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G(카디그)

Ghosts - (4)

카디그 앙헬라 영입 로그

115호 by 리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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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은 다이스가 잡았다. 처음에는 다음 예약까지 1년을 대기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다이스가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30분 뒤에는 내일 약속을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대체 무슨 짓을 했나 궁금해서 대화내역을 보려던 트로이는 실수로 다이스의 인스타 페이지로 들어가버렸고 가명을 쓴 다이스가 열심히 웨이트 트레이닝 인증샷을 업로드한 것을 보고 인상을 팍 구겼다. 다시 대화 내역으로 돌아가니 아마 젊은 여성으로 추정되는 예약 담당자가 끝에 가서는 완전히 사적인 약속을 잡을 기세로 다이스와 서로 친근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뭔가 못 볼 꼴을 본 느낌을 받은 트로이는 다시 다이스에게 폰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넷이서 우르르 무당집에 갔더니, 분명 인스타에서는 상냥한 인상이었던 무당이 극도로 분노한 상태로 외쳤다.

“나가! 당장 나가!! 어디서 험한 것이!!! 나가!!”

한국어였지만 무슨 뜻인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입자가 굵은 흰 가루를 맞으며 쫓겨난 그들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엔젤이 가루를 맛보더니 말했다.

“소금이네요. 여러 문화권에서 부정한 것을 쫓는다고 알려져 있죠.”

안에서도 소란이 벌어지는 게 들렸다. 젊은 여성과 잔뜩 화난 중년 여성의 대화인 것으로 보아 예약 담당자와 무당의 실랑이인 것 같았다. 이런 날벼락을 맞을지 상상도 못한 그들이 멍하니 그 소리를 듣는 동안, 다이스가 앞으로 나섰다.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그러더니 문을 따고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세 명은 다이스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문은 다시 닫혔고 다이스는 한참 동안이나 나오질 않았다. 그러는 동안 엔젤이 말했다.

“저랑 다이스 보고 나가라고 한 거면, ‘진짜’인 건 확실하네요.”

한 시간 뒤 다이스는 문을 열고 몸을 빼꼼 내밀었다.

“이제 들어오셔도 돼요.”

드물게도 솔트가 입을 먼저 열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대화 좀 했지요.”

다이스는 그러고 웃기만 했다. 트로이도 똑같이 물어보고 싶었으나,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은 없기에 다같이 무당집으로 들어갔다.

알고보니 다이스는 그냥 신분을 다 까고 도움을 요청하면서 설득한 거였다. 무당은 연신 엔젤을 경계하는 기색이었지만 어쨌든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는 이해한 상태였다. CDG가 민간인 정보원을 가끔 만들어놓는 일이 있긴 했지만, 그 시작이 한국계 샤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원래는 그냥 평상시대로 고스트탄 쏴서 처리하면 되려나 싶었지만, 그것은 다이스가 결사반대했다.

“이분들은 몸에 괴이를 강림시킨 게 밥줄이라고요. 고스트탄을 쏘면 괴이가 같이 타격받으면서 이분들 밥줄도 끊길걸요?”

무당은 그들의 공익적인 목적이 아니었더라면 절대로 악귀를 빙의시키는 굿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라고 툴툴거렸다. 다이스는 벌써 그들 나름의 세계관을 이해한 눈치로 잘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트로이는 왠지 저 멀리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솔트도 비슷한 눈치였다. 반면 엔젤은 그들의 대화를 아주 흥미롭게 경청하고 있었다.

굿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진통제를 맞은 엔젤은 굿판 한가운데에 앉았고 트로이가 엔젤의 손발을 묶고 눈을 가렸다. 이거 진짜 이렇게 하면 되는 게 맞다고? 하지만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 있고 다리가 여러 개에 눈도 엄청나게 많은 괴물도 있는 판에 이런 일이 영 말도 안 되기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당이 굿을 시작했다.

