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막이 걷히면
5. 막이 걷히면
요즈음의 슈세이는 그렇다. 잘 먹고, 잘 쉬고, 잘 잔다. 하루는 평화롭고 안온하게 흘러갔다. 아침에 일어나 사무소의 창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와 함께 따뜻한 아침 햇살이 구석구석 스며들었고, 풍경은 변한 것 하나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그러나 과연 변한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지.
도손이 사라진 그날 밤, 슈세이는 도손을 알고 있던 모든 주변인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같이 이런 것이었다.
[시마자키 도손이 누구야?]
시마자키 도손이라는 인물이 존재했던 흔적이, 이 세계에서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괴이한 것을 해결하던 사람이, 스스로 괴이가 되어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슈세이는 그것마저 시마자키답다고 생각했다. 도손은 먼 여행을 떠났다. 아마도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었다.
겨울의 공기가 뺨을 스쳤다. 슈세이는 밤하늘에 부스러지는 하얀 숨결을 잠깐 멍하게 쳐다보다가 플랫폼으로 발을 옮겼다. 주머니 속에서 반으로 접힌 열차 티켓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그날 들었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일주일이나 지난 일인데도, 아직까지 모든 상황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눈을 감으면 똑같이 재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꿈의 바깥은 꿈, 꿈의 바깥은 다시 한 번 꿈. 그러나 마지막에 도달한 악몽의 바깥은 현실. 슈세이는 시마자키의 마지막 말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이것이 정말 시마자키가 바란 결말이라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그것은 결코 견고한 거짓말 따위가 아니었다. 어쩌면, 시마자키는 정말로 처음부터…….
열차가 들어온다는 것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고, 곧 한차례 바람이 불었다. 강과, 겨울의 다리와, 하시히메의 꿈은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 끝내줄 리도 없고, 놔둔다고 끝나지도 않으니, 스스로 끝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 * *
익숙한 듯 어딘가 낯선 낡은 플랫폼에 내리자 바람이 불었다. 대충 맨 목도리의 끝자락이 펄럭거리며 휘날렸다. 슈세이는 목도리를 다시 매며 개찰구를 지났다. 이번에는 마중 나와 준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 가야만 했다.
역 근처의 편의점에 들어가서 공책 한 권과, 볼펜 한 자루와, 라이터 한 개를 샀다. 반쯤 졸면서 매대를 지키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이 시간에 찾아온 손님을 귀신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바라보며 바코드를 찍었다. 아, 이것도 같이 주세요. 진열대에서 막 나와 종이 봉지에 담긴 만두에서 따끈따끈한 김이 났다. 문을 밀어 열고 나가는 슈세이에게 아르바이트생이 안녕히 가세요, 하고 하품을 참으며 인사했다. 닫히는 문틈 뒤로 딸랑, 하고 맑은 종소리가 따라 울렸다.
슈세이는 만두를 한 입 베어 물며 어두운 길을 걸었다. 빛이라고는 드문드문 길에 심어진 가로등이 발밑을 비출 뿐이었지만,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길이었기에 그다지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제부터 어디로 갈지, 뭘 해야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인간의 삶은 모두 하나의 이야기, 그러나 이야기의 모든 부분이 개인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쿠다 슈세이라는 이야기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은 어디서부터일까, 슈세이는 내내 그것에 대해 고민했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이런 한밤중에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자신 나름의, ‘이야기가 시작한 장소’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한 손에 들고 야금야금 베어 물던 만두가 끝이 날 때쯤에는 두 갈래로 찢어진 갈림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쪽은 마을로 가는 길이었고, 다른 한쪽은…
다리. 물소리가 들려왔다. 슈세이는 다리를 알고 있다. 몇 번이고 건넌 적이 있었고, 몇 번이고 꿈속에서 마주한 그 다리였다.
