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G(카디그)

Ghosts - (3)

카디그 앙헬라 영입 로그

115호 by 리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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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지부에 돌아왔고, 빙의체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엔젤이 본인 단말기를 조작해 데이터베이스를 불러오더니 결론을 내렸다.

“이거, 빙의체 맞아요. 예상이 맞다면 이건 고스트66B라고 분류된 빙의체예요. 특징으로는 인간을 가능한 한 많이 죽이고 싶어하죠.”

트로이는 벌써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엔젤이 설명을 이었다.

“희귀하게 생성되는 빙의체지만 가끔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빙의되면 대참사가 벌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고스트탄 한 방에 무력화되지만 누군가에게 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잡을 수가 없대요.”

“찾는 방법은?”

엔젤은 단말기를 목이 빠져라 들여다보았다. 손으로 스크롤을 한참 내리고, 한참 올리고, 다시 한참 내리고, 그러더니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빙의됐을 때 잡으라는데요?”

아니 시팔, 그런 말은 저기서 말없이 서 있는 솔트한테 시켜도 나올 수 있는 대답이다. 그나마 얻은 정보라고는 평소 상태에서는 근처에 있는 대상에게만 들러붙을 수 있어서, 지금쯤 런던을 벗어나진 못했을 거라는 계산이다. 하지만 멍든 얼굴에 얼음찜질을 하고 있었던 다이스는 부정적으로 봤다.

“감기가 얼마나 빨리 퍼지는데요. 빙의자 중 한 명이라도 런던 바깥으로 나갔다면 지금쯤 우리 관할을 벗어났을 걸요?”

하지만 그걸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 그들이 런던 내에서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황 참 잘도 돌아갔다. 트로이도 다이스에게 동의했다. 트로이는 전염병 접촉자를 추려내 최초 감염자를 잡는 프로그램을 저번 임무 때문에 만든 적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확인해보니 전염성이 좋다면 ‘병’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퍼졌다.

어쨌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트로이는 다이스와 솔트를 짝지어서 경찰 쪽으로 보냈다.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신고라도 파악할 수 있으면 그들이 대응하기 쉬울지도 몰랐다. 물론 출발에는 시간이 걸렸다. 다이스가 분장으로 멍을 지우느라 이런저런 고생을 했기 때문이었다. 솔트 혼자 보냈다면 정말 걱정이 되었겠으나, 아니 그냥 안 보냈겠지만, 다이스와 같이 붙여놓으니 그 점은 조금 안심되었다. 말 잘하고 일처리도 깔끔한 놈이니까. 그냥, 시발, 그놈의 도박벽만 없었어도!

엔젤은 트로이와 함께 지부에 남았다. 다이스 말로는 뼈에 미세골절이 있다고 했고, 엔젤은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였다.

아직 엔젤과 할 일은 별로 없었다. 다이스와 솔트가 뭔갈 가져와야 뭐라도 시작될 판이었으니까. 그렇게 엔젤더러 쉬라고 돌려보낸 직후, 트로이에게 긴급 메시지가 왔다.

‘뭐야, 이건?’

보안 등급이 높은 메시지였다. 등급에 해당되는 인원에게만 정보를 오픈하라고 되어 있었다. 열어보기 전에 확인해보니 트로이와 엔젤은 모든 정보에, 다이스는 일부 개요만 공개, 솔트는 접근 권한이 없었다. 대체 무슨 정보인 거야? 괴이 쪽 정보인가? 그는 돌려보낸 엔젤을 다시 불렀다. 다친 다리를 끌고 숙소까지 왕복을 하다 온 엔젤은 약간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트로이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 무슨 일이길래 다시 불렀죠?”

트로이는 긴급 메시지 안내문을 보여주었다. 엔젤은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트로이 옆의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이 메시지의 전문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끼리 모인 지금, 트로이는 긴급 메시지를 열고 읽었다.

트로이와 엔젤의 미간이 동시에 찌푸려졌다. 트로이의 미간에 패인 주름이 조금 더 깊었다. 결국, 트로이는 엔젤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이게 뭔 소리냐?”

“이게 저도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해보고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잠시만요.”

엔젤은 부지런히 데이터베이스를 들여다보고, 오래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트로이는 점점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엔젤은 자신이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트로이에게 이게 무슨 의미인지 강연을 했고, 트로이는 이해했다. 동시에 왜 이 메시지를 엔젤과 같이 보라고 했는지도 이해했다. 혼자서라면 도저히 이해 못하거나 꼬박 하루가 걸렸을 테니까.

