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 책갈피

3 꿈꾸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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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꿈꾸는 것

 

 

 

 

 

 

“그―러―니―까―! 절대 아닐 거라니까요, 그거…. 무슨 연못에 캇파가 살아요…!”

“진짜로 본 녀석 있다니까?

“그거 아쿠타가와 선생님이죠? 캇파 파라서 믿을 수 없다고요. 전 아니거든요.”

“그럼 뭔데?”

“악어 파.”

“캇파의 반대가 악어야?”

“캇파 파와 악어 파의 유서 깊은 대립을 모르시는군요? 이거, 몇 년 전부터 이어진 유서 깊은 싸움인데 말이죠….”

“누가 이겼는데?”

“중간 과정까지 좀 들어주시죠?!”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를 이만큼 열과 성을 다해서 하고 있다는 것은 취했다는 뜻이다. 이야기를 하는 쪽도 듣는 쪽도 좀 취해 있었다. 딱 적당히, 기분 좋은 정도로. 바람이 선선한 어느 초여름 저녁이었다. 며칠 전까지 한 조각 정도는 남아있던 봄도 이제 완전히 여름 속으로 녹아들어 해가 완전히 졌는데도 제법 더웠다.

서고 정리가 끝난 기념이라는 적당한 명목을 달고 열린 도서관 술 모임이 있었다는 걸 빼면 별다를 일 없는 주말이었다. 마시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취해서 목소리가 커진 녀석도 있어 식당 안은 무척 시끌시끌했다. 타쿠보쿠를 포함해 공짜 술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는 녀석들이 잔뜩 모여서 더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엄연히 말해 공짜는 아니었지만 이런 자리는 대부분 돈 좀 있는 녀석들이 대범하게 한턱내는 거니까. 복도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기웃거리다가 합류하기를 반복하더니 어느 시점인가부터는 먼저 취한 녀석들이 아예 지나가던 사람들을 붙잡아서 자리에 앉혀버렸다. 나중에는 다들 사냥이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가 되어서, 저기 멀리서부터 누군가 걸어오는 게 보이기 시작하면 ‘야, 온다. 온다.’하며 소곤거리고 있다가 왁 하고 튀어나와서는 무고한 통행인을 술자리에 끌고 오기까지 했다. 붙잡힌 이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자리에 앉거나 그 자리에서 건네진 잔을 쭉 비우고 나서 “진짜 이런 거 좀 하지 마!”하고는 다시 가던 길을 갔다. 모두가 오늘만 사는 사람인 것처럼 주말을 태우고 있었다.

조금 취해서 그런 걸까, 아는 얼굴이 하나둘 식당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참을 수 없이 웃겨서 타쿠보쿠는 소리 내어 웃었다. 옆에 있는 녀석들도 웃고 있었다. 정말로 계속 웃겼다. 그 녀석이 반쯤 떠밀려 식당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엥, 진짜요? 에…?” 같은 얼빠진 말을 내뱉으며, 어색한 표정의 사서가 말 그대로 등을 떠밀려 식당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저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신페이가 “앗, 사서 씨~!”하며 손을 흔들었다. 아니, 잠깐만, 저쪽 테이블로 보내는 건 죽어도 안 되겠는데. 그보다 옆에 단 앉아 있지 않아? 안 말리고 뭐 하는 거야? …아, 저 너석 설마 취했나. 그럼 더더욱 안 되잖아!

그때부터는 웃음이 안 나왔다. 여기저기서 사서를 알아보고 손을 흔드는 바람에 본인도 어디로 갈지 모르고 조금 우왕좌왕하고 있는 게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이쪽에서 붙잡아서 대충 한 잔 먹이고 돌려보내고 싶었는데 분위기를 보니 그렇게도 안 될 것 같았다. 한참을 주변만 살피고 있다가 문득 스스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나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별로 그럴만한 일도 아닌데. 술이나 마저 마시자는 생각으로 테이블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맞은편에 앉은 보쿠스이가 히죽거리며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뭐야? 봇상.”

“뭐긴 뭐겠어.”

“…놀리는 거지?”

“뭐, 잠자코 보고 있으라고.”

보쿠스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서는 아직도 어색한 미소만 지으며 헤매고 있었다. 어쨌든 갈 길 가다가 끌려온 셈이니 정신이 없을 것이었다. 보쿠스이는 그런 사서 쪽으로 성큼성큼 가까이 다가가더니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이쪽을 등지고 있어서 입 모양은 보이지 않았다. 뭐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들은 사서의 표정이 잠깐 밝아지더니 이내 좀 머쓱한 듯 희미하게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쿠스이가 사서의 한쪽 손을 잡더니 번쩍 위로 치켜올렸다.

