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아는 척 빼고 주세요
호사이+산토카 논CP 현대AU 카페알바 이야기 / 일본 문알 웹온리 言葉紡ギテ縁ト成ス肆(言紡四)에 냈던 단편입니다. 비중 없는 모브캐릭터 있음.
오자키 호사이의 최근의 취미는 역 앞에 있는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의 음료 커스텀에 도전하는 것이다.
신메뉴가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이 온갖 호들갑을 떠는 인기 브랜드인지라 호사이와는 좀처럼 인연이 없을 것 같은 가게였다. 좀처럼이랄까, 어쩌면 평생. 하지만 맛있어 보이는 기간한정 음료라던가 평판이 좋은 커피에는 관심이 있었으므로 호사이는 마음속으로만 계속 그 가게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가게를 이용하기 시작한 건 모바일 오더라는 시스템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였다.
모든 주문 과정을 사람과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끝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시스템인지. 그런 게 있는 시점에서 어쩌면 다른 평범한 카페보다 나을지도 모른다고 호사이는 생각했다. 음료에 옵션은 뭘 넣고 뭘 빼고 저걸로 바꾸고, 이런 걸 하나하나 사람이랑 대화하면서 해야 하는 건 진짜 지긋지긋한걸. 뭣하면 계산 방법을 말하는 것도 지긋지긋해.
교류가 서투르다는 자각은 있다. 가능하다면 그냥 사람이랑 얽히고 싶지 않다. 요즘 말로 하면 아싸겠지만, 분명 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알 바냐. 타인이 자기 자신을 정의하도록 두지 말라고. 삶의 방식을 관철하라고. 나는 인간을 멀리하고 개를 가까이하며 살고 싶단 말이다. 개는 좋아. 귀엽고….
모바일오더 닉네임을 등록할 때도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강아지라고 입력하려고 했던 것을, 실수로 오타를 내서 강아디가 되어 버렸다. …고치고 싶어서 한참을 끙끙댔는데 수정 버튼이 대체 어디 있는 건지 모르겠어서 그대로 강아디로써 살게 되었다. 하지만 강아디면 뭐 어떤가. 강아디도 모바일오더로 이달의 한정 메뉴 군고구마 브륄레 프라푸치노 먹을 수 있으니까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며, 호사이는 픽업대 앞에서 모바일오더로 주문한 군고구마 브륄레 프라푸치노를 기다렸다.
가게 안은 오늘따라 혼잡스러웠다. 손님들이 떠드는 소리와 직원들이 음료를 제조하는 소리가 어지럽게 섞였다. 소음 속에서도 간간히 완성된 음료의 주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호사이는 자기 차례를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이윽고 픽업대에서 호사이를, 정확히는 모바일 오더 어플에 등록해 두었던 닉네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바일오더로 주문하신 강아디 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이놈의 닉네임은 몇 번을 불려도 적응되지 않는다. 호사이는 잠시 멈칫했다가 스프링처럼 자리에서 튀어 나갔다. 픽업대 앞에 호사이가 주문했던 군고구마 브륄레 프라푸치노가 올려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서글서글한 인상의 이케멘 남자 직원이 “강아디 님 맞으신가요?”라고 물어왔다. 호사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료를 향해 손을 뻗었다. 픽업대 옆에 있는 빨대를 챙기는데 어째 시선이 사라지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에 호사이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직원이 아직 호사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 문제라도 있나?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직원이 선수를 쳤다.
“요즘 자주 오시네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호사이의 속도 모르는 직원은 생글생글 웃고 있다. 식은땀이 흐른다. 당황한 머리보다 입이 먼저 멋대로 “앗, 네, 저….”같은 말을 내뱉는 동안 호사이는 생각했다.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아니, 이제 다시는 못 온다….
아는 척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그렇게 호사이는 취미를 하나 잃었다.
✽
“요즘 그 사람 안 오네.”
