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G(카디그)

Welcome Home - (3)

카디그 첫임무 로그

115호 by 리우진
15
0
0

그들은 난사범을 만날 수 있는 예상 경로로 뛰기 시작했다. 최단 경로이자 가장 사람과 마주치지 않을 경로였다. 그러나 아무도 안 만날 수는 없었고 그럴 때마다 솔트가 고스트탄을 쏴서 그들의 기억을 지우고 갔다. 그때마다 프리드먼의 탄식 소리가 들렸지만, 어쩌겠는가.

달리는 동안 브리핑은 다이스의 몫이었다.

“데이메어에게 영향받은 사람은 자신을 쫓아오는 끔찍한 환상을 보게 됩니다. 야간투시경은 왜곡을 왜곡시킬테니 저희가 환상을 보지 않게 도와줄 거예요. 일시적인 곁가지라면 그 사람을 잠재우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차단할 수 있지만, 본체라면 상당히 대처가 어려워요.”

프리드먼이 같이 달리면서 물었다.

“허억……. 허억……. 그래서, 허억……. 본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건가요?”

그들은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리드먼의 말은 거친 숨소리로 계속 끊겼다. 그 말에 다이스가 대꾸했다.

“대응 인원이 저희 셋뿐인 상황에서는 사살밖에 답이 없습니다.”

트로이가 물었다.

“프리드먼 경사는 야간투시경이 없는데 위험하지 않나?”

“저나 부대장님이 후방에서 보호하죠.”

사실 다이스의 훈련 수준이 확실하지 않은 이상, 후방에 다이스를 남겨두는 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마취총 있나?”

그 말에 다이스가 의아하다는 듯이 트로이를 돌아봤다가, 뭔가 기억났는지 자기 무장을 더듬었다.

“아니……. 네! 있습니다! 왜 여기 있지?”

다이스는 세 사람의 변장을 맡느라 조금 피곤했을 것이고, 아마도 자기가 놓고 온 포커 대회에 미련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딴생각이 머리에 가득했을 거라는 이야기다. 아까 무장을 내보일 때, 웬 뜬금없는 마취총을 챙겨온 것을 본 것 같아서 물어봤다. 정신없는 새끼 같으니라고. 하지만 동시에 운이 지독하게 좋은 놈이기도 했다.

탕!!

다시 총소리가 들렸고 이번엔 아주 가까운 데였다. 그들은 타겟과 거의 가까워졌다. 트로이가 말했다.

“내가 경사를 보호한다. 너희 둘은 타겟을 무력화하도록. 생포를 우선으로 해라.”

“넵!”

“이해했다.”

다이스와 솔트가 동시에 대답했다. 만약 타겟이 데이메어의 본체가 아니라면, 다이스가 엉뚱하게 가져온 마취총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잠들면 끝난다고 했으니 말이다. 트로이는 다이스의 사격 연습지들이 제법 우수한 결과를 낸 것은 보았고, 자기 무장에 마취총이 있다면 적어도 맞히는 방법 정도는 연습했을 것이라 믿었다. 매일 열심히 훈련하는 다이스를 봤기 때문에 그 정도는 믿을 수 있었다. 도박을 안 할 거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트로이는 프리드먼 경사를 자신의 옆으로 끌어들이며 말했다.

“경사님, 지시하면 눈을 감아 주세요. 절대 뜨면 안 됩니다.”

“빌어먹을……. 헉, 헉……. 좋아요……. 그렇게, 하죠.”

탕!! 탕탕!!

낮에 사용하는 야간투시경의 엉망진창 시야 너머로, 총을 든 인영을 가장 먼저 포착한 쪽은 솔트였다. 적어도 야간투시경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타겟이 총을 쏘는 방향에 희뿌연 안개가 소용돌이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이스가 말했다.

“데이메어에요! 곁가지입니다!”

총기난사범 근처에서 말소리를 내는 건 보통은 자살행위였지만, 난사범은 데이메어에게 총을 쏘느라 정신이 없었다.

먼저 행동에 나선 건 솔트였다. 솔트는 난사범 근처로 다가갔고,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자세를 잡은 뒤 난사범의 총에 총을 쐈다. 실탄은 단 한 발 만에 총을 감싼 손과 개머리판을 명중시켰고 난사범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손을 감쌌다.