“미안하지만, 사서 씨는 이쪽에서 빌려 간다―”

“에에, 사서 씨랑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저쪽에서 신페이가 아쉬운 듯 말했다. 사서는 “나중에 놀러 갈게요.” 하고 어중간하게 대답했다. 나중이라. 나중에 가면 저 녀석들은 이미 테이블 3개 정도는 전멸시키고 해맑은 표정으로 바깥에서 주먹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보쿠스이는 사서를 데리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이쪽을 보는 그의 표정이 어쩐지 의기양양해 보였다. 그러니까 왜 자꾸 히죽거리냐고, 봇상.

그것보다는 먼저 물어볼 게 있었다.

“무슨 얘기 했어?”

“비밀.”

“…봇상에게 물어본 거 아니거든.”

“비밀이에요.”

뭐냐고, 젠장. 왠지 좀 소외된 기분이라 달갑지는 않았다. 손 닿는 범위 안에 왔으니 적당히 먹여서 빨리 돌려보낼 심산으로 타쿠보쿠는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생각해 보니 심통 나서 가득 부었다. 한두 잔 정도는 괜찮을 테니까.

*

이 녀석, 술이 들어가면 평소보다 말이 많아지는 타입이었구나.

…라고, 타쿠보쿠는 생각했다. 생각보다 오래 붙잡고 있기는 했다. 신페이나 단 녀석들은 이미 테이블을 비워놓고 밖으로 나간 지 오래다. 밖에서 뭘 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안에서 사고 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서는 이번 주의 「도서관 이상한 이용객 랭킹」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데스크 근무 서는 건 잠깐인데 그렇게나 많이 만난 거냐…. 그만 먹여야겠다 싶어서 조금 전부터 잔을 아예 비워두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자기가 알아서 따르고 있다. 그만 마시라고, 그만.

“서가에 숨어서 팝콘을 왜 먹냐고…! 영화관이냐고…!”

아 예, 그러십니까.

아무튼, 이대로 놔두면 퍼마시고 나중에 이불 차겠거니 싶었지만 타쿠보쿠는 일단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놔두는 편이 더 웃길 것 같기도 했고. 그때까지는 딱히 먼저 일어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건 순전히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보쿠스이 때문이었다.

“아, 미안한데 나가서 음료수 좀 사다 줄래?”

나 참, 애 심부름도 아니고.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려는 목적이 뻔히 보였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사서도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봇상은 사람이 너무 좋다니까.

“혼자는 좀 그러니까… 타쿠보쿠라도 챙겨 가면 어때?”

…근데 나는 왜 묶어서 불러? 얼떨결에 지목당해 타쿠보쿠는 생각도 못 한 표정으로 보쿠스이 쪽을 돌아보았다. 보쿠스이는 아까랑 똑같은 표정으로 히죽거리더니 얼른 데리고 나가보라는 듯 타쿠보쿠에게 손까지 흔들어줬다. 좀… 그런 거 아니라고! 일어난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상태로 서 있으니 먼저 일어난 사서가 나가다 말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얼른 가죠?’ 하는 표정이었다. 타쿠보쿠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기운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기분이 좀 싱숭생숭했다. 앞서 걸어가는 아가씨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리하여 둘은 지금, 이렇게 밤길을 걷고 있는 것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드문드문 발밑을 비추었다. 강을 끼고 있는 산책로라서 그런지 불어오는 바람에 가끔 물비린내가 실려 왔다. 캇파 파와 악어 파의 대립과 흥망성쇠의 역사를 듣는 것도 슬슬 질렸을 무렵이었다. 잠깐 조용해졌다 싶더니 사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엉.”

“복권 1등 당첨되면 뭐 하고 싶어요?”

“…어?”

예상도 못한 질문이라 좀 놀라고 말았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웬 복권?”

“가정 해 보자는 거죠, 가정.”

“평소에 복권 사기나 해?”

“잘 안 사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가정이라니까요.”

“너 취했지.”

“뭔 말을 못 하게 해….” 라고 중얼거리며 사서가 볼을 살짝 부풀렸다.

“뭐, 됐어요. 선생님은 보나 마나 술일 테니까.”

“야.”

“술 다음에는 빌린 돈을 갚아야겠고.”

솔직히 너무 정곡을 찔려서 할 말이 없었다.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복권에 당첨된 적이 몇 번인가 있긴 했다. 그리고 정확히 사서가 말한 대로 돈을 전부 탕진하고 수중에는 아무것도 안 남는 것이 정해진 결말이었다. 빌린 돈을 갚는 데까지 가면 다행이지, 대부분은 술에서 끝나버렸으니까. 타쿠보쿠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서가 조금 웃었다.