커피머신을 정리하던 사치오가 툭 말을 던졌다. 산토카는 마지막 남은 설거짓거리를 정리하다가 응? 하고 고개를 돌렸다.
“왜 있잖아, 전에 네가 닉네임 마음에 든다고 했던 사람.”
“아, 강아디 님?”
“응. 바쁘신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굳이 열심히 알아볼 생각까지는 아닌 눈치다. 바쁜 매장인 데다가 자주 오는 손님도 많으니 하나하나 신경 쓸 겨를은 딱히 없는 것이다. 산토카는 “글쎄….”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사실 요 며칠간 계속 신경 쓰이긴 했지만 스스로는 짚이는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에, 산토카 때문인 거 아니었어?”
“에!?”
매장 청소를 막 마치고 온 헤키고토의 말에 산토카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헤키고토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산토카가 그 사람한테 ‘요즘 자주 오시네요~’라고 해서 그런 거잖아.”
“잠깐, 그렇게 음흉하게 말하진 않았어!”
“우와, 말해버렸구나.”
“에!? 그거 그렇게 나쁜 일이야!?”
사치오가 내뱉은 ‘우와,’ 의 톤이 완전히 ‘저질러 버렸나~’같은 느낌이라 산토카는 좀 당황하고 말았다. 생각하는 게 얼굴에 다 드러났는지, 그 표정을 본 헤키고토가 크게 웃었다.
“금지 발언이라구, 그거!”
“기억해 주면 좋은 거 아냐?”
“뭐, 그게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으니까.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으면 좋았을지도?”
“조심스럽게 아는 척을 어떻게 하는데!?”
“산토카, 일단 아는 척에서 벗어나자.”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워졌다. 자주 가는 가게에서 나를 기억해 주면… 좋은 거 아닌가? 보통은 좋은 일이잖아? 다들 그렇게 해서 친해지는 거잖아? 산토카는 잔뜩 풀이 죽은 채로 소심하게 대꾸했다.
“그치만 나 컵에 강아지도 그려주고 영수증에 하트도 그려줬는데?”
“그 사람, 영수증 안 보던데?”
“에!? 그럼 컵은!?”
“별말 없는 거 보면 그냥 바이트 힘들게 일하네…. 돈 벌기 힘드네…. 라고 생각한 거 아니야?”
“에에~!?”
이럴 수가. 지금까지의 ‘친해지고 싶다’ 어필이 전부 헛수고였다니. 아니 뭐 물론, 컵에 그림을 그려주거나, 영수증에 하트를 그려주거나 하는 건 강아디 님 말고도 재미있는 닉네임을 쓰는 손님이 있으면 가끔 했지만 말이지.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산토카는 히잉…. 하고 우는소리를 했다. 커피머신 청소를 막 끝낸 사치오가 산토카를 보며 웃었다.
“강아디 님에게 그렇게까지 관심 있었어? 닉네임 말고 아무것도 모르지 않아?”
“응! 닉네임 말고는 아무것도 몰라. 그치만 뭔가…. 좋은 느낌이 들었어! 왠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는걸. 파장이 맞는 걸지도~!”
“그렇네, 인연이 있으면 어딘가에서 또 볼 수 있겠지.”
씩씩한 대답에 조금 힘이 났다. 응, 분명 강아디 님이랑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왜냐하면… 그런 느낌이 드는걸! 산토카는 마지막 컵에 남은 물기를 키친타올로 닦았다.
오늘의 가게 정리는 끝이다. 평소에는 늘 학교 수업이 끝나고 오후에 일하지만 오늘은 근무 시간을 바꿔 달라고 한 사람이 있어서 드물게 마감 정리를 맡았다. 청소 도구를 정리하고 온 헤키고토가 문득 생각난 듯 툭 말을 던졌다.
“그보다 그거 들었어? 계속 휴업 중이었던 카페 레스토랑, 영업 재개한다는 거.”
“헤에, 그 엄청 분위기 있는 건물 말야?”
