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해결 대행사무소

2. 신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 / 막간

 

 

 

 

 

믿거나 말거나

 

해가 진 후의 밤은 인간이 아닌 것들의 시간이다. 특히 으슥한 골목일수록 인간이 아닌 것들을 더 쉽게 만날 수 있는데,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의 길이가 가장 짧아지는 하지를 지나면 비로소 조금씩 그것들은 실체를 얻어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드문 빈도로 발생하며 목격하기 힘든 것은 인간 아닌 것들이 심야에 무리지어 나타나 마을을 배회하거나 행진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백귀야행百鬼夜行이다. 당연하지만 일반적인 인간은 귀신을 볼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우연히 백귀야행과 마주하게 되었다면 절대로 무리의 우두머리에게 자신이 인간임을 들켜서는 안 된다. 만약 들키고 말았다면, 당신의 영혼은 괴이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2. 신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

 

 

 

 

 

 

사무소에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가득했다.

“......”

“......”

그리고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슈세이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얼음 띄운 보리차를 홀짝이고 있는 아이 셋. 셋 모두가 낯선 얼굴은 아니었다. 일전에 해결했던 신사 사건의 범인이 그 안에 끼어있었기 때문이다.

손대서는 안 되는 거울이 매일 깨끗하게 닦여 있으니 진상을 알아봐 달라던 의뢰였다. 신의 거울이라고 불리는 그 오래된 거울은 사람의 속내, 즉 사람의 본질을 비춰낸다던 신묘한 물건이라고 했다. 신사의 신주는 누군가 신물에 손을 댔다는 것을 매우 걱정스러워 했다. 슈세이는 딱히 전설을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의뢰는 의뢰니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의 돈을 받고 일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사병 환자가 속출하는 살인적인 무더위에 냉방도 안 되는 신사 구석에서 하루를 꼬박 잠복하며 고생했던 것은 이번 여름의 잊지 못할 괴로운 추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잡아낸 범인은 니이미 난키치라는 근처 초등학교의 학생이었다. 예쁜 거울에 자꾸만 먼지가 끼는 것이 안타까워서 잘 닦아준 것이었다며, 멋대로 숨어들어가 죄송하다고 시무룩한 목소리로 사과하는 어린아이를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다. 난키치는 별다른 벌을 받지 않고 가벼운 주의를 받은 뒤 집으로 돌아갔다. 보수는 제대로 지급되었으므로 도손도 슈세이도 딱히 그 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끝난 사건이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했더니 그 애였나… 슈세이는 사무소에 에어컨을 달게 해준 고마운 사건에 대해 짧은 회상을 마쳤다. 맞은편의 난키치는 슈세이가 그 일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슈세이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부담스러워…’

어쩐지 관찰당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슈세이는 살짝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옆의 초면인 다른 두 아이는 얌전히 보리차를 마시거나 사무소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색한 정적이 계속 이어졌다.

“아!”

갑자기 난키치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탄성을 내뱉었다. 슈세이도, 난키치의 옆에 앉아있던 아이들도 깜짝 놀라 난키치 쪽을 쳐다봤다.

“난키치,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면 안 돼.”

“그치만 미메이, 역시 곤이 말해줬던 그 사람이랑 같은 사람인걸!”

“또 그 이야기야? 아무튼, 갑자기 큰 소리 낸 건 사과하자.”

“응, 죄송합니다…”

우와, 대화의 속도 못 따라가겠어. 갑자기 무슨 화제야 이게? 얼떨떨한 슈세이를 두고, 미메이라고 불린 소년은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빠르게 교통정리를 했다. 옆에서 다른 소년은 ‘난키치, 오늘 여기에 놀러 온 게 아니잖아.’라며 대화의 화제를 원점으로 돌렸다. 둘 다 어른스럽고 침착한 아이였다. 난키치는 소년의 말에 아, 맞다. 켄쨩, 고마워.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의뢰인?”

“시마자키.”

타이밍 좋게 막 샤워를 끝낸 도손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수건으로 털지도 않아서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그대로 두고 도손은 곧바로 소파에 앉으려 했다.

“머리 말리고 와.”

“그치만 무슨 사건인지가 더 궁금한데.”

“안 돼. 말리고 와.”

“말리면서 들으면 안 돼?”

“허락해 줄 거라고 생각해?”

