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해결 대행사무소

0. 괴이해결 대행사무소

 

 

 

 

 

믿거나 말거나

 

도시의 뒷골목에는 언제나 정체불명의 가게가 하나둘쯤 존재하는 법이다. 어느 도시의 뒷골목에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사무소가 있다고 한다. ‘괴이 해결 대행 사무소’라는 정체불명의 이름을 가진 이 사무소는 괴이 현상에 관련된 일이라면 정말로 뭐든지 해결해 준다고 하는데, 소문에 의하면, 의뢰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래의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고 한다.

 

1. 반드시 ‘직접’ 괴이 현상을 경험한 사람이어야 한다.

2. 해당 괴이 현상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한 적이 없어야 한다.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는 것인지, 사무소의 규모도,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자세히 알 수 없고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늘도 괴이 현상에 고통받는 사람들은 이 사무소를 찾기 위해 뒷골목을 헤맨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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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도시의 뒷골목이건 수상한 가게는 한두 개쯤 존재하는 법이다. 어제 저녁에 괴담 정리 사이트에서 읽은 로어의 첫 문장이 왠지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고 생각하며 슈세이는 기지개를 켰다. 살짝 열린 창문 틈새로 밀려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베개 맡을 비추고 있었다. 초여름의 오전은 공기마저 어쩐지 찌뿌둥했다. 슬슬 선풍기를 닦아 둘 때가 온 건가, 우선 아침을 먹고… 아니, 선풍기가 있는지부터 물어봐야겠군. 막 일어나서 살짝 멍한 정신으로 오늘의 일과를 정리하고 있자니 방 밖에서 어렴풋이 종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거인이 신문을 읽고 있는 모양이었다. 슈세이가 방문을 열자 낡은 가죽 소파에 앉은 익숙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오래된 벽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케아 테이블 위에 신문을 올려놓고 그걸 정독하고 있는 듯했다. 말을 걸까 하다가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본 슈세이는 곧 그만두자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주방으로 돌렸다. 다소 늦은 아침 식사는 프렌치토스트와 인스턴트 커피가 될 예정이었다.

어느 대도시의 뒷골목, 상당히 구석진 곳에 자리한 이 사무소는 <괴이해결대행 사무소>라는 다소 조잡하고 오컬트스러운 이름을 달고 있었다. 슈세이는 이곳의 조수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었는데, 물론 처음부터 여기 취직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 슈세이 본인의 의지만으로 상경을 결심한 것도 아니었다. 모든 시작은 그 문자 메시지 한 통이었다. 아무런 부가 설명 없이 달랑 낯선 주소 한 문장만 적힌 메시지였지만, 발신자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이렇게 앞뒤 내용을 모두 생략하고 뜬금없는 메시지를 보낼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시마자키 도손이었다. 사실 슈세이는 메시지를 받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졸업 이후 도손과는 거의 교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거의’ 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이 완벽한 연락 두절 상태였다. 어느 한 쪽이 다른 한쪽을 미워하는 것도, 사이가 껄끄러워진 것도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연락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도손의 존재는 슈세이의 기억 저 끄트머리쯤에 간신히 위치해 있었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것은 슈세이에게 있어서 어떤 기묘한 죄책감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같았다.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친한 사이였는데, 졸업과 동시에 모든 것을 잊어버린 것처럼 잘 지내느냐는 문자 한 통도 보내질 않았다니. 그래서 슈세이는 그 문자 메시지 한 통만을 의지하고, 자신의 무신경함에 대한 죄책감을 동기로 무작정 상경했다. 일상을 사랑하는 그의 성격과는 한참 엇나간 행동이었다.

슈세이는 아직도 처음 사무소의 문을 열어 보았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낡았다는 말도 실례일 정도로 한참 오래된, 나이를 먹은 건물의 목조 계단은 걸어 올라오는 내내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삐걱거렸고 해가 질 무렵의 복도는 전등이 나가기라도 했는지 불이 들어오지 않아 제법 으스스했다. 골라도 꼭 시마자키 같은 곳을 골랐다고 생각하며 슈세이는 마지막 계단을 올라 메시지에 적혀 있던 번호의 방 앞에 섰다. 열쇠 꽂는 구멍이 있는 낡은 철제문에는 정갈한 글씨로 <괴이해결대행 사무소>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가볍게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몇 번 더 두드려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이 낡은 건물에는 초인종도 붙어 있지 않았다. 헛걸음한 건가 싶어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지만, 슈세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 손잡이를 당겨 보았다. 문은 너무나도 허무하고 가볍게 열렸다.