그 건물이란, 산토카가 일하는 카페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낡은 건물이다. 붉은 벽돌 담장에 담쟁이덩굴이 흐드러지게 걸려 있는 그 건물은 고풍스러운 외관에 걸맞게 상당히 예전에 지어진 낡은 건축물이다. 단골 손님도 있어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장사가 되고 있었다는데, 오너 노부부의 부인 쪽이 허리를 삐끗해 장기 휴업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 카페의 아르바이트생들도 자주 들르는 가게라는 것 같지만 산토카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시기 즈음에 휴업했으므로 산토카는 방문한 적이 없었다. 사치오가 설명을 덧붙였다.
“완전히 회복되시려면 좀 더 걸릴 것 같아서, 일단 남편분께서 카페만이라도 먼저 영업하시려나봐. 언제까지고 쉴 수는 없으니까….”
“혼자서 바쁘시지 않을까?”
“글쎄, 아르바이트 모집하지 않을까.”
아르바이트라, 지금 여기서 일하는 게 아니었으면 도전해 봤을지도 모른다. 그치만 지금은 학교 생활에 서클 활동에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최고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일을 하나 더 늘리는 건 무리겠지.
허리 뒤로 묶어둔 앞치마 끈을 풀며 사치오가 말했다.
“괜찮으면, 다음에 다 같이 가자! 거기 맛있거든.”
“응! 나도 계속 궁금했어!”
산토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타임카드를 찍고 앞치마를 벗고 셋이서 가게 문을 닫고 나오자 드물게도 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응, 왠지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
근거는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아!
✽
…커피가 마시고 싶다.
아니, 스틱 커피 말고. 그건 뭔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만족할 수가 없잖아. 제대로 내려진 커피를 마시고 싶다. 핸드드립이라던가.
아아….
왜 이렇게 됐지.
호사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도 갈 곳이 없다. 동아리 활동? 할까 보냐, 그런 귀찮은 거. 그래서 이렇게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게 일과가 되었다. 환한 대낮이니까 수상한 사람으로 찍혀서 직무 질문이라던가 받을 일은 없지 않을까. 그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다. 단골 카페를 잃은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잃었달까, 호사이가 멋대로 안 가고 있는 것뿐이지만. 아니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지. 점원이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거, 부담스럽지 않아…?
태어나고 자란 곳은 커뮤니티가 좁아서 어느 집에서 새 그릇을 샀더라, 하면 하루 만에 그 소문이 온 동네에 도는 곳이었다. 뭐랄까, 호사이는 그런 게 좀 거북했다. 물론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온 지금도 나름의 고충이 있고 뭣하면 그 시절보다도 더 거북한 기분을 가끔 느끼기도 하지만 어쨌든 싫은 건 싫은 거다.
현대 사회의 도심에서 그나마 좋아했던 게 있다면 익명성이다.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서 오는 모종의 안도감이야말로 도시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뭐, 그냥 이런 성격이라 모르는 사람이랑 커뮤니케이션한다던가 친해지는 게 무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제 그 카페에는 다시는 못 간다. 그 생글생글 이케멘 점원은 이미 이쪽의 얼굴이랑 닉네임을 기억해 버렸고, 다음에 가면 또 아는 척을 할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거북하다…. 제발 아는 척하지 말라고. 이쪽은 아싸라고. 또 오라고 배려해 준 거겠지만 오히려 못 간다고. 아아, 1년쯤 후에 가면 까먹으려나.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억력이 좋다던데, 만약 1년 후에 가서도 아는 척을 당한다면 대체 몇 년 후에 가야 할까. 30년 후? 폐업하는 거 아니냐.
그보다 지금은 커피를 마시러 가고 싶어도 못 간다. 단순히 아는 척 당하기 싫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돈이… 없다.
그럴 기미는 보였지만 정말로 이렇게까지 한 푼도 안 남을 줄은 몰랐다. 평소에도 절약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을까. 아니, 아니겠지. 아무래도 몇 달 전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뒤로 계속 일하지 않는 상태였던 영향이 컸을 거다.