잊어버릴 만하면 꾸고, 또 잊어버릴 만하면 되풀이되던 하시히메의 꿈. 하시히메의 꿈? 아니, 그건 시마자키의 꿈이었다. 지금껏 악몽이 아닌 것으로 포장해 감춰두었던 것이 실은 악몽이었으며 동시에 예지몽이기도 했음을 깨달은 것은 시마자키가 사라지고 난 뒤였다. 슈세이는 갈림길 앞에 서 있었다. 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제껏 그래왔듯, 일상을 좀먹은 괴이함을 필사적으로 모른 척하고 살아가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게 내가 바라던 거야.’
시마자키.
슈세이는 알고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이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건너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 시마자키의 영원한 부재일지, 아니면 다른 무엇일지는 모르지만, 꿈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언가는 끊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전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고민할 것은 없었다. 애초에 그런 각오가 없었으면 이 밤중에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리 쪽으로 한걸음을 내딛었다. 흐르는 물소리 중에 첨벙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작은 물고기가 튀어 오르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밤공기에 젖은 나무 난간을 잡자 축축한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온 몸을 뒤덮는 것 같았다. 무언가가 필사적으로 밀어내는 것처럼, 혹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불안하고, 불쾌한 감각이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때 마다 작게 삐걱이는 소리, 물비린내와 밤의 풀의 향기. 저 너머에 흐릿하게 건물의 실루엣이 보였다. 슈세이는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어 다리를 건넜다. 등 뒤에서 물소리가 흘렀고, 불안한 감각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무언가가 끊어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뒤를 돌아 지나온 길을 보니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둠에 잠긴 길에 다리가 있을 뿐이었다. 몇 번이고 보아왔던, 다리. 슈세이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목적지가 코앞인데다가, 여기서 더 시간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다리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는 고등학교가 있었다. 역시 마찬가지로 익숙한 학교. 밤의 학교는 어딘가 정겹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졸업한 지 꽤 되었는데도 학교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어쩐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학교였기 때문에, 딱히 출입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문제는 교내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교정을 출입하는 것은 자유일지 몰라도,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 정말…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왔구나. 슈세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열려 있는 출입구가 있는지 찾아볼 심산으로 중앙 현관으로 향했다. 두꺼운 유리문이 무거워 보이는 자물쇠와 사슬로 꽁꽁 감겨 잠겨 있었다. 괜히 힘을 주어 한번 밀어 보았지만, 열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할 수 없지, 다른 길을 찾아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린 순간 등 뒤에서 잘그락, 툭. 하는 소리가 났다. 자물쇠가 풀리며 사슬과 함께 떨어진 소리였다.
마치 무언가가 부르고 있는 것처럼, 잠금장치가 힘없이 풀렸다. 슈세이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 텅 빈 밤의 학교 안으로부터 작게 바람이 불어왔다. 어두운 복도로 걸음을 옮기자 발소리가 울렸다. 방학 중이라 아무도 당직을 서지 않는 것인지 당직실 앞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이쪽으로서는 잘 된 일이다. 교무실 옆 복도를 돌아 계단을 올라간다. 목적지는 1학년 교실이 있는 3층이었다.
도쿠다 슈세이라는 이야기는,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된다. 슈세이는 그렇게 단언할 수 있었다. 유쾌한 친구들과 소란스럽지만 즐거운 나날. 그러나 단순히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것은, ‘그’가 없었으면 시작되지 않았을 이야기이다.
슈세이는 교실의 미닫이문을 열었다. 조금 먼지 냄새가 나는 공기가 어쩐지 꼭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왼쪽으로부터 셋째 줄, 앞에서 다섯 번째 자리. 익숙한 위치의 익숙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진짜는 지금부터인데, 어쩐지 더없이 침착한 감각이었다.
하나, 비어있는 종이 한 장을 찢어 책상 위에 올려둔다.
둘,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종이를 잠시 응시한다.
셋, 볼펜을 입에 물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넷, 볼펜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다시 한 번 말로 같은 주문을 외운다.