퇴근시간 직전 다이스와 솔트가 돌아와서 경찰과 이상행동 신고 내역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알렸다. 다이스는 무언가 많은 일을 겪은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었다. 트로이는 솔트를 돌려보낸 뒤 다이스를 세워놓고 어디서부터 뭘 말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1분을 썼다. 다이스는 별 말 없이 트로이를 기다렸다. 1분이 지나고 마침내 트로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 그 빙의체 반드시 잡아야 한다.”

“새로운 이유가 생겼나요?”

“그놈 손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게 런던에 있어.”

“……뭔가요?”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고, 폭탄 같은 거야.”

다이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폭탄?”

“그것도 괴이나 괴현상에 속해있긴 한데, CDG가 철저히 관리하고 있는 괴이야. 모종의 이유로 지금 런던에 있다더군. 비유하자면 영적 핵폭탄 같은 거지. 터지면 일대의 모든 괴이가 모습을 일반인에게 드러내면서 런던은 지옥도가 될 거다.”

다이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도 미간에 주름이 생겼고, 손으로 꾹꾹 눌러 펴면서 물었다.

“그게 어딨는데요? 어딜 지키면 되죠? 설마 그게 저번주 월요일부터 런던에 있었나요?”

순간 트로이는 다이스가 그의 메일함을 해킹한 줄 알았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지만. 트로이는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다이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날부터 이상하게 울렁울렁거렸어요. 처음엔 컨디션 난조인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광기의 공명 같은 감각인 거예요. 깨달은 계기는 엔젤과 공명하면서 아, 이건 절대로 컨디션 난조가 아니다, 라고 느껴서예요. 이전까진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 광기는 주변 괴이의 영향을 받으니까, 싶어서 따로 말하진 않았죠. 영적 핵폭탄이 런던에 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요.”

그러고는 다이스가 덧붙였다.

“그리고 여기 오기 전에 광기 수치를 새로 재봤는데 801크로닉으로 올랐어요. 제가 더 미친 게 아니라면, 증폭된거죠.”

‘영적 핵폭탄’은 저번주 월요일에 런던에 도착했다. 연구를 마치고 나면 다시 다른 곳으로 돌려보낼 생각이고 체류시기는 한 달 정도 된다고 했다. 한 달이면 너무 길었다. 다이스의 광기 수치가 올랐다면 엔젤의 광기 수치도 올랐을 가능성이 높고, 진짜 괴이인 빙의체도 영향을 받아 강력해졌거나 아니면 그 ‘영적 핵폭탄’의 존재를 눈치챘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빙의체는 인간에게 거대한 악의를 품고 있고. 그 폭탄을 터뜨리기 위해 움직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빨리 잡아야 했다.

다이스가 물었다.

“그 ‘폭탄’은 그럼 어디 있는 거죠?”

위치? 영적 핵폭탄은 물리적으로는 런던 어딘가에 있었고 실체적으로는 영적 세계 어딘가에 있었다. 비유하자면 데이터는 서버를 떠도는데 그 서버 실물이 있는 데이터센터는 물리적 실체로 따로 존재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이 정보는 다이스에게 공개해도 될지 말지 헷갈리는 구간에 있었다. 결국 한참을 숙고한 트로이가 말했다.

“나로서는 알려줘도 되는지 모르겠다. 엔젤에게 물어봐. 엔젤도 어렵다고 하면, 모르는 게 차라리 나을 거다.”

그러자 다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모른 채로 있죠. 모든 걸 알아서 좋을 건 없잖아요?”

그건 그랬다. 너무 많은 것을 알면 언젠가 큰일을 당하게 된다. 평범한 FBI 요원이었을 뿐인 트로이가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려서 누명을 쓰고 조직에서 쫓겨나 CDG까지 흘러들었듯이.

내일 다시 대책회의를 하기로 하고 트로이는 자러 갔다. 하지만 잠이 전혀 오지 않았다. 겨우 잠든 그는 런던 한복판에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악몽을 꿨다.

다음날 그들은 다시 한데 모였다. 솔트에게는 ‘최대한 빨리 잡지 않으면 큰일나는 이유가 있다’라고 설명한 뒤, 그들은 빙의체를 잡을 방법을 논의했다. 별별 개소리가 다 나왔지만 쓸만한 개소리가 나오지는 않았다. 쉬는시간이 끝났고 그들은 다시 개소리를 내뱉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저번 타임 내내 유달리 조용했던 엔젤이 손을 들고 말했다.

