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상냥함에 닿아
20230220🎉 啄司書 타쿠보쿠X특무사서
"레퍼토리가 떨어졌어요."
속삭임처럼도 들리는 중얼거림에 하쿠슈는 고개를 들었다. 한 조각 잘라낸 카스테라의 밑부분에 붙어있던 종이를 벗겨내던 찰나였다.
"시가 씨 쪽은 금방 정했는데, 이시카와 선생님 건 도저히 못 정하겠어요."
"아아, 생일 선물 이야기구나."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고 종이를 마저 벗겨내면 별처럼 박혀있던 자라메 설탕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먹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건 틀림없이 맛있는 카스테라다. 하쿠슈는 살짝 미소 지었다. 눈앞의 상대는 카스테라 쪽에 더 열중이지만 사서는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복권 같은 건 당첨되면 좋고 당첨 안 되면 그만이고, 술은 마시면 없어지니까 별 상관없으니 그 정도 선이 좋았는데 이미 다 줘 버려서…. 이제는 정말로 레퍼토리가 없어요."
"물건을 주면 되잖아."
사서 쪽에서 먼저 '맛있는 카스테라를 선물 받았다'며 다과를 권해오기에 틀림없이 뭔가 부탁할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자신감이 팍 떨어진 것 같은 모습을 보니 아마 몇 날 며칠을 밤새워 고민해도 적당한 답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겠지. 지금의 이 상담은 고민 끝에 붙잡은 구명줄인 셈이다. 그러니 이런 전형적인 대답을 듣고 싶어서 이 자리에 자신을 불러낸 것이 아닐 것을 알면서도, 하쿠슈는 괜히 뻔뻔하게 가장 쉬운 대답을 건넸다. 사서의 표정이 금방 흐려졌다.
"부담 갖게 만들까 봐…."
"부담이라."
"선물 받으면 뭐든 보답하려고 할 것 같아서요."
이것 봐, 바보.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가장 멀고 귀찮고 어려운 길로 돌아가고 있잖니. 하지만 하쿠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면에서, 사서의 판단은 옳다.
"그건… 제대로 봤네."
"네에…."
이시카와 타쿠보쿠는 물론 그 낭비벽으로 유명하지만 고마움도 모르는 무뢰한은 아니다.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지만 얼마나 시간이 걸리건 간에 어쨌든 갚겠다는 마음은 확실히 있고, 평소의 감사에 대한 보답이라는 명목으로 지나다니다가 눈에 든 것을 사 올 정도는 되는 남자다. 그런 그가 사서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받는다면, 분명 그는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서는 그걸 걱정하고 있는 거다. 상대방이 기뻐해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건넨 선물이 부담이 되는 것을 기뻐할 사람은 없으니까.
"지금까지는 뭘 줬는데?"
"안 긁은 복권이랑, 선물로 들어온 술이랑, 역 앞의 제과점에서 2+1로 팔았던 과자의 덤이랑…"
"됐어. 어떤 걸 줘 왔는지는 대충 알 것 같네."
하쿠슈는 손을 살짝 뻗어 사서의 말을 막았다. 보답할 필요 없을 정도의, 그게 아니라면 아주 소소한 보답의 선에서 그칠 수 있는 작은 선물들이었다. 타쿠보쿠가 도서관에 전생한 지도 벌써 7년이니, 올해의 생일은 도서관에서 맞는 7번째의 생일인 셈이었다. 7년이나 그런 걸 준비하고 있으니 슬슬 레퍼토리가 떨어질 만도 했다.
"이것도 7년째예요. 이제 정말로 레퍼토리가 없어요…. 어떡하죠……. "
사서가 우는 소리를 냈다. 하쿠슈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스테라를 포크로 잘라 입에 넣었다. 바보 같은 고민이다. 무언가 제대로 된 것을 선물하고 싶다면 하면 되지 않을까. 상대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뭐 물론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보답을 걱정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주는 것도 자유, 받은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도 자유. 서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너도 타쿠보쿠도 바보구나."
"적어도 저는 진지하다고요."
"좋은 대로 행동하면 될 텐데."
홍차를 한 모금 마시고.
좋아하잖아, 그 녀석을.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진 말에 사서의 어깨가 움찔, 하고 작게 튄다.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더니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지 마세요?"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니?"
"선생님은 눈치가 너무 좋아요!"
"네가 너무 알기 쉬운 거야."