“그러니까 그걸 다 하고 나도 돈이 남으면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려고 했어요.”

“뭐, 적당히 갖고 싶었던 걸 사지 않을까.”

“흐응.”

“뭐야, 먼저 물어봐 놓고 그 태도는. 그러는 너는 뭐 대단한 꿈이라도 있어?”

질문이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한 건지 사서는 으음, 하고 뜸을 들였다. 조용해진 틈을 타서 타쿠보쿠도 잠깐 생각에 잠겼다. 복권 1등이라, 요즘은 얼마나 주더라. 딱히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복권을 사는 건 아니니까 구체적으로 얼마나 주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 큰 금액일 것이다. 어쩌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갖고 싶은 것들을 모두 다 살 수 있을 정도로.

먹고 사는 게 곤란하던 시절에는 없는 생활을 깎아내서라도 손에 넣고 싶은 것들이 이것저것 있었다. 마음을 깎아내며 살아갈 수는 없으니 생활을 깎으며 살아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마 지금도 별로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잠잘 곳도 먹을 것도 입을 옷도 보장되는 곳에서조차, 습관적으로 생활을 깎아내며 마음을 지키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곤란할 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데도.

그러니 복권 1등에 당첨된다고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루고 싶은 대단한 꿈도 없고. 여기서는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할 수 있다. 지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단지, 오래전에 깎아냈던 무언가가 아직도 계속 마음에 걸리는 탓으로….

“왜 그래요?”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섰던 모양이다. 조금 앞을 걷고 있던 사서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타쿠보쿠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적당히 얼버무리고는 보폭을 맞췄다. 웃음 섞인 목소리로 사서가 말했다.

“생각해 봤는데, 저도 대단한 꿈은 없네요.”

“뭐야, 그게.”

“한 번쯤은 바다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거 정도일까요…. 아, 밀짚모자도 하나 갖고 싶다.”

“어이, 하고 싶은 거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잖아.”

“찻잔도 조금 더 사고 싶고….”

“듣고 있어?”

“1등 당첨되면 선생님에게도 한턱 쏠게요. 특별히.”

사서가 조금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벌써 1등 당첨된 기분이라도 내고 있는 건가. 복권은 사지도 않았는데.

“아, 맞다. 잠옷을 사야 해요.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걸로.”

갖고 싶은 것들의 목록이 어째 다 서민적인 걸 제쳐놓고도 태클 걸고 싶은 것투성이였다.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잠옷은 뭐야. 반대로 못 보여주는 잠옷은 또 뭔데?”

“네? 집에서 3년쯤 입어서 목 늘어난 티셔츠 입고 돌아다닐 수는 없잖아요.”

상관없지 않나…? 모르겠다. 뭐, 이 녀석의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보다 문득 궁금증이 떠올랐다. 취기가 덜 가신 탓인지 생각도 안 하고 말을 그냥 입 밖으로 뱉어버리고 말았다.

“저번에 그건 보여줄 수 있는 잠옷이었어?”

“…….”

“…….”

음, 이건 좀 실수했다. 사서는 잠깐 타쿠보쿠를 빤히 쳐다보더니 노골적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선생님한테는 좀…. 그냥 뭐든 안 보여주고 싶을지도.”

“뭐?”

“그런 게 있어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캐물어도 알려줄 것 같지 않았다. 어쩐지 열 받으니까 나중에 간식을 좀 뺏어먹어야겠다. 그보다 결국은 다 적당한 가정이다. 손에 들어오지 않은 돈으로 미래의 일을 구체적으로 망상해 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무언가가 달라질 리도 없고.

그러면 지금 이 손에 없는 그 당첨금으로는 좋아하는 것을 사자. 머릿속에서라도 써서 없애버려야겠다. 잉크를 사고 펜을 사고 술을 사고 담배도 사 버리고, 지나가는 들개에게 던져줄 간식을 사도 좋을 것이다. 아, 그리고 역시….

슬쩍 곁눈질로 사서를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누가 뭐라고 말할 것도 없이 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책을 사고 싶어요.”

“역시 책이지?”

대답하는 타이밍이 겹치기도 했지만 내용도 겹칠 줄은. 사서가 웃음을 터뜨렸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걸까요? 도서관에서 일하는데도?”

“그건 엄연히 말하자면 이 몸의 책은 아니잖아.”

“그렇죠, 내 건 아니니까…. 예산 문제로 도서관에 안 들어오는 책도 좀 있고요.”

“뭐, 그런 거지.”

