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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그 첫임무 로그

115호 by 리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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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스는 위험에 처한 사람치고는 상당히 침착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다이스를 살아 있게 하는 건 매일의 소소한 행복이 아니라 극도의 희열이나 절망, 혹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들이었다. 그것들 아니면 죽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삶이었다. 그래서 다이스는 패닉이 오기는커녕, 오히려 약간 기분나쁜 미소를 실실 흘리고 있었다. 그것이 상대를 자극할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판 위에 판돈으로 자신의 목숨이 올라갔다. 다음 선택에 따라 생존확률이 좌우된다. 그만한 자극과 희열이 어디 있겠나.

다이스는 지금 자신이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팀을 믿느냐, 자신만을 믿느냐, 하는 그런 기로에. 팀을 믿으면 죽을 확률이 높았고, 자신을 믿으면 살 확률이 높았다.

이것은 제법 자명한 결과였다. 우선 팀을 믿는다는 것은, 팀이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최대한 버는 행위와도 통했다. 하지만 팀이 어떻게 자신을 찾아온단 말인가? 도청기는 부서졌고 다이스는 위치를 확인하기도 전에 갇혔다. 그들에게 위치를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그들이 찾아낼 유일한 방법은 회의실마다 다 열고 다니거나 회의실 명부를 확인하는 것인데 이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팀이 그래도 자신을 찾아와줄 거라 믿는다면 그때까지 적의를 띤 프리드먼-데이메어를 상대로 버텨야 했다.

반면 다이스의 오랜 경험을 믿는 것은 확실하게 안전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다이스가 프리드먼을 포옹하면 되었다. 마지막 소원이라고 거짓말한 뒤 단숨에 안으면 게임 끝이었다. 다이스는 탐지장치가 경보음을 울릴 만큼 왜곡된 사람이었고 그건 중간 상태에 있는 프리드먼을 단숨에 자극해 데이메어로 탈피시킬 것이었다. 그러면 순수한 데이메어만 여기 남게 되고, 그건 다이스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 데이메어가 새로 풀려나겠지만, 어쨌든 다이스만은 확실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한순간만은, 완연한 데이메어가 되는 순간이라면 다이스는 동생을 안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는 안지 못하게 된 그의 소중한 가족을.

다이스는 잠깐 고민했다. 잠깐이었지만 필사적인 고민이었다. 위협에 내몰린 사람이라면 사실 고민할 가치도 없이 명백한 선택지밖에 없긴 했다. 팀이 그를 구해줄 확률은 얼마나 될까? 1퍼센트? 1퍼센트나 되면 높은 것이었다. 반면 팀을 믿지 않고 그만의 방법으로 위기를 헤쳐 나가면, 거의 100퍼센트다. ‘거의’라는 말은 살아감에 있어서 완전한 100퍼센트란 없기 때문에 거들듯이 붙은 말일 뿐, 이 정도면 확신이었다.

다이스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

 

트로이와 솔트는 망설임 없이 닫혀 있는 회의실 문 하나를 부쉈다. 쾅 소리와 함께 진입하니 다이스가 프리드먼에게 목을 졸리고 있었다. 다이스는 프리드먼에게 닿지 않으려는 듯이 필사적으로 그를 밀어내고 있었지만, 점점 힘이 떨어졌다. 프리드먼은 그들이 아는 모습이었지만, 무언가 경계선이 흐릿했다. 곧 안개가 될 사람처럼.

솔트는 망설이지 않고 프리드먼에게 고스트탄을 네 번 쏘았다. 심장에 두 번 쏘고 머리에 한 번 쏜 뒤 유달리 경계선이 흐릿한 오른손에도 쏘았다. 다이스의 목을 조른 손이었지만 솔트의 사격은 깔끔하게 프리드먼만을 맞췄다.

겨우 풀려난 다이스가 쿨럭 쿨럭 기침을 하다가 비명을 질렀다. 갈비뼈 부상 때문인 것 같았다.

“악!! 아악!! 쿨럭, 악! 쿨럭, 쿨럭, 으윽, 아아악!”

트로이는 그때까지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려대고 있는 왜곡감지장치 볼펜을 끄고 다이스에게 달려갔다.

트로이는 도청장치를 통해 일이 잘못됐음을 알아채자마자 건너편 건물로 달려갔다. 두 건물은 다른 건물이었지만 중간에 다리가 이어진 곳이 있었고, 그들은 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달리면서 솔트가 외쳤다.

“어딨는지는 알고?”

“몰라! 곧 알겠지!”

트로이는 왜곡감지장치 볼펜을 꺼냈다. 야간작전에 손전등을 겨누듯이 다이스가 있는 건물 쪽에 겨누자, 아주 희미하고 끊어질 듯한 고주파 사이렌이 들렸다. 다이스와 데이메어를 함께 탐지한 것이다.

“봐, 소리 들리지?”

“안 들려!”

이 거슬리는 게 안 들리냐고 윽박지르고 싶었지만, 트로이는 솔트가 나이가 많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나이 들수록 고주파를 못 듣는댔나? 솔트는 어쩌면 진짜로 못 듣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제 믿을 건 트로이의 귀밖에 없었다.

‘시팔, 한 명쯤 더 필요해!! 세 명이서 이 규모의 작전을 어떻게 하느냔 말야!!’

본부로 돌아가면 꼭 증원을 요구할 것이다. 그게 두 명이 될 지 한 명만 해도 될 지는 이제부터 그들의 손에 달렸다.

