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압화 책갈피
문호와 알케미스트/ 비메이의 어느 불운한 겨울 날 이야기
실존 인물의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모티브로 된 캐릭터가 등장하는 2차 창작물입니다.
문호와 알케미스트 일본 웹 온리 「想イ集イテ」에서 배포한 비메이+사서 배포본입니다.
네임리스지만 성격 및 개성이 뚜렷한 사서와 비메이가 적당히 티키타카하는 이야기입니다. 우선은 문호+사서 표기지만 문사서나 사서문으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조금 어둡고 불온한 분위기로, 연금술에 대한 날조가 와장창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 당사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일방적으로 실행된 신체 변형(과정 묘사 없음)
후반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 글씨색을 바꿔 두었으니 필요하시다면 드래그로 확인해 주세요.
+너 이런 글 쓰니? 으아악이라는 느낌의… 뭐 그런 글 쓰긴 했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비메이를 무지하게 좋아해서 매번 이런 글을 쓰게 되네요. 인어로 불온했으니 다음에는 촛불로 불온하라는 리퀘스트 비슷한 걸 받기도 했는데 사실 이미 괴롭혔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글을 쓰게 되겠죠……
“저, 요정을 꽤 좋아했어요.”
“그래? 조금 의외네.”
빈 수조를 닦으며 사서가 말했다. 비메이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짧게 맞장구쳤다. 문장이 멈춘 곳에서 펜을 돌리느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사서도 그런 것을 신경 쓰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는 다 그러지 않나요? 작고 귀여운 사람이라고 하면 인형 같고. 게다가 살아서 움직이기까지 하잖아요.”
“아, 어렸을 때 얘기구나. 그러면 그럴 수도 있겠네.”
“그래서 지금은 이런 취미가 생겼는지도 모르겠어요.”
그제야 비메이는 돌아봤다. 사서는 수조를 닦느라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사서의 취미는 아쿠아리움이었다. 깨끗하고 두꺼운 유리 수조에 각양각색 물고기를 풀어놓고 바라보기를 좋아했다. 사서실에는 수조가 몇 개씩이나 있었다.
지금 사서가 닦고 있는 수조는 사서실에서 두 번째로 큰 것이었다. 가장 큰 것은 한쪽 벽에 붙박이 되어있는 것이라 두 번째라고 해도 제법 컸다. 얼마 전 그 안에 살던 물고기가 전부 죽었기 때문에 사서는 수조를 청소하고 있었다.
떠낸 물고기의 시체는 도서관 밭 한 구석에 묻고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해 뒤뜰에서 물때가 낀 수조를 닦고 있었다. 조수라 지명당해 끌려온 비메이는 물론 수조 청소를 하는 법 같은 건 몰랐고 솔직히 함께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실수로 수조를 깨거나 긁는 것 같은 성가신 일이 늘면 늘지 일을 도울 수는 없었다. 그 말에 사서는 부인하지 않고 짤막하게 대꾸했다.
“말상대가 되어 주세요.”
“말상대?”
“큰 수조라 닦는 데 시간이 꽤 걸려요. 혼자는 심심해요.”
“네가 만족할 만한 반응은 못 할걸.”
“괜찮아요. 선생님의 그런 대답을 듣고 싶은 거예요.”
괴짜라고 생각하면서도 비메이는 펜과 노트를 들고 사서를 따라 뒤뜰로 나왔다. 그러다 손이 새빨개지도록 찬 물에 수조를 닦는 사서를 앞에 두고 자신은 편하게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 상황에 마음이 흔들린 탓에, 차마 일을 돕진 못해도 점차 노트를 덮어두고 사서가 하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게 되었다.
“비슷한 이유로 인어도 좋아해요.”
“그건… 지금도?”
“네. 그래서 물고기를 기르는 거니까요.”
인어와 물고기는 꽤 다르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서가 키우는 물고기는 커봤자 손바닥을 넘지 않는 작은 관상어였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으로 아마 드러난 모양이다.
“아니라는 생각을 하시나 보네요.”
“뭐, 인어도 종류가 많을 테니까. 금붕어 인어라면 그럴지도.”
“하하, 그런 작은 인어보다는 사람과 비슷한 크기가 좋지만요.”
사서는 그 말 뒤에 이어서 무언가 말했지만 때마침 호스에서 흘러나온 세찬 물소리에 가려져 그것은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비메이가 무슨 말인가 했냐고 묻자 사서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고개를 저으며 빙긋 웃기만 했다.
