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해결 대행사무소

3. 신은 믿음으로 만들어진다 / 하시히메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같은 꿈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꾸거나, 꿈의 내용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꿈이 반복되면 아무리 터무니없는 것이라도 현실에서 실현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는 경우 경계할 필요가 있다. 꿈의 내용이 이어지는 경우는, 꿈속 세계와 현실 세계를 혼동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시간이나 공간에 관한 인지능력이 흐려지기도 한다. 이 경우 역시 현실과 꿈속 세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도록 자기암시를 거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꿈의 연속에는 심리적 이유, 육체적 피로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중 가장 골치 아픈, 그러니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스스로, 혹은 누군가가 강하게 꿈과 관련된 암시를 걸고 있는 경우이다.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각하기 전에는 깨어나기 힘들다.

 

믿거나 말거나


3. 신은 믿음으로 만들어진다

 

 

 

 

 

 

막 해가 뜨기 시작하는 하늘이 푸르스름했다. 몇 번인가 비가 쏟아지고 나니 벌써 가을이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휴가철 성수기를 넘긴 기차 안에는 사람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새벽 첫차인 탓도 있었을 것이다. 슈세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좌석 번호를 확인했다. 선반 위쪽에 짐가방을 올리고 창가 쪽에 들어가 앉자 옆자리에 도손이 따라 앉았다. 곧 출발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뒤 덜커덩 소리를 내며 기차가 육중한 몸을 움직였다. 점점 속도가 붙어, 선로를 따라 풍경이 끝없이 달렸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귀향이었다. 아주 잠깐이라고는 해도 고향에 내려가는 것이니 이런저런 생각이 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존경하는 고요 선생님 댁에는 문하생이 둘 있었다. 한 명은 슈세이 자신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이즈미 쿄카라는, 슈세이보다 몇 개월 일찍 들어온 동급생이었다. 둘은 성격이 맞지 않았다. 애초에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소한 일로 사사건건 부딪혀왔던 상대였으니 졸업했다고 갑자기 어른이 되어서 사이가 좋아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성격이 안 맞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쿄카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재능을 보석으로 표현한다면, 가치가 높은 원석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 누구보다도 빛나는 존재였다. 그런 쿄카를 보고 있으면, 슈세이는 자기가 끝없이 하찮은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 비교는 좋지 못한 버릇인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비교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슈세이는 알고 있었다. 상경의 이유는 도손에 대한 기묘한 죄책감만이 아니었다. 그래, 그건 거의 도망에 가까웠다. 열등감을 더는 견딜 수 없어 그 집을 박차고 도망치듯 뛰쳐나온 것이다.

고향에 대한 기억이 자꾸만 깊숙이 흘러 아픈 부분을 건드렸다. 즐거운 일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갯속에 파묻힌 것처럼,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슈세이는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차가운 유리가 닿자 조금 침착해진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날이 이렇게 빠른 시일 내로 찾아올 줄은 몰랐던 탓에 복잡한 마음이었다. 옆자리의 도손은 슈세이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편안한 자세로 앉아 수첩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는지 물어볼 마음이 들지 않아, 그냥 눈을 감았다. 기차와 함께 몸이 흔들렸다.

 

* * *

 

몇 시간을 달렸을까, 기차는 낡고 오래된 역에 도착했다. 짐을 들고 기차에서 내려 역을 빠져나오자 저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가벼운 노란 머리의 청년이 보였다.

“도손-! 슈세이-!”

“카타이는 여전하네.”

“응, 기운이 넘쳐 보이네.”

청년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면서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편지의 발신인이자 슈세이와 도손의 고등학교 동창인, 타야마 카타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카타이는 여전히 슈세이의 기억 속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다른 점이라고 하면 최근에 다듬었는지 기장이 약간 짧아진 머리카락 정도일까. 카타이는 차로 모시겠다며 장난스럽게 정중한 포즈를 취했다. 그런 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어라, 카타이, 차 뽑았어?”

“응? 아니, 돗포 거 빌려 왔는데.”

“우와, 사고 나면 안 되겠네. 내가 운전할까?”

“너, 굉장히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바보취급한다?!”

“농담이야, 농담.”

“근데 도손 너, 운전면허 있어?”

“아니, 무면허인데. 어느 쪽이 엑셀이고 어느 쪽이 브레이크였더라?”

너는 그냥 운전할 생각을 하지 마…. 안전벨트를 매며 만담하듯 대화를 주고받는 도손과 카타이를 보고 슈세이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나저나 슈세이는 진짜 오랜만이네. 졸업한 후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아마?”

“가끔은 연락 좀 해. 아무리 자주 볼 수 있다고 해도 마음의 거리가 있는 거잖아?”

“카타이, 외로웠어?”

“도손, 조용히 해.”

굉장히 오랜만에 만났지만 더없이 편안한 분위기였다. 셋은 근황을 이야기하며 시덥잖은 대화에 쿡쿡 웃었다. 살짝 열린 차창 틈으로 들어오는 초가을 바람이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스쳤다.

“그러고 보니 슈세이, 고요 선생님 댁에도 들렀다 갈 거지?”

“어?”

“아니, 너 오랜만에 온 거잖아. 지금 계실지는 모르겠는데 선생님 요즘 혼자 계셔서 적적하실걸? 가면 기뻐하시지 않을까?”

“혼자 계시다고? 쿄카는?”

“몇 달 전에 방 뺐지, 아마.”