솔직히 가능하다면 일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관둬버리는 식으로 생활의 아슬아슬한 최저선을 겨우 맞추며 살아왔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손님이 적은 한적한 곳이라면 도전할 만할지도…. 아니, 일해야만 해. 이제는 진짜로 생활비가 없어. 젠장….
뭔가 시선이 느껴진다 싶었는데 겁 없는 비둘기 한 마리가 발밑에서 호사이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녀석 엄청 동그랗다. 걸어 다니는 물풍선…? 아니, 지금은 걸어 다니는 물풍선 생각을 할 때가 아니잖냐.
호사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일을 구해야 한다. 구하지 않으면 먹을 것도 없고, 지금 사는 집에서도 쫓겨날 거고, 가을용 얇은 옷으로 한겨울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동사하는 일만은 절대로 막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면 좋겠군.
공원을 나와 골목길을 한참 걸었다. 큰길로 가면 좀 더 빠르겠지만 역 근처라 사람이 많아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질리도록 본 붉은 벽돌 건물의 담장을 따라 늘어진 담쟁이덩굴잎의 끝자락이 그 며칠 사이에 조금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호사이는 레트로한 디자인의 철제 펜스 도어를 무심코 지나치려다가 잠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입학하고 나서 여름방학을 지나 가을이 될 때까지 계속 닫혀있던 문이 열려 있었다. 위화감의 정체는 이거였을까. 하긴 뭐 하는 건물인지도 모르고 계속 지나다니긴 했다. 과거의 자신의 무신경함에 놀라면서도 몸은 이미 펜스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어두운 녹색의 목제 문에는 라는 <CLOSE>라는 팻말이 걸려있었다. 뭔가 가게인 걸까? 하지만 뭐 CLOSE라니까 오늘은 얌전히 돌아가자. 돈도 없어. 그렇게 생각하며 호사이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맑은 도어벨 소리가 났다. 호사이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았다. 열린 문 너머로 눈매가 험상궂은 노인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절로 몸이 굳었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호사이를 지긋이 보고만 있었다. 눈빛에서 묘한 살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호사이는 어쩌지도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마, 마음대로 들어오지 말라고 혼나려나. 그렇지만 가게인 것 같고, 괜찮지 않을까? 그냥 죄송하다고 하고 돌아가는 게 낫겠지? 이런저런 생각이 너무 섞인 탓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도망치기 위해서도 기력이 필요하다는 걸 호사이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망칠 때다. 마지막 남은 기력 한 줌을 쥐어짜 내 호사이는 겨우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합니…”
“아르바이트냐?”
“엇, 그게, 네?”
아니라고 부정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치만….
“전단 보고 왔나.”
눈빛이 너무 무섭잖아….
아니, 그런…. 조직의 배신자를 처리해라. 같은 말투로 전단지를 보고 왔냐고 물어봐도 되는 건가. 여기 영업 전에는 그런 어둠의 일을 하셨던 거 아냐? 죄송한 말이지만 엄청 무서운 얼굴이신데 말투까지 느와르잖아?
한 줌 남은 용기는 아까 ‘죄송합니다’를 꺼내려던 타이밍에 전부 써 버렸다. 노인이 대답을 재촉하는 것 같은 눈빛으로 호사이를 쳐다봤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걸로 하자. 어차피 아르바이트도 새로 구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너무 한심하니까….
호사이는 울 것 같은 기분으로 대답을 쥐어짰다.
“네에…….”
노인은 대답도 없이 등을 돌려 가게 안으로 향했다. 그것이 들어오라는 신호임은 말하지 않아도 자명했다. 호사이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노인을 뒤따랐다. 지옥으로 끌려가는 망자가 이런 기분일까…….
지옥의 입구에서 희미하게 커피 향기가 났다.
✽
“아이스 커피 한 잔.”
