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후시 히로미츠 드림] 사후
35. 생명의 무게 (命の重さ)
몇 번을 원망하고, 몇 번을 더 용서하고, 또 몇 번을 더 원망하게 만든 네 심장의 무게는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누구도 소중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의연하게 대처하기는 어려우리라. 더욱이 그가 십수 년을 함께 웃고 떠들고, 함께할 내일을 당연하게 그려내던 사람이라면 가능성은 0에 수렴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이였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좋아하는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의 죽음이 가져온 상실의 무게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일 터였다. 사람에게 목숨은 하나뿐이고 더없이 소중해서 두 번의 기회 따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그런 선택을 했으리라.
자살, 그는 스스로 방아쇠를 당기어 제 목숨을 끊어냈다.
어딘가에서는 자살을 죄로 간주하기도 한다. 살인은 타인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 목숨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음에는 틀림이 없고, 이는 변명의 여지도 없이 살인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살인, 그는 자기 자신을 죽였으니 그에 합당한 죗값을 치러야만 한다. 그가 가벼이 여긴 그 심장의 무게를 말이다. 죽음의 재판대에 서서 저울질당할 그의 심장이 부디 깃털보다 가볍기를 간절히 비는 게 좋을 것이다.
공안 경찰로서 국가와 시민을 위해 그들의 안위에 큰 위협이 되는 범죄 조직에서 잠입 수사 임무를 수행하다가 제 한 몸을 바쳐 순직한 경찰. 그를 수식하는 말은 전혀 그를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 문장 어디에도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가 알던 모로후시 히로미츠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훌륭하지 않다거나, 선하지 않다거나, 하는 게 아니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가 놓고서 뻔뻔하게 그의 공적만을 치하하기에 바쁜 모습에 토가 나오는 것이다. 그가 선택한 길이었다 하더라도 죽음까지 온전한 그의 선택이었다고는 할 수 있겠는가. 방아쇠를 당긴 것은 그였지만 그렇게 만든 게 그들이다. 뻔뻔스럽게, 위하는 척하는 위선자들.
순직한 경찰을 기리기 위한 일련의 과정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고 그제야 그의 형이자, 나가노 현경의 경부인 모로후시 타카아키에게 인사를 건넬 수가 있었다. 옆에는 나가노 현경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성도 서 있었다. 타카아키와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던 기억은 있지만, 그에게서 들은 얘기라고 해봤자 시답잖은 것투성이라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위로를 전하는 것뿐. 오로지 그 말을 전하기 위해서 타카아키에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제대로 된 장례도 치러주지 못했던 동생을 이런 식으로 보내게 될지, 그는 알고 있었을까. 관할의 공명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니 짐작은 하고 있었을 테지.
“처음 뵙겠습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동생분 일은 유감입니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네요. 저도 히로미츠에게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굉장히 점잖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정작 가족을 잃은 것은 저 자신일 터인데도 이쪽을 배려해 주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죽은 자의 오랜 친구라는 이름으로 저를 다시 한번 타카아키에게 소개한 후루야 레이. 그는 겉으로 슬픔을 내보이지 않는 데 익숙했다. 얼핏 보기에도 그늘 따위 한 점도 없이 강건한 경찰의 모습만이 그곳에 있었다. 악수를 주고받는 데에도 각 잡힌 태도에서 정제된 절도가 묻어 나오는 듯했다. 그의 옆에서 고개를 반쯤 숙이고 속에 감춰두어야 할 감정을 삼키지도 못하고 내비치고 만 것은 나였다.
“후루야 레이 씨는 오랜만에 보는군요. 중학교 때 보고…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요.”
“히로…, 히로미츠는 제게 있어서 가장 믿음직한 친구이자, 누구보다 훌륭한 경찰관이었습니다.”
“제게도 소중한, 하나뿐인 동생이었죠.”
