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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른 모래를 밟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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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른 모래를 밟으며

 

 

 

 

 

 

 

이번 주 내내 하늘이 흐리더니 습하고 더워졌다. 장마전선이 좀처럼 빠르게 올라오지 않아 습도만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덜 마른 빨래에서 꿉꿉한 냄새가 났다. 찜기 안에서 끝없이 가열되는 것 같은 날씨였다.

갑자기 짜증이 훅 치밀어올라 타쿠보쿠는 신경질적으로 노트를 덮었다. 어쩐지 잉크가 계속 번진다 싶더라니 종이가 습기를 먹은 모양이었다. 하루 종일 머리가 무거웠다. 단순히 날씨 탓이라기에는 이상하게 컨디션이 안 좋았다.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 걸까. 오전에 독촉장을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독촉장을 친히 가져다주러 온 하쿠슈에게 잔소리를 들어서? 결국은 또 다 돈 때문이다.

산책이라도 나가면 기분이 좀 풀릴 것 같아 적당히 나갈 채비를 마쳤더니 내내 흐리던 하늘에서 그제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타쿠보쿠는 현관 앞에 서서 뚱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봤다. 비로소 도망칠 수도 없는 장마의 시작이었다.

방으로 돌아왔지만 어쩐지 하루를 전부 방해받은 느낌이 들어 계속 신경질이 났다. 책이라도 읽을까 싶어 펼친 소설들은 죄다 도입부만 읽고 질려서 덮어버렸고 뭔가를 쓸 기분은 더더욱 아니었다. 잡생각이 끝도 없이 올라왔다. 타쿠보쿠는 급기야 방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나무 천장의 나이테를 세기 시작했다. 그것도 얼마 안 가서 질려버렸다. 멀쩡한 시간을 죽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머리가 아팠다. 모든 게 참을 수 없이 지겹게 느껴졌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사서실에 볼일이 있었던가….

…가기 싫다. 타쿠보쿠는 옆으로 돌아누워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 녀석이 갑자기 싫어졌다거나 질렸다거나 하는 건 아닌데, 오늘은 왠지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안 가도 상관이야 없겠지만 이미 약속을 했으니 사서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아주 작은 양심이 마음을 쿡쿡 찔러서 어쩔 수가 없다. 타쿠보쿠는 밍기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창밖에서 장대비가 조금도 약해질 기색 없이 계속 시원하게 퍼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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