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3월의 사서씨
이 모든 사태는 그 한마디로부터 시작되었다. “도서관에 밭을 만들어볼까 하는데요.” 벚꽃 날리는 봄이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여름이다. 식당의 투명창 너머로 비쳐 들어오는 여름 햇살이 테이블 위에 뿌려졌다. 오늘의 후식은 물양갱. 나는 내 몫으로 나온 것의 포장을 벗기며 말했다. “밭?” “왜 있잖아요, 예전에 잠깐 텃밭 만들었다가 이제는 안 쓰는
“사서 씨, 타쿠보쿠 씨랑은 잘 되고 있어?” “예?” 지옥의 월말 보고 시즌이 끝난 뒤 처음으로 맞이하는 휴식 시간이다. 긴 겨울도 끝나 슬슬 봄이 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시기였다. 열린 창문 틈새로는 아직 조금 찬 바람이 불어 들어왔지만, 따뜻한 오후의 햇살이 식당 전체를 감싸고 있어 그렇게까지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런 평온한 점
한밤중인데 멀리서부터 벌써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아, 영감탱! 내가 들고 간다고!" "누가 영감탱이야?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바꿔 들다가 넘어지면 어쩔 건데? 문이나 열어." 닫힌 문 너머로도 들리는 것은 매일 들어 익숙하고 다정한 사람들의 뻔한 투닥거림이다. 대화 소리가 점점 다가오더니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사서는 미소 지었다. 먼저 문을 열
통증은 피보다 늦게 올라온다. 슈세이는 잠깐 멍하니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찔린 곳에 작은 핏방울이 맺힌 것을 눈으로 확인하자 그제야 따끔함이 밀려온다. 찔린 건 이쪽인데 소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서가 슈세이보다도 먼저 "으," 하고 작게 반응하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테이블 한쪽에 아예 가져다 둔 구급상자에서 반창고를 찾는 손이 분주하다.
"레퍼토리가 떨어졌어요." 속삭임처럼도 들리는 중얼거림에 하쿠슈는 고개를 들었다. 한 조각 잘라낸 카스테라의 밑부분에 붙어있던 종이를 벗겨내던 찰나였다. "시가 씨 쪽은 금방 정했는데, 이시카와 선생님 건 도저히 못 정하겠어요." "아아, 생일 선물 이야기구나."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고 종이를 마저 벗겨내면 별처럼 박혀있던 자라메 설탕들이 모습을
"좋아요." "네?" "떠나자구요." "어, 어디로요?" "어디든 상관없지 않겠어요?" 야마다는 그 대답을 듣고 뭔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실제로 도망갈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말을 되돌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미 전철에 탑승한 뒤였다. 열차에서 내려 가마쿠라鎌倉 역에 처음 발을 딛자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
3월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것은 분명 두려움과 설렘이 함께하는 일입니다. 저는 3월부터 이곳, 제국도서관에서 연수생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근무 중인 특무사서가 곧 이직하기 때문입니다. 특무사서는 특수공무원이다 보니 정년퇴직이나 은퇴 등의 제도는 없지만, 집안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신다는 모양입니다. 연수 기간이 끝나면 그 자리는 제가
“새해 포부?” “네. 도서관 신문에 올린다는 모양이에요.” “우와, 모두에게 다 물어보고 다니는 거야, 그럼?” 큰일이겠네―. 라고 말꼬리를 늘이며, 나오키는 코타츠 테이블에 늘어지듯 엎드렸다. 사서는 나오키의 머리 위에 귤을 얹었다. 귤은 몇 번 기우뚱거리더니 곧 데구르르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버렸다. 사서실에 코타츠를 설치했더니 마성의 덫이 되
"기다리는 사람…. 온다." "네?" 시노부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내가 무언가 잘못 들었다는 듯이 다시 한번 되물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분명 얼빠진 목소리였겠지. 내 대답을 들은 시노부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 옆으로 기울였다. "……한 번 더 점쳐볼까요?" "예…. 부탁드릴게요." 잘 모르는 점술 도구가 선생님의 손안에서 부지런히
"자, 그럼 제국도서관 개관 3주년을 축하하며… 건배!" "건배!!" 샴페인 글라스의 몸통이 서로 부딪히며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평소라면 조용했을 도서관의 메인 홀이 오늘은 시끌벅적하다. 개관 3주년 기념행사가 무사히 마무리되고, 도서관 관계자들만의 뒤풀이 겸 기념식이 시작된 것이다. 벌써부터 부어라 마셔라 하는 몇 사람들을 피해 나는 슬쩍 벽
차였다. 눈물도 안 나왔다. 여름 비가 지독하게 쏟아진다. 우산도 쓰지 않고 걸어가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슬쩍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얽혔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상태가 아니었다. 지독했다. 지독하다… 그럭저럭 나름대로 긴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었다. 한순간에 마음을 끊어내고 이제 끝났으니 안녕,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관계
나오키는 기분이 좋았다. 그야 공짜 밥 앞에서 기분이 나빠질 상황은 몇 없다. 요 며칠 도서관은 이런저런 일이 겹쳐 꽤 바빴는데, 그때 마침 조수였던 나오키가 일을 도와줬던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다며 사서가 밥을 사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뭐 먹고 싶어요? 라는 질문에 나오키는 이렇게 답했다. 돌지 않는 초밥! 물론 공짜 밥은 뭐든 좋지만 기왕 남
이것은, 전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편지입니다. 동시에 나의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문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이 글을 읽게 될 일은 아마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마지막 단어를 완성하고 나서 이 글을 완전히 태워 없애버릴 생각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펜을 들어 종이 위에 이렇게 문자로 남겨보고자 하는 것은 내 마음속의 어떤 죄악감이 내게 그렇게 해서
오늘도 우리 사서 씨가 마구 울며 달려왔다. 요즘의 일상을 소설로 쓴다면 분명 첫 문장은 그런 것이 되겠지. 슈세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읽던 책 사이에 가름끈을 끼웠다. 부러 탁 소리가 나도록 책을 덮자, 벚꽃잎이 포르르 양장 표지 위로 내려앉는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곧 바람이 세차게 불어 꽃잎이 마구 날리며 연못 위로 쏟아졌다. 아, 절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