어차피 이런 건 다 사랑에서 오는 상냥함을 주체하지 못해서 생기는 고민이다. 당사자는 진지하겠지만, 언제까지고 상냥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발전하지 못한다. 서로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속성이니까
카스테라를 자르는 포크가 접시에 살짝 부딪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아아, 하고 사서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타쿠보쿠는 사서실 바깥으로 난 창문 옆의 벽에 기대 서서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그게 한숨으로 변하기 전에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들으면 안 되는 거, 들어버렸잖냐…. 죄책감이 스멀스멀 기어 왔다.
평소부터 좀 더 신경 써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방향일 줄은. 아니 뭐 아주 어렴풋이 짐작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신경 써주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생일 선물에 대한 보답을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까 주로 빌린 돈을 갚기에 급급해서 보답할 수 없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사서의 선물은 보답할 필요 없을 정도의 가벼운, 말하자면 증정품 같은 것이라고 그 스스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보답하려고 해도, 6년분의 선물이다. 고민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사서는 아마 올해도 타쿠보쿠에게 무언가를 건넬 것이다. 지금까지와 똑같이 그가 절대로 부담 가질 필요 없는 아주 소소하고 작은 선물일 수도 있고, 하쿠슈의 말대로 제대로 된 물건일 수도 있겠지.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그렇게 되면 7년분이 된다. 7년이라고 하면,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해 졸업할 때까지의 기간도 넘는다. 단적으로 말해, 길다…….
지금까지 받은 선물은 소소한 것들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배려나 애정이 거대했다는 걸 알아버렸으니 못 본 척 할 수도 없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무난한 방법이겠지만, 그걸 선택했다간 타쿠보쿠는 평생 찝찝함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었다. 아아아, 왜 그런 걸 들어버려서는. 심상치 않다 싶을 때 그냥 발을 옮겼어야 했는데 잠깐이라도 궁금해한 게 잘못이었다.
요컨대, 그런 것이다. 이시카와 타쿠보쿠는 남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둔감하지는 않다. 그냥 굳이 그걸 들쑤시고 싶지도 않아서 못 본 척 덮어두고 있었다. 그런데 딱 보기 좋게, 그의 눈앞에 상대가 그 자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아주 무겁고 상냥한 현실이 데구르르 굴러온 거다. 그리고 타쿠보쿠는, 역시 한번 본 것을 모른 체 할 정도로 매정하거나 강하지는 않다. 그게 문제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더니 어느새 도서관 정문 앞까지 와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었다가 내쉰다. 결국 심호흡은 되지 못하고 한숨이 되어 사라졌다.
특별한 일 없는 주말 오후의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근처 공원에서 산책이라도 할 생각으로 무작정 밖으로 나왔던 건데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거리를 걷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가판대 위의 상품들을 눈으로 쫓는다. 흠집 난 과일 떨이 판매. 철 지난 발렌타인 초콜릿 할인 판매. 점포 정리 세일.
아아, 안 되겠다. 자꾸 그 녀석에게 받게 될지도 모를 그럴듯한 것들을 눈으로 쫓게 된다. 돌려줘야 하는 입장에서 뭘 또 받을 걸 생각하고 있는지. 그렇지만 갑자기 '지금까지의 보답이야!'라는 것도 이상하니까 받고 나서 돌려주는 게 가장 자연스럽지 않나? 지금 당장의 상황에서는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생각들이 서로 머릿속에서 싸우도록 내버려 두며 터벅터벅 걷는다.
"앗."
"죄송합니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떠밀려 순간적으로 몸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부딪친 쪽은 타쿠보쿠인데도 상대 쪽이 먼저 반사적으로 사과를 했다. 괜찮다고 대답하려던 찰나 눈이 마주치고 만다.
"선생님?"
어쩜 타이밍이 좋기도 하지. 당황한 것은 사서 쪽도 마찬가지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뭔가 물어보려고 했지만 전후좌우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어서 일단 자리를 옮겼다. 조금 더 걸어 약간 한적한 골목 쪽으로 이동하고 나니 그제야 좀 나았다. 사서 쪽을 힐끗 돌아보니 인파 속에서 잃어버리지 않게 타쿠보쿠의 자켓 끝자락을 조금 잡고 있었다. 굳이 지적하는 것도 묘해질 테니, 상대방이 놓을 때까지 모르는 척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산책 비슷한 거."
"비슷한 건 또 뭐예요."
