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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그 첫임무 로그
깜짝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트로이는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죽기보다 싫은 사람이었으므로, 화들짝 놀라는 대신 화를 냈다.
“하, 왜 거기 있었지?”
캐비닛이 있는 곳부터는 나름대로 보안구역 중 하나였다. 날카로운 질문에 솔트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우연히.”
“우연히 보안문을 뚫고 기밀서류함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고?”
“우기는군.”
“설명을 해야 하는 쪽은 너야.”
“글쎄, 여기가 축축한 채로 오고 싶은 곳으로 보이나?”
솔트의 머리는 조금씩 말라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물기가 있었다. 옷도 외투 없이 민소매 셔츠만 달랑 걸친 채여서, 난방이 되어있다지만 팔이 겨울 공기에 약간 소름이 돋아 있었다. 기밀서류를 훔쳐보려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머리를 감고 돌아오려다 길을 잃은 것이겠지. 일단 트로이는 이 본부 내의 이상한 비밀통로를 전부 파악하기로 다짐했다.
“언제부터 거기 숨어있었지?”
“너네들이 뭔 소리 하는지 다 들을 만큼.”
그러면서 솔트는 공허한 시선으로 트로이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의도로 계속 거기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진 모르겠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트로이는 기분이 나빠졌다.
솔트는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고, 노련한 베테랑이라는 것이 한 번의 합 맞추기로도 느껴졌다. 하지만 트로이는 솔트가 합류할 때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집에 설치한 폭탄으로 집을 날려먹질 않나, 트로이의 스위치를 멋대로 강탈해가기도 했고 본부까지 가는 길에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혼자 웃기도 했다. 트로이 입장에선 솔트도 인간으로서 무언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떠나서, 솔트의 시선은 그냥 기분나빴다. 솔트에게는 부당한 처사겠지만, 트로이가 솔트를 기분나빠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나가. 머리나 마저 감든지.”
그러자 솔트가 다음에 한 행동은 트로이의 말을 듣고 저벅저벅 걸어나가주는 대신, 들고 있던 수건으로 머리를 북북북 닦으며 말리는 것이었다. 트로이가 노려보는 동안 머리를 드디어 다 닦은 솔트가 수건을 목에 척 걸쳤다.
“영화 보면 ‘그런 약속’ 하는 놈들이 제일 먼저 죽지.”
‘그런 약속’. 아마 ‘죽지 않겠다’고 리암에게 맹세한 일을 가리키겠지. 그러나 영화 클리셰는 클리셰일 뿐이고 상대할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영화는 영화야. 난 절대 안 죽을 거야.”
그러자 솔트는, 아마 참으려고 했던 것 같지만 결국 참지 못한 비웃음을 풉, 하고 내뱉었다. 솔트가 물었다.
“왜?”
또 그 이죽이는 건지 아닌 건지 구별이 안 가는 표정이었다. 트로이는 점점 더 확실하게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네가 좋아하는 영화한테나 물어보든지.”
“걔는 너 죽는다던데.”
“그럼 영화 말이나 믿든가.”
퉁명스러운 대답에 솔트가 약간 진지한 눈빛이 되어서 물었다.
“왜 너는 살아남을 거라 생각하지? 왜 너만 예외일 거라 믿지?”
시팔, 그딴 걸 굳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딨나?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그딴 걸 무의식적으로 굳게 믿기도 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 근거는 결국 하나였다.
“난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이런 데서 죽지 않을 거야.”
트로이는 이 말을 뱉고 나서 이 말이야말로 정말 영화 클리셰를 그대로 따라가는 전개임을 깨달았다. 그 사실에 불쾌해졌을 때 솔트가 또 이죽이듯이 내뱉었다.
“삶의 목표라니, 좋을 때군.”
대체 이 새끼는 왜 계속 여기서 얼쩡거리며 시비지?
“그래서 용건이라도 있나?”
“그딴 건 없었지. 머리 감고 나오다가 갇혀서 강제로 휴먼드라마를 시청했을 뿐이야.”
