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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osts - (5)

카디그 앙헬라 영입 로그

115호 by 리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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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은 있는 힘껏 달려서 솔트가 있는 층까지 올라갔다. 솔트 방이 어디었더라? 찾아갈 일이 있어야 알지! 엔젤은 복도에서 솔트의 이름을 외치며 잠긴 호실들이 가득한 문들 사이를 내달렸다. 다행히도 솔트의 방은 이름칸에 표시가 되어 있었다. 엔젤은 솔트의 방문을 쾅쾅쾅 두드렸다.

“솔트? 솔트! 거기 있어요? 나와봐요! 지금 큰일났어요!!”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는데도 솔트는 나오지 않았다. 자나? 하지만 이렇게 시끄럽게 두드리는데 잘 수 있나? 혹시 솔트도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오만 가지 상상이 다 지나가는데 갑자기 기척도 없이 목소리가 들려서 엔젤은 화들짝 놀랐다.

“무슨 일이지?”

엔젤은 뒤돌아보았다. 솔트였다. 흉터투성이의 얼굴에 잠을 못 자서 약간 핏발이 선 눈. 뚱한 표정. 엔젤은 이것이 자신과 솔트가 개인적으로 나누는 첫 대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이스와 트로이와는 이런저런 잡담을 나눈 바 있었다. 하지만 솔트는 과묵했고 엔젤은 그 과묵함이 불편하진 않았어서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려고 말을 건 적은 없었다. 엔젤은 솔트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빙의체가 여기 있어요! 이 런던 지부 안에!”

그 뒤 솔트의 반응은 엔젤이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지금까지 빙의체 사건은 종결된 것으로 되어 있다. 조금 늦게 올 다이스를 제외한 전원이 트로이에게 사건종결에 대한 칭찬을 듣고 격려를 받은 다음 돌아가서 쉬어도 된다는 말을 듣지 않았는가.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이라면 ‘빙의체는 이미 잡았지 않았나?’ 라든가, 아니면 ‘뭐라고?’ 정도의 반응을 엔젤은 무의식적으로 예상했다. 그러니까 솔트가 질문을 할 것이라고, 그렇게 예상했었다.

하지만 솔트는 그 모든 것을 하는 대신에,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품 속에서 권총형 고스트탄발사기를 꺼내 장전하며 총기를 단단히 파지한 채로 물었다.

“위치는 확보했나? 트로이는 이 사실을 알고?”

꺼내서 장전해 손에 쥐기까지의 과정이 워낙 순식간이라 엔젤은 잠깐 얼어붙었다. 하지만 곧 냉정을 되찾고 말했다.

“트로이에게 무전을 쳤는데 받지 않아요. 그리고 ‘그것’은 트로이의 사무실 층에서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당했군.”

“아마도.”

“놈의 목적은?”

“절 노리는 것 같아요. 지금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요. 다이스의 몸을 빼앗았을 가능성이 높아요.”

엔젤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하지만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빙의체를 감지한 순간 엔젤은 최대한 빨리 상황 파악을 했다. 첫째. 트로이에게 무전을 했지만 받지 않음. 빙의체가 감지되기 시작한 방향도 그쪽. 이 상황을 종합하면 트로이는 당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지금 남아 있는 인원끼리 해야 한다. 둘째. 남은 인원이라고 말은 했지만 아직 다이스가 안 왔다. 너무 늦는 거 아닌가? 셋째. 없앤 줄 알았던 빙의체가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다면, 역시 누군가에게 빙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엔젤 다음으로 빙의하기 좋은 대상은 다이스였다. 720크로닉 이상의 광기 수치를 가진 인간. 넷째. 따라서 지금 당장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인원은 솔트뿐이며, 엔젤과 솔트 둘이서 이 빙의체를 해결해야 한다. 어쩌면 다이스의 껍질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는 빙의체를 가지고. 다섯째. 빙의체는 일부러 엔젤과 공명했다. 조용히 숨어 있었으면 정체를 숨길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엔젤의 위치를 파악하려는 게 틀림없었고 그렇다면 그놈의 목적은 엔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지식을 노리거나 엔젤의 몸에 다시 빙의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이 종합적인 판단을 마무리했기 때문에 엔젤은 솔트의 방문을 두드렸던 것이다.