대충 대답하자 사서는 더는 캐묻지 않았다. 너는? 하고 되묻자,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주섬주섬 열어 보여준다. 아카와 아오가 부탁한 책이랑 도서관 비품을 조금…. 의무실에서 모리 선생님을 도울 때 잠깐 봤던 두꺼운 의학 서적만큼의 두께 정도는 되는 책이었다. 대신 들어 주겠다는 의미로 말없이 손을 내밀자 사서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별말 없이 그냥 건네주는 걸 보면 무겁기는 했던 모양이다.
사서는 하나 더 사야 하는 것이 있다며 타쿠보쿠에게 먼저 도서관에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으로 뭘 사려고 하는 것인지는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생일 선물이겠거니 대강 감이 왔다. 눈치 없는 척, 할 일도 없고 심심하니 괜찮다고 대답하자 사서는 눈썹 끝을 내리며 곤란한 듯 미소 지었다. 그럼 뭐, 같이 가요. …어쩐지 좀 미안했다.
사야 하는 것이 있다고는 해도 구체적인 품목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사실상 상점가를 마구 헤집고 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목적 없이 상대방을 끌고 다닌다는 것이 미안했는지 사서는 중간중간 자꾸 "진짜 먼저 들어가셔도 되는데…." 라며 타쿠보쿠를 도서관에 돌려보내려고 했다. 뭐, 미안한 마음만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실은 당사자가 있는 곳에서 선물을 고르기 머쓱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타쿠보쿠도 올해 받을 선물이 무엇일지 무척 신경 쓰이고 있었으므로 도서관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려보내고 싶은 사람과 돌아가기 싫은 사람의 소소한 신경전이 이어졌지만, 결국 150엔짜리 멘치카츠를 사서의 돈으로 구매해 사이좋게 먹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갓 튀겨져 나와서 뜨겁고 바삭바삭했다. 한동안 먹느라 말이 없었다.
"선생님은…."
"응?"
"선물을 받는다면 뭐가 좋으세요?"
의외의 정공법이라 먹던 멘치카츠가 목에 걸릴 뻔했다. 몇 번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자 옆에서 더 당황해서는 살짝 등을 쓸어준다. 진정하면서 대답도 같이 생각했어야 하는데 머리가 빨리 돌아가질 않아서 애매한 대답을 하고 만다.
"…뭐든 기쁠걸?"
"본인 이야기인데 왜 의문형이에요?"
"정말로 기쁘니까?"
"멘치카츠 먹다가 고장 났어요?"
차마 '너 때문이거든?' 하고 말할 수는 없어서 가볍게 딱밤을 때렸다. 아팟, 하는 작은 항의가 돌아왔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얻어맞은 이마를 쓰다듬던 사서가 약간의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질문했다.
"뭔가 받고 싶은 거 없어요? 진짜로."
"말하면 줄 거냐?"
"…경우에 따라서는?"
어쩐지 표정이 좀 떫었다. 뭘 생각하고 있는 거야…. 어영부영 대화를 넘기려고 했지만 상대는 이대로 넘어가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눈이 마주쳤다. 피할 수는 없겠구나, 싶었다.
"정말로 아무거나 상관없어."
결국 상대에게 별 도움도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모범답안을 내놓고 만다.
사실은 아무거나 적당한 것을 하나 대면 해결되었을 문제다. 다른 누구도 아닌 타쿠보쿠가 갖고 싶은 것이 없을 리가 없다. 조금 비싼 술이라던가 전에 슬쩍 보고 좋다고 생각했던 도자기 화병이라던가, 혹은 조금 분발해야 갈 수 있는 좋은 식당에서의 저녁 식사라던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도 굳이 가장 멀리 돌아가는 답을 골라 버리는 것은, 아마도,
아마도….
아 그래, 슬슬 인정할 때가 됐다. 이 정도 헤맸으면 충분하다. 본인으로부터 직접 알게 된 사실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제 와서 알아버린 상냥함이 제법 마음에 들어버렸다. 시끌벅적한 인사들도 커다란 케이크도 친한 사람들과의 술자리도 전부 좋아하지만, 그런 '좋음'과는 조금 다르게, 사소하고 작은 선물을 받고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 좋았다. 이게 당첨되면 한 턱 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던 복권도, 여기는 빵보다 과자가 더 맛있는 것 같다며 잡담했던 역 앞 제과점의 2+1 쿠키도.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그 마음에 보답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니까 사실은 이제 적당한 선물과 적당한 보답으로 평범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래도 좀 더 기대보고 싶어지고 말아서. 무거운 다정함에서 나온 작은 상냥함에, 닿아서….
