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편 (2018~2023)

난 네 연애상담 안 해줄 거니까 물어보지 마라

独司書 돗포사서 + 중간에 껴서 피곤한 슈세이 (19.04.11)

오늘도 우리 사서 씨가 마구 울며 달려왔다.

요즘의 일상을 소설로 쓴다면 분명 첫 문장은 그런 것이 되겠지. 슈세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읽던 책 사이에 가름끈을 끼웠다. 부러 탁 소리가 나도록 책을 덮자, 벚꽃잎이 포르르 양장 표지 위로 내려앉는다.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곧 바람이 세차게 불어 꽃잎이 마구 날리며 연못 위로 쏟아졌다. 아, 절경이다. 봄이다. 이 시기의 정원은 평온하고 아름다워서, 그림이 된다.

"사서 씨."

"응……."

"이제 다 울었어?"

옆자리의 사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아직도 눈에 눈물이 고인 채다. 슈세이는 한숨을 쉬며 사서의 머리카락에 붙은 꽃잎을 떼어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인데? 라고 묻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말을 아낀 것뿐이었지만 사서는 그걸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라도 했는지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들어봐 슈세이, 오늘도 돗포 씨가…으, 훌쩍…."

"그러니까 쿠니키다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말을 얹고 있는 자기 자신의 행동에 아차 한 슈세이가 말을 멈췄다. 진짜 안 들어 주려고 했는데.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봄, 봄, 봄. 다 계절이 문제다. 이놈의 봄이 사람을 다 이상하게 만드는 거다. 몇 달간의 삽질을 끝내고 사서 씨와 쿠니키다가 연애를 시작했다. 그 몇 달 간 중간에 끼어서 원하지도 않았던 상담 역할을 하느라 얼떨결에 To me From me의 편지-슈, 슈세이. 뭐라고 답장해야 하지? 이렇게 쓰면 될까?!, 아. 슈세이, 이것 좀 봐줘. 답장으로 이렇게 보내려고 하는데….-를 주고 받으며 나는 나 자신과 연애한다 같은 기분을 느꼈던 것을 생각하더라도 어쨌든 좋은 일이었다. 사서 씨가 웃으며 "슈세이, 덕분에 잘 될 수 있었어. 고마워…."라고 감사의 말과 함께 역 앞의 인기 있는 케이크 가게에서 하루 30개 한정으로 판매하는 딸기 쇼트케이크를 내밀었을 때는 어쩐지 훌륭하게 키워낸 딸을 시집보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정말 잘 됐다. 이제 상담도 끝이겠지. 그러나 끝은 시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때의 슈세이는 앞으로 어떤 일이 자신에게 닥쳐올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귀기 시작한 이후로도 두 사람은 꾸준히 상담을 요청해왔다. 처음에는 무슨 심각한 문제라도 있나 싶어서 진지하게 응해주었던 슈세이였지만, 이제 와서는 이게 다 무슨 부질이냐 또 상담하러 올 텐데 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담 주제가 언제나 원 패턴이었기 때문이다.

'슈세이, 돗포 씨가 자꾸 데이트 신청을 돌려 돌려 거절하는데 나 미움받고 있는 걸까….'

밀당이었다. 참고로 그 주 주말에 성공적으로 데이트를 하고 왔다.

'으아앙 슈세이…. 돗포 씨가 편지 답장을 안 해줘….'

이것도 밀당이었다. 그날 저녁에 꽃다발 들고 사서실로 찾아왔단다.

'훌쩍, 으, 슈세이, 돗포 씨가….'

안 봐도 밀당이다. 어느 날은 아무리 사서씨가 놀리기 좋은 성격의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지 조금 심하지 않나 싶어서 쿠니키다에게 그만 좀 하라고 지나가는 말로 툭 던졌더니,

'그렇지만 사서 씨가 너무 귀여운걸.'

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슈세이는 그때서야 이대로 자신은 이 멍청이 커플의 사이에 껴서 연애사정을 듣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뭐, 백 보 양보해서 사서 씨야 연애가 거의 처음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쿠니키다는 한 술 더 떴다.

'슈세이, 사서 씨가 웃었어. 귀여워.'

그러냐.

'손잡는 것도 그렇게 떨려 하는데 키스는 언제 하지?'

알 바야?

'큰일 났어, 슈세이. 사서 씨가 너무 귀여워.'

어쩌라고?

저기, 나는 너희 일기장이 아니거든…. 이런 식이다 보니 이걸 어떻게 헤어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이 연애상담, 상담의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정확히는 상담이라기보다는 대나무숲에 털어놓는 것에 가까운 대화는 늘 사서씨가 우는 소리로 "돗포 씨 너무 어려워…."라고 말하거나 쿠니키다가 올라간 입꼬리를 감추지 못하고 "사서 씨 너무 귀여워…." 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믿고 털어놓는데, 적어도 사서 씨의 말에는 진지하게 응해주는 것이 예의겠지. 아직도 울먹이며 오늘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 사서를 보고 있자니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대부분의 문제는 서로 너무 좋아해서 죽고 못 살다가 생기는 것임을 슈세이는 잘 알고 있다. 아주 긴 한숨을 토하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슈세이는 사서의 말에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사서 씨, 그렇게 불안하면 정말 좋아하는 거 맞냐고 물어보는 건 어때?"

"엣, 그건 좀…."

"쿠니키다 입에서 NO 라는 대답이 나올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 그래도…"

타이밍 좋게 저쪽에서 쿠니키다가 손을 흔들며 걸어왔다. 자, 가서 말해봐. 슈세이는 머뭇거리는 사서 씨의등을 가볍게 밀어주었다. 어, 어어, 하면서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난 사서가 슈세이의 얼굴을 한 번, 쿠니키다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쭈뼛쭈뼛 쿠니키다의 앞에 다가가 섰다.

"사서 씨, 무슨 일이야?"

"도, 돗포 씨."

"응?"

"저를 정말 좋아하세요?!"

"으음…글쎄."

잠시 정적.

뒤를 돌아 있어서 볼 수는 없지만, 사서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슈세이는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에 나올 답은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사랑해."

"가,갑자기 껴안으시면…!"

"사서 씨는 어때? 나를 정말 좋아해?"

"엣, 저, 저는…."

"응?"

"으으, 저도 사랑해요……."

하아…. 잘들 논다…….

슈세이는 부러 달달한 공기가 넘치는 저쪽을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덮었던 책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절경이라도 저 바보들이 이러고 있는 곳에서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 벚꽃 잎이 하늘하늘 휘날렸다. 슈세이는 얄미울 정도로 푸른 하늘을 한 번 바라보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진짜 <난 네 연애상담 안 해줄 거니까 물어보지 마라> 티셔츠라도 만들어야 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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