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편 (2018~2023)

3주년의 단상

介司書 나카자토+특무사서 논CP(20.06.20)

"자, 그럼 제국도서관 개관 3주년을 축하하며… 건배!"

"건배!!"

샴페인 글라스의 몸통이 서로 부딪히며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평소라면 조용했을 도서관의 메인 홀이 오늘은 시끌벅적하다.

개관 3주년 기념행사가 무사히 마무리되고, 도서관 관계자들만의 뒤풀이 겸 기념식이 시작된 것이다. 벌써부터 부어라 마셔라 하는 몇 사람들을 피해 나는 슬쩍 벽 쪽으로 물러섰다. 잘못 걸렸다가는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자리를 함께하고 다음날 지끈거리는 머리며 울렁거리는 속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 기억하지 못하는 흑역사가 생겼을 것을 두려워하게 될 테니 말이다.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평온한 소란을 지켜보기로 한다. 샴페인 글라스를 괜히 가볍게 한 바퀴 빙글 돌렸다. 3주년인가, 시간이란 정말 눈 깜짝할 새에 흐르는 것이로구나. 

"적극적으로 끼어들진 않는 건가?"

바로 옆에서 익숙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살짝 돌려 올려다보니, 나카자토 선생님이다. 그가 이 도서관에 온 지도 벌써 1년 하고도 몇 개월의 시간이 조금 더 지났으니, 그도 이 도서관의 절반 정도를 함께 한 셈이다.

"너야말로 이 파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당치도 않아요."

나는 웃으며 가볍게 맞받아쳤다.

"이 파티에 주인공이 어디 있겠어요, 한 명 한 명이 도서관의 이야기를 쌓아올린 주인공인데."

그리고 잠시 정적….

"…모범 답안 해 버렸네요."

왠지 머쓱해져 털어내듯 말하고 샴페인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사과 향의 탄산이 부드럽고 상큼하게 입안에서 튀어오른다. 내 대답에 선생님은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보며, 그와의 첫 만남을 회상한다. "나라를 위해 싸울 생각은 없어. 나의 이상을 위해서다." 그렇게 말했던 그에게, 나는 뭐라고 답했더라? 분명 이런 대답이었을 것이다. "우연이네요, 저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 뿐이에요," 하고. 그래서 어땠더라, 서로가 서로에게서 묘한 반골 기질을 느끼고 웃어버렸던가. 머릿속에서 짧은 회상이 끝나갈 즈음에 선생님이 물었다.

"3주년을 맞이한 감상을 들어 볼까?"

"취재 흉내인가요?"

답지 않은 질문에 괜히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선생님은 손에 들고 있던 글라스를 가볍게 두어 번 흔들더니 느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끔은 네 감상도 들어보고 싶으니 말이지."

"감상, 인가요."

감상은 거창한 어감의 단어가 아닌가. 마치 대단한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 조심스레 대답했다. 감상이라는 단어보다는 단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아주 짧은 감상을.

"긴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여행?"

"네, 여행이죠. 아주 멀고 길고, 험난한 길을 걷는 여행. 하지만 힘든 일만 있는 건 아니에요. 즐거운 일도 있어요. 그래서 이 여행은 사랑스러워요."

누군가가 남기고자 했던 이야기를 미래로 이어주기 위해 계속해서 싸우고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날들의 연속.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언제나 괴롭고 격렬하다. 그럼에도 이 여행이 어느 지점에 다다르게 된 것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과 함께 보낸 만큼의 시간을 계단처럼 쌓아올려 왔다는 것이겠지. 서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마음에 품고 그것을 믿고 나누고 지키고 때로는 지켜지며, 우리는 걸어온 것이겠지. 

"저는 그래서… 가끔 두려워요."

시선의 끝에는, 평화로운 일상의 도서관이 있다. 소란스러운 나날, 특이한 동료들. 쌓아올린 시간과 다정한 평화.

"이 여행이 언젠가는 끝날 것 같아서."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말이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은 파티장의 소란스러움이다.

"여행의 끝이란 말이지."

선생님은 잠시 턱을 매만지더니,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이윽고 그가 아주 천천히, 마치 시를 읊듯이 말했다.

"끝이 찾아온다면, 다른 여행을 떠나면 돼."

"……."

"다시 다음 여행을 떠나자. 여행에 끝은 없으니까."

나는 선생님과 시선을 맞췄다. 저 너머의 시끌벅적한 풍경이 마치 다른 세계처럼 한순간 아득히 멀어졌다 돌아온 것만 같았다. 여행이 끝나면, 다른 여행을 떠나면 된다. 여행에 끝은 없으니까.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그쪽을 돌아보았다. 기념 케이크를 자르고 사진 촬영을 할 거니까 이쪽으로 와 달란다. 네, 지금 가요!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나는 나카자토 선생님의 팔목을 잡아 이끌었다.

"자, 기념 촬영 하러 갈까요?"

"갑자기 적극성이 생겼는걸."

"기쁜 날에는, 축하해야죠. 오직 이 순간뿐이니까, 마음을 다해서!"

내 답을 들은 그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군. 기쁜 날이니, 축하해야지. 앞으로도 네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구나.

타이머가 세팅된 카메라 앞에 선다. 3, 2, 1… 찰칵! 요란한 셔터음. 동시에 누군가가 터뜨린 폭죽 소리가 팡 하고 홀에 울려퍼진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죽과 흩날리는 꽃가루들.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저녁의 풀 냄새. 3주년의 단상이 여름에 녹아들었다.

그래, 우리는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끝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걸어갈 것이다. 마음속에 소중하게 품고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해주기 위해, 그래서 그 이야기를 받은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시작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품에 안고 나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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