“믿음이 여기에 있으니, 사라진 자는 답하라.”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지자 어쩐지 음산한 기분이 들었다. 슈세이는 주문을 외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교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더 기다려 보았지만,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점점 마음이 조급해졌다.
미동도 없던 볼펜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주문을 외우고 몇 분 정도가 지난 후였다. 쓰러진 사람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듯 조금 휘청이며 똑바로 일어난 볼펜은 스스로 의지를 지닌 듯 움직여 종이 위에 검은 점 하나를 찍었다. 슈세이는 볼펜이 남긴 흔적을 보다가 소리 내어 물었다.
“지금 여기에 있습니까?”
볼펜은 흰 종이 위에 작게 동그라미를 그렸다. 뭘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 명쾌하고 빠른 움직임이었다. 질문에 답한 볼펜이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듯이 제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슈세이는 잠시 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다소 현학적인 질문이었다. 볼펜은 잠시 주춤, 하는 듯싶더니 이윽고 종이 위를 달리며 글씨를 써내려갔다. 꽤나 정갈한 필체가 또박또박 빈 공간을 채워가고 있었다.
「나는 여우 식당의 작은 여우 곤.」
「동시에 거울의 츠쿠모가미이기도 하며」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뱀신이기도 한 존재」
슈세이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원하던 답변이 나오고 있었다. 볼펜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며 하고 싶은 말을 종이 위에 써내려갔다.
「나는 시마자키 도손, 동시에 지금까지 사람들이 겪었던 모든 괴이와,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로어와 도시전설들의 뿌리.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의 시작과 끝.」
「안녕, 슈세이.」
보이지 않는 시마자키는 눈앞에 놓인 종이에 그렇게 적었다. 볼펜 움직이는 소리만 사각사각 빈 교실 안을 채웠다. 이것은 문답이었다. 질문이 오면 답이 가야 하고, 답이 끝나면 다시 질문을 건네는 대화. 거짓말이 허락되지 않는, 오직 진실만이 존재하는 문답. 대답하지 못한 쪽은 패배할 것이다. 슈세이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안녕 못 해, 시마자키.”
「왜?」
“너 때문에.”
「저런.」
“남의 일이라는 듯이 말하지 말아 줄래…….”
꽤 심각한 마음으로 왔던 것 같은데, 이런 기묘한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꽤나 안정된다니 인간이란 신기했다. 어쨌든 만담이나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슈세이는 괜히 큼큼, 헛기침을 한번 하고 다음 질문을 준비했다.
“언제부터 이걸 준비했어?”
「뭘?」
“모르는 척 하지 마. ‘뿌리’가 되기 위해, 혹은 ‘뿌리’를 만나기 위해 언제부터 준비했냐고 묻고 있는 거야.”
막힘없이 슥슥 글을 써내려가던 시마자키의 볼펜이 잠시 멈칫, 했다. 대답을 고르는 건지, 두어 번 까딱거리던 볼펜은 곧 종이의 빈 공간에 진실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래 전, 아주 오래 전부터. 어쩌면 태어났을 때부터였는지도 몰라.」
슈세이는 모르는, 아주 오래 전. 시마자키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런 식으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야기를 먹으며, 이야기가 되기 위해 살아간다. 슈세이는 그제야 사무소에 한번 방문했던 사람들이 왜 두 번은 찾아오지 못하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경험한 괴이한 이야기를 내놓는 대가로 사건의 해결을 받고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야기의 기억을 먹혀버렸는데 존재 자체가 로어나 마찬가지인 그 사무소를 기억할 리가 없었다.
“고등학교때 그 유령 사건도, 네가 먹어버린 거야?”
「‘먹었다’니, 재미있는 표현이네… 맞아.」
이러니 사건에 몰두했던 모두가 그 결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슈세이는 다음 질문을 꺼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첫음절을 발음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쉿,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의 볼펜이 움직였다.
