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우 식당 / 막간
믿거나 말거나
소문에 의하면, 여우가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고 한다.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인간이 운영하는 식당이 아닌, 털이 북슬북슬한 여우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 이 여우 식당은 현실과 이세계를 잇는 곳의 경계에 자리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아갈 수 없다. 여우 식당을 발견하는 조건은 단 하나다. 어떤 계절이건 해가 질 무렵, 노을이 붉게 타들어가는 시점에 막다른 골목길에 도착하는 것이다.
여우 식당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를 상대하는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절대 자신이 인간이라는 티를 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당연히 인간의 돈을 지불해서는 안 된다. 식사를 한 후 인간의 돈을 지불하고 살아 돌아온 자는 없다고 전해진다. 여우 식당에서 화폐로 통용되는 것은 나뭇잎이다. 마른 낙엽은 안 되고, 싱싱한 이파리여야 한다. 이파리는 싱싱할수록, 크기가 클수록 그 가치를 높게 쳐 준다. 한번 식사를 한 인간은 다시 그 식당을 찾고자 해도 발견하지 못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1. 여우 식당
“저기, 시마자키. 정말 있는 거 맞아?”
“무슨 소리야.”
“그냥 헛소문일지도 모르잖아. 흔한 도시괴담 같은 거 말이야.”
“아니, 분명히 존재해. 이쯤 되면 나올 때도 됐는데…”
도손은 메모지에 대강 그린 지도와 가는 길에 주운 플라타너스 잎 두 장을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슈세이는 도손이 헛소문에 홀랑 낚인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무소에서 나온 후로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가게는 발견하지 못했고 같은 골목만 몇 번째 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여우가 운영하는 가게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동화에나 나올 것 같은 가게가 어떻게 존재한단 말인가. 신도 요괴도 많은 나라이니 그런 괴담 하나쯤 있어도 나쁠 것은 없겠지만.
뉴스에서는 이 여름에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점심 내내 달궈진 아스팔트가 아직도 식지 않고 뜨거웠다. 아직 초여름인데도 이렇게나 더운 것을 보니,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면 얼마나 더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사무소에 선풍기를 놓을 것이 아니라 에어컨을 달아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의 수입으로 전기세가 감당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슈세이는 어쩐지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도손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맥락 없는 말을 뱉었다.
“아, 알았다.”
“뭐를?”
도손은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문득 고개를 들어 그쪽을 보자, 하늘이 노을에 예쁘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슈세이는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연분홍색 하늘이 구름과 섞여 색을 더하며 붉게 타들어갔다. 현실 세계를 벗어나 어딘가 다른 세상에 떨어졌다고 착각하게 될 정도로 현실감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저절로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예쁘다.”
“사람을 홀리고 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슈세이가 되물었지만 도손은 대답 대신 싱긋 웃으며 또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착한 모양이야. 손끝의 골목에는 허름한 가게가 한 채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이런 거 없었는데. 당황한 슈세이를 두고 도손이 앞서 걸어갔다. 뒤를 따라가는 꼴이 되었다.
가까이서 본 가게의 외관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도 낡고 허름했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여우 식당’이라는 네 글자가 적힌 작은 나무판자만이 간판도 없는 이 가게가 소문의 그곳이 맞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창호지가 발린 목조 미닫이문은 열려 있었다. 낡은 노렌을 걷어내자 여인의 목소리가 먼저 두 사람을 맞이했다. 뒤이어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그리고 슈세이는 그 자리에서 굳었다.
…진짜 여우잖아.
눈앞에 보이는 가게의 주인은 분명 여우였다. 그것도 제법 상냥하게 생겼고, 연노랑색 앞치마에 머릿수건까지 두른. 아니, 여우가 상냥하게 생겼을 수 있나? 상냥하게 생긴 여우라는 건 도대체 어떻게 생긴 여우지? 내가 너무 인간 중심적인 관점으로 이 여우를… 주인을? 여우를? 보고 있는 건가? 너무 당황해서 생각에 과부하가 걸린 슈세이를 두고, 도손은 손가락 두 개를 펴서 두 명이요. 하고 말했다. 어린 여우가 이쪽으로 앉으시라며 둘에게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카운터에 가까운 4인 좌석이었다. 곧이어 얼음물이 담긴 물컵 두 개와 낡고 손때가 탄 가죽 표지의 메뉴판이 자리에 도착했다. 뭐 먹을래? 도손이 메뉴판을 넘기며 슈세이에게 물었다.
