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편 (2018~2023)

거기 자네, 새해 포부는 정했는가?

나오키X특무사서 植司書 (22.01.14)

“새해 포부?”

“네. 도서관 신문에 올린다는 모양이에요.”

“우와, 모두에게 다 물어보고 다니는 거야, 그럼?”

큰일이겠네―. 라고 말꼬리를 늘이며, 나오키는 코타츠 테이블에 늘어지듯 엎드렸다. 사서는 나오키의 머리 위에 귤을 얹었다. 귤은 몇 번 기우뚱거리더니 곧 데구르르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버렸다.

사서실에 코타츠를 설치했더니 마성의 덫이 되어버렸다. 오고 가는 사람들마다 절대 지나치지 못하고 꼭 한 번씩 발을 넣어버리곤 했다. 유혹을 이겨낸 사람은 요시카와나 하쿠쵸 정도일까. 그마저도 사실 하쿠쵸는 딱 한 번 코타츠에 발을 들인 적이 있었는데, 그건 그와 사서만의 비밀이므로 여기서는 넘어가는 걸로 하자. 아무튼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꼭 예전에 유행했던 고양이 수집 게임 같아서, 사서는 나름대로 즐겁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 있었잖아, 장난감을 놔두면 고양이들이 찾아와서 가지고 노는 게임. 

그래도 코타츠에 들어간 사람들은 예외 없이 자기 발로 나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일하기 싫다고 버티고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붙잡혀서 끌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자기 발로 코타츠를 나가는 것과 타인에 의해 연행당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가 하면 당연히 전자였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곤 했다. 나오키 산쥬고는 후자의 베테랑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기 발로 코타츠를 나가본 적이 없었다. 말하자면 단골이다.

오늘은 언제쯤 연행되어 나가려나. 아직 교대 시간까지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니, 앞으로 조금은 잡담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오키의 머리에서 굴러떨어진 귤의 껍질을 벗기며, 사서는 느긋하게 잡담의 씨앗을 뿌렸다.

“선생님, 새해 포부 있어요?”

“무슨 포부를 가지고 사냐, 사람이. 포부 같은 거 없어도 언제나 미래를 향한 희망과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게…“

“없군요.”

“응.”

그럴 줄 알았어, 하며 사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지도 않았다는 듯한 반응에 나오키는 괜히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그럼 당신은 있어?”

“신년 포부?”

“엉.”

그 와중에 사서가 귤을 다 까자 뻔뻔하게 입을 벌린다. 사서는 눈을 감고 입을 벌린 나오키를 한참 쳐다보다가 귤을 그냥 자기 입으로 넣었다.

“치사하다 진짜…. 어떻게 하나도 안 줘?”

“귤이 작았거든요. 그리고 직접 까 드세요.”

“코타츠가 너무 따뜻해서 손 빼기도 싫다고. 이 건물 외풍 좀 어떻게 안 돼?”

하긴 도서관 건물은 제법 낡은 축에 속했고, 외풍이 심하긴 했다. 그나마 신축인 직원 기숙사는 좀 덜했지만 본관은 난방기를 가동하는 곳을 제외하면 참 정직하게도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그러나 그런 건축적인 문제를 일개 특무사서가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사서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제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네요…. 관장님 정도는 돼야 좀 말해볼 만 하지 않을까요?”

“말단은 서럽구만.”

“서럽죠…. 월급도 조그맣고.”

갑자기 대화 주제가 한없이 울적해진다. 아아, 서러운 인생. 사서도 나오키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원래 벌어도 벌어도 모자란 돈에 관한 화제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 튀어나와도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법이다. 이것은 사서를 위해서다. 나오키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우울한 이야기는 관두고, 새해 포부로 돌아가 보자고. 왜, 새해니까 좀 희망찬 걸로 하나쯤 정해도 좋지 않아?”

“음, 그것도 그렇네요. 뭔가 이룰 수 있는 수준의 포부가 좋겠죠?”

“적당히 멋진 걸로 하나 정해 봐.”

그래, 언제까지고 우중충한 연말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다. 때는 1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에 딱 좋은 시기. 어떤 터무니없는 포부를 말해도 전부 응원받을 수 있는 시기다. 나오키는 사서가 무슨 말을 해도 일단 응원해줄 생각이었다. 사서는 한참 고민한 끝에 입을 열었다.

“비싼 장어덮밥을 먹으러 갈래요….”

“…그거, 포부야?”

“응.”

너무나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았다. 사서 정도의 인덕이면 이 포부를 듣고 누군가가 비싼 장어덮밥을 사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오키는 사서에게 그걸 굳이 말하지는 않기로 했다.

“비싼 장어덮밥을 먹으면, 그 다음에는?”

“포부에 다음도 필요해요?”

“아니, 장어덮밥은 너무 일회성이잖아. 뭣하면 지금 당장도 갈 수 있고. 출혈은 좀 크겠지만 말이다.”

“그럼 다음에는 비싼 고기를 먹으러 가나…?”

틀렸어. 전부 ‘비싼’에 멈춰 있다. 아직 생각이 몇 분 전의 월급 이야기에 멈춰 있는 거잖아!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는 것으로 그 슬픔을 메꾸려고 하는 거 아냐!? 나오키의 마음에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 이걸 막지 않으면, 사서는 언젠가 수상한 5000만 원짜리 항아리를 3000만 원에 사고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며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말지도 모른다…. 그런 나오키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서는 열심히 귤껍질을 까고 있었다. 문득 생각난 듯이, 사서가 툭 질문을 던졌다.

“그런 선생님의 새해 포부는요?”

“앗, 어? 나?”

“네에.”

“으음―.”

사서도 나오키도 말꼬리를 늘인다. 남의 포부를 듣는 건 쉬운 일이지만, 아무래도 자기 자신의 포부를 정하는 건 어려운 모양이다. 꽤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인지, 나오키는 한참 눈을 감은 채 얼굴을 찌푸리고 뜸을 들였다. 그때 사서실 문이 벌컥 열렸다. 사서에게 잠시 실례한다는 눈인사를 건넨 요시카와가 나오키가 앉은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나오키! 교대 시간이 다 되어 데리러 왔지.”

“겍! 아직 5분이나 남았잖아!”

“원래 10분 전에는 가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거다. 자, 가자고.”

“아, 싫어! 추워! 사서―!”

사서에게 구조 요청을 보냈지만, 돌아오는 것은 잘 다녀오라는 인사뿐. 도주를 반쯤 포기하고, 나오키는 제 발로 걸어 요시카와를 따라나섰다. 오늘은 예상했던 것 보다도 빠르게 체포당했다.

“선생님.”

“엉?”

가슴께로 갑자기 날아온 무언가에, 나오키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낚아챘다. 제법 커다란 귤이었다. 사서가 씨익 웃었다.

“포부, 할 거 없으면 저랑 비싼 식당 도장 깨기 하는 걸로 해요.”

이건 또 의외의 멘트다. 하지만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지. 나오키는 씨익 웃었다.

“…뭐, 좋아! 기대하고 있겠어!”

“다녀오세요―.”

어쩐지 코타츠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전제다. 사서실을 나서자마자 느껴지는 한기는 엄청났지만, 돌아갈 코타츠를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따끈따끈하다. 옷소매 속의 동그란 귤을 손안에서 데굴데굴 굴린다. 아아, 별 이유도 없이 따끈따끈한 기분일걸 보니 완전히 새해로구만. 그런 생각을 하며, 나오키는 근처의 맛있는 장어 덮밥집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