“아무 것도요.”
“네 지금 표정…….”
“제 표정이요?”
“장난을 쳤을 때 난키치랑 닮았어. 뭔가 꾸미고 있구나.”
사서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비메이도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장난이라는 것은 막으려 할수록 몸을 불리는 것이다. 한 번 정도 잠자코 당해주고 타이르면 정도를 가리고 때와 상대를 가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였다.
“적당히 하도록 해.”
“그럼요. 걱정 마세요.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란포를 알면 너도 그 말이 안심되지 않는다는 걸 알잖아.”
“하하. 저를 에도가와 선생님이랑 동급으로 보시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비메이는 단호하게 부정하는 대신 눈을 감고 짓궂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모르는 일이지.”
“아아, 너무해라. 그나저나 슬슬 끝나가요. 먼저 들어가실래요?”
“곧 끝나는 거면 마지막까지 있어줄게. 아깝잖아.”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인 사서가 조금 더 센 물로 수조를 헹구기 시작했다. 앉아 있는 발치까지 조금 물이 튀었다. 영하에 가까운 온도에 발이 움츠러들었다. 발목에 튄 물이 비늘처럼 반짝였다. 사서가 아주 잠깐 손을 멈추고 그것을 보고 있었다. 아주 작은 틈이었고, 비메이를 포함해 누구도 알아채기 전에 사서는 수조 헹구기를 마쳤다.
“고맙습니다.”
“아무 것도 안 했는걸.”
“그래도 나와 주셨잖아요.”
“뭐… 그래. 어서 들어가자. 손이 다 텄어. 따뜻한 차를 내어줄 테니까 천천히 마셔. 바로 다 마시지 말고.”
아직 젖은 수조를 들고 오는 사서보다 앞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 복도 근처에 있던 문호들이 사서에게 모여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것을 모두 무시하고 곧장 사서실로 향한다.
전기 포트에 물이 얼마나 남았더라, 꽤 담아두긴 했지만 사서가 얼마나 마셨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사서실에 들른 다른 문호들이 마시지 않았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머그컵에 코코아 가루를 넣고 포트를 확인했다. 한 잔 정도는 될 양이라 그대로 한 번 더 끓이는 버튼을 눌렀다.
“고맙습니다.”
가름막 뒤에서 수조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왁자지껄한 소란이 이어졌다. 비메이는 돌아보지 않고 포트가 끓을 때까지 기다렸다. 포트가 소리를 내기 전에 끄고, 끓는 물을 붓고 익숙한 방식으로 코코아를 젓는 동안 사서가 부엌 공간 쪽으로 다가왔다.
“날도 추운데 도와주시고… 차 좀 드시고 가세요.”
그리고 뒤를 돌아본 채로 들어오던 사서는 아래를 보며 코코아를 들고 나가던 비메이와 부딪혔다.
“아.”
뛰어오거나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컵이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사서와 부딪히며 손을 놓친 탓에 머그컵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비메이는 어쩐지 천천히 진행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마룻바닥에 머그컵이 굴렀다. 얼마 전에 큰맘 먹고 좋은 걸로 바꿨다더니 정말인지 컵은 깨지지 않고 멀쩡했다. 다행이다, 조각 치울 일은 없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컵을 주우려 몸을 굽혔다. 아, 코코아 아까워.
“앗!”
“무슨 일이야?!”
왜 사서가 비명을 지르는 걸까? 그 소리를 듣고 가름막 너머의 문호들이 달려왔다. 코타로와 로한이었다. 두 사람은 급하게 비명을 지른 사서를 보고, 바닥에 떨어진 머그컵을 보고, 비메이를 보았다.
“이런……!”
“괜찮나?”
“무슨 일이야?”
자신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자 조금 짜증이 치밀었다. 하지만 사서도 두 문호도 설명해줄 기색은 없어 보였다. 짧은 침묵 속에 코타로가 비메이 앞으로 걸어와 그를 안아들었다.
“뭐, 뭐야?!”
“…아까부터 계속 멍한데 괜찮아? 아프지 않고?”
무엇이? 그 말에 비메이는 공중에 뜬 자신의 몸을 보았다. 아, 다리에 코코아가 튀었구나. 튄 정도가 아니다. 떨어지면서 컵을 떠난 코코아가 전부 다리에 끼얹어졌다고 하는 게 정확했다. 액체는 거의 흘러내려 여전히 다리에 묻어 있진 않았지만 화상을 입은 게 분명해 보였다.