아무리 저울질을 해봐도 친구를 잃은 슬픔이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비할 수 있을까.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은 쉽사리 털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옆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는 모습에 오히려 이쪽의 기분을 신경 써 주기까지 하는 타카아키 앞에 있으려니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그런 타카아키를 보고 있으면 더 선명하게 그가 떠올랐다. 바로 제 눈앞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그러니 결국 눈을 돌려 시선을 피하게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의 죽음에는…”
“늘 친구 이야기를 할 때면 한껏 들뜬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도 전해졌죠. 그 모습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히로미츠를 생각해 주는 친구가 있어 주어서 고마웠습니다.”
후루야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타카아키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써 입을 열기로 한 그의 다짐이 무색하게 사죄의 말을 듣는 대신 감사의 말을 받아야만 했다. 그것이 후루야에게 있어 더 괴로운 일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옆에 서 있는 게 고작인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를 대신해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조차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고, 그가 괜찮은지 살펴볼 여유도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이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찰나의 시간이 영겁같이 흐르고, 그렇게나 맑았던 하늘은 금세 서늘한 바람과 함께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한 방울, 한 방울 머리 위로 떨어지던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지면서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더는 식을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구비되어 있던 우산을 내빈에게 발 바쁘게 건네주고,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고 있는 제게 후루야가 우산을 기울였다.
“다 젖겠다.”
머리 위로 우산이 씌워지는데도 가만히 올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여태까지 실감이 나지 않던 그의 죽음이 형태를 가지고 내 앞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차라리 누구처럼 애먼 다른 이를 원망할 수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해 봤자 시위를 떠난 화살은 다시 내게로 돌아와 꽂힌다.
“식은 중지야. 이대로는 더 이어서 할 수도 없겠지.”
“그렇겠네, 이 정도 비면 강행하기도 어렵겠다.”
“그러니까 들어가자. 여기에 더 있어봤자 감기만 걸릴 테니까.”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 보니 장례식에 참석한 내빈들은 이미 돌아간 뒤였고, 주위를 둘러보면 남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장례식의 마지막까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쉼 없이 움직이느라 바쁜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를 보내는 것마저 덧없게 느껴졌다. 슬픔은 덜어내어도 다시금 차오르는데, 현실은 어떻게 한들 그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어차피 제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하나,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니.
“죽으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죽으면, 말이지… 역시 지옥이나 천국 둘 중 하나가 기다리겠지.”
“죽으면 끝이야. 아무것도 없다고.”
세 사람이 모여서 늘 하던 시답잖은 이야기의 연장선이었다. 농담을 주고받거나 별거 아닌 얘기로 시간을 보내면서 청춘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다가 우연치 않게 걸린 한 줄이었다. 히로미츠도 후루야도 그때까지만 해도 여느 고등학생들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간에 아직 현실은 아직 달콤한 일상이었다.
만약에 죽는다면, 아직은 어른이 되는 것조차 너무 먼 이야기인 그들에게 죽음은 그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아득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가늠해 보아도 거리를 잴 수가 없었다. 오지 않을 미래라고만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가볍게 여기게 되는 것이리라. 죽음 다음이 있는지 없는지, 열띤 토론을 펼치는 한편 이런 이야기에는 별 관심 없어 보이는 후루야가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후루야는 사후세계 같은 거 안 믿는 타입?”
“몰라,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모로후시는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는 거잖아. 그러면 열심히 살아야겠네. 꼭 열심히 오래오래 살아서 최대한 늦게 죽는 거야, 알겠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나는 믿는다고 한 적 없는데, 오히려 후루야에 한 표를 주는 쪽이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니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다가 가야지.”
‘그랬으면 좋겠다. 계속 함께라면 좋을 텐데.’
그런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흩어지고 말았다. 우리 품에 돌아온 것은 그의 부고뿐. 그는 이제 남아있는 사람들의 추억 속에서만 살아있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마음이 무거운 탓은 그 때문이리라. 남겨진 우리의 삶을 짊어진 그가 죽음의 재판대 위에 오른다면, 우리는 그의 죽음을 안고 남은 삶을 살아내야겠지. 나 역시 네 죽음이라는 무게를 지고 살아가야 하겠지.
Special thanks to. 하윤잉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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