「아니지, 슈세이. 이건 문답이잖아. 내가 질문할 차례야. 여긴 왜 왔어?」
“…너를 데리고 가려고.”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대답은 막힘없이 나왔다. 주저 없는 대답에 이어지는 문장이 없더니, 잠시 뒤에 종이에 올라간 것은 이런 말이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서 나를 데리고 가려고 하는 거야?」
“나는…”
나는 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스스로도 정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 결국 나와버리고야 말았다. 슈세이는 종이에 적힌 문장을 한참 바라보기만 했다. 시마자키는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슈세이를 기다려줄 뿐이었다. 도손은 슈세이가 말을 고르는 시간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했다. 단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상대가 상처받지 않도록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다듬을 슈세이를 생각하면 어딘가 깊은 곳이 두근거리는 기분이었다. 설렌다던가 하는 감각과는 조금 다른, 마음에 쏙 드는 것을 만났을 때의 두근거림.
얕게 뱉은 숨이 교실 안에서 희게 부스러졌다. 슈세이는 알고 있다. 이것은 갈림길이다. 대답에 따라 우리는 영영 돌아갈 수 없게 되거나, 알지 못한 어딘가로 향하게 되겠지. 대답을 기다리던 시마자키가 종이에 무언가를 몇 줄 더 적었다. 공백이 거의 남지 않은 종이 위에 정갈한 글씨가 물 부어지듯 쏟아져 내렸다.
「시마자키 도손이라는 개념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이 세계의 그 누구도 시마자키 도손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과연 슈세이 네가 기억하고 있는 시마자키 도손은 진짜 시마자키 도손일까?」
「내가 진짜가 아니라면, 너는 어떻게 할 건데?」
이제는 정말로 답을 내야 할 시간이다. 슈세이는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그래도 상관없어.”
나는 너를 전부 알지 못하지, 어쩌면 영영 너를 모른 채로 살아갈 수도 있겠고. 그럼에도 이것은 단 하나의 확실한 답안이었다. 슈세이는 눈을 감았다. 어두운 장막이 내려오자 교실이 더욱 고요하게 느껴졌다.
“네가 로어건 괴담이건 도시전설이건 상관없어.”
볼펜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슈세이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말했다. 대답을 봐 버리면 끝까지 말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평생 너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 평생 너를 모른 채로 살아갈 수도 있고.”
사각거리며 글씨를 쓰던 소리가 멈추고, 교실에는 다시 조용하고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준비한 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시마자키, 이대로 너를 모른 척하고 살아가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면 나는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염원하던 평온한 일상에 안주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슈세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건 싫어.”
조금 떨리고 있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내 일상은 네가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 거야.”
이것이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도달한 답안이다. 슈세이는 말했다. 그냥 내 옆에 있어. 너는 그걸로 이제 진짜 존재하는 시마자키 도손이 되는 거야. 어딘가, 울 것 같은 표정을 하며.
슈세이는 눈을 떴다. 한 면 가득 채워진 종이는 이제 뒷장으로 넘기지 않으면 더는 글을 쓸 수 없었다. 시마자키의 완패였다. 슈세이는 종이를 막대 모양으로 접었다. 라이터로 종이에 불을 붙이자 종이는 바라던 바라는 듯이 붉게 타올랐다. 의식이 끝을 고하고 있었다. 믿음이 여기에 있으니, 사라진 자는 돌아오라. 슈세이는 작게 읊조렸다. 창문 너머로 해가 뜨고 있었다.
어디선가 등나무 꽃 향기가 났다. 그리운 온기가 슈세이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언제나와 같은, 변함없는 목소리.
“나는 시마자키 도손.”
“이런 나를 인정해줘서, 고마워.”
그렇게 시마자키 도손은 돌아왔다.
이것은 괴이의 이야기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없으며, 현실과 가상의 구분 또한 없는 이야기.
괴이는 오직 인간에 의해서만 살아갈 수 있고,
인간으로부터 태어나, 인간에 의해 증명되고, 인간에 의해 사라진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은 당신에 의해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니
오늘 밤 여기에 앉아 괴이의 이야기를 모아 보자.
<괴이해결 대행사무소,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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