그러면서 솔트는 또 트로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숨 비슷한 것을 쉬고는 나갔다. 한숨은 왜 또 쉬고 지랄들이야? 그러나 솔트를 다시 불러와서 이유를 물어볼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으므로 트로이는 아무도 없는 방 안을 잠시 만끽했다.
그 뒤 트로이는 일어서서 솔트가 서 있었던 자리를 살펴보았다. 물기가 떨어진 곳, 그리고 흰 머리카락이 바닥에 한 가닥 떨어져 있는 곳.
“UA13, KJ44캐비닛…….”
근처에 있던 캐비닛, 그 중에서도 접근 거부 표시를 띄우고 있는 캐비닛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허가받지 않은 사용자가 비번을 자꾸 틀린 곳이라고 보면 되겠다. 각각 괴현상 관련한 문서와 인적사항을 보관하는 보관함이었다.
‘이것 봐라……?’
무신경하고 심드렁한 태도와는 다르게 솔트 또한 이번 임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쩌면 이것을 위해 여기 침입했을 수도 있겠고, 본인 주장대로 길을 잃은 김에 한 번 시도해 본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트로이에게 직접 물어보는 대신, 직접 알아보려다 거부당해 결국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걸 문책해, 말어?’
당연히 원칙적으로는 문책감이다. 승인 거부당한 기록도 뽑아낼 수 있을 거고 누가 거기서 거부당했는지 생체정보도 같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트로이가 고민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팀에 대한 신뢰가 아무도 없어.’
그딴 게 있기나 하겠나? 트로이도 둘을 신뢰하지 않고 있던 판이다. 나머지 둘이 팀을 마음껏 신뢰하게 만드는 게 트로이의 역할이었고, 불행하게도 트로이는 사람들을 사이좋게 만들고 서로 신뢰를 가지게 만드는 데는 재주가 없었다. 남을 열받게 하거나 싸우게 만드는 게 트로이의 주특기였다. 그렇지만 아무 생각 없던 시민이 총기난사를 하게 만드는 괴물 같은 것이 존재하는 상황에선 트로이가 가장 못하는 것을 해내야 했다. 다이스와의 면담은 그 시도 중 하나였다.
‘다 집어치우고 싶다.’
차라리 불가능한 해킹 임무를 받거나 작전지에 투입되어 총격전을 하는 게 마음이 더 편했을 것이다. 지금은 못하는 것 투성이에, 모르는 것도 너무 많았다. 다 때려치고 편안한 ‘원래 하던 일’이나 다시 하고 싶었다. 불가능했지만.
‘아냐, 불가능하지 않아.’
트로이는 상부 기관의 명령으로 민간인을 사찰하던 도중, 그 민간인이 괴현상에 휩쓸리면서 죽는 바람에 살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다행히도 CDG가 그를 거둬가며 감옥에 가는 것은 면했지만, 이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예전 직장에선 수배당한 상태이다. 암담한 상황이었지만 CDG는 그에게 약속했다. 몇 년만 고생하면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그러니 생존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생존은 당위와 의무의 문제였다. 트로이는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리고 살아남으려면, 이 빌어먹을 개자식들을 팀으로 만들어야 했다.
트로이가 적성에 안 맞는 업무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무렵, 다이스는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갈비뼈 부상에는 원래 그것 말고는 답이 없다. 다이스는 뼈가 잘 붙고 몸이 튼튼한 편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범주에서 그러하다는 것이지 초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쉴 수 있을 때 최대한 느긋하게 쉬어두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두근거리는 심장 때문에 쉬는 게 쉬는 것 같지가 않았다. 혼자 남겨진 다이스에게는 끝없이 한 장면이 플래시백되었다. 바로 총기난사범을 자신이 제압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때 다이스는 데이메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였다.
데이메어는 다이스에게 익숙한 괴물이었다. 전 동료들이 데이메어를 보고 착란을 일으킬 때,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던 다이스만이 살아남았다. 상부는 왜 다이스만이 무사했는지 연구했고, 다이스가 일정 비율 이상의 광기에 잠식당한 상태라 웬만한 괴현상에는 동요하지 않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광기는 CDG에서 직접 측정해줬으니 그 말이 맞을 것이다. 실제로도 이후에 만난 낮은 등급의 괴물들에게서는 별 타격을 입지 않았었다. 하지만 다이스는 자신이 데이메어에게 강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는 데이메어는 항상 내 동생의 모습이었으니까.’
