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지와 영화
문호와 알케미스트/ 특무사서와 영화를 보는 켄지 이야기
실존 인물의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모티브로 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2차 창작물입니다.
성격, 이름, 외모 설정이 있는 오리지널 특무 사서가 켄지와 영화를 보고 대화하는 이야기
짧게 언급만 되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정확히는 그 후유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 처음 쓸 때는 쿄시가 기분이 좋은 이유가 정해져 있었는데 이쯤 오면 하나도 기억 안 나네요. 뭐였을까? 생각보다 제대로 된 이유였다는 기억만 남아있네요. 정말 뭐였을까?
“사서 씨, 부탁이 있어.”
켄지가 그렇게 말하며 치마 끝을 살짝 잡아당겼다. 어쩐지 작은 목소리라 둘러보니 멀지 않은 곳에 그의 친구 두 사람이 소곤거리고 있다.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일까? 숨을 곳을 내어달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슨 부탁인데요?”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켄지는 화들짝 놀라며 난키치와 비메이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두 문호는 이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일이 끝나면, 나랑 영화를 보러 가줘.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할게.”
빠른 말로 종알거리며 작은 손이 급하게 주머니에 들어왔다가 나갔다. 숨바꼭질은 아니었는지 그새 켄지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두 친구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맑은 목소리가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난키치! 미메이!”
“찾아다녔어! 왜 숨어 있던 거야?”
“숨바꼭질을 하던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사이좋은 세 사람은 사서에게 한번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 숙이고 중정 쪽으로 멀어져갔다. 마주 손을 흔들고 주머니에 든 것을 확인하려 고개를 숙였을 때 눈이 마주친 켄지는 검지를 세워 입가에 대고 입술만 움직여 작게 속삭였다. 비밀이야. 멀어지는 와중에도 부탁이라니 무슨 소리냐고 묻는 비메이의 목소리가 분명히 들려오고 있었다.
비밀이라고 하니 아무리 빈 복도라도 꺼내는 것은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손만 주머니에서 빼고 아무 일도 없을 때 향하는 사서실로 조금 서둘러 걸었다. 오늘의 조수인 쿄시는 헤키고토와 이야기를 나누는 쪽을 조금 더 선호해 사서실은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평소엔 조수가 할 일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라 크게 상관은 없었다.
커튼을 치고 책상에 앉아 책 더미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든 것을 꺼냈다. 바스락거리는 손바닥만한 종이. 반으로 접은 영화표 두 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영화를 보자고 했지.”
켄지는 도서관에서 친구가 많은 편이다. 코타로나 타쿠보쿠, 비메이와 난키치, 츄야와 신페이. 함께 가자고 하면 영화를 보러 가줄 문호는 얼마든지 있을 텐데도 비밀이라며 사서를 불러들인 이유가 있을까.
아야나는 표를 펼쳤다. 시간은 오늘 밤 아홉 시 정도. 나란히 앉은 자리의 표였다. 상대가 문호 선생님만 아니었다면 데이트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느라 제목은 제일 늦게 확인했다. 「은하철도의 밤」.
“아, 아? 그러고 보니 재상영을 한다고 들은 것도 같지만…….”
덜컹거리는 소리에 후다닥 표를 도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수첩을 든 쿄시가 돌아오고 있었다. 드물게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평소라면 업무 외엔 붙이지 않던 말을 친근하게 건네기도 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상담 정도는 해줄 수 있어.”
말할 수 없는 종류의 그것이다. 당황해서 빨개진 얼굴을 이리저리 젓자 쿄시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연문을 퇴고해 줄 수도 있지.”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에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큰 오해를 작정하고 풀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퇴근 시간과 영화 시간이 동시에 다가오고 있었다. 사서실 앞에 작은 발소리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기로 한 쿄시가 여전히 드문 표정으로 물러나는 것과 함께 문을 열었다.
“켄지 선생님.”
“사서 씨!”
뒷정리는 조수의 일이다. 어차피 힘든 일도 없으니 어떤 조수도 이것을 거부한 적은 없다. 다만 만약 데리러 온 문호가 켄지가 아니었다면 쿄시는 쓰지도 않은 연문의 주인공이 그일 것이라 착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손에서 조금 땀이 났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니, 나도 방금 왔어. 사서 씨야말로 내가 너무 재촉한 건 아니지?”
“요즘은 그렇게 서두를 일이 없으니까 괜찮아요. 그렇지,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식사부터 하실래요?”
사서 씨가 아는 식당엔 갈 자신이 없는데. 그렇게 말하며 켄지는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긴 부츠를 신은 발끝으로 먼지를 차듯 흔들었다.
고기나 생선을 쓰지 않는 요리가 있는 식당은 알지 못했다. 아차, 하고 입가에 손을 올리고 놀라자 아이의 얼굴을 한 문호가 본래 나이처럼 후후 웃었다.
“농담이야. 아까 난키치랑 미메이랑 먹고 나왔거든, 애플파이.”
“그렇구나. 다행이에요. 그럼 팝콘 하나만 사서 들어가요.”
“사서 씨, 배가 고프구나.”
그것보다는 입이 심심해서 그렇다고 말하자니 어째서인지 변명 같아 그만두었다. 아야나가 팝콘을 사며 상영관을 확인하는 동안 켄지는 영화관을 한 바퀴 걸어 둘러보았다. 작은 보폭으로 넓이를 가늠하는 듯 걷다가, 큰 소리가 나지 않게 폴짝 뛰어보기도 했다.
팝콘과 함께 사이다 두 잔을 가져오자 손을 뻗어 대신 팝콘을 들어 주었다. 한참 나이가 많은 사람인 것을 아는데도 이렇게 보고 있으면 어쩐지 기특한 동생 같다고 생각하고 만다.