오너가 카운터 바 너머로 주문을 전달했다. 호사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대답했다. 말끝에 조금 힘을 주었다.
호사이는 컵에 얼음을 퍼담고는 사이폰에서 끓고 있던 커피를 얼음 위로 부었다. 그 동작에 막힘이 없어서, 스스로가 왠지 프로 같아졌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우스웠다. 실제로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처음에 겁먹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오너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날 잔뜩 긴장해서 겁먹어있는 호사이에게 음식점 일은 처음이냐고 질문하며, 오너는 사이폰 안에서 끓고 있던 커피 한 잔을 내주었다. 클래식하고 좋은 맛이었다. 저도 모르게 “맛있어….”라고 중얼거렸는지 호사이의 대답을 기다리며 접시를 닦던 그가 이쪽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 뒤로는 뭐, 면접이라고는 별말도 안 했는데 바로 합격해서 채용되어 버렸다. 그렇게 호사이는 이 카페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오너는 호사이가 접객에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자마자 바로 주방 일을 가르쳤다. 대부분 홀에서 들어오는 주문을 쳐내기만 하는 바리스타 업무였으므로 호사이로서는 감사한 일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직접 손으로 내려본 적은 없었기에 처음에는 꽤 고전했다. 생긴 것과 다르게 오너의 가르침은 꽤 친절했다. 실수할 때마다 몇 번이고 시범을 보여주는 과묵한 손동작이 믿음직스러웠다. 게다가 일은 꽤 재미있었다. 책으로만 배웠던 원두라던가 추출 방법의 차이 같은 걸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것도 좋았고, 휴업이 길었던 탓인가 한동안 단골손님만 찾아와서 업무 강도가 그렇게 세지도 않았다. 여기서라면 길게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호사이는 조금 희망을 품었다. 그래, 여기서라면….
아이스 커피를 픽업대에 내놓자 오너는 그걸 들고 홀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호사이는 설거지가 끝난 접시에 남은 물기를 마른행주로 닦았다. 사이폰 안에서 커피가 보글거리며 끓는 소리와 그릇을 내려놓으며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섞였다. 이 절묘한 낭만이 싫지 않았다.
가게의 문이 열리며 도어벨이 맑은 소리를 냈다. 호사이는 “어서 오세요, 편하신 자리에 앉으셔도 됩니다.”라고 손님에게 기계적으로 인사했다. 눈은 마주치지 못했지만, 이것이 지금의 자신에게는 최선이다.
✽
가게의 문이 열리며 도어벨이 맑은 소리를 냈다. 산토카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헤키고토나 사치오가 말했던 것처럼 무척 분위기가 좋은 가게였다. 함께 올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어떻게 해도 시프트가 겹치지 않아서 혼자 먼저 가게 됐다. 사치오가 여기는 사이폰으로 내린 커피가 맛있다고 했으니, 메뉴는 그걸로 해 볼까. 카운터 바 너머에서 접시를 닦고 있던 점원이 다소 기계적으로 “어서 오세요, 편하신 자리에 앉으셔도 됩니다.”라며 산토카를 안내했다. 산토카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창가 쪽 자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근데, 이 점원 뭔가 낯익은 느낌인데?
어딘가에서 봤던 것 같은데. 분명 본 적이 있을 거다. 산토카는 곧바로 자리로 향하는 대신 집중해서 점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실례라는 건 알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면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선을 눈치챘는지 점원이 자리를 비켜주려는 듯 살짝 등을 돌렸다. 산토카가 위에 걸린 메뉴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으음, 그게 아니야. 이 익숙한 느낌은, 분명….
“아!!!”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 버렸다. 깜짝 놀란 점원의 어깨가 순간적으로 튀어 올랐다. 불안한 표정으로 점원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산토카는 그 순간 확신했다.
강아디 님이잖아…!!!