“아, 그리고 책을 왕창 넣을 수 있는 집도 있으면 좋겠네요.”

“1등이면 한 채 정도는 지을 수 있겠지?”

“한 채가 뭐예요. 세 채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1등 얼마 주는데?”

“…잘 모르겠지만.”

“모르는 거냐.”

한번 물꼬를 트고 나니 대화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별 무게도 없는 바보 같은 말들이나 뱉고 있자니 어쩐지 기분이 좀 나아졌다. 잡담하는 사이 꽤나 걸었는지 산책로도 슬슬 끝나가고 있었다. 곧 큰길에 접어들면 가게들이 잔뜩 나올 것이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시야 끝에서 반짝였다. 타쿠보쿠는 가볍게 기지개를 피며 별생각 없이 말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아니, 어쩌면 곧바로 다른 걸 갖고 싶어지겠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금방 관심을 갖고 또 금방 질려버리곤 하니까 혹해서 산 물건들도 오래 돌보지 않는 일이 다반사다. 오늘 좋아 보였던 것을 내일도 좋아할 것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런 성정이니까, 어쩔 수 없다.

있죠, 하고 사서가 가볍게 말을 걸었다. 타쿠보쿠는 사서 쪽을 돌아보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로 조금 먼 곳을 바라보며 사서가 말을 이었다.

“만약 제가 1등에 당첨된다면요.”

“응?”

“줄게요, 이것저것.”

“뭘 줄 건데?”

“뭐…. 세상이라던가?”

뜬구름 잡는 소리에 좀 맥이 빠졌다. 한숨과 웃음이 반씩 섞인 목소리로 타쿠보쿠가 대답했다.

“1등으로 세상까지 살 수 있는 거냐고.”

“물건은 물건을 부르고 꿈은 꿈을 부르잖아요.”

그 말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타쿠보쿠는 잠시 멈춰 섰다. 사서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물냄새 섞인 바람이 초여름 산책로의 나뭇잎을 마구 흔들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는 사서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줄게요.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고, 계속 꿈을 부를 수 있는 거.”

눈이 마주쳤다. 타쿠보쿠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사서로서는 드물게도 확언이었다.

언제까지고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꿈을, 누군가로부터 받을 수 있다면.

취기가 덜 가신 주정(酒酊)이겠지만 단단한 말을 듣고 나니 정말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 따위의 실존여부는 아무래도 좋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타쿠보쿠 본인도 좀 취해 있었던 모양이다. 마주 선 사람의 살아 숨 쉬는 시선을 믿고 살아갈 수 있다면 삶에 질리지 않고 불확실한 바다의 건너편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어지던 침묵을 깨고 사서가 웃었다.

“복권 사러 갈래요?”

“1등이 아니면 안 주는 거지?”

“아무래도 그냥 주기에는 좀 거대한 거니까요.”

역시 쉽지는 않다. 세상을 받으려면 복권 1등 정도는 당첨되어야 하는 것이다.

“갈까. 너무 오래 끌면 봇상이 시끄러울 거고.”

타쿠보쿠는 발을 움직였다. 앗, 하고 사서가 정말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음료수 완전 까먹고 있었다.”

“복권만 사서 가려고 했냐? 그럼 본말전도잖아.”

“선생님이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괜찮아요.”

등 뒤로 비치는 가로등 불빛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물소리와 함께 시선도 마음도 흘러서,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초여름의 밤이었다.

명목상의 심부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게에서 착실하게 음료수를 샀다. 겸사겸사 즉석복권도 두 장 샀다. 주머니 속에 굴러다니던 뜨뜻미지근한 5엔짜리 동전으로 스크래치를 열심히 긁었다. 당연하지만 꽝이었다.

왠지 이 흐름이라면 1등이 당첨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조금 기대했었지만 어림도 없던 모양이다. 200엔에 건 기대로는 딱 그 정도의 결괏값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결과를 본 사서가 그럴 줄 알았다며 피식 웃었다.

“7등도 안 됐네요.”

“다 그런 거지, 뭐.”

“사실 좀 기대했었거든요. 1등까지는 아니어도 4등이라거나?”

“4등은 쉬운 줄 알아? 이게 현실이라고.”

“그렇네요―.”

타쿠보쿠는 꽝이 된 복권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뭐, 됐다. 그 정도의 가치를 지닌 걸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가자, 라고 짧게 말했다. 사서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고조되었다가 가라앉은 마음과 얕게 남은 취기와 언젠가 받게 될 꿈꾸는 것이 잠깐 사이에 서로의 눈동자 속에서 뒤섞였다. 발을 맞춰 나란히 걸었다.

진짜 여름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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