역시 솔트는 엔젤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묻지 않았다. 솔트는 질문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이걸 다 설명해야 했으면 빙의체-다이스가 금방 그들을 따라잡을 것이다. 솔트는 거의 생각을 거치지 않은 듯이 앞으로의 작전을 줄줄 말하기 시작했다.

“안전지대로 가서 바리케이드를 친다. 보급품에 스나이퍼 라이플 형태의 고스트탄 발사기도 있었어. 바리케이드에 죽치고 있다가 널 찾으러 나타난 놈을 쏘겠다.”

기계적인 작전 브리핑 같은 간결한 말투였다. 슬슬 분노발작 억제약물의 약효가 떨어져 가는 엔젤로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안전지대는 어디죠?”

“없어. 만들어야지.”

솔트의 눈이 복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를 한 번 훑었다.

“널 내 방에 넣고 그 앞에 바리케이드를 칠 거다. 내 방이라면 방어해야 하는 방향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질문 있나?”

“없어요.”

엔젤은 연구원이었지 전술 훈련을 받은 요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솔트의 말에 무조건 동의했다. 어차피 솔트는 그리 어렵게 설명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쩐지 엔젤의 감에 따르면, 솔트는 왠지 엔젤 앞에서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왤까? 엔젤이 그렇게 무섭거나 경계할만하거나 위협적인 사람도 아닌데. 낯이라도 가리나.

그들은 작전을 실행하기에 앞서서 무기창고로 잠시 이동했다. 엔젤은 수많은 실총과 고스트탄 발사기를 보면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런 방향으로는 민간인인 입장에선, 이토록 많은 ‘살상무기’를, 폭력의 도구를 눈앞에 두는 건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솔트는 엔젤이 감상에 젖어 있을 틈을 주지 않았다. 솔트는 저격총 형태의 고스트탄 발사기를 찾아냈다. 스코프가 달린 스나이퍼 라이플처럼 생겼는데 일반적인 것들보다 구경이 커 보였다. 고스트탄은 대체로 큰 구경을 요구하는 듯했다.

솔트가 그 총을 챙기며 다시 그의 방 쪽으로 가볍게 뛰었다. 솔트가 뛰면서 물었다.

“다이스가 당했다면, 만약 고스트탄을 맞았을 때는 어떻게 되지? 죽나?”

솔트의 어조는 건조했다. 다이스가 죽는 것도 하나의 가능할 법한 가능성인 것처럼. 그러나 엔젤은 본능적으로 솔트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있다고 느꼈다. 동료에 대해 뭔가 있나? 아니면 그저 위급상황에서 침착하려는 시도일까. 엔젤은 같이 뛰며 헉헉거렸다.

“다이스라면…… 괜찮을…… 거예요. 무지하게…… 아프겠지만…….”

720크로닉을 갓 넘긴 수준이면 괜찮을 것이다. 적어도 엔젤만큼 광기 수치가 높지만 않으면 된다. 엔젤만큼 높았으면 저쪽 다이스도 묶어놓고 진통제를 마구 주사한 다음에 쏴야 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어쩐지 피곤한데 몸도 너무 휘청거리고……. 이렇게까지 체력이 약하지 않은데…….

다이스가 쇼크 방지용으로 적절히 섞어준 약물이 아직도 돌고 있으며, 지금 온몸이 욱신거리는 것도 진통제 효과가 아직 돌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에서 그쳤다는 걸 깨달았을 즈음에 엔젤은 쓰러졌다. 일어나려 했지만 너무 어지러웠다. 격렬한 운동을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큰 소리에 솔트는 뒤돌아보았고 쓰러진 엔젤을 발견했다. 솔트는 역시 오래 고민하지 않았고 엔젤을 들어올렸다. 소위 공주님 안기 자세로 이동의 효율은 떨어지지만 등에 저격소총 비슷한 걸 메고 있는 상태에선 할 수 있는 옵션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엔젤은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솔트의 손길이 무미건조하거나 우악스럽지 않고 몹시 조심스럽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손대도 되는 건가? 하며 쭈뼛거리는 사람처럼. 잘못 손댈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엔젤은 솔트가 여성 혹은 여성 요원들과 함께 지내거나 작전을 수행한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쨌든 조심스러운 건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솔트의 옷에 토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 아니, 그런데 솔트는 언제 무장을 다 갖춰입었지? 무기창고에 얼마 있지도 않았는데 언제? 풀 수 없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도는 동안 엔젤은 평소에 옷 아래에 가려져 있다가 언뜻언뜻 드러나는 솔트의 살갗도 모조리 흉터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연을 궁금해하고 묻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솔트는 방문의 도어락을 눌렀고 문을 한 번 걷어찼다. 쾅 소리가 나서 엔젤이 움찔하자 솔트는 뒤늦게 변명하듯이 가끔 문이 말썽이라고 중얼거렸다. 솔트가 말했다.

