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G(카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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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그 첫임무 로그

115호 by 리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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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게임이라면 망겜이다.

일리야 그레이야드, 그러나 반드시 ‘트로이’라고만 불려야 하는 한 특수요원은 이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세상 일에는 대개 포지션이 있기 마련이었다. 게임을 해 본다면, 어떤 임무를 수행할 때 탱, 딜, 힐, 서폿의 조합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실 세상의 임무를 위한 ‘포지션’은 그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세심할 것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세상 일은 게임보다도 더 한심하게 돌아가는 법이다. 트로이는 본인까지 합쳐서 세 명짜리 작은 부대의 부대장으로서 소집 명령을 내렸고, 두 명 밖에 되지 않는 부대원들은 제시간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한 명은 전날 복용한 수면제의 약효에 아직까지도 눌린 건지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정각이 1분 지나기 직전에 본부로 기어들어왔다. 그자는 뭘 하다 왔는지 얼버무리려 했지만, 트로이가 추궁하자 지역 포커 대회의 결승전을 치르다가 연락을 받고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고 실토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번에는 어떤 돈도 걸지 않았다고요.”

이번에는, 저 빌어먹을 ‘이번’에는. 리암 오코너, 혹은 ‘다이스’는 도박중독자였다. 자신의 재산만 걸고 본인만 파멸하면 트로이는 아무 상관없었지만, 다이스는 가끔 써서는 안 될 돈까지 손을 대곤 했다.

“포커 대회? 그럼 뭘 걸었는데?”

다이스는 도박중독자였지만, 좀 더 불가능에 도전하는 희열을 즐기는 자였다. 돈을 안 걸었을 리가 없었다. 이젠 거짓말까지 해? 트로이가 씹어뱉듯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에 분노가 도사렸다. 분명히 그 분노를 느꼈음에도 다이스는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야 챔피언으로서의 제 명예죠.”

“너한테 명예가 있다고?”

“방금 저버리고 왔죠. 왜냐하면 지부장님이 절 소집했기 때문에.”

결승전 도중에 뛰쳐나왔다고 했던가. 포커가 대회까지 있는지는 몰랐지만 트로이는 다이스가 자신을 ‘지부장님’이라고 부른 것에 주목했다. 그건 평소에 트로이를 격의 없이 불러대던 다이스가 자신을 CDG(The Office of Counter-Disaster Group, 대재해사무국)의 런던 지부장으로서 대한다는 의미였다. 트로이가 일단 긴급하게 이들을 소집한 이상, 다이스가 지부의 돈에 슬쩍 손을 댔는지 안 댔는지는 결국 나중 문제였다. 트로이는 그들에게 임무를 전달할 의무가 있었다.

그것도, 런던 지부가 결성된 뒤 이 인원 구성으로 하는 첫 임무를.

‘빠져나가는 솜씨 하나는 기가 막혀.’

다시 말하지만, 이게 게임이었다면 망겜이었다. 모름지기 팀 구성에는 밸런스가 맞아야 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이 팀은 세 명밖에 없었고, 오로지 전투원으로서 훈련받은 사람은 수면제 때문에 서서 졸고 있는 저 ‘솔트’밖에 없었다. 솔트가 쓸만한 인재인 것은 트로이의 선에서 파악을 했지만, 평소의 솔트는 기계로 비유하자면 ‘잔고장이 많이 난 오래된 폰’처럼 엉망진창이었다. 부대장인 트로이도 요원 훈련을 받긴 했지만 그의 주된 업무는 해킹이었다. 그리고 첫 임무를 하기도 전에 이 팀의 가장 골칫덩이가 된 다이스는 전 세계에서 찾아댈 정도로 유명한 의사였지만, 전투원으로서 얼마나 훈련받았는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의외로 다이스는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유일하게 사무국에서 실전 임무를 해본 경력자였지만, 평소 하는 꼴을 보면 못 미덥기 짝이 없었다.

‘FBI는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지 않았는데.’

하지만 트로이를 쫓아내고 수배까지 한 옛 조직을 그리워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주먹구구식 인원으로 임무를 꾸려나가야 할 사람은 바로 지부장이자 부대장인 트로이였다. 트로이는 다이스에게 형식적인 꾸짖음을 짧게 내뱉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첫 임무다.”

솔트는 긴장하진 않았으나 집중했고 다이스는 자세를 약간 뻣뻣하게 고쳐 잡았다. 그게 두 사람의 ‘임무 이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수없이 ‘첫 임무’를 해온 솔트와, 오랫동안 의사로 살다 이제 조금 임무들을 맞이해본 다이스의 차이 또한.

“영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사무국이 조사를 요청했다.”

그러자 소집 이후 처음으로 솔트가 입을 열었다.

“총기 난사 사건이, 초자연적 존재에 의해 벌어졌다는 소린가?”

사실 그건 트로이도 알 수 없었다.