쿄카가 선생님을 떠났다고? 슈세이는 혼란스러웠다. 고요 선생님의 말이라면 껌벅 죽던 그 이즈미 쿄카가? 슈세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카타이가 덧붙였다. 영영 떠난 게 아니라, 지금은 조사할 게 있어서 잠깐 아는 사람 집 근처에 방을 얻어서 지내고 있다나 봐. 그, 있잖아. 우리 고등학교 때 나카지마 선배.

어쨌거나 쿄카가 선생님을 떠났다는 것은-그것이 아주 잠깐이라고 할지라도-슈세이에게 있어서 제법 충격이었다. 이곳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마을도, 풍경도, 사람들도. 변화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평화에 기묘한 만족감이 들었다. 그러나 사실은 나만 변화하지 않은 거라면, 그래서 어쩌면 다들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거라면…. 생각이 깊게 침잠했다. 차 안이 조용해지자 카타이는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생각하는 시간 정도는 배려해줄 수 있는 어른이었다.

슈세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카타이.”

“응.”

“내가 지금 여기 내려와 있는 거, 고요 선생님께는 비밀로 해 줄래?”

슈세이의 말을 듣고 카타이는 답지 않게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넌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했더니 다른 문제를 들고 오면 어떡하냐…”

“미안.”

“뭐, 알겠어.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거겠지.”

대신, 언젠가 해결된다면 그때는 천천히 이야기해줘. 카타이가 말했다. 슈세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해결된다면, 자신 안에서 해답을 낸다면 그때는. 창 밖에 커다란 전통 가옥이 보일 때쯤 도손이 입을 열었다.

“쿠니키다네 집은 여전하네. 몇 년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크기야.”

카타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지? 나도 아직도 가끔 흠칫 놀라.”

“애초에… 혼자 사는데 저렇게까지 큰 저택일 필요가 있는 건가?”

“뭐어, 본인이 말하길 처분하기는 아깝고 살기에는 너무 낡은 집을 떠넘기듯 받은 거라고 하니까. 자택 경비원이라나…”

대문 옆 담장에 차를 대며 카타이가 말했다. 세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차 소리를 듣고 나온 건지, 대문 앞에 익숙한 인영 둘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 * *

 

필요 이상으로 큰 방에, 방의 크기에 비해 작은 탁자에, 홍차에, 새우 센베. 모든 것이 안 어울림의 극치네. 다다미 깔린 방의 방석 위에 앉아 홍차를 홀짝이며 도손이 중얼거렸다. 옆에서 하쿠쵸가 조용히 동의했다.

“어쩔 수 없다고. 녹차는 다 떨어졌고, 그렇다고 홍차에 어울리는 과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집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까.”

“쿠니키다, 이사할 생각은 없어?”

“음, 아직은?”

“우와, 이게 뭐야? 홍차랑 센베? 완전 안 어울리는 조합이네.”

“카타이, 그냥 먹어.”

“넵.”

카타이가 자리에 앉자 다섯 명이 둥근 탁자 하나를 두고 동그랗게 마주 앉은 모양이 되었다. 이렇게 모여 있으니까 꼭 그 때 같네. 돗포가 센베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왜, 고등학교 때 학교의 유령 사건 조사할 때 말이야.”

“그 때 말이지…. 소란스러워서 정신없었어.”

“에이, 그렇게 말하지만 하쿠쵸도 꽤 진심이었잖아?”

“시끄럽다, 타야마.”

“우왓, 차가워.”

뭐, 지금 와서는 제법 괜찮은 추억 아니야? 나름대로 청춘-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지. 카타이의 말에 슈세이는 그 사건을 떠올렸다. 학교의 유령 사건. 이름만 들으면 어느 학교에나 하나쯤 있을 법한 심령현상 괴담인 것 같지만, 거의 전교생이 유령을 목격했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특이한 사건이었다. 귀신을 보고 정신을 잃었다느니, 귀신의 정체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이었다느니 하는 소문이 계속해서 확산되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당시 신문부였던 돗포, 카타이, 도손이 교내 신문의 자유 기고란에 사건의 진행 상황이나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한 추리를 기고하기 시작한 것이 조사단의 시작이었다. 거기에 궁도부의 슈세이와 하쿠쵸가, 동시에 궁도부에 가입해있던 돗포에 의해 조사팀에 휘말리게 되며 결성된 것이 당시의 ‘괴이 사건 조사단’이었다.

오합지졸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조사단은 나름대로 열심히 조사를 진행했다. 한 명 한 명 만나며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유령의 정체를 추리하며 기고를 계속했다. 꾸준한 추리에 기사의 인기가 높아져 한창 목격자가 많아질 때쯤에는 신문 1면에 실리기까지 했다. 정말 나름대로 청춘 하고 있었군. 슈세이는 생각했다. 그야 다들 오합지졸 같지만 ‘진실’에 대한 열의는 누구보다 대단한 사람들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다들 열심이었지-.”

“그러게. 그러고 보니 그거 정체가 뭐였더라?”

“뭐였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네.”

“열심히 한 부분만 기억나고 결말이 기억 안 나면 어떡해.”

“그러는 돗포는 기억해?”

“으-음, 그건…”

어쩐지 다들 결말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상하다, 분명 어떤 결말에 도달했던 것만은 기억이 나는데 그게 뭐였는지는… 기억이 없는 것은 슈세이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생각에 잠겨 대화가 멈추자 도손이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편지 읽었는데. 그 꿈,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

“아, 그렇지. 오늘의 사건은 그쪽이니까 말이야.”