“아무데나 앉아있어. 위치 변동되면 무전 치고.”

그러고는 솔트는 엔젤을 방 안으로 밀어넣고―이 손길도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문을 닫았다. 띠리릭 소리가 나며 문이 다시 잠겼다.

밖에서는 요란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솔트가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소리겠지. 그렇게 엔젤은 이 팀에 온 이래 처음으로 남의 숙소를 구경하게 되었다.

황량한 방이었다. 적어도 첫인상은 그랬다. 공기에는 아주 옅게 홀아비 냄새 같은 것이 났다. 그 냄새조차 없었더라면 엔젤은 이 방이 버려진 방인 줄 알았을 것이다. 기본으로 제공해주는 가구에는 어떤 장식품도 기념품도 액자도 없었고, 잡동사니조차 없었고, 모든 게 먼지투성이였다. 유일하게 인간미가 있는 곳이 의자 하나와 침대였다. 의자에는 외투가 구겨진 채 대충 걸쳐져 있었고 이불은 흐트러져 있었다. 한 번도 열린 적 없었을 것 같은 두꺼운 검은색 커튼이 쳐져 있길래 엔젤은 커튼을 열었고 그러자 따스한 햇살이 방 안을 맴돌며 그나마 온기를 더했다. 원래 아무것도 손대지 않고 가만히 있으려고 했었지만, 이 방에서 느껴지는 음울하고 절망적인 공기를 엔젤은 참을 수가 없었다. 햇살이 들어오니 그나마 나았다. 솔트는 그리 바깥외출을 즐기지도 않는 것 같았고 여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건데 도대체 이런 음울한 방에서 어떻게 계속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걸까? 커튼을 열며 피어오른 먼지 때문에 엔젤은 쿨럭쿨럭 기침을 했다. 엔젤은 창문을 열려다가 솔트에게 무전이 오는 바람에 그 결심을 잊어버렸다.

“현재 위치는?”

엔젤은 눈을 감고 빙의체와 공명했다. 이러면 엔젤의 정확한 위치가 저쪽에서 특정되겠지만 어차피 패를 다 까고 하는 게임이었다. 엔젤이 눈을 뜨고 대답했다.

“지금 여기, 이 층에 왔어요. 점점 가까워져요.”

보이진 않지만 솔트가 자세를 고쳐잡았겠지. 가까워지는 걸 느낀 순간 엔젤은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이 망할 사태가 끝나면 다이스에게 심전도 검사를 해달라고 해야겠다. 이 팀이 아직 남아 있다면.

“어? 다시 멀어져요. 더 위층으로 올라가요.”

왜지? 저쪽은 엔젤을 잘 감지하지 못하나?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나? 빙의체는 계속 위로 올라갔다. 아마 꼭대기 층까지? 왜지? 왜지?

그렇게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동안, 엔젤은 갑자기 롤러코스터에서 거의 수직으로 낙하하는 듯한 공포감을 느꼈다. 엔젤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창 밖에 못 보던 로프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옥상에서부터 이 창문까지 빙의체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옥상에서부터 레펠 낙하를 해서 엔젤의 방 창문 앞에 바로 나타난 빙의체-다이스의 형체가 선명해졌다. 빙의체-다이스가 창문을 깨려고 한 번 벽을 크게 박차자, 엔젤은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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