“빙의체라는 거, 결국 민속적 관점에서 보면 귀신이나 유령이거든요?”

맞는 말이다. 그들도 빙의체라고 다 부르기 귀찮을 때는 고스트라고 부르기 일쑤였다. 엔젤이 말했다.

“그렇다면 강신-트랜스 계열의 샤먼에게 부탁하면 그 빙의체를 제 몸에 씌울 수도 있는 거 아녜요?”

좌중에 침묵이 흘렀다. 개소리 중 가장 그럴듯한 개소리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개소리 중 가장 개소리여서 그랬는지는 구분하기 힘들었다. 트로이가 말문이 막힌 사이 다이스가 가장 먼저 반대 의견을 냈다.

“확실히 엔젤의 방법은 우리가 찾아다닐 필요 없고 빠르다는 이점이 있긴 해요. 하지만 2,000크로닉 이상의 광기 수치를 가지고 고스트탄을 맞으면 쇼크로 죽을 수도 있어요.”

“진통제 처방해주면 되죠.”

“그정도 쇼크를 방지하려면 오피오이드밖에 답이 없는데 중독되면 어쩌려고요?”

“일회성 처방이잖아요.”

트로이가 끼어들었다.

“애초에 엔젤, 네 몸에 빙의체가 와준다는 보장이 있어?”

“있죠. 런던에서 저보다 광기 수치 높은 인간 없을걸요? 빙의한다면 제 몸에 빙의하겠죠. 다이스도 광기 수치가 있어서 가능은 하겠지만 제가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을 걸요? 실패하더라도 우린 그냥 샤먼의 의식을 구경해보는 셈이잖아요. 그게 얼마나 귀한 경험인데.”

왈가왈부를 가만히 구경하던 솔트가 툭 내뱉었다.

“런던에서 샤먼은 어디서 구할 건데?”

그러자 엔젤도 아차, 하는 표정이 되었다.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엔젤이 마약류 진통제를 맞고 임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그런 종류의 샤먼을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그것도 영국의 최첨단 수도 런던의 한복판에서. 아마 그런 샤먼을 구하기 힘들다는 건 엔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침묵의 시간 동안 폰을 들여다보며 딴짓을 하던 다이스가 말했다.

“리사 초이, 천녀보살. 한국 무당. 나이 60대로 추정, 강신-트랜스 계열의 샤먼. 런던 거주중. 찾는게 이런 종류의 사람이 맞나요?”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조용해졌다. 엔젤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한국 무당이면 저희가 찾는 종류의 샤먼이 맞긴 하지요……? 물론 그 사람이 ‘진짜’인지는 알아봐야겠지만요. 하지만 괜찮은 아이디어군요. 신도 귀신도 전부 우리 이면의 현상이에요. 샤먼들은 인간의 힘으로 거기 닿은 사람들이지요.”

다이스가 말했다.

“엔젤, 당신만 있으면 알아볼 수 있을 걸요? 당신 아마 2,021크로닉보다 높은 상태일 거예요. 상대방이 몸에 ‘신’을 모시고 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당신과 공명하겠죠.”

“이거 정말 괜찮네요! 이렇게 하죠, 어때요?”

엔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트로이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들은 뭐라도 하긴 해야했다. 그게 심지어 샤먼을 찾아가는 것일지라도.

나중에 트로이는 다이스에게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찾아낸 거냐?”

같은 걸 트로이가 찾아내려면 시간이 좀 걸렸을 것 같다. 일단 트로이는 샤먼이니 뭐니 하는 지식들을 전혀 믿지 않았으므로 키워드를 찾는 데에도 시간이 한참 걸렸겠지. 하지만 그걸 빼고서라도 다이스가 일반적인 검색만으로 그렇게 빨리 찾아낸 게 신기했다. 그러자 다이스는 대수롭지않게 말했다.

“인스타그램에 있던데요?”

다이스가 ‘천녀보살’의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보여주었다. 60대처럼 보이긴 했지만 딱 봐도 감각이 젊었고 젊은이들과도 잘 소통하는 타입 같았다. 무당으로서의 인기도 상당한 듯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을 하는 60대의 샤먼을 믿어도 되는 걸까? 트로이는 혼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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