시선이 자연스럽게 하쿠쵸에게 몰렸다. 하쿠쵸는 부담스러운 듯 눈을 살짝 피하며 중얼거렸다. 별로, 도움을 받을 만큼 대단한 건 아닌데…. 별로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카타이가 하쿠쵸의 등을 가볍게 쳤다. 그게 도움을 받을 정도가 아니라면 도대체 얼마나 심해져야 도와달라고 하려고 그래? 돗포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어차피 해결될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일단 이야기 해줘. 진심으로 걱정돼서 그러는 거니까.

주변인의 등쌀에 떠밀려, 하쿠쵸는 목을 한번 축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별로 달갑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 * *

 

조장鳥葬, 이라고 알고 있나? 그래, 시체를 새가 파먹게 하는 방식의 장례 방법 말이야. 그거랑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만… 최근 몇 주간 그런 꿈을 꿨다. 한두 번이 아니라, 거의 매일 연달아서 말이야.

꿈속에서 나는 밧줄 같은 것으로 손발을 구속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다. 그런 상태로 어딘가 넓은 곳, 그러니까 풀 한 포기 없는 고원이나 하늘이 흐린 겨울 들판이 연상되는 곳에 버려져 있어. 그렇게 조금 있으면, 하늘 끝자락에서 뭔가가 떼거리로 날아와. 조장이라고 했으니까 알아차렸겠지만, 그건 맹금류다. 독수리라던가 매, 솔개 같은…. 그리고 그것들은 행동불능인 내 주위를 몇 번 빙글빙글 돌다가 땅에 내려앉아, 나를 쪼기 시작해. 공격이라기보다는 식사의 느낌이지. 실제로 독수리는 시체를 먹는 동물이기도 하고 말이야. 아무튼 나는 그렇게 그들의 먹이가 된다. 괴상한 것은, 쪼아 먹히는 동안 감각은 없음에도 이게 꿈이라는 의식은 있다는 거야. 어느 순간 문득 아, 이건 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나는 그때부터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저항을 시작한다.

자각몽에 관련된 글을 몇 개씩 읽어보고, 스스로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몇 번이고 꿈에서 빠져나오기를 시도해봤지만 불가능했다. 꼭 무언가가 묶어놓고 있는 듯이….

아까 연달아 꿈을 꾼다고 했지. 꿈의 내용이 이어지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일 수 있겠군. 처음에는 눈을, 다음은 팔을, 다리를… 이제 남은 것은 머리와 몸통 정도야. 몸통에 이르러서는 파먹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지만.

그냥 이상한 꿈이군, 하고 넘길 수 있는 일이지. 맞아, 스스로도 알고 있다. 하지만 몇 주씩, 며칠씩 그런 꿈을 연달아 꾸면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어.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수면 시간도 점점 길어져서, 한 번도 알람을 무시하고 잠든 적이 없었는데 이제는 알람 소리조차도 못 듣고 계속 잠에 빠져있다. 이대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건 아닌지, 꿈속의 내가 모두 파먹히면 현실의 나는 어떻게 되는 건지, 그런 것들이 신경 쓰여. 나의 문제니까 가능하면 너희들을 휘말리게 하고 싶지는 않다만… 미안하다.

 

하쿠쵸는 담담한 듯이 말했지만, 그를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라면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타이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이 녀석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 있었다니까. 라며 불평 아닌 불평을 내뱉었다. 슈세이는 맞은편에 앉아있는 도손을 슬쩍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도손은 무척 흥미롭다는 얼굴로 꿈의 내용을 수첩에 메모하고 있었다. 도손의 메모를 슬쩍 들여다보고 있던 돗포가, 그래서 나랑 카타이가 저 이야기를 듣고 나름대로 조사랑 추측을 좀 해 봤어. 반박당할 근거가 너무 많아서 내놓기도 좀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하면서 운을 띄웠다. 카타이가 기운차게 입을 열었다.

“우선 긍정적인 관점으로, 길몽일 것이다.”

“너무 긍정적인 거 아냐?”

가차 없이 슈세이의 태클이 날아들었다. 카타이는 일단 끝까지 들어봐. 라며 말을 이었다.

“왜, 흔히 그렇잖아. 일반적으로 죽는 꿈은 길몽이라고.”

“뭐, 그렇게 보면 그럴 수도 있나 싶지만….”

“아니, 그렇다고 볼 수는 없어. 죽는 꿈인지, 죽은 꿈인지 알 수가 없잖아.”

도손은 수첩에 메모한 어떤 단어 주위에 계속 무의미한 동그라미를 그리며 반박했다.

“죽는 꿈은 길몽일 수 있지만, 꿈속에서 의식이 있다고 해서 그 속의 자기 자신이 반드시 살아있는 상태인 건 아니지. 의식은 있지만 시체일 수도 있다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의견일지 모르겠지만, 꿈의 내용도 그렇고 나는 일단 몸의 상태는 중립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어.”

“나도 그쪽에 대충 동감이다. 그래서 해석을 조장 풍습이 가진 의미 쪽으로 옮겨보는 건 어떨까 싶어.”

도손의 옆에서 돗포가 말을 거들었다. 하쿠쵸는 옆에서 대화가 진행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준비한 자료를 팔랑팔랑 넘기며 돗포가 말을 이었다.