그 다음으로 행동한 건 다이스였다. 곁가지라면 잠재우면 된다. 다이스는 난사범에게 다가가면서 마취총을 연거푸 쏘았고, 세 발 중 한 발이 명중했다. 난사범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쓰러지진 않았다. 솔트가 외쳤다.

“조심해! 데이메어가 그대로다!”

그러자 다이스는 난사범에게 전력질주해서 달려갔다. 난사범이 안 쓰는 쪽 손으로 총을 줍기 직전, 다이스는 갑자기 야간투시경을 벗어던졌다!

“다이스!!”

트로이의 분노 섞인 외침과 함께 다이스는 난사범과 함께 나뒹굴었다. 탕 소리가 나는 동시에 다이스는 난사범의 뒤로 돌아가 강하게 껴안았다. 야간투시경 너머로 백허그를 한 두 사람의 희끄무레한 형체를 보면 다이스가 난사범의 눈을 가린 것 같았다.

“괜찮아요. 이건 꿈이야! 진정해요. 저건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곧 깰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동안 난사범의 몸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지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솔트가 말했다.

“데이메어의 흔적이 사라졌다.”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트로이는 야간투시경을 벗고 다이스에게로 달려갔다. 다이스는 난사범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고, 볼펜 같은 것을 난사범의 목에 찌르듯 박아넣고 있었다. 강력한 마취제라고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트로이가 난사범을 바닥에 눕혀 맥박이 정상인지 확인하는 동안, 다이스는 오만상을 다 찌푸리고 있었다. 솔트가 다이스를 살피더니 말했다.

“방탄복에 한 방 맞았군.”

“네……. 후! 제법 아프네요. 돌아가면 엑스레이를 찍어야겠어요.”

난사범의 맥박은 정상이었다. 그저 아주 깊이 잠들었을 뿐이었다.

원인도 밝혀내고 새로운 총기난사와 피해를 막았다. 경찰서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라 그런지 다들 잘 대처해서 사상자도 없는 것 같았다. 여기 더 머물러봤자 지울 기억만 늘고 프리드먼 경사를 더 곤란하게 만들 것이다.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철수하는 것이겠지만 찝찝했다.

“경사님, 이제 눈 떠도 되는……. 안 감고 있었습니까??”

프리드먼 경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멋쩍어하며 말했다.

“타이밍을 놓쳐서…….”

“당신이 이 카마이클 씨처럼 될 수도 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전 그래도 별 끔찍한 걸 보진 않았어요. 다행이지 뭐예요.”

어쩌면 아주 그리운 것이었을수도, 라고 프리드먼 경사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트로이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어쨌든 CDG의 소관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철수한 뒤 조만간 향후 대처에 대해 논의하도록 하죠.”

CCTV 영상 지울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밤을 새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골치아픈 건 역시, CCTV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팀원이겠지.

그래서 트로이는 현장에서 철수한 뒤 밤을 새고, 트로이로서는 제법 드물게도 한숨 푹 잔 뒤 다이스를 불러냈다. 수면부족 상태로 몸과 정신을 혹사했다가는 사람이 이상행동을 한다는 점은 솔트로 이미 경험한 바가 있었으니까.

다이스는 변장을 지우고 충분한 숙면을 취했는지 얼굴이 좋았다. 트로이는 그 점마저 짜증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짜증내려고 다이스를 부른 게 아니었다.

“몸 상태는?”

“미세골절과 금간 것들이 좀 있더라고요. 빗맞지 않았으면 크게 금갔을 것 같네요.”

“통증은?”

“지금은 없어요. 진통제를 적절히 썼거든요.”

이 모든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

“그게 네 스타일이냐?”

그러자 다이스가 말이 없었다. 방금 무척 시비조로 들렸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트로이는 좀 더 덧붙였다.

“스타일이 특이한 팀원은 팀워크로 맞춰나가면 돼. 제일 안 좋은 건 뭘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팀원이야. 그리고 네가 나한텐 그래. 팀 경험이 얼마나 되지?”

“다섯 팀 정도.”

“팀은 본부가 해체했나? 아니면 어쩌다 여러 팀을 거치게 되었지?”