북소리가 울리고 무당이 춤을 추기 시작하는 순간 그 자리에 있는 전원이 온몸에 찌르르하게 오는 ‘어떤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광기 수치가 없는 트로이와 솔트마저도. 그들 중 가장 광기 수치가 높은 엔젤은 아예 몸을 퍼드덕 경련했다. 트로이는 어떤 한기를 느꼈다.

‘왜…… 왜 이렇게 춥지?’

그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 듯, 다이스는 아예 덜덜 떨고 있었다. 솔트도 혼란스러운 눈으로 이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북소리가 고조되고 한기는 점점 심해졌으며 천장에 매달린 것들이나 선반에 있는 것들이 갑자기 덜걱덜걱거리다가 떨어져 깨지기도 했다.

쿵! 지금까지 났던 북소리 중 가장 큰 소리가 나고 꽹가리가 멈춘 순간, 엔젤이 경기를 일으켰다. 팔을 탈골시켜서 결박을 풀려고 하는 것을 본 트로이가 솔트에게 외쳤다.

“지금!”

솔트는 고스트탄이 든 총으로 엔젤의 심장을 쐈다.

그때,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빙의체는 엔젤의 눈이 가려져 앞을 볼 수는 없었지만 자신을 강제로 빙의시킨 존재들에 대해 몹시 당황하고 경계하던 차였다. 그래서 빙의체는 본능적인 판단으로 “지금!”이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엔젤에게서 떨어져 나왔지만, 일부는 손상을 입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하필이면 광기 수치가 최소 단위, 즉 720크로닉을 넘는 인간이 한 명 더 있었다. 다이스였다. 빙의체는 다이스를 습격했고 방심하고 있던 다이스는 꼼짝없이 당했다. 빙의체는 이번에는 신중하게 굴기로 결심했고 다이스의 기억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무당도 이상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무당은 악귀가 고스트탄이라는 것에 타격을 입는 것도 분명히 보았고, 무엇보다도 엔젤의 기운 자체를 악귀와 구별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긴가민가한 상태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CDG의 나머지 인원들은 엔젤이 임무를 성공한 것 같다고 하자 기뻐했다. 엔젤은 그것이 자신에게로 강림하는 것을 분명히 느꼈고, 그것이 타격을 받은 것도 느꼈기 때문이다. 사건 종결. 게다가 엔젤은 다친 데도 없었고 쇼크가 오지도 않았다.

그들이 돌아가서 보고를 하기 전에, 다이스는 이들과 마무리지을 일이 있다고 하며 남았다. 비용 처리도 해야 하니 트로이는 다이스에게 그 일을 맡겼다. 못미덥지만 트로이도 나름대로 다이스를 파악했어서, 적어도 이런 순간에 횡령을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굿판에는 빙의된 다이스와 무당, 그리고 무당의 손녀이자 다이스와 친밀하게 인스타 디엠을 주고받았던 젊은 20대 여성인 예약 담당자가 남았다. 엔젤의 기운이 흐려지고 나자 무당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악귀가 다이스에게로 옮겨갔다고. 그래서 굿판을 정리하려고 하는 손녀를 무당은 멈춰세웠다.

“아직 그놈이 있다. 다시, 다시 준비해!”

그러자 빙의체-다이스가 피식 웃고는 순식간에 손녀를 확 잡아채 그에게로 끌어당겼고, 실탄이 든 총을 손녀에게 들이댔다. 무당이 굳었다. 빙의체-다이스는 주소 하나를 읊었다. 그것을 듣는 무당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자, 빙의체-다이스가 나직하게 협박했다.

“어디 한 번 그들에게 말해 봐, 샤먼. 그때는 당신 손녀가 차라리 지금 죽었더라면, 하고 후회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게 아주 탁했다. 빙의체-다이스가 말한 것은 손녀의 집 주소였다. 진짜 다이스와 함께 잡은 약속에서 손녀는 다이스를 집으로 초대했던 것이다. 그 기억을 빙의체가 뒤져서 알아내 버리고 말았다. 무당은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빙의체-다이스가 손녀의 관자놀이에 총을 더 바짝 들이대자 한 풀 꺾이고 말았다.