소파에 나란히 앉은 아이 셋은 만담 같은 대화를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봤다. 난키치는 아예 시선을 도손에게 고정하고 예의 그 관찰하는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악의는 없겠지만 느껴지는 순수한 궁금증이 담긴 시선들에 슈세이는 어쩐지 뒤통수가 조금 따끔따끔한 것 같았다. 상대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도손은 단념하고 “그럼 머리 말리고 올 테니까…”라며 방으로 들어갔다. 슈세이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뒤를 돌았다.

“음, 그러니까… 복숭아라도 먹을래?”

다시 한번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사무소 안에 가득 찰 예정이었다.

 

* * *

 

아, 복숭아 고마워…요. 오늘 여기 온건 다름이 아니라 괴이현상 비스무리한걸 겪어서 그런 건데, 아. 내가 겪은건 아니고 난키치가 겪었어…요. 에, 말 편하게 해도 괜찮다고? 그럼 사양 않고… 일단 나는 오가와 비메이. 이쪽은 미야자와 켄지, 그리고 니이미 난키치. 우리 셋은 같은 반 친구. 셋이서 며칠 전에 마을 축제 준비를 도우러 갔었어.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고, 잔심부름 정도를 도왔는데,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되고 나니 해가 져서 어른들이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어. 음, 어른들은 조금 더 남아서 연습을 한다고 했어. 음악을 틀어놓고 춤 연습같은 걸 한다는 거야. 우리는 축제 당일에 그걸 보고 싶었으니까, 미리 보면 흥이 깨질 것 같아서 그냥 집에 가기로 했고.

아, 비메이. 다음은 내가 얘기할게! 평소라면 그냥 가까운 길로 집에 갔을 텐데, 날이 덥기도 했고 셋 다 목이 말라서 음료수라도 마시자! 하고 가게가 있는 조금 먼 길로 돌아가기로 했어. 먼 길이라고 해도 아주 멀리 돌아가는 건 아니고, 그냥 조금 돌아가는 정도의 길이야! 그래서 셋이서 걸어가는데, 갑자기 축제 음악 소리가 들렸어. 아까 어른들이 춤 연습을 한다고 했었지, 싶어서 셋 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넘겼는데, 분명 어른들이 있던 곳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 축제 음악 소리는 점점 가까워진다니, 너무 이상한 일이잖아. 어쩐지 조금 으스스하긴 했지만 그냥 넘길 법도 한 일이었는데, 그러지 못했어.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는걸. 그건 아무래도 넘길 수 없는 이상한 일이지. 왠지 궁금해져서 소리가 어느 쪽에서 나고 있는 건지 찾아가 보기로 했어.

난 반대했지만 말이야.

하하… 비메이는 확실히 반대했지.

뭐,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 지금 이렇게 말해도 소용없지… 그래서 소리를 따라 걷기로 했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확실히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직감에 의지해서 골목을 걸었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고, 어디서 또 춤 연습이라도 하고 있는 거겠지 하는 느낌으로 찾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좀 이상했어. 그도 그럴게 이번 여름, 꽤 더웠잖아. 그런데 걸을수록 어쩐지 점점 한기가 느껴지는 거야. 그 주변은 전부 주택가라 에어컨을 틀어놓고 문을 열어놓을 가게 같은 것도 전혀 없고, 있는 거라고는 가로등이랑, 길이랑, 담장 정도인데. 게다가 축제 음악 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와서 귀가 아플 정도였어. 이쯤 되면 괴이한 일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게 되잖아.

그거 미메이 얘기야?

시끄러워, 난키치.

한마디밖에 안 했는데…

아무튼, 다음은 네가 얘기해.