그걸 보고 비메이는 사서를 돌아보았다. 마주보고 있었으니 그쪽으로도 튀었을지 모른다. 비메이의 시선을 알아챈 로한도 사서의 다리를 기웃거렸다.
“아, 저는 괜찮아요. 이쪽으론 얼마 튀지 않았고, 저는 또 바지도 길어서…….”
“그나마 다행이네.”
코타로는 비메이를 곧장 보수실로 데려가려 했지만 사서가 말렸다. 우선은 찬물에 담가두고 있어야 한다면서 아까 씻은 것보다 조금 작은 수조를 소파 다리께에 놓았다. 그러는 동안 로한이 오가이를 불러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소파에 비메이를 앉히고, 신발을 벗겨 다리를 수조에 담그고, 싱크대 수도꼭지에 호스를 달아 수조를 향해 놓고 물을 틀었다.
“아… 이상하다. 이쪽 다리는 하나도 안 차가워.”
“뜨거운 것도 못 느끼던데, 괜찮은 거야?”
“다른 덴 괜찮지만 다리는 명백히 안 괜찮을 거예요.”
왕진 가방을 든 오가이와 로한이 돌아왔다. 사서가 소파 쪽으로 안내하자 약과 붕대를 가방에서 꺼내고 수조 속의 다리를 보기 시작했다.
“꽤 큰 화상이군.”
“막 끓인 코코아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그것뿐만 아니라 심도 녹았어요.”
“심?”
사서의 설명으로는 문호들의 몸은 거의 인간에 흡사하지만 몸 내부로 갈수록 무생물에 가깝다고 했다. 특히 문호들의 본체는 책으로, 몸 밖에 있기는 하지만 연결되어 있어서 몸의 본질은 종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통 끓는 물을 엎은 건 종이의 한계를 넘은 거잖아요. 신경까지 순식간에 녹으면 통증도 못 느끼게 되는 것처럼.”
“그럼 오가와 군의 다리는 녹은 건가?”
“네, 몸에 붙어 있는 건 인체니까 화상을 입은 정도로만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녹은 거예요. 아무 것도 못 느끼는 건 그래서고요. 새로 제본해서 본체를 고칠 때까지는 몸 부분만 나아도 쓸 수 없어요.”
“그거 야단났네. 나을 때까지 오래 걸려?”
“마침 여분 종이가 있으니까… 사흘 안으로 될 거예요. 몸 부분은 보통 화상이 치료되는 정도랑 비슷하고, 모리 선생님이 계시니까 그 부분은 걱정이 없어요.”
사서와 다른 두 문호의 도움을 받아 오가이는 찬물로 식힌 비메이의 다리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약을 바르는 느낌도, 붕대의 압박감도 여전히 느껴지지 않았다.
“조수도 그만둬야겠네.”
“아아…….”
설명하는 동안은 눈을 빛내던 사서가 머리를 감싸고 신음했다. 그러고 보면 사서는 비메이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죄송해요… 제가 부주의해서…….”
“실제 인간하고 다르게 아예 새로 쓰는 게 가능한 기관인 거잖아. 네가 다친 것보단 낫지. 아프지도 않았고.”
“그래도요…….”
“사서 씨가 노력하면 금방 나을 거야. 그러면 또 조수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비메이 군?”
코타로의 격려에 비메이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역시도 이러니저러니 해도 특별조수로 지내는 시간에 꽤 익숙해져 있었다. 이 사서실에서 수조를 보는 것도 제법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 다 나으면.”
“정말이죠?!”
“그래, 그래. 다친 건 난데 왜 네가 울어.”
사서는 비메이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울다가 그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사서실 바닥에 여전히 떨어져 있는 머그컵을 싱크대에 올려놓고 책장과 서랍을 뒤적거렸다. 곧 한 서랍 안에서 깨끗한 종이 한 묶음을 꺼냈다.
“그게 보수의 재료구나.”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하군. 조금 자세히 보여줄 수 있겠나?”
“네, 한 장 정도는……. 다리를 만드는 데는 세 장이었나?”
사서는 넉넉잡아 다섯 장의 종이를 꺼내고 그 중 두 장을 아직 이 곳에 모여 있는 문호들에게 건넸다. 나머지 세 장은 사서실 한 구석에 있는 재단기에 넣었다.
“보통 종이랑 크게 다를 건 모르겠네.”
“훨씬 희고 질이 좋은 것 같아. 그리고 조금 얇은가? 그림을 그리긴 적당하지 않을 것 같고.”