“……알겠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

“말 잘 듣고, 착한 인간이네. 계속 착하기를 바라.”

빙의체-다이스는 그렇게 무당 일가를 협박하고는 지부로 향했다.

빙의체-다이스가 지부로 향할 때쯤, 트로이는 모두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쉬라고 해둔 참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다이스가 도착하자, 트로이는 마찬가지의 격려를 했다. 빙의체-다이스가 말했다.

“저번에 말씀해주셨던 ‘영적 핵폭탄’ 말인데요.”

빨리 상부에 보고하려던 트로이는 그 말에 잠깐 멈칫했다. 트로이는 다이스가 평소처럼 생글생글한 미소를 짓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트로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랬지. 왜?”

“마음이 바뀌었어요. 저도 위치를 알 수 있을까요?”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지?”

“저도 광기 수치가 높고 영향을 받는 이상, 알아둘 필요는 있을 것 같아서요.”

트로이는 고민했다. 일리는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트로이는 거절했다.

“엔젤에게 물어보고 그래도 괜찮다 하면 그때 알려주지. 나 혼자서 설명할 자신도 없고.”

“아하, 엔젤이 더 알고 있군요?”

“그야 나보다 설명은 더 잘 할 테니……. 잠깐, 이거 전에도 말했던 내용인데, 왜 몰라?”

거기까지 말을 내뱉은 트로이는 무언가를 깨닫고 고스트탄이 든 총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총은 ‘임무를 끝냈다’라고 여긴 탓에 평소 두는 자리보다 꽤 멀리 있었고, 빙의체-다이스가 더 빨랐다. 빙의체-다이스는 품 속에서 칼을 꺼내 순식간에 트로이의 배에 꽂았다.

“끅……. 끄흡…….”

“다시 한 번 물을게. 어딨어?”

“이 씹새끼가…… 아아악!!”

칼이 더 안쪽으로 헤집고 들어가자 트로이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통증 때문에 비명은 오래 가지도 못했다. 빙의체-다이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어딨어?”

트로이가 간신히 입을 열어 속삭이자, 빙의체-다이스는 귀를 기울였다. 트로이가 속삭였다.

“좆까, 씨발놈아.”

“넌 알려줄 생각이 없구나?”

빙의체-다이스는 트로이의 컴퓨터로 접속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본인인증 수단에서도 막혔고 무엇보다 어떻게 조작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빙의체-다이스는 방음이 잘 되는 사무실 문을 잠가놓고 밖으로 나섰다. 칼에 찔린 트로이를 거기 내버려둔 채.

엔젤이라는 자에게 모든 정보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찾아내긴 어렵지 않았다. 빙의체-다이스는 엔젤을 느꼈다. 2,021크로닉 이상의 인간, 그리고 한때 그가 안착했었던 몸. 모를 리가 없었다. 엔젤을 찾아내자. 그리고 알아내자. ‘그것’에 대해서. 터뜨리면 런던 전체를 지옥도로 만들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빙의체-다이스는 마치 자신이 진짜 다이스라도 되는 것처럼 생글생글 웃었다.

“너도 날 알아차렸지? 기다리고 있어. 찾아갈게.”

그렇게 선언하고는, 빙의체-다이스는 엔젤이 머무는 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

엔젤은 온몸이 피로해서 기절할 것 같았다. 굿판을 겪고, 빙의체를 겪고, 진통제를 맞았다지만 고스트탄까지 맞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온몸이 욱씬거리고 피곤해 죽겠는데 정작 잠들 수는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이스에게 수면유도제라도 처방받을 걸 그랬다. 다이스는 언제쯤 올까? 보고하러는 올 테니, 언젠가는 올 텐데…….

그렇게 거의 잠들 뻔한 엔젤은, 침대에서 튕겨 나갈 듯이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이 느낌은, 여러 번 겪었으니 이젠 모를 수가 없었다.

‘그것’이다. ‘그것’이 지금, 이 CDG 런던지부 건물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엔젤의 존재를 인식한 채로.

그것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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