“조장 풍습에 대해 조사해 봤는데, 주로 티베트라던가, 유목 문화가 있고 땅이 척박한 지역에서 행하는 장례 방법이라고 하더라고. 불교적 장례풍습인데, 신체는 사람의 영혼을 담고 있을 뿐인 그릇이기 때문에 죽으면 육체가 더 이상 쓸모없어진다는 거지. 지금까지 살아왔던 몸을 독수리와 같은 새의 먹이로 준다는 것은, 윤회와도 관련이 있어.”

“그러니까 꿈속에서 모두 파먹히고 나면, 꿈속에서 또 다른 무언가로 전생할지도 모른다는 거야?”

“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쪽.”

걸리는 게 있는 듯, 돗포는 슈세이의 질문에 조금 머리를 긁적였다. 하쿠쵸가 입을 열었다.

“다른 하나는, 조장 풍습이 조로아스터교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설명이 막히는 거겠지.”

“응.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신성시했기 때문에 화장이 금지된 종교였으니까. 죽는 순간 시체는 악령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주검에 의해 토양이 더럽혀지면 안 된다는 거지. 마찬가지로 신성한 불에도 닿으면 안 되고.”

우리가 생각한 건 여기까지. 돗포가 말을 마무리했다. 홍차를 홀짝이며 조용히 듣고 있던 도손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쉽지만 난 이쪽 해석도 아닌 것 같아.”

“근거는?”

“실제 조장 풍습은 시체를 사람이 해체한 후에 새에게 먹이로 주는 방식인 반면에 지금 꿈속에서는 몸의 훼손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그것도 그렇네, 죽었는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고, 디테일도 달라서 조장이라고 완전히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거지?”

아, 어렵다-! 카타이가 힘차게 힘 빠지는 말을 내뱉으며 그대로 뒤로 누웠다. 돗포가 웃으며, 일단 저녁 먹고 하자. 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늦은 점심 무렵에 도착했었는데 어느새 하늘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저녁밥 뭐 할 거야?”

“음, 생각 안 해봤는데. 지금부터 메뉴 생각해야 해.”

“재료는 있고?”

“아니- 그것도 없어서 장 보고 와야 하는데.”

“있는 게 뭐야?”

“장소 제공해 줬잖아.”

카타이와 돗포가 만담하듯 대화를 나누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갈까, 하쿠쵸가 일어서자 슈세이와 도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기온이 조금 내려갔는지 공기가 약간 서늘했다. 정원의 단풍나무 잎이 슬슬 붉은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가을이었다.

 

 

* * *

 

눈을 뜨니 보이는 것은 낯선 천장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제 분명 고향에 내려와서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만났으니 술 한잔 할까- 의 흐름으로 전통주를 다섯이서 비웠고, 취해서 그대로 쿠니키다의 집에서 신세를…. 낯선 천장인 게 당연하군.

슈세이는 살짝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옆 이불에서는 비어있는 이불 두 개를 침범하며 카타이가 괴상한 자세로 몸을 꺾으며 자고 있었다.

“잠버릇 굉장하네…”

무심코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하자 방문 밖에서 도손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어딘가에 나가는 도중이었는지 얇은 겉옷을 입고 있었다.

“어라, 일어났어?”

“응.”

“쿠니키다가 부엌에 숙취해소제 사다 놨대. 필요하면 먹어.”

“고마워… 어디 가?”

산책. 도손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긴 복도를 걸어갔다. 발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보며 슈세이는 한쪽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8시 반, 어제 그 난리를 치고 잤는데 이 시간에 일어난 게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시마자키도 그렇고…방에 쿠니키다가 없는 것을 보니 같이 나가는 걸까. 같은 방에서 다섯이서 잠들었는데 이불은 자신의 것을 포함하여 네 개만 남아 있었다. 슈세이가 한 개, 카타이가 가로로 누워서 두 개-아마 그래서 시마자키나 쿠니키다 둘 중 한 명은 이불을 개지 않았을 것이라고 슈세이는 추측했다-, 그리고 남은 한 개는, 하쿠쵸의 것. 고개를 돌려 하쿠쵸를 바라보니 카타이와 마찬가지로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제 말했던 그 괴로운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표정 변화가 딱히 없어서 겉보기로는 알 수 없었다. 방에 그대로 있어도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아, 슈세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가 뜬지 한참 지났을 텐데도 목덜미에 닿는 공기가 아직 서늘했다. 마을 변두리에 있는 숲의 입구에서 바라본 안쪽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살짝 주춤해 다른 길을 찾아가거나 되돌아갈 법도 한데 도손은 그런 것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짙은 안갯속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 그를 두 걸음 정도 뒤에서 돗포가 따라갔다. 조용한 숲길에 발자국 소리만 저벅저벅 들려왔다.

“여기는 여전하네.”

“신성한 곳이라느니 해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잖아.”

“용이 산다는 소문 말이지. 흥미가 있어서 조사해볼까 싶었는데 다들 그만두라고 극구 만류해서 손도 못 댔지만 말이야.”

“저주받는다는 소문에 흥미를 가진 건 너랑 나랑 카타이 정도였으니까.”

뭐, 근본이랑 비슷한 거에 이끌리는 건 당연한 거야. 그렇잖아? 도손은 의미 모를 소리를 하며 싱긋 웃었다. 대화는 늘 허공에 떠 있듯 이어지다 사라지는 것. 돗포는 문득 그런 말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이 안쪽에 사당이 하나 있었지. 관리하지 않은지 꽤 됐지만.”

“그렇네…. 쿠니키다, 혹시 용에 관련된 이야기 뭔가 아는 거 없어?”

“이제 와서 다시 용에 관심이 생긴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처음부터 포기한 적도 없었다고.”

