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호와 연금술사

불붙는 것

문호와 알케미스트/ 비메이와 사서의 여름과 초 이야기

실존 인물의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모티브로 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2차 창작물입니다.

이벤트 의상과 소장 대사와 나에게 와 준 미메를 향한 사랑과 비뚤어진 마음(𝑦𝑎𝑛𝑑𝑒𝑟𝑒)가 만들어낸 밀랍 괴물이 되었습니다.

이야기 내부에서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찝찝함… 을 의도했는데 과연?

인게임 이벤트 炎昼は水瓜に集え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미묘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인어로 불온했으니 초로 불온한 건 어때?의 초로 불온한 버전입니다.

이것도 호러인지는 모르겠네요. 호러라는 장르는 어떻게 쓰는 걸까요? 스티븐 킹을 읽고 좀 공부해보려는 생각은 있었는데 스릴러라는 게 제 생각과 다르게 외계인이 사람을 먹어버리길래 도주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치만 외계인이 사람을 먹었다니까요!!


“……이, 어이! 비메이!”

눈을 떴다. 어깨를 붙잡고 세차게 흔들던 하쿠쵸가 몸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어지간하면 변하지 않는 얼굴에 스쳤던 걱정이 순식간에 지워지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아… 나 잤어……?”

“…그래. 츠보우치 씨가 애들은 많이 자는 법이니 그냥 두라고 했지만…….”

“나는 애는 아니지만… 이런 몸으로는 설득력이 없나.”

자고 있던 해먹에서 몸을 일으켰다. 팔이며 다리에 그물 자국이 찍혀 있었다. 이미 저만치 떨어진 하쿠쵸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이쪽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뭐야, 할 말이 있으면 해.”

“요새 자주 그러던데.”

“아, 정말! 한 번에 똑바로 말해. 뭐가?”

“……내가 본 것만 두 번이고, 동화작가 녀석들이나 네 스승들이 걱정하는 걸 들었다. 잠들 때마다… 꼴이 말이 아니라고.”

하쿠쵸는 돌려서 말했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땀 때문에 기분이 나쁘고, 머리가 아팠다. 잘 때의 일은 직접 알지 못하지만 몇 번이나 들었다. 자는 동안 보통 악몽을 꾼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신음하고, 뒤척이고, 가끔은 발작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하게 앓는다고 했다.

“의사에게 가 보는 게 낫지 않나? 적어도 사이토라든지…….”

“답지 않게 걱정했나 보네. 괜찮아.”

호의가 단박에 거절당하자 하쿠쵸는 눈썹을 삐딱한 각도로 세웠다. 그러면서도 더 말하지 않는 솔직하지 못한 모습이 우스워서 몇 가지 더 말해주기로 했다.

“이미 사서 씨랑 사이토 씨한테 얘기해 봤어. 별다른 문제는 없고… 더워서 그런 게 아닐까 하던데. 그런 것치고 심하긴 하지만.”

“더워서?”

“불타는 꿈을 꾸니까.”

“뭐……”

그리고 하쿠쵸가 더 반응하기 전에 사서실을 나왔다. 뒤에서 혀를 차며 나온 그가 사서실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하쿠쵸는 괜찮은 녀석이다. 여러 번 되묻거나 끈질기게 달라붙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는 켄지, 난키치, 미에키치에게는 말해주지 않은 꿈 얘기를 그 녀석에게는 할 수 있었다(그렇다고 저 애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뭐, 그것도 다 말하진 않았지만.

하쿠쵸가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같은 곳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도서관에서 가장 발길이 적은 곳, 사서나 알케미스트들만 가끔 가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문호들에게 금지된 곳은 아니지만 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여태 아무도 개인적으로 간 적은 없었다. 사서가 문호를 개화시킬 때나 불려가는… 우리의 책이 있는 곳이다.

내 책을 뽑았다. 붉은 표지에는 붓글씨로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무기가 되는 책과는 다르게, 아무 무늬도 없고, 생전에 낸 어떤 책의 표지와도 닮지 않고, 마치 백과사전의 각 권처럼 단순한 표지다. 하지만 내 책은, 확실히 다른 문호들과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책을 채우고 있는 종이는 깔끔한 백지. 쪽수가 적혀 있을 위치에만 무언가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적혀 있다.

