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G(카디그)

Welcome Home - (5)

카디그 첫임무 로그

115호 by JIN
14
0
0

데이메어는 상실과 그리움을 매개로 환상을 보여주는 괴물이다. 숙주가 상실에 대해 생각할 때 그 순간 접촉한 사람들이 ‘곁가지’가 되고, 곁가지들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본체보다 더 열화되고 끔찍한 환상을 보게 된다. 어쩌면 총을 난사해서라도 방어하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무언가를 보게 되는 건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리움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을 어떻게 예측하는가? 그래서 이것은 마치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을 추적하는 것과 비슷하다. 필요한 건 최초의 보균자, 인간관계의 허브(Hub)가 되는 보균자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것은 수학과 네트워크 연구의 힘을 빌려야 하는 과정이었고, 다이스는 옛날의 동료 의사들이 전염병 연구에 참여하면서 그런 데다 자문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트로이가 해낸 건 거의 똑같은 절차였다. 트로이는 너무 전문적인 설명은 생략했지만, 다이스는 그가 전염병 연구자들의 방식을 빌려왔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트로이는 해킹 능력을 갖춘 요원 같던데, 전에는 뭘 하다 온 사람이었을까? 어쩌다 이런 데까지 흘러왔을까? 다이스는 거쳐온 많은 팀에서 상대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그런 지점에서 확실히 트로이는, 특별히 인상적이었다.

트로이가 말했다.

“안타깝지만 무작정 고스트탄을 쏴갈겨서 확인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 이번 주는 다섯 발밖에 못 쏴. 그리고 숙주만 골라 제압하려면 최소한 네 발 이상의 고스트탄을 소모해야 해. 누가 숙주인지 미리 확정하고 쏴줘야 한다는 거지.”

솔트가 툭 잘라먹듯이 물었다.

“왜 다섯 발만?”

“한 지역에서 너무 많은 고스트탄이 소모되면 법칙에 왜곡을 일으킨다더군. 시기별 할당량이 정해져 있어.”

사실 다이스가 생각한 제일 간단한 방식도 일단 둘 다 쏴보는 것이었다. 한 명은 숙주였다가 살아날 것이고 다른 한 명은 기억을 잃는 정도일 테니 부담이 적었다. 물론, 누가 또 총기난사를 하는 것보다는 적다는 얘기다.

다이스가 손을 들고 의견을 말했다.

“그럼 둘 다에게 왜곡 테스트를 진행하는 건 어떨까요? 숙주로 감염된 지 이 정도 기간이 지났으면 보통 인간 이상의 ‘현실왜곡’이 이미 일어났을 거예요.”

“그 테스트는 어떻게 하지?”

“아, 그건 여기 입단할 때 준 판촉용 볼펜처럼 생긴 장치로 쉽게 확인할 수 있긴 한데…….”

그 말을 듣고 있던 솔트가 트로이의 책상에서 굴러다니는 립토 코퍼레이션 볼펜 하나를 딸깍딸깍 눌러봤다. 조잡한 형태의 볼펜촉이 튀어나왔다가 들어갔다. 솔트가 손에서 볼펜을 휙 굴리며 말했다.

“그냥 볼펜같이 생겼…….”

돌아가던 볼펜의 끝이 다이스를 향하자 갑자기 삐용삐용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놀란 솔트가 볼펜을 떨어뜨렸고, 데굴데굴 구르던 볼펜은 이윽고 약하지만 충분히 거슬리고 강력한 사이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솔트와 트로이가 반사적으로 귀를 막은 동안 다이스가 볼펜을 주워서 껐다.

“네, 확인은 이렇게 간단한데 저한테도 반응을 하거든요. 쓰시려면 절 빼놓고 작전을 나가시거나, 문항검사로 확인해야해요.”

테라피스트가 주는 검사지 같은 느낌이죠, 라고 다이스가 덧붙였다. 트로이가 골치 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됐어. 그 볼펜은 안 쓸 거야. 가뜩이나 인원도 적은데 두 명이서만 작전을 나가는 건 안 돼. 두 사람한테 어떻게 문항검사를 시키느냐가 문젠데. 누굴 보내야 하지.”

다이스가 전원을 끈 ‘볼펜’을 이리저리 살피던 솔트가 트로이에게 말했다.

“다이스.”

적임자라고, 그렇게 망설임없이 내뱉은 말이라 다이스는 흥미가 생겼다.

“진짜 의사라서요?”