돗포는 걸으며 말할만한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용이라고 하면, 전설이나 이야기는 언제나 넘칠 만큼 있었다. 그래도 그중에서 특종이 될 만한 것이라고 한다면 역시,

“오래된 뱀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지.”

돗포는 운을 띄웠다. 뱀이 어떤 이유를 품고 오래 살면 이무기가 된다고 하지. 전설이니 전해지는 내용에 따라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부분 백 년에서 천 년 정도. 그리고 천 년을 산 이무기는 산 아래로 내려와 인간을 만나게 되는데, 그 인간이 이무기를 보고 처음 한 말이 ‘용이다!’라고 하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할 수 있고, ‘뱀이다!’라고 한다면 그대로 그냥 구렁이가 되어 영원히 승천할 수 없다는 이야기. 어때, 마음에 들었어?

도손이 여전히 조금 앞에서 걷고 있어서, 도손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마도 적당히 구미에 맞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던 것은 이야기에 흥미로운 부분도, 허술한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에 돗포는 도손을 불렀다.

“시마자키, 웬일로 잠깐 질문 괜찮냐는 말은 안 하네.”

“음- 아직 조금 멍해서일까.”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시마자키 도손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거짓말.”

“들켰어?”

대화의 다음은 없다. 둘은 걸음을 멈췄다. 도손은 돗포 쪽을 돌아보며 화사하게 웃었다. 돗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친구의 저 표정을 알고 있다. 무언가 알고 있지만 이야기할 수 없을 때 종종 써먹는 표정이었다. 시마자키 도손이라는 사람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환한 웃음. 그건 동시에 더 알려고 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신호이기도 했다. 도손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뭔가가 있는 거구나.”

“응.”

“…묻지는 않을게.”

“고마워.”

그렇게 대답하고, 도손은 앞을 향해 걸어갔다. 숲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안개가 점점 짙어져서, 돗포는 앞을 향해 나아가는 도손에게서 미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시마자키.”

“응?”

도손이 뒤를 돌아봤다. 돗포는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잠깐의 침묵 끝에 골라낸 문장은 하나뿐이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하려는 건 아니지?”

“…….”

도손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웃었다. 대답은 없었다. 돗포는 그냥 …그래, 하고 무언가를 알아들은 척 굴었다. 부러 답하지 않는 것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여전히 안개가 짙었다.

“사당 안쪽까지 가보는 건, 이 시야로는 무리겠네.”

“그렇네.”

“돌아갈까?”

“응.”

어디선가 스스슥, 무언가가 기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바람에 부딪히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걸음에 미련은 없다. 둘은 안개 낀 숲을 빠져나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이었다.

 

* * *

 

시곗바늘이 오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넓은 저택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원래도 조용한 동네이기는 했지만, 오늘은 경우가 달랐다. 둥근 테이블을 두고 둘러앉은 네 명은 말이 없었다. 기묘할 정도로 조용한 상황에 묘한 불안감을 느꼈는지, 카타이가 몇 번인가 실없는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바꾸려 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분위기를 참지 못한 것은 슈세이도 마찬가지였지만, 카타이처럼 농담을 던질 성격도 아니었거니와 그 자신도 어떤 불안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 기묘한 침묵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은 하쿠쵸 때문이었다. 하쿠쵸는, 해가 한번 뜨고 진 후인 아직까지도 깨어나지 않은 것이다. 몇 번을 깨워봤지만 전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경우였다면 어쩌다가 한번 있는 해프닝 정도로 취급하고 넘어갈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잠을 오래 잔다는 것은 곧 꿈을 오래 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쿠쵸는, 꿈을 꾸고 있다면, 지금은….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현실에 어떤 확실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입증된 바가 없지만, 여기 모인 이들은 다들 진심으로 하쿠쵸의 상태를 걱정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러니 뭔가 말할 기분이 아닌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바람이 정원의 단풍나무를 스쳤다. 도손은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화장실.”

“화장실 그 쪽 아닌데.”

“나도 알아.”

돗포가 뭔가 더 말을 붙이려고 하는 카타이의 허벅지를 툭 쳤다. 도손은 그 틈을 타 유유히 방을 빠져나갔다. 슈세이는 말없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또 어딜 가냐고 묻는 한 쌍의 시선이 뒤통수를 찌르는 것 같았다.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슈세이는 시선을 모른 척하고 도손이 사라진 방향을 쫓았다. 뒷모습은 생각보다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속도를 내어 걸으며 시마자키, 하고 그를 불렀다.

“어라, 슈세이도 화장실?”

“화장실은 이쪽 아니잖아…”

“머리 좀 식히려고.”

흐응, 그렇구나. 건성으로 대답하며, 도손은 주머니에서 늘 쓰는 작은 수첩과 볼펜을 꺼내 들었다. 아직 완벽히 정리되지는 않은 듯, 수첩에는 의미 없는 동그라미며 작은 도형들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딱 하나만, 하나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도손은 볼펜의 뒷부분을 씹었다. 집중하고 있을 때면 나오는 버릇이었다. 이대로 두면 멈춰서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 같은 예감에 슈세이는 도손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었다. 좀 걸을까? 도손은 볼펜에서 입을 떼고 잠깐 슈세이를 쳐다보더니 응, 하고 대답했다. 수첩은 다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달빛이 비쳐 들어오는, 넓고 고즈넉한 가을의 저택. 툇마루를 따라 걷는 곳마다 살짝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머리를 식히기에는 충분했다.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풍류 있는 풍경이다. 도손은 걷는 내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지 말이 없었다. 슈세이로서는 실체를 알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는 꿈속의 일을 어떻게 해결하려는 것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지만, 일단 도손이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으니 지금은 거기에 걸어보는 것 외에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라, 저거…”

도손이 손가락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켰다.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담장 근처 풀숲 쪽에 희고 기다란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뱀?”