으응, 알았어. 그러니까, 이 골목을 돌면 뭔지 알 수 있겠다- 싶던 순간이었는데, 그 쪽에서 먼저 골목을 돌았어. 그리고 우리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모두 얼어붙었는데, 그게 뭐였냐면… 있지, 그 그림 알아? 우키요에인데, 귀신들이랑 요괴들이랑 잔뜩 모여서, 뭔가 행진하듯이 걷고 있는… 아, 맞아! 백귀야행? 이라는 말이 딱 맞을 것 같아. 켄쨩이랑 미메이는 전혀 아니지만 나는 그 전에도 뭔가 희끗하게 보일락 말락 하는 건 조금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선명하게 많은 수의 괴상한 것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 그냥 본 걸로 끝났으면 아무 일 없었을 거야. 사실 도중까지는 아무 일 없이 행진을 보고만 있었어. 그쪽에서도 딱히 우리를 눈치챈 것 같지는 않았고, 그대로 있었으면 아무 일 없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내가… 소리를 내 버렸어. 발치에 깡통 같은 게 떨어져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발로 건드려버린 거야. 축제 음악이 워낙 커서 눈치 못 챌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순식간에 음악이 끊기고 웅성거리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시작하는 거야. 무리의 맨 앞에 선 덩치 커다란 사람…같이 생긴 무언가가 굉장히 성내고 있었고. 점점 어느 쪽에서 났어, 아니야 이쪽이야, 하면서 우리가 있던 쪽을 향해 하나둘 고개를 돌리는데 겁이 나서 울어버릴 것 같았어. 그게 있지, ‘응시당하고 있다.’라는 감각 알아? 그런 느낌으로 하나둘 이쪽을 쳐다보는 거야. 정말 무서웠어. 켄쨩이랑 미메이를 쳐다보는 게 아니야. 그것들 눈에는 나만 보이는 것 같았어. 도망치고 싶었지만 거기서 움직이면 더 큰일이 날 것 같았어…. 그렇게 굳어 있었는데 고개를 살짝 들었다가, 그 무리의 가장 끝에 서 있던 여자분이랑 눈이 마주쳤어. 키가 무척 컸고, 은발이 예쁜 사람이었는데 정말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어…. 아무튼, 그 사람은 사뿐사뿐 느긋한 걸음으로 내 쪽으로 걸어왔어. 잡히는 걸까, 잡히면 어떻게 되는 걸까 긴장하며 눈을 질끈 감았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내게 무언가를 씌웠어. 가면이었어. 무리의 맨 앞에 있던 덩치 큰 녀석이 “어이, 거기 뭘 하는 거냐.” 라며 이쪽으로 걸어왔어. 그랬더니 여자가, “뭐냐니, 내 아이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는데. 행진은 처음이라 규칙을 잘 모르기에 인간의 것을 건드린 것 같아서.”라고 맞받아쳤어. 내 아이라고 하는 게 조금 걸렸지만 그 상황에서 물어볼 자신은 없어서… 물어보지는 못했어. 남자는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았지만 여자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못 본 사이에 시동侍童을 들였나? 오랜만이군 그래. 당신답지 않게 귀찮은 짓을 잘도 하는군.”라고 말하고 다시 행진을 지휘하기 시작했어.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남자가 행렬 앞쪽으로 떠나자 다시 축제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앞의 사람들이 걷기 시작했어. 나는 가면을 벗으려고 했는데, 여자가 나를 막았어. 친절하게도 눈높이를 맞춰 주려고 무릎을 굽혀서 이렇게 말해줬어.

“행렬이 보이게 되지 않을 때 까지는 벗지 마. 그리고 가능하면 늦은 여름밤에는 돌아다니지 말도록 하렴, 난키치. 언젠가 또 놀러와 주렴.”

그렇게 말하고는 게타를 또각거리며 행렬을 따라갔어. 나는 그분이 말한 대로 행렬이 골목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 가면을 벗었어.

그 뒤로는 비메이랑 난키치랑 손을 꼭 잡고 걷다가 원래 목적지였던 가게에 들러서 음료수를 마시고, 가게 주인 아저씨께서 집까지 데려다 주셔서 집에는 무사히 도착했어. 우리 얼굴이 너무 창백했으니까 분명 걱정돼서 마음 써주신 거겠지, 언젠가 감사인사를 드리러 다시 가야겠다. 아무튼, 이게 그날 겪은 일의 전부야.

응. 그래서 말인데, 내 의뢰는… 이 가면을 준 사람, 인지 아닌지 모를 그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신인지 요괴인지 뭔지도 전혀 모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러니까 괜찮으면, 그분의 이름을 조사해주지 않을래요? 부탁합니다…!

 

소년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 * *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생긴다.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곳에는 괴이한 것이 꼬이기 마련이다. 괴이는 그런 식으로 자라나고 전달된다. 결국 모두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에 의해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이다.

“팔백만의 신이 있다고 하지만 결국 다 인간이 만들어 낸 거지.”