“이런 종이는 어떻게 만드는 거지?”
“한 장… 진료표로 써 봐도 문제는 없나?”
“만드는 법은 영업비밀이에요.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 두 장은 그냥 드릴게요. 종이, 다 쓰시고 버릴 땐 태우셔야 해요. 그림은 액자에 넣으시려나… 그러면 괜찮을 것 같네.”
작두를 당겨 종이를 썰며 빠르게 말한 사서가 고개를 까닥였다. 로한과 비메이는 종이를 갖고 싶은 정도는 아녔기 때문에 코타로와 오가이가 한 장씩 갖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기엔 적당하지 않다고 한 것과 다르게 역시 시험해보고 싶긴 한 모양이다.
종이를 자른 사서가 비메이의 책을 가지러 나가자 다른 문호들도 따라 나섰다. 오가이는 비메이가 앉은 소파에 연고와 여분의 붕대를 두고 나갔다.
“그러면 비메이 군, 몸조심해.”
“쾌차를 비네.”
“무슨 일이 있으면 보수실로 오도록 하고.”
“응, 고마워. 신경 쓰게 해서 미안했어.”
어른들도 있는데 일어나지 못하고 손만 흔들어 인사하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온갖 일이 있어서 지치고 긴장도 풀린 탓인지 비메이는 그대로 앉은 채 잠들어 버렸다.
사각사각하고 소리가 났다. 감각이 남은 한쪽 다리가 꽤 차가웠다. 눈을 뜨자 사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몸에는 담요가 덮여 있다기보다 등 뒤까지 둘둘 말려 있었다.
“아, 더 주무셔도 되는데.”
“흐암…… 됐어, 낮잠은 길면 몸에 안 좋아. 뭘 하는 거야?”
“새로 쓰고 있어요.”
사서는 자신의 무릎을 툭툭 쳤다. 그곳에는 비메이의 본체인 책과 아까 재단한 종이가 있었다. 사서에게 받아 책을 펼치자 정말로 몇 페이지 정도가 색이 변하고 쭈글쭈글하게 녹아 있었다. 신기하게도 다른 페이지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사서는 무릎에 책받침을 놓고 아까 그 종이에 무슨 글인가를 적고 있었다. 글씨에 장식성이 많아서 뭐라고 쓰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자가 몇 개 보였지만 전부 일본어인 것도 아닐 것이다. 이것도 영업비밀이겠지. 물어봤자 대답해주지 않을 거고 대답해 준다고 해도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쓰는 데 얼마나 걸려?”
“쓰고 다시 제본하는 건 오늘 안에 끝나요. 그게 선생님과 이어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편이죠. 아, 이렇게 말하면 이해하기 어려운가? 그러니까 적응하는 시간이요.”
“그건…… 내가 노력해야겠네.”
“그래도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할 수 있겠어요.”
종이에 온갖 식을 쓰는 사서의 얼굴은 어쩐지 상기되어 보였다. 학자라는 이들은 자기 분야에 대해선 아무래도 이런 편인 걸까. 하긴 문호들도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식당 한복판에서 대규모 패싸움이 난다. 더구나 연금술은 생명의 금기와 기술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가르는 학문이다. 자부심을 덧붙여 이런 마음으로 임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선생님.”
“응?”
“《붉은 양초와 인어》, 읽어주세요.”
“뭐? 다른 얘기 들으면서 쓸 수 있어?”
“조금 섞여도 괜찮아요. 선생님을 만드는 거니까요.”
비메이는 담요 밑의 발을 수조에 흔들었다.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간이 지나 냉기가 가셔서인지 그냥 몸이 찬물에 익숙해졌을 뿐인지 아까처럼 차갑지는 않았다.
직접 쓴 글이기 때문인지 눈을 감고도 읊을 수 있었다. 그건 사서가 말한 대로 그를 만들 때 그 문장들이 섞였기 때문일까.
“저 인어를 좋아해요.”
그것은 처음 비메이를 맞이했을 때도, 그를 조수로 임명한 이유를 물었을 때도 사서가 한 말이었다. 만약 이 도서관에 안데르센이 있었다면 몇 년간 조수를 맡은 것도 그였을까?
“알고 있어. 금붕어 인어 말이지.”