“그것도 있고. 테라피스트 행세 하는 거잖나? 난 이렇게 생겨먹어서 남들이 긴장해. 트로이는,”

솔트가 약간 찌푸린 인상의 트로이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뭐, 비슷한 문제에 시달리겠지. 하지만 넌 ‘테라피스트’ 같이 생겼어.”

솔트의 어조로 보건데 솔트에게 있어서 ‘테라피스트’는 결코 긍정적인 어감이 아닌 듯했다. 그러나 솔트의 말이 옳았다. 한편 소위 ‘비슷한 문제에 시달릴’ 트로이는 솔트의 말에 기분이 더 구려졌는지 찡그린 인상이 더 짙어졌고,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솔트의 말이 옳다는 걸 증명했다.

다이스가 말했다.

“하긴, 데이메어는 저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못하니까요. 가장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라면 제가 나가는 편이 돌발 상황에 더 좋겠죠.”

다이스는 모두에게 짤막하게 설명했다. 자신은 방금 탐지기로 확인한 것처럼 이미 왜곡이 많이 되어 있어서 데이메어에게 해를 입기가 어렵고, 개인 사정 때문에 동생의 모습으로 나오는 데이메어에 홀리지도 않는다고. 솔트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반응도 내비치지 않았는데, 어떤 반응이 적절한지 가늠하기 힘들어서였을지도 몰랐다. 반대로 트로이는 다이스가 ‘개인 사정’이라고 압축해서 요약한 것을 듣고 생각이라도 많아졌는지 자신의 미간을 꾹꾹 눌렀다. 어쨌든, 다이스가 팀에게 이 정도라도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이스는 돌발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작전에 투입될 수 있었다. 다이스는 이번에는 진심으로 맹세했다. 금 간 갈비뼈는 아직도 붙고 있었지만 다이스는 진통제를 적절히 쓰면서 이번 기간을 버티기로 했다. 기침이나 재채기, 무리한 활동만 안 하면 그리 아프지도 않았다.

그렇게 데이메어 숙주를 판가름하는 작전이 시작되었다. 첫 검사대상은 2순위인 닐 프리드먼이었다. 아니라고 판별될 경우 1순위를 검사하고 조치를 취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계산에서였다.

통유리창이 있는 회의실에서 다이스와 프리드먼은 단 둘이 만났다. 프리드먼의 경우 간파당하기 쉬운 지나친 무장은 경계를 살 수 있으므로, 다이스의 장비는 도청기가 달려있는 볼펜을 앞주머니에 꽂은 것과 품 속에 숨겨둔 권총뿐이었다. 다른 팀원들은 건너편 건물에서 저격총을 조준한 채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 실탄이 들었는지 고스트탄이 들었는지는 흘러나오는 대화 내용에 따라 저쪽에서 판단해줄 것이다.

다이스가 서류봉투를 프리드먼 쪽으로 가지런히 내밀며 말했다.

“이번 일에 크게 엮이시기도 하셨어서,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제공해드리는 저희 사의 복지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여러 번 느끼셨을 테지만, 괴현상의 충격은 점점 누적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확인하시는 게 좋아요.”

“그건 저도 느끼는 바입니다. 예전 팀들은 이런 복지 같은 것들은 하나도 안 해줬는데, 좋네요.”

그렇게 말하는 프리드먼 경사의 눈 밑은 피로로 시커맸다. 눈에도 실핏줄이 터져서 충혈되어 있었고, 피부도 눈에 띄게 푸석푸석했다.

“컨디션은 괜찮으신가요, 경사님?”

“아, 조금……. 며칠 동안 잠을 전혀 못 잤습니다.”

데이메어 숙주가 개화하기 직전에 보이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PTSD 환자에게서도 보일 수도 있었다. 후보 1과 후보 2의 공통점은 자신의 평균적 인간관계의 삼분의 일에서 절반 이상이 이번 총기난사 사태로 직간접적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망으로부터 그들로 점이 좁혀진 것이다. 트라우마 증상을 호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다이스는 정신과 수업을 성의 있게 듣지 않았지만 그 정도 추론은 할 수 있었다. 다이스는 염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저런,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검사는 받겠습니다. 내일은 더 피곤할 것 같아요. 대신 장소를 바꾸죠.”

“아, 다른 곳에서 하고 싶으신가요?”

태연히 받아넘겼지만 도청기 너머 팀원들이 긴장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장소 바꿈?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사실 팀원들은 불상사가 발생할까 봐 대기하는 것이었고, 중요한 건 검사 그 자체다. 정 팀원들의 마음이 편안하려면, 어느 회의실인지 한 번 슬쩍 말해주면 될 일이었다. 프리드먼이 말했다.

