤이 아는 CDG의 유령회사 목록은 세 개가 되었다. 새 팀은 어떤 팀인가? 부디 상식인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왕이면 자신이 거기서 제일 이상할 정도로 상식적인 팀이었으면 했다.

엔젤은 특이한 능력이 있었다. 괴이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엔젤의 여러 골치 아픈 문제의 부작용이었지만 제법 유용했다. 그래서 엔젤이 런던지부 건물에 가장 먼저 도착하자마자 본능적으로 한 것은 괴이가 있나 없나 한 번 느껴보는 것이었다.

‘하나도 없잖아?’

보통 자잘한 놈 한두 마리 정도는 인간과 공생하며 숨어 있기 마련인데, 여기는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그래서 엔젤의 런던 지부 첫 인상은 ‘소름 끼친다’였다. 엔젤은 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음’의 소름끼침을 피부로 느끼면서 새 상관이 있다던 3층까지 갔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엔젤은 조금 희한한 기척을 느꼈다.

괴이라기엔 신호가 너무 미약했지만 동시에 아니라기에는 너무 거대했다. 쉽게 말해 이것은 ‘희한한 놈’에 그칠 수 있었지만, ‘거대한 존재가 기척을 숨겨서 희미해졌음’과 같은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상관이라는 자에게 보고할까?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게 ‘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불행히도 엔젤의 이전 팀은 사전에 미리미리 보고하는 사람에게 칭찬은커녕 헛걸음하게 만들었다고 화만 내는 팀이었으므로, 엔젤은 좀 더 확실한 증언을 하고자 그 기척에게 조금만 더 다가가기로 했다. 엔젤은 그 괴이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엔젤이 이런 능력을 갖게 된 것은 광기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CDG에서 측정해준 광기 수치는 엔젤이 거의 1/3쯤은 괴이 비슷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엔젤이 하는 것은 괴이와의 공명을 통해 위치와 규모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너무 가까이 접촉하진 말자. 그럼 너무 골치아파지니까. 그렇게 엔젤은 런던 지부의 이상하리만치 빈 건물을 헤매고 다녔고, 결국 심상찮은 괴이를 발견했다.

그 괴이는 키가 180cm는 넘어 보였고, 청록색 천조각들을 걸친 채 몸체를 어딘가에 수그리고 있었다. 맨 위에 난 갈색 털은 망 같은 데로 싸여 있었고. 그 괴이는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러니까, 꼭 한창 외과수술중인 의사같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방 안은 누가 봐도 수술실이었다. 저렇게나 완벽하게 인간 흉내를 내는 괴이라고? 엔젤은 순간적으로 굳었고 그녀의 광기가 괴이와 공명했다.

즉, 괴이도 엔젤과 공명했다는 이야기다. 잠깐 손을 멈춘 의사-괴이가 말했다.

“트로이. 침입자 발생. 괴이일 수도 있습니다. 저와 같은 공간에 있어요. 빨리 와주세요. 수술중이고 저랑 환자 둘 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침입자는 확보했다.”

그 목소리는 동시에 두 군데서 들렸다. 하나는 의사-괴이가 허리춤에 매달고 있는 무전에서였고, 다른 하나는 엔젤의 바로 뒤편, 뒤통수 부근이었다. 찰칵 하는 소리와 우웅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하나는 실총이 장전되는 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고스트탄이 든 특수 총이 가동되는 소리였다. 양손에 총을 하나씩 들어서 쌍권총을 들고 있는 트로이가 말했다.

“손 머리 위로 올려.”

엔젤은 순순히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고스트탄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미친 듯이, 끔찍하게, 아팠다. 엔젤처럼 광기 수치가 높은 사람에게는. 머리나 심장에 맞으면 특히 그랬다. 그리고 실탄이 머리나 심장에 명중하면 특히 결과가 좋지 않다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트로이는 불면증 때문에 낮 시간에 자고 있었던 솔트를 깨웠다. 솔트는 영문을 모른 채로 일어나 반쯤 졸면서 엔젤을 억류해뒀다가 엔젤의 프로필과 본인확인을 완료한 트로이의 지시가 떨어지자 또 영문을 모른 채로 풀어줬다.