인간이 만든 신의 나라, 얼마나 이질적인 단어들의 결합인지.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도손이 말했다. 상상하는 인간의 수만큼 만들어진 신이 존재하게 되지. 별로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 먼 조상을 신으로 모시는 것도 비슷한 이야기야. 신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태어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해. 책상 위에 올려둔 물컵의 표면에 물방울이 맺혔다. 도손은 이제 무의미하게 마우스를 딸깍거리는 것도 질렸는지 턱을 괴고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웹 서핑 같은 거 해서는 못 찾을 거라는 말이야.”

“그럼 달리 방법이 있어?”

“있지 슈세이, 나는 만들어진 신에 상당히 흥미가 있어.”

신은 어떻게 해서 태어나는 걸까? 어떤 조건이 만족되어야 하는 걸까? 어느 정도의 기간과 신앙과 사랑이 있어야 신이 되는 걸까? 신도의 수는 상관없을까? 강한 믿음이 있으면 신이 태어날까? 궁금하지 않아? 도손은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며 궁금증을 연거푸 토해냈다. 꼭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은 모습에 슈세이는 기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하자 사무소의 기이한 분위기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도손은 슈세이와 눈을 마주쳤다.

“시마자키, 우리가 받은 건 신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가 아니잖아.”

“하지만 만들어진 신인지 아닌지 그 애가 어떻게 알지?”

“하아… 애초에 그게 신인지 요괴인지도 모르는 거잖아?”

“그러니까 도전해보고 싶은 거야.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 괴이가 있어. 그게 뭘 의미하냐면… 어차피 제대로 된 이름을 찾아준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우리가 부여하는 의미나 가치에 따라 같은 이름의 전혀 다른 괴이가 될 수 있다는 거지. 어차피 완벽한 것을 찾아줄 수 없다면 차라리 새로 만드는 게…”

“시마자키, 그만.”

계속되는 도손의 고집에 슈세이는 손으로 도손의 입을 막았다. 도손은 고개를 들어 슈세이를 쳐다봤다. 슈세이는 드물게도 단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고집부리지 마. 네가 해보고 싶은 건 잘 알겠는데, 흥미와 의뢰는 구분해야지. 의뢰인에게도 실례야.”

“…….”

“애초에 완벽한 것을 찾아줄 수 없다면 가장 비슷한 것이라도 찾아주는 게… 손바닥 핥지 마!”

“…….”

“아, 핥지 말라고! 잠깐만, 손 뗄 테니까!”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사람이 아니지. 결국 1승을 따낸 도손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슈세이는 이제 다 포기한 표정을 지었다. 티슈로 손에 묻은 타액을 닦았다. 아무튼 이길 수가 없는 상대였다. 슈세이, 손이 약하구나? 아니, 그렇게 말하지 마. 이상하잖아….

“그렇지만 슈세이, 이름을 찾아낼 뾰족한 수라도 있어?”

“없어. 그러니까 생각해 봤어.”

슈세이는 숫자를 세려는 듯 손가락을 모두 접었다. 도손은 익숙한 듯 편한 자세로 고쳐 앉는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모두 추측일 뿐이니까,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말해줘. 대단한 건 아니지만…. 조수 역의 추리가 시작됐다.

첫 번째 손가락을 편다.

“우선 첫째. 그것은 여성형이거나, 여성형에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근거는 난키치의 말, 은발의 키가 큰 여성이라는 증언.

둘째, 그것은 시동을 들일 수 있는 위치의 존재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잡귀나 이름 없는 귀신은 아닐 거야. 신이라던가, 조금 메이저한 요괴일 가능성이 유력해지지. 좀 빠르지만, 여기서는 일단 신이라고 가정해 봤어. 그리고 여기서 이어서 셋째. 그 신은 오랫동안 잊혀진 존재였을 것이다. 행렬의 선두는 그녀에게 ‘못 본 사이에’, ‘오랜만이군’ 같은 표현을 썼다고 했어. 맥락상 그녀를 못 본지 꽤 됐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시동을 들인 게 오랜만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지. 아무튼 둘 다 어느 정도 맞는 해석이라고 생각해. 조금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아니, 여기서부터는 내 개인적인 억측이 꽤 많이 들어가. 듣다가 영 아니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역시 말해줘.”

