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birds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운 곳에서 들렸지만 창문을 열지 않았으므로 그것이 어느 정도 가까이에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늘을 동경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닿지 못할 것을 갈망하며 그것에 닿고자, 그것이 되고자 하는 인간들. 인간은 쓸데없는 것을 좋아한다.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하
하겐다즈는 아이스크림의 최소단위가 아니니까 어젯밤부터 하늘이 흐리더라니, 새벽에는 계속 비가 내렸다. 빗줄기는 아침까지도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퍼붓고 있었다. 장마가 시작됐다. 타쿠보쿠는 늘어지게 하품했다. 우중충한 창 밖 풍경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우중충한 기분이 들어,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감각이었다. 어느새 자료실
흔들리는 것에는 형태가 없다 일을 그만두고 여길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꽤 오래 전이었다. 방랑벽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원체 한 곳에 붙어있질 못하는 성정이기도 했고, 슬슬 새로울 것이 없어 일상의 모든 것이 질려버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질렸다고 생각하면 그 뒤로는 도무지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꽤 많은 것들을 그만두고
그러므로 그녀의 죽음은 그러므로 그녀의 죽음은 실로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정기 업무보고를 위해 정부기관에 다녀오겠다며 도서관을 나선 것이 아침, 그리고 돌아오던 도중에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에 치여 사망. 문학서의 침식을 막기 위한 특무사서 프로젝트는 그 당사자가 죽어버렸으므로 무기한 중단...말하자면, 사실상의 폐지. 이상한 것은 너
연초에 하게 된 일은 그 해 내내 하게 된다 욕조에 붙은 수도꼭지를 돌려도 물이 나오질 않았다. 사서는 혀를 찼다. 어쩐지 아침에 뭔가 빼먹은 것 같더라니 이런 실수를 했다니. 물을 안 틀어놨으니 당연히 수도관이 얼어버리지… 사서는 고양이의 조언을 듣지 않은 과거의 자신을 마구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깡촌도 아닌데 수도관이 얼어? 하고 넘어간
<Songbirds> 문호사서(女)/소설/A5 중철 목차후기 포함 28p 2019년 1월 디페스타에 발간한 문호사서(女) 책입니다. 2017~2018년에 개인 홈페이지에 썼던 문호사서 단편 3개와 2019년에 새로 쓴 2개를 묶은 웹 재록본입니다. 각 단편의 사서씨는 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네임리스 드림입니다. 일회용 캐릭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통증은 피보다 늦게 올라온다. 슈세이는 잠깐 멍하니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찔린 곳에 작은 핏방울이 맺힌 것을 눈으로 확인하자 그제야 따끔함이 밀려온다. 찔린 건 이쪽인데 소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서가 슈세이보다도 먼저 "으," 하고 작게 반응하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테이블 한쪽에 아예 가져다 둔 구급상자에서 반창고를 찾는 손이 분주하다.
"레퍼토리가 떨어졌어요." 속삭임처럼도 들리는 중얼거림에 하쿠슈는 고개를 들었다. 한 조각 잘라낸 카스테라의 밑부분에 붙어있던 종이를 벗겨내던 찰나였다. "시가 씨 쪽은 금방 정했는데, 이시카와 선생님 건 도저히 못 정하겠어요." "아아, 생일 선물 이야기구나."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고 종이를 마저 벗겨내면 별처럼 박혀있던 자라메 설탕들이 모습을
"좋아요." "네?" "떠나자구요." "어, 어디로요?" "어디든 상관없지 않겠어요?" 야마다는 그 대답을 듣고 뭔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실제로 도망갈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말을 되돌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미 전철에 탑승한 뒤였다. 열차에서 내려 가마쿠라鎌倉 역에 처음 발을 딛자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
3월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은 분명 두려움과 설렘이 함께하는 일입니다. 저는 3월부터 이곳, 제국도서관에서 연수생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근무 중인 특무사서가 곧 이직하기 때문입니다. 특무사서는 특수공무원이다 보니 정년퇴직이나 은퇴 등의 제도는 없지만, 집안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신다는 모양입니다. 연수 기간이 끝나면 그 자리는 제가
“새해 포부?” “네. 도서관 신문에 올린다는 모양이에요.” “우와, 모두에게 다 물어보고 다니는 거야, 그럼?” 큰일이겠네―. 라고 말꼬리를 늘이며, 나오키는 코타츠 테이블에 늘어지듯 엎드렸다. 사서는 나오키의 머리 위에 귤을 얹었다. 귤은 몇 번 기우뚱거리더니 곧 데구르르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버렸다. 사서실에 코타츠를 설치했더니 마성의 덫이 되
"기다리는 사람…. 온다." "네?" 시노부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내가 무언가 잘못 들었다는 듯이 다시 한번 되물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분명 얼빠진 목소리였겠지. 내 대답을 들은 시노부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 옆으로 기울였다. "……한 번 더 점쳐볼까요?" "예…. 부탁드릴게요." 잘 모르는 점술 도구가 선생님의 손안에서 부지런히
“사서 씨, 타쿠보쿠 씨랑은 잘 되고 있어?” “예?” 지옥의 월말 보고 시즌이 끝난 뒤 처음으로 맞이하는 휴식 시간이다. 긴 겨울도 끝나 슬슬 봄이 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시기였다. 열린 창문 틈새로는 아직 조금 찬 바람이 불어 들어왔지만, 따뜻한 오후의 햇살이 식당 전체를 감싸고 있어 그렇게까지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 평온한 점
이것은, 전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편지입니다. 동시에 나의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문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이 글을 읽게 될 일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마지막 단어를 완성하고 나서 이 글을 완전히 태워 없애버릴 생각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펜을 들어 종이 위에 이렇게 문자로 남겨보고자 하는 것은 내 마음속의 어떤 죄악감이 내게 그렇게 해서
오늘도 우리 사서 씨가 마구 울며 달려왔다. 요즘의 일상을 소설로 쓴다면 분명 첫 문장은 그런 것이 되겠지. 슈세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읽던 책 사이에 가름끈을 끼웠다. 부러 탁 소리가 나도록 책을 덮자, 벚꽃잎이 포르르 양장 표지 위로 내려앉는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곧 바람이 세차게 불어 꽃잎이 마구 날리며 연못 위로 쏟아졌다. 아, 절경이
나오키는 기분이 좋았다. 그야 공짜 밥 앞에서 기분이 나빠질 상황은 몇 없다. 요 며칠 도서관은 이런저런 일이 겹쳐 꽤 바빴는데, 그때 마침 조수였던 나오키가 일을 도와줬던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다며 사서가 밥을 사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뭐 먹고 싶어요? 라는 질문에 나오키는 이렇게 답했다. 돌지 않는 초밥! 물론 공짜 밥은 뭐든 좋지만 기왕 남
새해라는 거, 조금 허무한 면이 있지 않나. 명절이나 절기나 계절 이벤트 같은 것들이 본질적으로 그런 구석을 갖고 있지 싶지만 특히나 새해는 더. 다가올 새로운 해를 향한 기대감과 포부를 가지고 잠자리에 드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것도 해를 거듭해 어른이 되어갈수록 점점 허무감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카운트다운, 00:00,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