그래서 그들은 미친 듯이 질주했다. 소리가 커지는 방향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건물은 행사 때문에 거의 텅 비어 있었고 그래서 사람을 마주칠 일은 없었다.

‘젠장, 그놈이 버텨줘야 하는데!’

하지만 버티지 못했더라도 데이메어의 확산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지금 움직여야 했다. 사이렌 소리가 솔트의 귀에도 들리는 것은 금방이었고 결국 어떤 회의실 문을 걷어찰 때쯤엔 사이렌이 고래고래 울려대고 있었다. 상황을 제압하고 사이렌을 끄자 죽음 같은 침묵이 찾아왔다. 기침을 하며 비명을 지르는 다이스를 제외하고서는.

트로이와 솔트가 서둘러 달려가자 다이스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킬킬 웃으며 외쳤다.

“하!! 와줄 줄 알았어. 내가 걸었어, 여기다 걸었다고!!”

큰 소리를 외친 뒤 다이스는 윽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렸다. 미친듯이 웃던 다이스는 웃다가 아파하다가 웃다가 아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이스의 상태를 살핀 솔트가 말했다.

“멍이 좀 든 것 말고는 심한 부상은 없어. 정신머리는, 잘 모르겠고.”

다이스는 확실히 어디서 패싸움이라도 하다 온 것처럼 생겼다. 게다가 저 착란 같은 상태라니, 데이메어가 그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친 건가? 하지만 다이스는 웃음을 곧 그치고 일어섰다.

“프리드먼 씨는 본부에 데려다드리고, 저흰 이만 철수하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말하는 다이스의 목엔 손자국이 선명했다. 트로이의 시선이 목에 닿자 다이스는 외투 깃을 올리며 말했다.

“데이메어는 인간을 물리적으로 해치는 법을 잘 몰라요. 그래서 빨리 죽지 않았죠.”

“무슨 수로 버틴 거야?”

“일깨워줬죠. 데이메어가 주는 환상은 가짜라고. 당신은 현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때 정신줄 놓으면 바로 데이메어가 되거든요. 좀 듣기 싫으셨던 것 같지만…….”

원래 진실은 아프잖아요? 하면서 다이스는 웃었는데, 멍 때문에 얼굴이 부어서 그런지 아주 우스꽝스럽고 슬퍼 보였다.

다이스는 바로 병원에 보냈고, 프리드먼도 무사히 본부로 이송했다. 임무는 그렇게 종결되었고, 트로이는 인원 증원을 요구하는 서한을 본부에 보냈다. 임무 성과 덕분인지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이 왔다.

그러나 답이 오기 전까지는 임무도 새 인원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시간이 잠깐 떴다. 그렇게 되자마자 솔트는 어디 나다니지도 않고 처박혀 있는 모양이고 다이스는 병상에 누워 있었다. 어차피 ‘큰 외상’은 없어서 물리치료를 받는 정도였다. 트로이는 고요하게 잠든 다이스를 내려다보았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렇게 내려다보시면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거 알아요?”

갑자기 잠든 다이스가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투로 말했다. 이번에는 정말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트로이는 약간 놀라고 말았다. 다이스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궁금한 게 있나 보네요?”

많았다. 그렇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을 트로이는 물었다.

“사실 혼자서 살아남을 방법이 있었지?”

그들이 구하러 오는 데 ‘걸었다’ 라고 했다. 트로이가 아는 다이스는 도박쟁이였고 불가능한 확률에 도전하는 것을 즐겼다. 그렇다면 ‘그들이 구하러 온다’는 경우는 다이스에게 있어서 불가능할 정도로 확률이 낮은 선택지였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선택했을 거라고,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보여준 다이스의 희열이 마음에 걸렸다. 다이스는 쉽게 속내나 감정을 드러내는 타입이 아니었다. 솔트와는 다른 의미로 그랬다. 그런데 그정도로 기뻐했다는 건, 곧 ‘확실한 이익’을 포기하고 얻은 승리가 아니었을까, 라는 추측에 다다른 것이다.

다이스는 눈을 마주치며 트로이의 의문이 맞다고 확인시켜주고, ‘포옹’이 얼마나 효과적이었을지 말해주었다. ‘포옹'이라는 선택지를 버리는 순간 프리드먼에게 험한 꼴을 당할 것도 각오했다고 말했다. 팀을 신뢰하는 것이 곧 도박이었기에 선택했다고도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서 염려되는 바가 있었다.

“그럼 만약, 팀을 믿는 쪽이 확실하고 아닌 쪽이 도박이라면 어떡할 거지?”

이게 제일 중요했다.

추가 다른 데로 기울었을 때, 다른 선택을 할 사람이라면 이제 예측만 되는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다이스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이번엔 팀을 믿어보았네요, 그렇죠? 아직 서툴러서 도움이 많이 필요한데, 그건 도와주실거죠?”

교묘하게 피해간 답이지만, 정답이기도 했다. 트로이는 일어섰다.

“다들 도와줄 거다.”

“그럼 노력해야죠. 최선을 다해서, 어디 한 번…….”

이 답이면 충분했다. 트로이는 다이스에게 인사하고 병실을 나왔다. 그러고 문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솔트와 마주쳤다. 병실 밖에서 엿듣고 있던 솔트가 멋쩍은 듯이 물러났다. 트로이는 솔트를 가만 바라보다가, 말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 그 정도 친분은 쌓아두는 게 좋지.”

트로이는 그렇게 우뚝 서 있는 솔트를 남겨두고 지나쳐 갔다. 복도 저 끝에 다다를 무렵, 찰칵, 하고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누군가가 병실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트로이는 피식 웃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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