“다들 죽거나 미쳤어요. 저는 아직 죽지 않았고요. 그뿐이죠.”

어째서인지 저는 더 미치지 않더라고요, 하고 다이스가 덧붙였다.

그 순간, 트로이는 갑자기 다이스란 인간을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경험을 했다. 그건 제법 진절머리나는 경험이었다. 우선 트로이는 다이스가 처음 본 순간부터 싫었고, 지금도 싫고,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트로이는 다이스라는 인간이 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는 세 건의 살인을 저지르고 수배됨으로써 돌아갈 곳이 사라졌다. 그리고 암흑가 의사로서 명성을 떨치다가 세계의 이면을 보고 이 조직까지 흘러왔다. 어쩌면 이게 그의 유일하게 작동하는 ‘소속’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마저, 팀은 계속 와해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온 다이스가 솔로 플레이어처럼 행동하고 붕 떠 있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울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심하고 싫은 팀원일지라도 부대껴야 할 팀원이었다. 그리고 팀이 된다는 것은, 모두의 노력이 필요했다.

“난 죽지 않아.”

트로이는 돌아갈 곳이 있다. 지금은 없지만, 조직에서 만들어주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니 쉽게 죽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솔트도 죽게 하지 않을 거고, 너도 마찬가지야.”

다이스는 트로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속내를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떤 속내도 내보이지 않을 만큼 다이스가 당황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러러면 우리가 팀이어야 해. 트로이, 솔트, 다이스를 한데 모은 게 아니라 하나의 팀이어야 한다고. 다이스, 너는 경력자지만 팀원으로서의 너는 완전히 초보야. 그걸 알아야 해. 그래야 다른 팀원이 널 도울 수 있어.”

이것을 거부한다면 어떡해야 할까? 솔직히, 그러면 답이 없다. 팀원으로서의 자격이 없고, 본부에 새 팀원을 요청하는 게 장기적으로도 낫다. 말했듯이, 팀이 된다는 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니까.

다이스가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약속할 수 있어요?”

“뭘?”

“죽지 않겠다고?”

이런 약속만큼 의미없는 개소리가 따로 없다. 누가 그걸 보장하겠는가? 다이스가 다섯 팀을 거친 건 이 조직 일이 만만찮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 팀이 그의 여섯 번째 팀이 되고 와해될 수도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누구도 ‘죽지 않겠다’는 약속만큼은 할 수 없는 게 인간이다.

하지만 트로이는 대답했다.

“그래. 약속하지. 셋다 죽게 하지 않겠다고.”

세상을 살다보면 개소리인 걸 알면서 해야 하는 말이 있는 법이다. 사실 세상 사는 일 전체가 그렇게 돌아간다. 무의미한 약속들이 모여 실체를 이루게 된다. 다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노력해볼게요. 당신 말대로 난 팀워크를 잘 모르니까. 하지만 무엇을 모르는지도 몰라서, 그 점은 조금 도움을 받을게요.”

“쉽지. 미리 말하지 않은 행동들, 다르게 행동하는 것들. 예를 들면 왜 야간투시경을 그때 벗었는지 같은 거?”

그 말에 다이스가 생각에 잠겼다. 그런 것도 미리 말해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게 뻔했다.

“저는 많은 것을 보았지만 그렇게 미치진 않았어요. 데이메어 정도는 맨눈으로 봐도 사실 문제가 없었죠.”

“그래. 그런 네가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그걸 팀이 알아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 당장은 쉬어. 넌 부상자니까.”

“하나도 안 아프게 약 잘 먹어서 지금은 괜찮…….”

“네 환자한테 그렇게 말해보지 그래?”

다이스는 그 말에는 별수없었는지 물러갔다. 이것으로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다이스가 제법 제대로 된 의사라는 점이 있을 것이다.

할 게 산더미같이 많았다. 하지만 가장 큰 건을 끝냈고, 조금 쉬었다가 저녁쯤에 모두를 소집해 데이메어의 본체를 어떻게 찾을지 의논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결심하고 기지개를 켜던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때문에 트로이는 심장마비가 올 뻔했다.

“감동적이군.”

휙 돌아보니, 캐비닛 무리 구석에 숨어 있던 솔트가 슬쩍 걸어나왔다. 젖은 머리에 수건을 얹은 채로.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