"모범답안은 반칙이에요."
더 어려워졌다며 사서가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타쿠보쿠는 못 들은 척하며 멘치카츠 종이 포장지를 작게 접었다. 지금은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다. 문득 사서로부터 술을 선물 받았던 어느 해의 생일을 떠올린다. 오늘은 이 병을 다 비울 때까지는 아무도 안 보낼 테니까, 너도 와! 라고 하니 곤란해하던 표정을 모른 척하고 붙잡아 기어이 한 잔 먹여 돌려보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생일에 관해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사서의 생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직업상 비밀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알케미스트는 비밀주의니까. 그거 말고는 또 뭐라고 했더라, 뭔가 갖고 싶은 건 없냐고 물어봤던 것 같은데.
"선생님께 받는 거라면 뭐든 좋아요."
반칙은 무슨. 너도 말했었잖아, 모범답안.
누가 먼저 돌아가자고 한 것도 아니었지만 둘은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선물을 사러 나왔다는 사실을 어차피 들켰다고 생각했는지, 돌아가는 내내 사서는 이건 어때요, 저건 어때요 하며 거리의 가판대에 나와 있는 상품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가리키며 타쿠보쿠에게 제안했다. 그럴 때마다 타쿠보쿠는 대답했다.
"진짜 아무거나 상관없다니까?"
물론 그 사이에, (너에게 받는 거라면) 이라는 말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그게 몇 번인가 반복되자 이제 사서도 막 나가기로 결심했는지 급기야는 강아지 간식을 가리키며 이건 어때요!? 라고 묻기 시작했다. "이 몸을 개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하며 복잡한 표정을 지으니 금방 "죄송합니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민스러운 건 알겠지만 말이지.
해가 많이 길어지긴 했는지 도서관 근처에 가서야 뉘엿뉘엿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타쿠보쿠는 걸음을 멈췄다. 조금 앞서가던 사서가 뒤를 돌아보았다.
"먼저 들어가라. 깜빡하고 안 산 게 있어서."
"네, 저도…."
"선물,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
"네!?"
사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부름 책은 제대로 가져갈 테니까 걱정 마!"
"아니, 그거 말고!"
타쿠보쿠는 작게 혀를 내밀어 메롱, 하고는 반대편 골목 안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항의는 도서관에 돌아가서 듣기로 하자. 사서에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정말로 받고 싶은 것은 형태가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주머니 속에 남은 잔돈을 확인한다. 아슬아슬하게 딱 맞을 것 같다.
도서관에 돌아갔을 때는 이미 해가 완전히 진 저녁이었다. 사서는 먼저 돌아왔는지 사서실 문이 닫혀 있었다. 복도에서 아카와 아오를 만났다. 솔직히 무거웠던 책을 턱, 하고 건네자 반사적으로 그걸 받아 든 아카의 작은 몸이 조금 휘청였다. 아오가 옆에서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조금 숙여 묵례했다. 이렇게 무거운 걸 남 시키지 말라고.
"자, 심부름."
"늦어! 그보다 중간에 만났으면 같이 오지, 왜 따로 온 거야?"
"뭐, 사정이 좀 있어서."
이 녀석들에게까지 구구절절 이야기할 의리는 없으니까. 타쿠보쿠는 대강 손을 흔들고 방으로 돌아갔다. 자정까지는 할 일이 없다. 식당은 출입 금지다. 7년쯤 되면 뭔가를 준비하고 있겠거니 대강 짐작도 가지만 싫지 않은 데다가 깜짝 파티를 준비하는 녀석들의 흥을 깨고 싶지는 않으니 순순히 응해주기로 한다. 사 온 것은 가볍게 갈무리해서 책상에 올려두었다. 책이나 읽으며 빈둥거리고 있으니 금방 11시 55분이 되었다. 타카무라가 방문을 두드렸다. 복도 멀리서부터 벌써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온다! 하는 누군가의 말도 들렸다. 그게 벌써 정신없어 보여서 타쿠보쿠는 피식 웃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빵, 하고 폭죽이 터졌다. 어디에서 구해온 건지 오늘은 또 꽃 모양 종이까지 휘날린다. 자세히 보니 켄지가 뿌리고 있다. 귀엽긴 한데 그건 화동 아냐? 흰 크림에 꽃장식이 올라간 케이크 위에는 초가 일곱 개 켜져 있다. 초 누가 꽂았어? 몰라. 이렇게 꽂아 놓으니까 일곱 살 같다. 얼른 노래 좀 불러, 초 다 녹는다. 급한 상황과는 반대로 봇상이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멋대로 시작 타이밍도 안 맞게 생일 축하 노래가 시작됐다. 생일 축하합니다―에 맞춰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자른다. 타카무라가 접시를 가져왔다. 타쿠보쿠, 초코 플레이트는 특별히 줄게. 선심이라도 쓰는 듯이 웃으며 하쿠슈가 말한다. 저기, 오늘 생일자는 이 몸이니까 말이지. 생일이 같은 사람도 있다는 점도 있어 식당이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오늘은 끝까지 달리자! 라고 일단 선언하고 나니 완전히 연회처럼 되어버렸다.