괜찮으니까 계속해봐. 도손은 고개를 끄덕인다. 슈세이는 잠깐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그래. 시동은 주인 되는 자를 모시는 존재야. 그 존재를 신이라고 가정했을 때, 시동이란 신을 믿는 자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없던 것이 갑자기 생겼다… 잊혀져 있다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최근에 다시 신의 위치를 얻게 됐을 확률이 있어.”

“흥미롭네… 거기서 니이미 난키치가 엮이는 거구나.”

“아, 응. 사실은 마지막 말에서 유추했는데, ‘또’ 놀러와 달라니, 꼭 예전에도 놀러 간 적이 있다는 것처럼 말하잖아. 그렇지만 난키치는 그 존재와 초면이었다고 했으니까 제대로 된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소리가 되는데 말이지. 어쩌면, 이건 정말로 가정이지만…”

슈세이는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사무소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말을 이어받은 것은 도손이었다.

“그 존재가 어쩌면, 그 사건의 신사에서 모시던 신일지도 모른다는 거지?”

“응.”

긍정의 대답과는 달리, 슈세이는 도손의 말을 별로 긍정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도손은 그런 슈세이를 지긋이 응시했다. 시선을 느낀 슈세이가 눈을 피하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상 위에 있던 물컵을 가볍게 흔들었다. 덜 녹은 얼음이 부딪혀서 잘그락, 하는 소리가 났다.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닫아둔 창문 틈새로 밖에서 힘없이 울어대는 매미 소리만 몇 번 들려왔다.

슈세이는 두려웠다. 단순히 우연이 겹쳐서 소름이 돋는다던가 하는 가벼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괴이는 인간으로부터 태어나는 것. 그렇기에 가정에 가정을 겹쳐 쌓아올린 어떤 논리에서, ‘이거다’ 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답이 도출되었다는 것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그 실체 없는 불안이 육신을 얻어, 소중하게 가꿔온 평온한 일상을 좀먹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슈세이가 좀처럼 입을 열 기색을 보이지 않자 도손은 슈세이에게 들고 있던 물컵을 내밀었다.

“뭐야?”

“마셔.”

목이 타기도 했고, 딱히 거부할 이유도 없었으므로 슈세이는 얌전히 컵을 받아 물을 마셨다. 차가운 것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감각이 들자 그제야 조금 현실감이 들었다. 물컵을 거의 비울 때쯤, 도손이 입을 열었다.

“지금 나랑 간접키스 한거야.”

“응?!”

아니, 현실감 어쩌구 취소. 슈세이는 마시던 것을 도로 뱉을 뻔 했다. 너무 당황해서 사레까지 들렸다. 콜록거리는 슈세이의 등을 차분히 쓸어주면서 도손은 뻔뻔하게 웃었다.

“왜, 그렇게 싫어?”

“콜록, 아니, 좀…!”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야.”

슈세이는 쓰게 웃었다. 예전부터 그랬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도손은 가장 빨리 슈세이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사람이었다. 도손은 둔감한 듯 보여도 주변인의 변화에 민감했다. 알아차리는 것은 언제나 빨랐다. 다만 입 밖으로 그것을 꺼내지 않을 뿐이었다. 상대가 필요로 하기 전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다만 손을 내밀면, 주저하지 않고 그 손을 잡는다. 슈세이는 도손의 그런 부분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슈세이는 도손의 손을 잡았다.

“신사에, 갈까.”

손에 잡히는 온기는 명확한 현실이다.

 

* * *

 

신사에 도착하고 난 뒤로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였다. 구면인 신관은 둘을 반갑게 맞아주며 이야기를 해 주었다. 거울에서 나 자신을 빼면 신이 남는다고 하죠. 그렇다면 거울에서 신을 빼면 나 자신이 남는 것입니다. 이 거울은 인간의 본질, 본연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인간이 아닌 것은 비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고결한 마음에 한층 더 가까워지게 하는 장치죠.

그러면 결국 일반 거울과 다를 것 없는 물건이 아닌가, 슈세이는 생각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은 있었다.

“보통 신사에는 신체神体로 거울을 두던데, 그러면 이 신사에는 거울이 두 개 있는 건가요?”

“네, 그렇죠.”

도손의 질문에 대답한 신관은 그 사건 이후 신도들이 원한다면 신체가 아닌 쪽의 거울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린 아이도 빛바랜 거울을 안타까워하는데, 신관인 제가 손 놓고 있으면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반성했죠.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슈세이와 도손은 그 존재의 정체를 확신했다. 신이 깃들어있는 물건인 신체는 따로 있다. 난키치가 손댄 것은 신체가 아닌 쪽의 거울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츠쿠모가미, 시간이 지나 오래된 물건에 깃드는 신. 이것이야말로 사건의 해답이었다.

