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 바깥쪽의

06

생존자

절간 스님 by 넵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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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갈색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지 못할 정도의 단발은 아래 머리를 남겨두고 귀 윗머리와 위쪽 머리 약간을 묶어서 단정해 보였다. 선이 가는 탓인지 아니며 자신이 어릴 적, 집을 나가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를 닮은 탓인지 종종 성별에 대한 오해를 받는 소년은 시가지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언제나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안아 올리던 아버지가 이제는 그저 게으르고 유치한 사람으로 느껴지는 17살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줄 알았다.

정말 그렇게 평범하게 남은 세월을 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대학에 가고 영화처럼 극적이진 않지만, 적당히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자신도 이제 아버지가 되어 자식을 키우고…. 그래, 그저 남들과 다름없이 그림으로 그린 듯한 평범한 삶을.

 

그날 자신이 문틈으로 본 사람은 누구였을까?

어깨를 넘지 못하던 머리카락은 병원에 있는 동안 자라버려 이제 말총처럼 하나로 묶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즈라일 노네 스프라우트’는 3년 전 괴한의 습격을 받아 복부가 찢어지고 내장 일부를 잃었다. 다행스럽게도, 혹은 불행히도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자기 집에서 배가 찢겨 죽어가던 17살 소년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긴 사람은 짐승의 뒤를 밟는 사냥꾼들이었다. 병원에서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한 소년을 기다린 것은 아들의 배를 찢어발긴 아버지가 아니라 소년이 살면서 마주쳐본 적도 없는 어른들이었다. 소년은, 노네는 어른들이 죄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 아버지가 사람을 잡아먹는 짐승이라고 하지를 않는가?

평일 오전 지나가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없는 한가로운 거리에서 카페 오픈 준비가 한창일 시간인데도 주인장은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펼쳐보고 있었다. 특이할 것이라고는 그 신문이 통상적인 신문사에서 발간하는 신문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사냥꾼’들을 위한 정보지에 가까웠다.

“최근에 ‘뉴욕에서 활동하던 사냥꾼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는군.”

그 대목을 읽으며 짧게 혀를 차던 카페 주인은 심드렁한 투로 이야기하며 읽던 신문을 접어 테이블 위에 두었다.

“그 이야기 하시려고 부르셨어요?”

일손이 부족하니 와서 도우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하나로 묶어 올린 흑갈색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가게 일을 도와주러 온 아르바이트생은 아무래도 사장이 오늘 영업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앞치마를 벗고 있었다. 저도 저였지만 저만치나 심드렁한 아르바이트생의 어투에 사장은 짧게 혀를 찼다. 크게 소속감을 느끼고 있진 않다는 사실을 안다만 쫓고 있는 목표가 따로 있으니 저런 반응이겠지. 카페 사장은 종종 일손이 부족하다고 그를 불러드려 그 핑계로 일당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쥐여 주었다.

3년 전 실종 된 아버지는 이제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이었다. 그의 유산과 보험금을 상속받은 노네는 돈 걱정 할 필요 없이 평생을 먹고살 수 있었고 자신이 원한다면 다시 학교에 다닐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생물을 사냥하는 ‘사냥꾼’들을 따라나섰다. 사냥꾼들은 그들이 사냥하는 존재에 대해 누군가는 그것들을 신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악마라고도 했으며, 또 다른 자는 요괴라고도 했는데 노네가 따라나선 사냥꾼들은 그것들을 영물(靈物)이라고 불렀다.

“딸린 식구가 하나 더 생겼으니, 어른으로서 걱정이 되어 불러봤다.”

“저도 이제 성인이에요.”

갓 스물이 된 성인이었다. 장년의 사장은 젊은이의 오기나 다름없는 소리에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 사장이 보기에는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였으니. 그런 애송이가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를 덜컥 맡게 되었으니 어른으로서 걱정은 당연했다. 사장 입장에서는 어린애 둘이 같이 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 명이 어른스럽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의 눈에는 아직 보호자가 필요해 보였다. 그러나 부득불 그곳에서 계속 살려고 하는 눈앞의 소년을 억지로 제집에 들일 수는 없었고, 마찬가지로 이 소년과 함께 살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다른 아이를 말리기도 어려웠다.

사장은 지난 영물 사냥에서 구조한 ‘아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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