동생은 그의 사랑이자 악몽이자 빛이자 원죄였다. 데이메어는 그리운 동생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그를 살인자라고 비난했다. 동생은 점점 기괴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찬란하고 성스러워지면서 다이스에게 얼른 죽이고 복수하고 끝내는 자살하라고 부추겼다. 그러면 다이스는, 글쎄, 너무나 멀쩡한 제정신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다이스는 교통사고로 뇌사가 된 동생을 죽였다. 동생을 친 자에게 실제로 복수도 했었고 살인도 했었다. 그 모든 죄책감과 파괴적인 생각들은 이미 다이스가 전부 거친 것이었다. 동생은 다이스만큼 처절하고 악랄하게 생각하고 비난할 수가 없었다. 다이스가 자기 자신에게 훨씬 더 잔인했기 때문에, 동생의 껍데기를 한 데이메어가 그 이상으로 잔인해져서 다이스의 정신을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시 한 번만 더 볼 수 있다면…….’
어쨌거나 그리운 사람을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건 좋은 일이었다. 아니, 참을 수 없는 충동에 가까웠다. 특히나 다이스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방식과 다르게, 동생의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으로 나타나 죄책감을 유발하려 들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게 바로 다이스가 갑자기 야간투시경을 벗어 버린 이유였다. 그건 충동이었고 광기였다.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그런 광기. 그래서 다이스는 그때 동생을 보았고 그리움이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가는 것을 느꼈다.
단 한순간,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딱 한순간만, 그뿐이지만…….’
이제 다이스에게 살인은 허락되지 않았으니 자신을 향한 살인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아직 다이스가 살아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다음엔 어쩐다.’
데이메어는 다이스가 웬만한 괴물들과 괴현상에 면역이 있단 것을 알려준 첫 크리처 중 하나였지만, 동시에 그런 것들 중에서는 다이스가 가장 충동적으로 구는 대상이기도 했다. 당연했다. 동생이니까. 거짓으로라도 만나고 싶은 동생이니까. 이제 다음번에는 데이메어의 남은 곁가지나 본체를 추적할 텐데, 다시 만나면 너무 그리워서 안아 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트로이에게 있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팀으로서도 돌발상황일 것이고. 하지만 그동안은 데이메어와의 관계에 대해 팀에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려면 아픈 과거를 함께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가 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했기 때문에.
‘이번 팀에는 말해봐?’
죽지 않겠다고 약속한 유일한 팀이니, 한 번 말해볼까? 다이스는 어느새 동생에 대한 플래시백을 관두고 그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다이스가 결정을 내렸을 무렵, 트로이가 모두를 불렀다. 공식적으로.
“데이메어의 본체를 찾아냈다.”
다이스는 조금 놀랐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트로이가 CDG의 데이메어 자료를 띄워놓고 설명해가면서 말했다.
“데이메어는 숙주가 있고 그 숙주를 터뜨리고 나가면서 숙주를 데이메어로 변모시키지. 착란 현상은 그 숙주와 접촉한 사람들의 부작용 같은 것이고. 따라서 총기난사나 착란 현상을 역추적해나가면 숙주의 인간관계를 추정해내서 좁힐 수 있다. 그래서…….”
이번 팀장은 생각한 것 이외의 분야에서 유능한 사람이었다. 다이스는 트로이에 대한 마음속 평가를 약간 상향 조정했다. 트로이는 그동안 두 사람의 사진을 스크린에 띄웠다.
“숙주로 의심되는 첫 번째 사람은 앨리슨 도너. 인적사항은 이쪽 참고하고. 가장 많은 일치율을 보였지. 다만 총기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야. 그리고 두 번째 사람은…….”
두 번째 사람은 모두가 아는 사람이었다. 트로이가 말했다.
“닐 프리드먼. 두 번째로 높은 일치율.”
그는 그동안 우리와 협력해온 바로 그 경찰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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