“뭐 있는데?”
“직접 보고 고르는 편이 좋겠지?”
대답 대신 메뉴판이 돌아왔다. 슈세이는 여전히 살짝 긴장한 채 메뉴판을 넘겼다. 손글씨로 적은 것 같은 메뉴들은 이 식당의 괴이함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요리들이었다. 오므라이스, 햄 샐러드, 장어덮밥, 메밀소바… 그 외에도 계절 한정 메뉴라서 지금은 주문 불가인 듯한 전골까지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슈세이는 [추천 메뉴] 스티커가 붙어있는 유부우동을 골랐다.
“여기 유부 우동 두 개요.”
“네, 주문받았습니다.”
도손이 주문하자, 주방 쪽에서 상냥한 여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무사히 주문이 접수된 모양이었다. 한숨 돌린 슈세이는 가게를 둘러봤다. 조금 낡긴 했지만 따뜻하고 온화한 느낌을 주는 목조 건물은 나름대로 분위기 있었고, 카운터 옆의 작은 어항에는 물고기 몇 마리가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평범하게 괜찮은 가게였다.
“괜찮은 가게지?”
“뭐… 그렇네.”
“우리 엄마 우동은 진짜 맛있어요! 분명 형들도 맘에 쏙 들 거에요.”
도손과 슈세이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카운터 쪽에서 고개를 쑥 내민 소년 여우가 예고 없이 대화에 끼어들어왔다. 슈세이는 당황해 대답 대신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컵 안에서는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도손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받았다. 그래? 기대되는걸.
“내 이름은 곤이에요! 형들은요?”
“나는 시마자키 도손.”
“…나는 도쿠다 슈세이.”
얼떨결에 통성명까지 마쳤다. 유난히 붙임성이 좋은 여우임에 틀림없었다. 멋진 이름이네요! 작은 여우가 까르르 웃으며 앞발로 박수를 쳤다. 짝 소리 대신 발바닥 젤리가 퐁신 부딪혔다. 대화를 이어가기에는 미적지근한 두사람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곤은 말을 거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작은 여우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이나 최근에 생긴 친구 이야기를 신나게 재잘거렸다. 슈세이는 간간히 고개만 끄덕였고, 어쩐지 조금 들뜬 눈치의 도손은 열심히 말을 받아주었다. 말을 하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으니 당연한 것이었지만, 슈세이는 어쩐지 자신이 투명도 50 정도로 배경에 깔린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형들은 무슨 일 해요?”
“일? 음… 비밀이야.”
도손이 천연덕스럽게 말을 돌렸다. 곤은 볼을 부풀리며 알려달라고 도손을 졸랐지만, 상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직감적으로 곧 자신에게 질문이 돌아올 것을 알아챈 슈세이는 일부러 말을 돌리기 위해 물병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곧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곤이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형.”
“으, 응?”
“시마자키 형이랑 친구죠? 무슨 일 해요? 같은 일 해요? 알려줘요. 네-? 궁금하단 말이에요!”
“자, 잠깐만 곤. 그게…”
어이, 시마자키! 슈세이는 도와달라는 마음을 시선에 가득 담아 도손을 쳐다봤다. 그러나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눈이 마주쳤음에도 도손은 싱긋 미소를 짓고 그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우에게 직업을 말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라도 있는 건지, 아니면 도손이 그냥 변덕으로 직업을 알려주지 않은 것인지 슈세이로서는 알 수 없었기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저 곤란하기만 했다.
“형, 진짜 궁금한데 알려주면 안 돼요? 제발요-”
슈세이가 대답하지 못하는 동안 곤은 계속해서 매달렸다. 아, 이제 한계다, 싶을 때쯤에 주방 쪽에서 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곤, 그만 두지 못하겠니?”
주인 여우의 목소리였다. 꾸중을 듣자마자 곤의 귀가 아래로 축 쳐졌다. 풍성한 꼬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만 하고 이리 와서 음식 가져다 드려. 물병도.”
“네에…….”
축 처진 채로 터덜터덜 주방을 향해 걸어가는 작은 여우의 뒷모습이 영 힘이 없었다. 슈세이는 어쩐지 미안한 기분이 들어 그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가 도손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도손은 되려 무슨 일이냐는 듯 슈세이를 빤히 쳐다봤다.