사서는 미소만 짓고 대답하지 않았다. 식을 쓰는 손에는 속도가 더해졌다. 얇고 매끈한 종이에 빼곡히 글자인지 장식인지 모를 것이 채워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손을 녹일 코코아가 생각났다. 실내에 있으니 많이 나아졌겠지만 마디가 여전히 흐릿하게 붉었다. 글을 쓰는 손을 방해할 수는 없지만 손을 뻗어 왼손에 포갰다.
“미안해.”
“무슨 말씀이세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새옹지마라고도 하고, 전화위복이라고도 하잖아요.”
위로라지만 이걸 계기로 나아질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 샘플 데이터 같은 게 추가되려나.
“선생님이 손도 잡아 주시고 말이에요.”
“……좋은 건가?”
“좋은 거예요!”
본인이 좋다면 좋은 거겠지. 사서는 곧 종이를 전부 채우고 비메이에게 책을 받아 일어났다. 책을 뜯어 망가진 페이지를 빼내고 새로운 페이지를 넣는 작업은 저녁 식사 후로 미뤘다.
사서의 도움으로 겨우 식당까지 간 후에 걱정하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둘러싸여 식사를 했다. 어찌어찌 대꾸하며 식당을 나서 사서실로 돌아오고 나자 또 곧바로 지쳐 잠들었다.
기침이 나서 잠이 얕게 깼다. 어쩐지 목이 탄다. 여기가 어디였지, 아마 사서실 소파에서 그대로 잠들었던 모양이다. 몇 년 째 조수였으니 익숙한 대로 굴어버린 것이리라.
비몽사몽한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미끄러졌다.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은 탓이다. 새 다리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다. 손바닥으로 짚은 바닥이 차갑고 딱딱해 소파 위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일어서는 건 못하더라도 엎드린 자세가 몸에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 자세를 고쳐 앉았다. 소파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다시 졸음이 몰려와 차갑고 젖은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리고 그 바람에 어느 정도 잠이 깨고 정신이 들고 말았다. 젖은 손……
……어디에서 자고 있던 거지?
“선생님.”
“너, 너…….”
흐릿한 불이 켜진 책상 앞에 앉아있던 사서가 일어나 다가왔다. 아마 제본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소리를 듣고 비메이가 깬 걸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왜 이렇게 떨고 있는지 모른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망가져서 새로 쓴 다리뿐만 아니라, 멀쩡한 반대쪽 다리도. 마치 둘이 묶여있는 것처럼… 더 정확히는 하나로 붙은 것처럼, 그러니까 마치 꼬리처럼…….
“그렇게 무서워하지 마세요.”
사서가 손을 뻗어 그를 들어올렸다. 수조에서, 들어올렸다. 수조와 바닥으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 아아… 비메이는 덜덜 떨며 흠뻑 젖은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시야를 완전히 덮어 버리기 전에, 손가락 사이로 인간의 몸에는 절대 없을 무언가가 약한 빛을 반사했다.
“금방 익숙해지실 거예요.”
“……그럴 리가 없잖아…….”
쥐어짜낸 목소리가 간신히 대답했다. 두 다리를 잃고 그 자리에 붉은 비늘로 덮인 꼬리가 생긴 것도, 이전의 몇 배나 되는 수분을 요구하는 몸이 된 것도, 긴 시간 동안 물속에 있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게 된 것도, 무엇 하나 금방 익숙해질 수 없겠지만 사서는 자신이 하는 그 말이 진실인 것처럼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무엇이 사서가 말한 전화위복이고 새옹지마인지 알았다. 새 식을 쓰던 사서가 왜 그렇게 즐거운 것처럼 보였는지, 무엇을 생각보다 빨리 할 수 있었는지 이제서야 알았다. 새 종이에 식을 쓰는 사서가 다리를 쓴다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중력을 따라 흔들리는 꼬리지느러미가 소매를 적신다. 흐느끼는 울음은 셔츠 목에 자국을 남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 밤이 지나기 전에 지워질 것이었다. 그의 몸에 남은 비늘과 지느러미와 아가미와 다르게, 옅푸른 그 흔적은 자연스럽게 말라 세상 어디에도 없던 것처럼 흩어질 수 있었다.
“금방 마음에 들게 될 거예요.”
그 울음 전부를 무시하고 사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어르듯, 두 팔로 안은 비메이를 가볍게 흔들었다. 요람처럼, 모빌처럼. 미명이 밝고 아침이 올 때까지 잠들지 못하고 진주가 되지 않는 눈물을 쉬지 않고 흘릴, 지금 이 순간 온 세상에서 가장 어린 인어를 얕은 파도처럼 흔들었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