신사에서 나온 슈세이는 난키치에게 소식을 전했다. 전화를 한 후 대강의 설명과 함께 알아낸 내용을 전달하자, 휴대폰 너머의 난키치는 감탄하며 즐겁게 웃었다. 은인을 알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기쁜 모양이었다. 저기, 괜찮다면 이번 주 축제날에 다 함께 모여서 그 신사에 가지 않을래요? 제대로 된 인사를 하고 싶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도손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축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거리는 제법 시끄러웠다. 길가를 따라 늘어선 노점상에 축제 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평소에는 한적하던 거리가 북적거렸다. 인파를 뚫고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세 아이가 슈세이와 도손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늦어서 미안. 기다렸니?”

“아니, 전혀! 우리도 방금 도착했는걸.”

한손에 사과사탕을 든 켄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신사는 다행히도 축제 장소와는 조금 떨어져 있어서 아직까지는 사람이 적었다.

“그래도 얼른 다녀와야 해. 불꽃놀이가 시작하면, 명당을 찾는답시고 신사 근처까지 사람들이 몰려들게 뻔하니까.”

“아, 그렇네. 얼른 가자!”

미메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켄지가 조금 달려 앞서갔다. 미메이와 도손은 그 뒤를 조금 여유로운 걸음으로 따라갔다. 슈세이도 따라가기 위해 걸음을 내디뎠다. 어쩐 이유인지 난키치는 친구들을 따라가는 대신 슈세이와 걸음을 맞춰서 걸었다. 해가 지고 공기가 조금 식었어도 여름은 더웠다.

“저기.”

“응?”

천천히 걷던 난키치가 슈세이에게 말을 걸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긴 했지만 전혀 말을 꺼내지 않아서 먼저 물어봐야 하나 하고 있던 참이었다. 슈세이는 난키치를 쳐다봤다. 머리에 비스듬히 쓴 여우 가면은 처음부터 그 애의 것이었던 것처럼 잘 어울렸다.

“의뢰를 해결해줘서 고마워요.”

“아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 감사 인사는 안 해도 돼.”

“사실은, 곤한테 재미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반쯤은 그럼 나도 한번, 하는 마음으로 의뢰했던 거였어요.”

“곤…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야?”

오랜만에 들은 이름에 슈세이는 조금 움찔했다. 설마 여우 식당의 그 애는 아니겠지. 아니, 맞다고 하면 난키치는 어떻게 곤을 아는 거지? 설마 이 애도 여우 식당에 다녀왔나? 여기서 그 식당이랑 한 번 더 엮이게 되는 건가? 잡다한 생각이 빠르게 달려나갔다. 난키치는 그런 슈세이를 한번 쳐다보고 키득 웃더니 등에 메고 있던 여우 인형을 품에 안았다.

“작은 여우 곤이에요, 이 손에 딱 맞는 장갑을 주세요.”

인형놀이를 하듯 인형의 손을 가볍게 움직이면서. 슈세이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인형의 이름이었구나. 그런 슈세이의 속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난키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곤은 내 친구인걸?

“난키치-! 슈세이 씨-! 뭐해, 빨리 와!”

저 앞에서 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도손도 멈춰서서 슈세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 갈까? 난키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켄쨩, 지금 갈게!”

“아, 뛰지 마, 난키치! 그러다가 넘어져!”

아이의 뛰어가는 뒷모습은, 문득 생각난 것이었지만, 한 마리의 작은 여우 같았다. 슈세이는 난키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불꽃놀이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신관에게 미리 연락해두었던 덕분에, 거울이 있는 방의 문은 열려 있었다. 열쇠는 방 안에 둘게요. 기도가 끝나면 잠가주세요. 편의를 생각해준 것은 좋지만 보안이 너무 취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럼 인사하고 올게요. 아이들이 먼저 방에 들어갔다. 얼마 전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허름한 상태로 방치되어있던 거울이었는데, 이제는 반짝반짝하게 닦여 상을 깔끔하게 비췄다. 아이들은 나란히 섰다. 여우 가면을 쓴 난키치가 신님, 그때 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했어요. 하고 인사를 하자 옆의 켄지와 미메이도 감사했어요, 하고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인사만 했기 때문에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 끝났어?”