“아니, 잘 봐.”

그렇게 말하고 도손은 맨발인 것은 개의치 않는 듯 성큼 툇마루에서 내려가 풀숲 쪽으로 다가갔다. 아, 잠깐, 시마자키! 라며 다급하게 이름부터 부른 슈세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손의 손에는 그것이 들려있었다. 희고 길고 바람에 살짝 날려 흐늘거리는,

“탈피한 흔적이야.”

달빛을 받아 살짝 은은하게 빛나는 뱀의 껍질이었다. 뱀은 도마뱀과 달리 한 번에 껍질을 벗는다던데, 과연 도손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길고 굵었다. 작은 아이 한 명의 키는 훌쩍 넘을 것 같은 길이와 넓이를 보니 껍질의 주인은 거대한 뱀인 듯했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껍질을 만져보니 탈피한 지 꽤 된 것인지 건조하고 바삭바삭한 감촉이 느껴졌다.

“탈피한 지 좀 지난 것 같지.”

“응. 밖에 있었을 텐데 이렇게 상태가 말끔하다니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은 얼굴로 껍질을 유심히 쳐다보던 것도 잠시, 바지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돗포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하쿠쵸가 일어났으니 방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도손은 뱀의 껍질을 조심스럽게 갈무리했다. 방으로 돌아가는 내내 바람이 불었다. 자꾸만 무언가를 부르고 있는 듯한 바람이었다.

 

 

* * *

 

서둘러 방에 돌아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하쿠쵸였다. 물이 담긴 잔을 들고 온 돗포가 왔냐는 듯한 눈빛으로 슈세이와 도손을 바라보고 하쿠쵸에게 물을 건넸다. 물을 마실 힘도 없는 것인지, 하쿠쵸는 물잔을 받아든 채로 그냥 가만히 이불 위에 앉아 있었다. 긴장감이 가득 내려앉았다. 이 상황에서 무언가 질문하거나 말을 꺼낼 용기는 누구에게도 없을 것이라고, 슈세이는 생각했다.

“잠깐 질문 괜찮을까?”

물론 시마자키 도손은 그 누구에 해당되지 않는다.

“잠깐, 도손 …”

“괜찮아.”

카타이가 도손에게 무어라 말하려 하는 것을 저지하고, 하쿠쵸가 입을 열었다. 뭐라도 말하는 게 조금 더 나을지도 몰라. 돗포는 방문에 등을 기대고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카타이는 여전히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도손이 세 손가락을 펼쳤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질문의 정리를 막 끝낸 듯,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것이 세 가지 정도 있어.”

“시작하지.”

“우선 첫 번째. 꿈에 나왔던 동물들을 모두 말해주겠어?”

“저번에도 말했을 텐데, 매와 독수리 같은 맹금류…”

“말고, 더 있잖아.”

눈이 마주쳤다.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시선이 부딪혀오자 하쿠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제야 생각난 것처럼, 할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뱀.”

“뱀?!”

하쿠쵸의 옆에 앉아 있던 카타이가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시끄러워, 라고 하쿠쵸가 핀잔을 주며 밀어냈지만, 카타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쿠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너 왜 말 안 했었어!”

“안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너무 배경 요소처럼 나와서 생각해내지 못했던 것뿐이야.”

“그래도….”

“진정해, 카타이. 아직 질문은 안 끝났으니까.”

도손이 무표정한 얼굴로 손가락을 하나 접었다. 곧바로 질문이 이어졌다.

“최근에 뱀을 본 건 언제쯤이야?”

“봤다는 걸 전제로 깔고 가는 질문이네.”

가정해본 것뿐이야. 없으면 할 수 없지. 돗포의 말에 가볍게 대답한 도손이 다시 하쿠쵸를 바라봤다. 하쿠쵸는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꽤 오래됐던 것 같군, 못해도 여름쯤일걸.”

“몇 달은 됐구나.”

도손이 수첩에 무언가를 메모했다. 살짝 들여다본 수첩 속, 의미 없는 낙서처럼 보이던 여러 동그라미들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명확한 무언가를 그려내고 있었다.

“마지막 질문. 뱀을 봤을 때 혹시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나?”

“…? 그거야 당연히 ‘아, 뱀이군.’ 따위의 말이었겠지.”

“그렇구나, 이제 됐어.”

“어디서 봤는지는 물어보지 않는 건가.”

“음, 그건 알면 좋지만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는 질문이라서.”

그래서 그걸로 뭔가 해결된 거야? 줄곧 잠자코 있던 카타이가 입을 살짝 삐죽 내밀고 질문했다. 도손이 대답했다.

“지금부터 말하는 것은 전부 추측일 뿐이지만…”

슈세이는 그것이 명확한 진상을 밝히는 신호탄이 되는 문장임을 알고 있다.