그렇게 오해를 풀기까지는 7건의 전화와 두 차례의 고성이 있었다.

결국 트로이는 다이스의 수술실로 몰래 숨어 들어간 침입자가 ‘엔젤’, 즉 상부에서 ‘내일’ 온다고 알려준 새로 증원된 멤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어보니 엔젤은 오늘로 알고 있었다. 트로이는 슬슬 엿을 먹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엔젤이라. 참으로 기독교적인 코드네임이라고 생각한 트로이는 그들 모두를 트로이의 사무실로 불렀다.

엔젤은 방금 전까지 그들에게 강제로 억류되었던 사람치고는 정말 침착하고 도도하게 걸어오며 말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지요. 코드네임 엔젤. 사건 경위 분석 및 추가 인력으로 왔어요.”

단화를 신고 있는 엔젤이 걸어와서 멈춰 설 때까지 또각또각 소리가 났다. 이 건물에서는 그동안 거의 들을 일이 없는 그런 소리였다. 엔젤은 약간 가무잡잡한 피부에 곱슬머리를 단발로 자른, 지적인 분위기의 여성이었다. 여성, 혹은 적어도 여성처럼 보이는 사람이 드디어 온 것이다. 일련의 사건에 지친 트로이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벡델 테스트는 통과하겠군, 이젠.’

만약 삶이 영화나 소설이고 그 너머에 평론가들이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은 재미라도 있지, 그들의 삶은 누가 먹다 토한 찌꺼기에 더 가까웠다. 별점은? 1점. 0점을 줄 수 없는 시스템이라 아쉽습니다. 아디오스!

벡델 테스트고 나발이고, 어쨌든 엔젤의 합류는 좋은 신호였다. 팀에 다양성이 추가되는 건 언제나 좋았다. 트로이는 엔젤의 눈을 바라보며 악수했다.

“환영한다, 엔젤.”

“감사해요.”

“증원되는 하나하나가 귀중하지.”

비록 그 귀중한 인원의 머리통을 날릴 뻔했지만, 안 날렸으니 된 거 아니겠는가? 엔젤의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보니 얼핏 그녀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았지만, 넘어가자. 착각이겠지. 트로이가 물었다.

“그러니까 바로 내 사무실로 안 오고 거기서 그러고 있었던 건, 정체불명의 괴이를 감지해서라고?”

“네, 느꼈어요. 이 건물엔 다른 괴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지요.”

엔젤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갓 수술을 끝내고 온 다이스에게로 쏠렸다. 그는 이 모든 사태가 한참 마무리된 다음에야 수술이 완전히 끝났기 때문에, 피 묻은 수술복이나 눈가에 튄 피 같은 것도 미처 정돈하지도 못하고 이곳에 왔다. 다이스는 저요? 같이 어리둥절하고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트로이는 왜 저 표정을 볼 때마다 열이 받는지 알 수가 없었다. 도박으로 돈을 싹 날려먹고도 저리 순진한 표정을 지어서일까? 하지만 고난이도 수술을 끝내고 온 사람에게, 아니, 아직 애초에 아무 잘못도 안 한 사람을 쥐어박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트로이가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느낀다, 느낀다고.”

“네. 저는 괴이를 느낄 수 있어요.”

그건 엔젤의 프로필에서 가장 눈에 띄게 적혀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우리 요원을 괴이로 감지했다고?”

그러자 다이스가 말했다.

“제가 광기 수치가 높아서 오해하신 것 같아요.”

광기 수치?