책을 덮었다.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아래서 양초가 탔다.

여기에 없는 나는 이 도서관의 망령이다.

어느 날 사서 씨가 불러서 나는 사서실에 갔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곧 식사 시간이니 길지 않겠거니 싶었다. 내가 도착하자 사서 씨는 다짜고짜 말했다.

“실험을 도와줄래요?”

“뭐?”

하여튼 누구도 바로 말하지 않는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반사적으로 찡그리는 나를 보고 사서 씨가 히죽히죽 웃었다. 연구 같은 걸 하면 성격이 나빠진다는 편견에 힘을 실어준다.

사서 씨는 입에 발린 말로 사과하면서 책을 한 권 꺼내 올려놓았다. 사서 씨가 자주 쓰는 플라스틱 책갈피가 꽂혀 있었다.

“어제 책 정리하다가 읽었는데…… 궁금해져서 나도 해보고 싶었어요.”

책을 집어 들고 나는 고개를 기우뚱했다. 거기 있던 책은 무슨 과학 이론 책이 아니라 신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린이용으로 엮은, 글씨가 크고 만화 같은 삽화가 잔뜩 들어간 것이다. 내가 연금술에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신화라고 할 만한 시대에는 연금술이 없었다고 아는데.

돌아보자 사서 씨는 여전히 히죽히죽 웃으며 내가 든 책을 가리켰다. 성격 진짜 나쁘네. 입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책갈피가 꽂힌 곳을 펴고 읽었다. 긴 내용이 아니라 선 채로 다 읽을 수 있었다.

“……이걸 하고 싶다고?”

어느새 앉은 자리에서 일어난 사서 씨가 내 뒤에 서 있었다. 사서 씨의 손가락이 어깨를 감싸는 게 느껴져서 나는 몸을 움츠렸다.

“네. 선생님도 궁금하지 않아요?”

손가락이 피아노를 치듯 잡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사서 씨의 목소리는 전혀 노랫소리 같지 않았지만. 흔해 빠진 비유지만 그것은 뱀과 같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전혀 궁금할 리가 없는 제안에 고개를 끄덕여 버렸으니까.

그렇게 사서 씨의 기묘한 실험에 동참하기는 했지만 내가 할 일은 전혀 없었다. 그 점을 지적하자 사서 씨는 또 웃으며 초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초…….”

“전에 갖다준 그런 초요. 젤보단 단단한 게 좋겠지만 밀랍이 있으니까…… 앗.”

“이미 다 알고 있구나.”

“아하하, 들켰다.”

그래서 나는 동의 외에는 전혀 할 게 없었다. 사서 씨가 모든 준비를 끝내고 그걸 실행에 옮길 때나 불려갔을 뿐이다.

그 날 낮에 나는 쇼요 씨와 하쿠쵸와 나오키와 도서관 마당에서 수박을 깨고 그것을 쪼개 나누어 먹었다. 도서관다운 피서를 끝내고 들어오자 현관 한가운데 사서 씨가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깜짝 놀랐다. 납량특집이었다면 성공이다.

“다 됐으니까 마지막으로 같이 나가요.”

“아, 알았어……. 부채만 들고나올게.”

“지갑도 가져와요. 버스 타고 가야 하니까.”

“그래…….”

그래서 쇼요 씨와 다른 녀석들과 헤어지고 나는 동전 지갑을 들고 사서 씨를 따라나섰다. 사서 씨는 조금 큰 유리병을 들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바다에 내렸다. 도서관에서도 조금 보이는 가까운 바다다. 나가고 싶지 않아서 도서관 안에서 수박을 쪼갰는데 이러면 의미가 있나…

내 고민은 모를 사서 씨를 따라 좁은 곶 끝까지 갔다. 맞은편 항구 쪽에 등대가 있지만 큰 항구가 아니라 정박한 배들은 작은 고깃배나 요트 정도다. 모래사장은 버스에서 내리고 다른 방향이었다.

“봐요. 잘 만들었죠.”

방파제를 조금 밟고 내려왔다. 사서 씨는 고향이 여기라더니 오래 다녀본 것처럼 미끄럽지 않은 곳을 골라 밟고 가장 아슬아슬한 곳에 섰다.