총기 난사 사건이 왜 벌어지는지는 학자들이 열심히 떠들고 있지만, 트로이쯤의 상식을 갖춘 일반적인 미국인이라면 행복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대개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는 행복하고 평범한 사람은 대개 드문 편이다. 행복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사람이 총을 들고 있을 때 가끔 비극이 발생한다는 정도가 트로이의 평균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니까, 총기난사가 발생하기 위해 병든 사회는 필요하지만 초자연적인 현상까지는 필요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로이가 소속된 CDG는 ‘대-재해 사무국’이었고, 이 조직이 맞서는 ‘재해’는 지진이나 화산폭발 같은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현상, 괴물,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진실들 같은 것이었다. CDG가 관심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이 총기난사에 수상쩍은 것들이 있다는 증표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트로이는 솔트의 말에 일단 이렇게 대답했다.

“초자연적 현상인지 아닌지 확정짓고, 우리 소관이면 해결하는 게 이번 임무의 목표다.”

그렇지만 총기난사를 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것을 어떻게 셋이서 해결하나?

‘아, 몰라. 그땐 본부에 지원 요청이라도 해볼 순 있겠지.’

이런 정도의 생각을 하는데, 솔트와 다이스의 표정이 의외로 심각해졌다. 다이스가 말했다.

“역시,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고서야 이번 총기난사들은 설명이 안 돼요.”

“요즘 너무 자주 그랬지. 이제야 말이 되는군.”

“애초에 총기난사라는 거 10년에 한 번 일어날까말까한 거라고요.”

그 말을 들은 트로이는 잠깐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러다 곧 깨달았다. 트로이는 미국인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둘은 아니었다. 솔트는 말을 한 마디만 섞어봐도 잉글랜드인인 게 티가 났고, 독특한 무국적 억양을 쓰는 다이스는 몰래 뒷조사를 해본 결과에 따르면 아일랜드인이었다.

‘감각 자체가 다르군…….’

총기난사가 초자연현상이 아니고서야 일어날 리 없다는 믿음, 일상이 부서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나고 자란 곳에 따라 이렇게나 감각이 달라지나.

그러나 트로이는 그렇다 해서 그들의 삶을 우습게 보진 않았다. 어쨌든 대재해사무국까지 흘러들어온 사람이라면 일상 따위 전부 부서진 지 오래일 것이다. 방식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 조직에 협력하는 경찰 한 명이 이번 임무를 도와줄 거다. 우리들을 체포하진 않겠지만, 정보원을 곤란하게 하면 앞으로 더 힘들어지겠지. 대인 접촉이 많으니 이번 임무에는 전원 얼굴 변장을 하고 움직인다. 다이스, 변장할 준비를 해라.”

그러자 의사이자 도박꾼이자 3명을 죽인 살인자로서 오래 수배당했던 도망자 다이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맡겨주세요.”

솔트는 영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다. 사실 솔트는 트로이나 다이스처럼 수배된 것이 아니라, 그냥 신원만 말소된 상태라 이 셋 중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전에 특수부대 군인이었고, 실리콘 페이스 마스크를 쓰는 것보다는 발라클라바를 쓰고 헬멧과 이것저것 주렁주렁 매달아서 작전에 투입되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나는 뭘 준비하면 되지?”

그러나 솔트는 토를 달지 않았다. 작전에 필요한 명령이 떨어지면 솔트는 받아들였다. 솔트의 의문에는 트로이가 답했다.

“준비된 ‘솔트’.”

그 말이면 충분했다. 솔트의 눈빛은 여전히 탁했지만, 트로이의 말 한 마디로 수면제가 자꾸 내미는 졸음은 뿌리친 듯했다.

세 사람은 다이스의 ‘적절한 조치’로 완전히 인상이 달라진 채로 런던광역경찰청으로 향했다. 겨울 외투를 껴입은 세 명은 셋 다 평소보다 덩치가 커 보였다. 그것은 그들이 옷 안에 방탄복을 껴입었기 때문이었다. 솔트는 외투 안에 숨길 수 있는 무장은 최대한 많이 숨겼고, 트로이와 다이스도 최대한 빨리 꺼낼 수 있는 곳에 총을 숨겼다.

‘이러다 잡히면 우리가 총기난사범인 줄 알겠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못 보던 얼굴들인데. 누구죠? 신분증 보여주시죠.”

뒤로 돌아서보니 경찰 한 명이 그들을 노려보며 서 있었다. 타오르는 듯이 새겨진 주근깨가 인상적인 백인 남성으로, 왜소하지만 날쌔 보였고 긴장하고 있었다. 돌발 상황에 어떻게든 대비하려는 듯이. 트로이는 최대한 친절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안심시키려 했지만, 왜소한 경찰은 오히려 더 긴장하기만 했다.

‘내 계산으로는 아무도 없어야 했는데.’

그러나 트로이는 세상이 계산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립토 코퍼레이션의 제임스입니다. 신분증은 안주머니에 있는데, 꺼내도 됩니까?”

사실, 립토 코퍼레이션 신분증은 코트 바깥주머니에 있다.

그러면 안주머니에는 무엇이 있는가? 안주머니에는 함부로 내보여서는 안 될 CDG 신분증이 있었다.

그리고 신분증 대신 꺼낼 대인용 특수 총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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