“왜?”
“아니… 말해주면 안 되는 거야?”
“말해도 되는데?”
“응?”
“말해도 된다니까.”
“그럼 왜 굳이 숨긴 거야?!”
어쩐지 자기가 곤을 시무룩하게 만든 것 같아 기묘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슈세이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도손에게 따져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허무한 것이었다.
“글쎄, 재밌으니까?”
“너는 진짜…”
질렸다는 듯 머리를 짚는 슈세이를 보고, 도손은 되려 뻔뻔한 태도로 대꾸했다. 묘하게 장난기 있는 표정은 덤이었다.
“그러는 슈세이도 대답 안 했으면서 그래.”
“나는 몰랐잖아!”
이제는 정말로 억울해진 슈세이가 결국 먼저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시마자키, 너 저번에도 이런 식으로… 어떤 식으로? 그러나 마이페이스에는 이길 방법이 없었다. 결국 슈세이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이길 수가 없어… 타이밍 좋게 주방 쪽에서 곤이 유부 우동 두 그릇이 올려진 쟁반을 들고 총총총 걸어왔다. 슈세이는 도손과의 말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포기하고 우동 쪽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릇에 갓 담아낸 우동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유부를 아낌없이 썼는지, 맛있어 보이는 유부가 한가득 올려져 있었다.
슈세이는 유부를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짭잘한 풍미가 유부가 머금고 있던 국물과 어우러져 맛있었다. 잘 삶아진 면은 쫄깃했고 버섯은 부드러웠다. 과연 추천 메뉴 스티커를 붙일만한 음식이었다. 선풍기 바람이 닿았다 말았다 하는 가게 안은 따뜻한 음식을 먹어서인지 살짝 더웠지만 그 정도가 딱 적당했다. 가끔 닿아오는 벽걸이 선풍기 바람이 살랑살랑 머리카락을 스쳤다. 슈세이는 어딘가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단골손님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내어주는 주방장이 있는 식당에 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평화롭고 분위기 좋은 가게에서 괴이스러운 부분이라고는 카운터 의자에 앉아 지루한 듯 발을 까딱거리고 있는 곤이나, 주방 안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주인 여우 정도였다.
“슈세이, 계산은 내가 할게.”
“에, 반반 내도 괜찮은데…”
내가 내게 해 줘. 우동 국물을 호로록 마신 도손이 말했다. 원래도 입이 짧은 편인 그의 그릇에는 면이 1/3정도 남아 있었다. 다 먹었어? 슈세이가 그렇게 묻자 도손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를 듣고, 카운터에 거의 늘어지다시피 엎드려 있던 곤이 귀만 쫑긋 들어 세웠다. 계산하시겠어요? 손의 물기를 닦으며 주방 쪽에서 주인 여우가 나왔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나요?”
“아, 네. 맛있었어요.”
다행이네요. 슈세이의 대답에 주인 여우가 웃었다. 슈세이는 여전히 여우의 표정을 자신이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가에 대해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도손은 지갑을 꺼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게는 변한 것 하나 없이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평화로웠다.
그 평화가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도손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것을 보고 주인 여우는 건조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손님, 진심이신가요? 장부에 수기로 매상을 기록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둘을 쳐다보는 여우의 눈은 여느 개과의 눈동자와 다르지 않은, 검은 눈동자로 가득 찬 것이었다. 흰자위가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데도, 슈세이는 그 깊고 검은 눈동자에 이질적인 섬뜩함을 느꼈다.
“저희는 인간의 돈은 받지 않습니다.”
“아, 저기, 잠깐.”
“인간의 돈은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명백한 적의였다. 여우는 이제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평범한 식당이었던 공간은 눈치챈 순간 붉은 토리이가 끝없이 늘어선 어두운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축축한 개 냄새가 났다. 갑자기 마주하게 된 기이한 광경에 슈세이는 무심코 뒷걸음질쳤다.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데도 여우의 크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이족보행을 포기하고 네 발을 땅에 디딘 거대한 짐승이었다. 그것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좀처럼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도망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무언가의 의지가 몸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슈세이는 시선을 돌려 도손을 바라봤다. 도손은 거대한 여우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 같았다. 슈세이와는 다르게 행동에 제한을 받고 있지 않은 것인지, 조금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도손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여우에게 물었다.
“왜 인간의 돈은 받지 않는 거지?”
“당신에게 알려줄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게 나오니 더 궁금해지는데.”