사서 씨가 내게 건네준 건 유리병에 든 초였다. 역시 만들 줄 알았다. 내가 사서실에 놓아둔 젤 캔들과는 다르게 단단하게 만든 붉은 초였다.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역시 악취미다. 파는 것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라서, 종이로 된 투박한 심지가 유독 눈에 띄었다.

“정말로.”

“네. 정말로. 밀랍으로 만들었어요.”

사서 씨는 내게서 도로 초를 받아서 있는 힘껏 던졌다. 깨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유리병의 마개도 밀랍으로 봉해놓은 사람이다. 그것도 알아서 했겠지. 유리병은 조금 가까운 바다에 떨어졌다. 가깝다고는 해도 주우러 가다간 빠질 거리였다.

물결을 따라 유리병은 점점 멀어졌다. 사서 씨는 그것이 수평선까지… 그 이전에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서 있다가 방파제를 밟고 올라왔다. 나는 그 이전에 진작 올라와서 사서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사서 씨는 내게 라이터를 내밀었다. 그걸 받아서 사서 씨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자 사서 씨는 또 히죽 웃었다. 이 사람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걸까. 밖이라 나는 피울 수 없었다.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도서관에서는 남은 수박으로 화채를 만들고 있었고 나도 사서 씨도 종이컵에 담아 돌리는 화채를 받을 때까지만 함께 있었다.

그 후로는 예전처럼 사서 씨가 나만 불러내는 일은 없었다.

비밀이라는 말은 한 적 없지만 알았다. 이 실험은 나와 사서 씨만 아는 비밀이어야 한다.

꿈을 꾸기 시작한 건 그 날부터다. 불타는 꿈이다. 불탄다기보다는 녹는 꿈일지도 모른다. 꿈이니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텐데 여름이어서일까, 깨어나면 제대로 기억도 못 하는 아픔이 명치께에 들었다. 잠만 들면 그 꿈을 꾸어서 제대로 잠들지 못하게 됐다. 낮잠이 는 것도 그래서이다. 결국 그때마다 또 같은 꿈을 꾸지만.

사서 씨에게 따졌지만 사서 씨는 처음 듣는다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놀린다면 몰라도 거짓말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서 씨가 사이토 씨에게 데려가 이야기를 듣자…… 만족할 만한 대답은 역시 나오지 않았지만. 얼추 설명을 듣고 나오는 길에 사서 씨가 말했다.

“선생님, 걱정하고 있어요?”

불탈까 봐 걱정한 나머지 꿈을 꾼다니. 어린애도 아니고.

하지만 그럴지도 모른다. 이런 경험은 이전 삶에도 해본 적 없고, 이번 삶에서도 처음이니까. 그리고 마지막이다.

“넌 또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거야?”

“그야, 선생님, 유리병이 깨져서 물에 빠져버릴지도 모르는데 그 가능성은 전혀 걱정하고 있지 않잖아요.”

그게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사서 씨는 악동처럼 웃었다.

“역시 선생님으로 하길 잘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래도 사이토 씨가 준 진정제나 조금, 제법, 상당히 헛도는 상담이 약간은 듣기 시작해서 내 꿈의 불길은 아주 조금씩 꺼져갔다. 이대로라면 여름이 끝날 즈음에는 아마 예전처럼 잠들 수 있겠지. 깨어나면 가슴에만 남는 뜨거운 아픔도, 사그라드는 종이의 냄새도 이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이 끝난 후에도 나는 악몽을 꾸리라. 알고 있다.

친구들과 나가는 도중에 사서 씨와 마주쳤다. 사서 씨는 흡연실에서 오는 중이었는지 담배 냄새가 났다.

“사서 씨!”

“사서 씨, 안녕!”

“와~ 안녕하세요. 어디 가요?”

“조개껍데기 주우러 가. 초 말고도 뭔가 만들 건 많을 테니까.”

사서 씨와 눈이 마주쳤다. 사서 씨는 내 쪽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선생님은 멜레아그로스가 될까요, 노르나게스트가 될까요.”

다시 손가락이 건반을 누르는 것처럼 어깨를 차례로 누르고 떨어졌다. 사서 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웃으면서 우리 모두를 보고 미에키치의 말에 하는 대답처럼 이어 말했다.

“그거 정말 기대되네요.”

하하. 퍽이나.

“나는 하나도.”

바다 위를 떠도는 유리병 속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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