설마 강아디 님을 이런 데서 만나게 될 줄은. 오늘 여기 오는 길에 공원에서 걸어 다니는 물풍선처럼 생긴 말도 안 되는 동그란 비둘기를 보고 어쩐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좋은 일이 있을 줄은! 반가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산토카는 활짝 웃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일하시는 줄 몰랐어요!”
“네? 어, 저, 그러니까, 네…?”
어라, 반응이 뭔가 이상한데. 상대방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아, 혹시 일하는 중에 인사해서 싫었던 걸까?
“앗, 죄송해요. 너무 반가워서…. 일하는 중에 방해됐죠…!”
“아니, 저, 그게….”
이것도 아닌가? 뭐랄까, 싫다기보다는….
“…누구시죠?”
“엥?”
엥?
설마…. 기억 못 한다고?
에이, 에이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늘 모바일오더로 주문하긴 했지만 그래도 강아디 님, 꾸준히 우리 가게에 와 줬던 손님이고? 내가 컵에 강아지도 그려줬고? 몇 번이나 맛있게 드세요~ 하고 인사했는데 완전히 기억 못한다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 힌트를… 힌트를 주면 분명히 기억하실 거야!
“그, 역 앞에 있는 카페에서!”
“……?”
“아르바이트!”
“응……?”
힌트라기보다 정답을 던졌는데도 모르는 눈치다. 처음부터 크리티컬 히트를 노린 탓에 이 이상 어떤 힌트를 줘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산토카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자 강아디 님도 답답한 눈치였다. 답답하다기보다는 ‘이 사람 뭐지,’같은 느낌이었겠지만.
하긴 생각해 보면 산토카 자신도 강아디 님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취미도 모르고, 정확한 나이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이름도 모른다. 아는 거라곤 그냥 그가 아마도 커피를 좋아해서 가게에 자주 방문하고 있었다는 점과, 반드시 모바일 오더로 주문한다는 점과, 그 모바일 오더의 닉네임이 강아디라는 것 정도다. 덤으로 본인도 까만 색의 머리카락이고.
아아, 나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을 했구나…. 산토카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아는 척을 해야 한다”던 사치오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렇게 반갑게 인사한 게 잘못된 걸지도 몰라. 역시 좀 더 천천히 거리를 좁혀가며 서로에 대해 알아간 후 친구가 되지 않으면….
물론 사치오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지만 지금의 산토카가 그런 걸 알 리가 만무했다.
제대로 인사하자! 그리고 친구가 되자! 산토카는 마음을 다졌다.
“강아디 님!!”
그렇게 외치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
“강아디 님!!!”이라는 외침이 가게에 울려 퍼졌다. 호사이는 그 순간 집에 가고 싶어졌다. 아주 맹렬하게.
그제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이 사람, 역 앞 프랜차이즈 카페의 이케멘 점원이잖아. 나한테 아는 척했던…! 그가 왜 여기 있는지는 차치하고, 부끄러운 모바일 오더 닉네임이 매장에 성대하게 울려 퍼진 게 문제다.
바로 그 문제를 일으킨 점원, 아니 이 사람, 아니 이 자식은 눈을 빛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뭐 어쩌라는 거야, 아는 척해 달라고? 아니, 나 지금 먹고 살기도 바쁘니까…. 스몰토크 같은 인싸의 행동 할 자신도 없고 그럴 기력 없으니까…. 반짝거리는 시선이 따가웠다. 이래서 인싸들은 싫어. 호사이는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소리를 들었는지 홀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던 오너의 시선이 호사이에게 꽂혔다. 아니, 저 말고, 손님을 쳐다봐 주시면 안 될까요. 그리고 이 사람을 치워 주세요, 제발. 카페라떼건 아포가토건 프라푸치노건 뭐든 만들 테니까. (참고로 이 가게에 프라푸치노 같은 겉멋 든 메뉴는 없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아마도 호사이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었다.
아아….
아르바이트 그만두고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다….
무(無)가 되고 싶다….
호사이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마음도 모르고 사이폰 안에서 커피가 보글보글 끓었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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