뭐 하는 거야, 시마자키! 슈세이는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상황을 잠자코 지켜봤다. 어차피 말할 수 없었다. 이런 일촉즉발의 분위기에 저렇게 태평하게 남의 속을 긁을 수 있는 것은 시마자키 도손 뿐이었다. 여우는 이제 거의 크르렁거리고 있었다. 부탁해, 시마자키, 해결은 둘째치고 일단 저 여우의 성질을 더 긁는건 그만둬! 그런 마음을 담아 슈세이는 도손을 바라봤다.
“뭐… 말해줄 수 없다면 할 수 없지.”
도손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예쁘게 잘 접은, 초록색 플라타너스 잎이었다.
“계산, 지금 해도 괜찮지?”
“네, 확실히 받았습니다-!”
어디선가 곤의 목소리가 들렸다. 슈세이는 자신을 짓누르던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눈을 감았다 뜨니 토리이들이며 축축한 개 냄새는 온데간데없고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유부우동을 먹었던 아늑하고 편안한 가게 안이었다. 거대한 여우 역시 보이지 않았다. 주방 쪽에서는 물소리가 들렸다. 설거지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곤은 카운터 아래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 도손에게 받은 플라타너스 잎을 잘 펴서 그 안에 넣었다.
“아, 정말. 시마자키 형, 처음부터 제대로 계산했으면 좋았잖아요.”
“일할 때 버릇이 나와버려서. 인간을 상대로 일하고 있거든.”
“헤에, 무슨 일 하는건지 진짜 안 가르쳐 줄 거에요?”
아까의 긴장되어있던 분위기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이제는 둘이서 편하게 대화까지 주고받고 있었다. 도손은 슈세이 쪽을 한번 힐끗 보더니 언제나 그렇듯 농담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어조로 곤에게 대답했다. 으응, 내 친구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서 말이지. 곤도 이제는 딱히 궁금하지 않은 건지 그러려니, 하는 말투로 그렇구나— 하고 말꼬리를 늘렸다. 낡은 노렌을 걷어내고 마주한 하늘은 해가 거의 저물어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다음에 또 오세요! 등 뒤에서 곤의 명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슈세이는 차마, 응, 이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이런 괴이한 경험은 절대 사절이었다.
가게를 나와 둘은 나란히 걸었다. 처음 올 때 헤맸던 것과는 달리 돌아가는 길은 허무할 정도로 쉬웠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걸어 도착한 사무소 건물의 낡은 계단을 오르던 도중에 도손이 말을 걸었다.
“그래서 슈세이.”
“응?”
“소문의 여우 식당은 어땠어?”
잔뜩 들뜬 것 같은 표정과 어조. 그래서 슈세이는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아!
막간
여우 식당에 다녀온 지도 벌써 꽤 지났군, 달력을 넘기며 슈세이는 생각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어이없을 정도로 빨라서 조금만 움직여도 달이 훅훅 넘어갔다. 달이 바뀌는 사이 사무소에는 몇 가지 사건이 지나갔다. 하나는 한동안 의뢰도 오지 않아 이제 정말로 대출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던 때에 타이밍 좋게 근처의 작은 신사에서 의뢰가 들어와서, 신사 안에서 일어났던 괴이한 일-사실은 동네 꼬마의 짓이었다-을 해결해주고 제법 괜찮은 보수를 받았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보수로 사무소에 에어컨을 달았다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자 기온은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갔다. 폭염에 쓰러지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슈세이는 고향에 있을 스승을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늙지는 않았지만, 괜찮으실까. 하지만 그의 다른 제자가 알아서 어떻게든 해 줄 것이다. 그는 아마 에어컨이 고장 나면 스승의 옆에서 쉬지 않고 부채질을 해줄 테니까. 그 정도로 스승에 대한 존경이 대단한 사람이니까,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두자. 슈세이는 간만에 떠오른 고향 사람의 생각을 넘겨버렸다.
찬장에서 유리컵을 꺼내, 냉장고의 시원한 보리차를 따랐다. 에어컨 바람은 시원했고 화장실에서는 샤워기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대로 비슷한 나날이 계속된다면 분명 평온한 여름이 될 것이라고, 슈세이는 조금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애석하게도 곧바로 들려온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가볍게 부서지고 말았다. 꽤 이른 시간에 찾아온 손님들이 문밖에서 조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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