 

* * *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이 사달이 난 건 전부 뱀 때문이야. 뱀을 보고 뱀이라고 말하면 안 돼. 그것도 신사가 있는 산에서 만난 녀석이라면 더더욱. 녀석들은 용이 되기 위해 몇십, 몇백… 어쩌면 몇 천 년을 준비하는 녀석들이니까. 인간이 무턱대고 그것을 ‘뱀’이라고 지칭하면 쌓아올린 격이 한순간에 낮아져 버려. 그러면 그중 몇 녀석들은 원한을 품기도 하는 거거든. 하지만 꿈에 나왔던 녀석은 조금 특이한 녀석이라고 생각해. 녀석은 너에게 원한을 품었던 게 아니야. 오히려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야.

자, 생각해 보자. 뱀이 용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평범한 뱀의 삶을 사는 것으로는 용에 가까워질 수 없겠지. 신격을 쌓으려면 일반적인 뱀은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거야. 그것을 인간 관점에서의 ‘선행’이라고 가정해 볼까. 선행이라고 하면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거나, 길 잃은 아이를 가족에게 데려다 준다거나, 그런 것들이 있겠지. 하지만 말이야, 가장 대단한 선행이라고 하면 역시 누군가의 목숨을 구해 주는 것 아니겠어? 목숨은 하나뿐인 것, 그것을 구해주는 것은 분명 신격을 쌓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조금 감이 잡혔어? 응, 맞아. 그러니까 몇 달간 계속되었던 그 꿈은 조장도 무언가의 예지몽도 아닌, 뱀이 만든 상황이었다는 거야. 꿈에서 위험에 빠진 너를 구하고, 신격을 쌓아 용이 된다, 그런 계획이었겠지. 당연하지만, 좋은 의도를 가진 모든 일이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야. 아, 딱히 좋은 의도라고 말하기도 이상하지만 말이지. 어쨌든 꿈은 무의식의 영역… 원하는 것을 쉽게 이룰 수 있지만 동시에 그렇게 하기에 가장 어려운 공간이기도 해. 녀석은 특히나 자기 자신의 꿈이 아니라 타인의 꿈에 간섭하고 있었으니 아마 힘이 더 많이 필요했을 거야. 몸통에 이르러서 파먹는 속도가 느려진 것은 그런 이유였겠지. 어디까지나 예상이지만, 완벽하고 강한 형체를 갖추고서 네 앞에 제대로 나타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뭐, 네가 배경 요소처럼 스쳐 지나간 뱀을 기억하고 있는 시점에서 완전 망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지만 말이야.

어쨌든, 지금이라도 뱀에 관련해 뭔가 생각해내서 다행이야. 그냥 뒀으면 분명 꿈이 진행되어서 더한 상황이 발생했을 거고, 그럼 뱀에 의해 구해져도, 구해지지 못해도 분명 현실에 타격이 가게 될 테니까……. 내 추측은 여기서 끝. 반론이나 질문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해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타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도손은 질문을 하는 학생을 지목하듯 응, 카타이. 하고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이 사건을 해결할 방법은 있는 거야? 네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한 추론이라고 생각하지만, 원인을 알아낸다고 해도 해결 방법이 없으면 곤란한 상황이잖아.”

“아, 그거 말인데.”

도손은 조심스럽게 개어 방 한쪽에 잘 두었던 것을 집어들었다. 아까 정원에서 슈세이와 함께 발견한 뱀의 허물이었다. 밖에서 볼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집 안에서 보니 어쩐지 현실감이 사라질 정도로 굵고 거대한 뱀의 얇은 허물이 도손의 손 위에서 축 늘어졌다.

“깨끗하게 씻고 난 후에, 이걸 머리맡에 두고 자도록 해.”

“효과는 검증된 거야? 출처가 궁금한데.”

“허물은 아까 마당에서 발견한 거고, 행동의 근거나 출처라면… 글쎄, 예전에 읽었던 글에 나왔던 민간신앙의 주술이라고 하면 될까.”

돗포의 질문을 매끄럽게 받아넘기고, 도손은 하쿠쵸의 베갯머리에 조심스럽게 허물을 내려놓았다. 허물은 허물일 뿐, 분명히 움직이지 않을 텐데 어쩐지 그것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져서, 슈세이는 조금 흠칫했다. 지금까지 계속 자다 겨우 일어났는데, 그런 사람에게 다시 잠들라고? 카타이가 조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지만, 하쿠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 좀 빌리겠다, 라며 방을 나섰다. 당사자의 부재에 방이 금방 다시 조용해졌다. 돗포가 창문을 열었다. 방금 전까지 내내 불고 있던 바람은 거짓말처럼 그쳐 있었다. 무언가를 불러내버린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저나 시마자키는 그런 주술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무언가 해결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해결되지 않은 것이 있는 것만 같은 찝찝한 감각이 밀려왔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더 손댈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슈세이는 창문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이제 정말로 여기에 걸어보는 수밖에 없으려나.

 

돗포가 천장에 달린 줄 스위치를 잡아당기자 방의 불이 꺼졌다. 나란히 놓인 다섯 개의 이불, 가장 끄트머리에 누운 슈세이는 잠시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았다. 눕기 전까지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누우니까 피곤이 온몸으로 몰려와 잠들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루종일 신경을 써서 그런지-물론 하쿠쵸보다야 훨씬 덜 하겠지만- 정신적으로 조금 몰려 있던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의문과 생각이 머릿속을 유영했지만, 제대로 대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 이런 감각은 싫다. 어느 하나 손에 명확하게 잡히는 것이 없다. 괴이는 언제나 평온한 일상을 깨고 찾아오는 것, 안온함을 방해하는 것… 밀려오는 잠이 생각의 흐름을 방해했다. 슈세이는 눈을 감고, 더 어두운 눈꺼풀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눈꺼풀 너머의 세계가 순식간에 차단되고, 천천히, 여유롭게, 천천히, 느긋하게……. 수마가 몰려왔다. 슈세이는 잠들었다.