그는 다이스의 프로필에서 그 수치를 보았지만, 그냥 그가 임상적으로 미쳤다는 것을 특이하게 표현한 건 줄 알았다. 다이스 이 미친 새끼는 손을 잘라도 본인이 수술로 붙이고는 도박을 할 놈이었으니까. 생각해보니 솔트에게는 그런 광기 수치니 뭐니 하는 항목이 아예 없었을 때부터 저게 임상적인 광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려야 했을 것이다. 집을 해먹고 안전가옥을 폭파시키면서 낄낄거리던 놈도 분명 임상적으로 미쳤을 테니까. 아마 일이 지금의 2/3만 되었어도 트로이는 광기 수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조그만 지부에 온갖 일들은 몰려들어왔고 트로이의 책상에 에너지 드링크 캔이 쌓여가는 동안 그는 싹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이스가 말을 이었다.

“제 광기 수치가 730.8크로닉이거든요. 720크로닉부터 CDG의 감지기는 괴이라고 인식하니까요. 저번 임무 때도 그랬고.”

그러고보니, 데이메어 작전 때 본부에서 준 볼펜 모양의 감지기는 다이스에게 경보음을 울려댔다. 그걸 이용해 다이스가 살해당하기 직전에 찾아내기도 했었고. 엔젤이 감지기와 성능이 비슷하다고 가정하면, 엔젤은 정말로 괴이 하나를 감지한 것뿐이겠지.

그러니까 상부는 이게 뭔지도 설명 안 한 채 저 미친놈을 그들에게 던졌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냥 격무에 시달리느라 그런 중요한 정보를 그러려니 하고 넘긴 트로이의 잘못인가? 아니, 솔트도 미친놈이고 다이스도 미친놈이고 아마 엔젤은…….

다이스가 말했다.

“전 엔젤과 공명했어요. 당신도 ‘광기’가 있는 것 같은데, 얼마인지 알려줄 수 있나요?”

그러자 엔젤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2,021크로닉.”

분위기가 약간 얼어붙었다. 광기 수치에 대해 뭔지 몰라도 충분히 이상함을 느낄 만큼 큰 숫자였다. 엔젤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제가 괴이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오해한 건 미안해요. 어쩐지 여기 자잘한 괴이가 하나도 없더라 싶었죠. 다이스라 했나요? 당신이 이 본부를 지켜주고 있었네요.”

그러니까 다이스가 알고 보니 우릴 자잘한 괴이로부터 지키고 있었다고? 그가 우리들의 수호천사였는데 이제 거기다가 엔젤도 추가되어서 우리에겐 진짜 수호천사도 생겼고?

트로이는 에너지 드링크를 한 캔 더 땄다. 이젠 트로이에게 듣지도 않는 카페인이 들어오자 그는 조금 안정을 찾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더 일이 개판으로 돌아간다면 근무중에 따는 게 에너지 드링크가 아니라 맥주가 되겠지만.

일단 모임은 거기서 해산했다. 새로 들어온 임무는 아직 없었고 새 멤버를 소개하려는 목적이었으니까. 트로이는 오 년쯤 늙은 기분으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엔젤의 프로필을 다시 꼼꼼하게 읽었다.

엔젤. 퍼스트 네임이 앙헬라(Angela)……. 코드네임은 기독교적인 교리의 산물이 아니라 성의없음의 산물이었다. 광기 수치는 그녀가 말한 대로 2,021크로닉이었다. 트로이가 따로 CDG 데이터베이스에 슬쩍 들어가서 확인해본 바에 따르면, 이 정도 수치는 비유하자면 거의 존재의 1/3은 괴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민속학자였고 연구원 포지션, 그리고 기타 주의란에는…….

[주의. 엔젤은,]

이 다음으로는 글자가 다 깨져 있었다. 트로이의 손에서 마침 비어있던 에너지 드링크 캔이 와작, 찌그러졌다. 애꿎은 화풀이를 모니터에다 하려다 참은 트로이는 상부에 엔젤의 기타 주의란에 대한 오류 수정 및 전체 접근 권한을 요구했다.

1분 뒤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놈들이 웬일로 이렇게 빠르게? 그러나 이건 방금 보낸 요청에 대한 답장이 아니라 임무 하달이었다.

[Zone 3에서 총기난사 발생. 확인 요망.]

트로이는 탄식했다.

또 데이메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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