그 마음을 알아챈 것인지 이쪽을 보며 웃는 소년의 얼굴엔 어디에도 아이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았다.
상영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주변이 온통 어두워졌다.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도 켄지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크레딧이 전부 올라가고 음악이 끝났다. 영화관 안에도 불이 전부 켜졌다. 이 상영관에 더는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앉아 있어도 직원이 들어와 채근하지 않았다.
아야나는 이미 익숙한 결말을 곱씹어보면서 고개를 돌렸다. 이 영화의 각본은 그가 아니지만 기본이 되는 동화를 쓴 것은 켄지이다. 원작자로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작가가 아닌 그녀로서는 좀체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물론 상상은 할 수 있다. 그녀였다면 지금쯤 기뻐서 상영관을 한 바퀴 돌고 있을 것이었다. 켄지도 다소 그런 인상이었기 때문에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조금 의외의 반응이었다.
고개를 돌려 보자 옆자리에는 미소를 지은 소년이 앉아있다. 보석 같은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소리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감독의 해석이 그가 의도한 것을 크게 해치기라도 했단 말일까? 캐릭터가 고양이였던 게 별로인가? 그래도 귀여운데. 생각을 계속하다보니 주제가 흐려진다. 다행히 이 뒤죽박죽인 사고가 영화관에 항의하자는 쪽으로 이어지기 전에 켄지가 입을 열었다. 가볍게 떨리고 있었지만 메이지는 않았다.
“나, 살아서는 책을 내지 못했어. 자비출판으로 낸 게 전부야. 그마저도 많이 읽어주지 않았어… 거의 내가 회수해서 지인에게 나눠주었을 뿐이니까.”
그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이미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본인(같은 것)에게 듣는 것은 무게가 전혀 다르다. 입안이 바싹 말랐다.
“하지만 이렇게 되었구나. 내 책은 영화가 되었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봐주게 되었어. 내 이야기는 사랑받게 되었구나… 나는 사랑받는 작가가 된 거구나.”
믿고 있었어, 같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 아야나는 숨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그녀는 그의 작품을 아주 좋아했다. 어려서 수도 없이 읽은 책이다. 그 하나만으로 진로를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그녀의 인생에 길을 그은 작품이다. 선생님의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고, 수많은 이들이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다.
“저는, 선생님을 질투했어요.”
그러니 이런 말이 나온 것은 절대 예상한 것이 아니다. 눈물이 옮았기 때문이다. 자신에 입에서 나온 말을 어쩌지 못하고 입을 벙긋거리다가, 무의식처럼 말을 이었다.
“저는 글을 잘 쓰지 못해요. 선생님도 읽은 적 있으실 거예요. 제 관찰력의 한계예요. 감성의 패배예요. 상상력의 죽음이에요. 앞으로도 그럴듯한 글은, 시는 쓰지 못할 거예요. 저의 능력의 부족이니까요. 하지만 어렸을 때 저는, 그걸, 제 슬픔의 결여가 원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행복하게 살았으니까요, 글에 목마르지 않았으니까요.”
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 정말로 아야나는 이런 얘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굴곡이 없는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기억을, 어째서 본인에게 얘기하게 된 거지?
“그래서 저는… 선생님의 문학 맨 밑바닥에 있는 슬픔을 질투했어요. 저에게도 슬픔이 있다면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착각을 했어요……!”
뭉개지는 말은 울음이 되어 마지막에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요, 그런 게 아니었어요, 울음 속에서 흩어지는 말들을 그가 어떻게 알아들어 주었는지 모르겠다.
“울지 마, 사서 씨.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려고 쓴 건 아니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서 씨가 잘못한 건 아니야.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도 수십 번 질투했을 거야. 알 수 있어. 내가 가지지 못한 다른 요인 때문에 내 글이 읽히지 않는 거라고.”
병이 그 아이를 데려가 버렸기 때문이라고.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그저 눈물이 옮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인공을 닮은 작가는 손을 뻗어 문학소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저 흐르지 못한 눈물이 별빛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그저 그의 글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그녀의 인생을 만들었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고 살아가고 있다고, 밤하늘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선생님의 상실을 후벼팔 생각은 없었어요…….”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아. 누구나 슬픔을 가지고 살잖아. 사서 씨는 그걸로 글을 쓰지 못해도, 누구보다 훌륭한 독자야. 작가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잖아.”
그의 마지막 눈물이 깜빡임과 함께 스며 사라졌다. 입가에 지은 미소는 익숙한 소년의 것이다. 동시에 사랑받은 아이 같기도 하고 아이를 자랑하는 부모 같기도 한……
아야나를 달래기 위해 켄지는 짧은 노래를 시작했다. 별 순회의 노래다. 아, 이것도 알고 있다. 눈물을 닦으며, 울음을 그치며 아야나는 문득 생각한다. 연문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쿄시가 퇴고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투른 감정을 그대로 써두는 쪽이 나은 편지일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켄지가 아니다. 물론 작가로서의 그를 사랑하지만, 연문을 보낼 상대로서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 쓰는 편지는 그에게 도착할 것이다.
사과의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지, 편한 말로 하면 그것은 감상문이다. 켄지의 글에 대한 고백을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내용이라는 점에선 어쩌면 유언장을 더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야나는 손을 뻗어 자신을 달래는 켄지의 손을 잡았다.
“이제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걱정스러운 표정이면서도 아야나가 그렇게 말하자 정말이냐고는 묻지 않는다. 손을 잡은 채로 의자에서 일어나 어두운 상영관 속을 길잡이별처럼 이끌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의 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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