술잔을 들어 가볍게 목을 축이고 케이크를 포크로 자른다. 올해도 맛있군. 그보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시선을 옮기다가 눈이 마주쳤다.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사서가 빠르게 눈을 피했다.
뭐, 그쪽에서 안 올 거면 이쪽에서 가면 되는 일이고.
"여어, 즐기고 있냐?"
"…보시다시피?"
"뭘, 술이야 그렇다 치고 케이크도 깨작거리기만 했구만."
"아하하…."
사서가 머쓱하게 웃었다. 타쿠보쿠는 그런 사서의 눈앞에 손을 내밀었다.
"선물은?"
"맡겨뒀어요?"
어이없다는 듯이 사서가 곧바로 맞받아쳤다.
"그래도 하루 종일 찾아다닌 거 아냐?"
"……."
술기운이 돌아 괜히 좀 뻔뻔해진다. 사서는 왠지 억울해 보이는 표정으로 이쪽을 한참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며 손 위에 무언가를 턱 얹어주었다.
"올해는 멘치카츠까지 같이 쳐 주세요."
작은 꽃 그림이 그려진 책갈피였다.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평범하지도 않은 소박한 무늬가 오히려 맛을 더해주고 있었다. 뭐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왠지 좀 닮았다고, 타쿠보쿠는 생각했다. 아무 대답도 없자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라도 한 건지 사서가 살짝 불안한 듯한 목소리로 선생님? 하고 타쿠보쿠를 불렀다. 고마워, 잘 쓸게. 대답을 듣자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배시시 웃으며 네, 고마워하세요. 라고 조금 우쭐댄다.
"이거."
"네?"
타쿠보쿠는 등 뒤에 숨기고 있었던 것을 내밀었다. 사서는 반사적으로 양손을 뻗어 받았다. 작은 안개꽃 꽃다발이었다.
"뭐예요?"
"…생일 선물의 답례?"
"누가 생일 선물의 답례를 당일에 줘요…?"
"그럼 뭐, 네 생일 선물인 거로 해 둬."
"제 생일 아세요?"
"…아니."
이 대화, 왠지 머쓱하다…. 말하던 도중에 좀 부끄러워지고 만다. 아니 뭐, 지금까지 신세 지기도 했고 매년 나만 선물 받는 것도 미안하니까. 늘 보답은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잘 안돼서 그냥 올해는 생각난 김에 하려고, 원코인으로 샀으니까 부담은 갖지 말고…. 아아 구구절절. 말할수록 멋이 없다. 사서는 매년 이런 걸 어떻게 아무 말도 없이 건네줬던 거야? 생일이라는 명분이 있었으니 괜찮았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듣고만 있던 사서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더니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웃지 마!"
"아하하, 그런 게 아니라…. 감사합니다. 기뻐요."
눈썹을 내리며 기쁘다는 듯 미소 짓는 모습이 뿌듯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지. 내년에도 줄게, 비싼 건 안 되겠지만. 하고 괜히 기세를 타서 말하자 사서가 대답했다. 기대할게요, 내년 것도.
어이, 타쿠보쿠―! 하며 저쪽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생일의 주역이 쏙 빠져나갔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선생님, 누가 불러요. 하고 사서가 말했다.
"가자."
"저도요?"
"혼자만 쏙 빠질 생각은 아니지?"
술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핑계로 덥석 손을 잡는다. 가자! 하고 멋대로 끌고 가는데 그래도 끌려와 주는 것을 보니 싫지는 않은 눈치다. 잡은 손에 조금 힘을 주었다. 사서의 손이 좀 더 따뜻했다.
들뜬 기분과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그 온도가 같아질 때까지, 내년도, 내후년도, 상냥함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타쿠보쿠는 어렴풋이 생각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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