“응! 이제 가보려구요.”

난키치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보는 사람도 미소를 짓게 되는 웃음이었다.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말고, 조심히 들어가. 응, 또 백귀야행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미메이가 대답했다. 슈세이와 도손은 세 아이가 신사의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지켜봤다. 계단을 모두 내려간 켄지가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봐요! 도손이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의뢰 해결이네.”

“아니지, 아직 안 끝났어.”

슈세이가 열쇠를 흔들었다. 문을 잠그는 것까지가 일이잖아. 둘은 거울이 있는 방의 문을 향해 걸었다. 신관이 부탁했으므로, 거울의 상태를 한번 점검하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슬쩍 봤을 때도 깔끔했지만, 가까이서 본 거울은 예전의 허름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슈세이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언제나 그렇듯 도쿠다 슈세이였다.

“뭐해, 슈세이. 얼른 나와.”

“아, 응.”

도손은 이미 방을 나와 문을 잠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슈세이가 방 밖으로 나오자 도손이 문을 닫았다. 나무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닫혔다. 문틈 사이로 보인 거울에는 두 사람의 상이,

“…?”

맺혀 있어야 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슈세이는 두 눈으로 확실히 봤다. 문틈 새로 보이는 거울에는 두 사람이 아니라, 슈세이 혼자만이 비치고 있었다. 잠깐, 시마자키― 그러나 확인할 길 없이 문은 완전히 닫혀버렸다. 아무 것도 모르는 듯 한 눈빛으로 왜 그래? 하고 묻는 도손에게 문을 다시 열어달라고 할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아, 슈세이는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얼버무렸다. 도손은 열쇠를 받아 문을 잠갔다. 확인할 길이 없어졌다.

부탁받은 곳에 열쇠를 두고 두 사람은 신사의 돌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우리도 축제 구경이나 할까?”

“그럴까.”

“나 사과사탕 먹고 싶어.”

“별일이네, 네가 뭘 먹고 싶다고 하는 날도 있고.”

“축제잖아.”

시덥잖은 대화가 이어졌다. 어디선가 들었던 구절이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신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 멀리서 축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사람 많으니까, 손이라도 잡을까. 도손이 멋대로 손을 잡는 바람에 슈세이는 생각하던 것을 잊어버렸다.

사과사탕은 늘 그렇듯 겉은 달았고 속은 푸석푸석해 기대했던 맛이 나지 않았다. 결국 다 하룻밤 축제 분위기에 취해서 충동적으로 사는 거겠지. 매캐한 화약 냄새가 바람에 실려왔다. 불꽃놀이가 시작됐는지 여기저기서 폭죽 터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불꽃놀이 한다.”

도손이 돌아보며 살짝 웃었다. 슈세이도 따라 웃었다.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나서야 그게 무슨 구절이었더라, 싶었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차피 까먹을 것이었다면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다.


막간

 

 

 

시마자키 도손에게.

 

도손, 잘 지내? 여기는 늘 그렇듯 평화롭고 아무 일도 없어.

그쪽은 재미있는 일이 좀 있으려나? 여긴 며칠 전에 마을 축제를 했어.

뭐, 늘 그렇듯이 노점상 몇 개가 있고, 작게 불꽃놀이 하는 정도지만!

덧붙여서 올해의 미소녀 탐색은 완전 실패했어.

다들 도시로 올라간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단 한 명도! 안 보였다고!

으, 미소녀의 천국에 가고 싶다―

…사실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편지를 썼어.

내 문제는 아니고, 하쿠쵸의 문제야. 그 녀석, 최근 몇 달째 같은 꿈을 꾼대.

그냥 꿈을 꾸는 거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조금 꺼림칙한 내용이라서.

가능하면 편지에 전부 적고 싶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못 적겠다. 미안.

일단 지금은 나랑 돗포가 이것저것 조사하고 있어.

최대한 자료를 찾아보긴 했는데, 딱 맞는 게 없어.

분하지만 우리끼리는 해결하기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

괜찮으면 한번 내려와서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을래? 슈세이랑 같이 말이야.

하쿠쵸 녀석, 티는 안 내지만 꽤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아.

올 때 전화나 메일 해줘. 역으로 데리러 갈게.

 

타야마 카타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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