 

* * *

 

놀랍도록 아무렇지 않게, 아침이 찾아왔다. 하쿠쵸는 눈을 떴다. 지난밤에는 몇 달 동안 매일같이 꾸던 새의… 아니, 뱀의 꿈을 꾸지 않았다. 이렇게 맑은 정신으로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오늘만큼은 한쪽 다리를 자신의 다리 위에 올리고 세상 편하게 잠들어 있는 카타이를 용서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머리맡에서 무언가 스슥, 하는 소리가 났다. 하쿠쵸는 몸을 살짝 일으켜 베개 위를 확인했다.

그리고 하쿠쵸는 숨을 들이켰다. 허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 허물은 온데간데없고, 희고 작고 아름다운 뱀 한 마리가 편안한 자세로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하쿠쵸가 움직여서 잠에서 깨어났는지 카타이가 눈을 비비며 뭐야, 왜 그래? 하고 몸을 일으켰다. 뱀과 눈이 마주친 카타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뭐야 이게? 라며, 의문을 표했다. 방 안의 공기가 소란스러워졌음을 느꼈는지 돗포와 슈세이가 차례로 일어났고, 역시 머리맡의 뱀 한 마리를 마주하고 딱딱하게 굳었다. 돗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고, 슈세이는 낼름거리는 뱀의 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은 오직 도손 뿐이었다.

도손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뱀의 옆으로 다가갔다. 마치 원래 그래야만 하는 일이라는 듯,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에 아무도 그를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도손이 손을 내밀자, 뱀은 그 손을 타고 천천히 어깨 쪽으로 기어올랐다. 마침내 팔에 뱀이 살짝 감기자, 도손은 즐겁게 웃었다. 그것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듯, 뱀의 머리 부분을 살며시 쓰다듬은 그가 말했다.

“이 애는 신이 될 거야.”

백사의 비늘이 아침 햇살을 받아 찬란히 빛났다.


하시히메 이야기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도손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말이지, 악몽의 수심을 알려고 해서는 안 돼.”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사람이 어떻게 망가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거든. 그러니까 슈세이, 만약 악몽을 꾸거든 그 의미를 알려고 하지 마. 가볍게, 얕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굴어. 그러면 모두 사라져 버릴 거야.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이야기는 오래 존재할 수 없어… 그렇게 말하는 도손의 눈은 어딘가 먼 곳을 보고 있어서, 슈세이는 ‘너의 악몽은 뭐였어?’라고, 도손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 들은 것 같은 질문을 할 뻔했다.

악몽의 바깥은 정말로 현실인가. 도쿠다 슈세이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가만히 있으면 생각나는 오래된 꿈이 하나 있었다. 꿈속에서 슈세이는 고향의 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다리 아래에는 강이 물소리를 내며 흘렀다. 진눈깨비에 가까운 눈이 내려오는,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옆에는 익숙한 떡볶이 코트를 입은 학생 시절의 도손이 우산을 쓰고 걷고 있다. 퍽, 퍽, 퍽, 하고 작게 우산에 눈이 부딪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꾸만 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다리의 중간 지점쯤 왔을까, 도손은 갑자기 멈춰 서서 슈세이 쪽을 돌아보며 말한다. 슈세이, 하시히메 전설에 대해 알고 있어? 슈세이는 고개를 젓는다. 도손은 빙글, 우산을 한번 돌려 질척하게 쌓인 눈을 털어내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부정한 것이 건너오는 것을 막는 다리의 여신의 이야기. 하시히메는 동시에 인연을 끊는 신이기도 해서, 악연을 끊어주기도 하지만 부부나 연인의 연을 끊어버리기도 한다나 봐. 도손의 이야기를 들으며 슈세이는 머릿속으로 다정한 연인의 이미지를 그린다. 봄 벚꽃 휘날리는 날 그들은 사랑을 속삭이며 다리를 건너겠지. 아니면 다리 위에서 처음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듯 미련만을 남기고 헤어지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슈세이는 문득 더 이상 다리를 건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왜? 자신과 시마자키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다. 그럼에도 하시히메 이야기를 듣고, 시마자키와 함께 다리를 건너는 것에 대해서 어쩐지 탐탁치 않은 마음이 들었다. 이 다리를 끝까지 건너고 나면, 무언가가 끊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슈세이는 고개를 들어 도손을 부르기로 했다. 그러나 시마자키, 하고 이름을 부르며 고개를 들었을 때, 도손은 이미 다리를 건너 저만치 앞을 걷고 있었다. 물방울이 우산을 타고 톡, 떨어진다. 이제 눈은 거의 녹아 진눈깨비가 되어 내린다. 뒷모습이 멀어지고 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무언가가 끊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슈세이는 악몽을 없는 것 취급하라는 도손의 말을 이해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아닌 척을 할 수는 있지만, 없는 척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슈세이는 아닌 척 하는 것을 택했다.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악몽으로 존재하는 꿈도 있는 법이다. 그 꿈속에서 무엇이 끊어졌는지는, 모를 일이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지는 모르는 일이지. 그러니까 악몽의 바깥이 정말로 현실인지는, 영영 모를 일이지.

혼자 있는 방 안이라지만 어쩐지 지나치게 조용하다 싶어 커튼을 열어보니, 온 동네에 소복이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세상이 터무니없이 고요함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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