그러나 가볍게 열린 문과 달리 슈세이가 마주한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풍경이었다. 사무소 안에는 여기저기 신문이며 프린트가 널려 있었고, 며칠간 환기조차 하지 않았는지 공기는 텁텁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깜박한 것인지 싱크대가 있는 쪽에는 초파리가 득실거렸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사무소 한가운데에서 소파도 아닌 바닥에 털썩 엎드려 미친 듯이 무언가의 자료를 읽고 있는 도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안 그래도 마른 체형이었던 사람이 비쩍 말라 한결 더 시체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슈세이는 성큼성큼 사무소 안으로 걸어 들어가 도손의 팔을 붙잡았다.

“시마자키, 그만 해.”

“어라, 슈세이… 안녕.”

그리고 도손은 쓰러지듯 잠들었다.

상경 후 제일 처음으로 본 도손이 그런 몰골이었다는 것은, 곧 슈세이가 사무소에서 생활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생활력을 수치화하자면, 집중하고 있는 상태의 도손의 생활력은 제로에 가까웠다. 평상시에는 일반적인 사람처럼 생활할 수 있었지만,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혼자 내버려두면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다가 방을 난잡하게 어지럽히기 일쑤였고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집중하고 있으면 그 집중이 끊길 때 까지 수면을 취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의 식 주 삼박자가 골고루 망가지는 생활이었고, 그걸 옆에서 붙잡아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것이 굳이 슈세이 자신이 될 필요는 없었으나, 그때의 슈세이는 어쩐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슈세이는 괴이해결대행 사무소 소장 시마자키 도손의 조수가 되었다. 하는 일은 조수라기보다는 생활 도우미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슈세이, 좋은 아침.”

“좋은 아침, 시마자키. 토스트 먹을 거지?”

“응.”

슈세이는 익숙한 듯 찬장에서 두 사람분의 접시를 꺼냈다. 처음 사무소에 왔을 때는 제대로 된 식기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때 근처의 마트에서 저렴한 것을 급하게 사온 것이었다. 고양이가 그려진 세트 접시 위에 노릇하게 잘 구워진 프렌치토스트가 올라갔다. 성인 남성 둘이 쓰기에는 어쩐지 조금 귀여운 감이 있는 디자인의 머그컵에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커피가 채워졌다. 슈세이가 토스트 접시를 들자 도손이 어느새 다가와 커피잔을 들었다. 아침 식사는 언제나 해가 잘 드는 테이블에서 먹는 것이 일종의 규칙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낡은 소파에 앉자 작게 삐걱하는 소리가 났다. 이것도 조만간 바꿔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슈세이는 토스트를 포크로 잘라 입에 넣었다. 제법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적당히 촉촉하고 부드러운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보니 슈세이.”

“응?”

“오늘 저녁에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이상한 곳이면 안 가.”

“기묘한 소문이 돌고 있는 식당인데.”

“완전 수상하잖아. 너 내 말 하나도 안 들었지!”

“아니, 듣고 있었어.”

도손은 뻔뻔하게 슈세이의 말을 받아넘기고는 커피를 홀짝였다. 이제 이런 대화 패턴에 익숙해진 슈세이는 질렸다는 듯 도손을 쳐다보았지만 상대는 선택적 마이페이스의 달인 시마자키 도손인지라, 그다지 효과는 없는 듯했다. 커피잔을 입에서 뗀 도손이 말을 이었다.

“그 식당, 여우가 운영한다나 봐.”

“여우?”

주인장의 별명 같은 건가. 슈세이가 의아한 얼굴을 하자 도손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여우처럼 생긴 사람이 운영한다거나, 가게 주인의 별명이 아니야. 그 가게는 정말로 여우가 운영한대. 개과에 속하는 동물 여우 말이야.

“그게 말이 돼?”

“그러니까 확인하러 가 보자는 거지.”

“너는 정말 꾸준히 질리지도 않고…”

“이게 내 일이잖아.”

“의뢰도 아니잖아.”

“같이 가 줄 거지?”

“너 또 내 말 안 들었지.”

“아니, 들었다니까.”

만담 같은 대화가 다시 한번 이어졌다. 슈세이는 싫다고 말할 생각으로 도손을 바라봤다. 그러나 슈세이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건 자신이 도손의 ‘부탁하는’ 표정에 꽤 약하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만화적 연출이었다면 반짝반짝한 효과라도 나타났을 것처럼 호기심으로 빛나는 도손의 시선을 결국 피하지 못한 슈세이의 완패였다. 항상 이런 식이었지…. 슈세이는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며 깨끗이 비워진 접시를 정리했다. 알았어, 같이 가 줄게. 그 대답에 도손이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언제나 그랬듯, 평범하고 괴이하고 소란스러운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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