“여기 햇살이 너무 쏟아져서 졸려서요.”

“얼른 잠을 잘 주무셔야 할텐데……. 그럼 따로 생각해 둔 장소가 있으신가요?”

“회의실은 누가 쓰고 있을지 몰라서, 적당히 빈 곳 들어가죠. 너무 창문이 큰 이쪽 말고.”

“좋아요.”

다이스가 해야 할 것은 침착할 것, 목소리를 분명하고 또렷하게 발음할 것, 그리고 팀원에게 위치를 교묘하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 외에는 식은 죽먹기였다. 다이스도 한때 심리검사의 모음 같은 것을 한꺼번에 받아본 적이 있어서, 테라피스트처럼 흉내내는 건 쉬웠다. 프리드먼도 다른 사람을 상대할 때보다 다이스에게 좀 더 안도하는 듯했으니까. 지금이야 피곤에 절어서 조금 신경질적으로 보인다만.

다이스는 프리드먼을 따라 회의실을 찾아다녔다. 인터폴에 살인 혐의로 수배된 그가 경찰과 관련된 건물을 이렇게 누비고 다니다니, 조금 스릴 넘치기도 했다. 그것 때문에 변장을 한 것이지만, 다이스는 약간의 시시한 도박을 하는 듯한 즐거움이 살짝 도는 것을 느꼈다.

새 회의실은 구석진 곳에 있었고 창문은 있었지만 햇살과 반대 방향이었다. 프리드먼은 회의실 앞의 명부에 자기 이름과 사용 시간을 적으려 했다. 하지만 명부 옆의 볼펜은 잉크가 다 떨어져 있었다.

“선생님? 볼펜 하나만 빌려주실 수 있나요?”

그때 참 공교롭게도, 다이스의 볼펜은 그 도청기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분을 가져올 걸 그랬다. 그렇지만 도청기는 볼펜도 잘 나왔고, 무엇보다 셔츠 앞주머니에 바로 꽂혀 있었으므로 안 주기도 이상했다. 도청 대상에게 도청기가 더 가까워졌으니 좋은 일이려나? 아무리 경찰이라도 이걸 알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신 첩보현장에서 쓰이는 물건이니.

다이스는 프리드먼에게 도청기-볼펜을 건넸고, 프리드먼은 회의실 명부에 자기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다이스는 그동안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여긴 한 번도 안 와본 곳이네요. 그럼 어디일-”

다이스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작성을 끝낸 프리드먼 경사가 갑자기 다이스에게 달려들었다. 요원훈련을 받은 다이스였지만 상대는 베테랑이었다. 프리드먼은 다이스의 멱살을 잡아 회의실에 처넣었고, 다이스는 몇 번 회의실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우당탕 내동댕이쳐졌다. 원래대로라면 돌발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으니 이제 바로 권총을 꺼내 쏴버리는 게 맞았으나, 갈비뼈에 금이 갔던 다이스는 진통제를 뚫고 몸을 휩쓰는 격통에 신음했다.

프리드먼 경사가 회의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을 잠갔다. 생리적으로 나온 눈물에 약간 흐릿한 시야였지만, 프리드먼이 묘하게 고조된 얼굴로 볼펜을 아직도 쥐고 있는 게 보였다. 프리드먼이 숨을 몰아쉬면서 천천히 말했다.

“선생님, 이상한 소리지만, 정말 미친 소리같이 들리는 건 알지만.”

프리드먼이 천천히 다가왔다.

“당신을 너무 죽이고 싶습니다.”

그 순간, 프리드먼이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악력으로 볼펜을 으스러뜨리는 것이 보였다. 다이스가 팀에게 연락할 수단이 사라지고 고립되는 순간이었다. 프리드먼의 손에서 산산조각 난 플라스틱과 기타 부품들은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그의 손을 피투성이로 만들었지만, 프리드먼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왜, 왠진, 모르겠지만, 죽이고 싶어요.”

그러고보니, 데이메어들은 다이스를 참 싫어했었다. 본능적으로 싫어했었다. 자신의 모든 무기가 통하지 않는 천적이나 다름없으니, 그걸 알아본 탓이었을까? 그래서 더 화려하게 날뛰는 놈들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차피 소용없었으니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렇지만 데이메어가 ‘되어가고 있는’ 인간은, 그래. 데이메어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위협적이다.

‘간만에 진짜 위험한데.’

바로 지금처럼.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