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츠자] 비가 내리는 동안
전력 드림 60분 신데렐라 4회: 그친 뒤에는
별다른 일이 없는 평일 오후, 그것도 늦은 저녁 시간대가 되면 카페 포와로는 따분할 정도로 한가로웠다. 그날은 탐정인 모리 코고로가 자리를 비운 덕분에 탐정 사무소 드물게 조용한 날이기도 했다. 적막한 주변과는 대조되게 츠자와 모모는 원고 마감을 앞두고 머릿속이 복잡할 지경이었으나, 카페 안은 오로지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밖에 없었다.
사실 그는 포와로에 자주 드나드는 편이 아니었다. 자주 찾아갈 만한 이유도 별로 없었다. 그의 집 근처에도 카페는 많이 있었으니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포와로까지 발걸음 할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저 우연찮게 그곳을 지나가던 길에 갑자기 비가 내리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들어가 가방을 뒤져봤지만 우산이 없었고 그런 난감한 때에 마침 친절한 포와로의 직원이 비를 피하고 가는 게 어떠냐고 말을 걸어왔다. 하늘을 올려다봐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빗줄기는 오히려 점점 더 세지고 있는 탓에 하는 수 없이 카페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지금도 밖은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어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에 아예 포와로에 자리를 잡고 앉은 상황이었다. 츠자와의 오랜 친구를 닮은 친절한 직원 아무로 토오루는 영업용 미소를 지어 보이며 주문은 무엇으로 하시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아이스 커피요.”
“카페인을 너무 많이 섭취하는 건 몸에 좋지 않을 텐데요.”
“커피면 충분해요.”
알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아무로는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괜한 참견이 아닐 수가 없었다. 걱정해주는 마음이야 고마울 따름이지만, 지금의 츠자와에게는 카페인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마감이 코앞인 탓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감을 피하려고 한숨 돌리려고 나온 차였으나, 가방 속에서 끊이지 않고 울리는 진동을 모르는 체했다가는 화를 면치 못할 것만 같았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외면하고 있던 츠자와에게 커피를 들고온 아무로가 물었다.
“전화가 오는 것 같은데 안 받아도 괜찮나요?”
“괘… 괜찮지 않죠. 한 번만 더 무시했다가는 당장 내일 신문에 실릴지도 몰라요.”
“신문이요?”
“뉴스에도 나오겠죠. 모 소설 작가, 편집자에게 살해 되다.”
“농담도 잘하시네요.”
“농담으로 들리시겠죠. 하지만 진짜예요. 살해 동기로는 아주 충분하거든요.”
편집자는 가끔 아주 가끔 마감이 다가와도 진전이 없는 츠자와에게 꽤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편이었고 끈질긴 사람이다. 지금 이 반복되는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계속될 터였다. 물론 아무로와의 대화를 마치고 바로 휴대전화를 가방에서 꺼내서 전화를 받기는 했다.
마감이 얼마 남았는지 아느냐, 지금 작업 중이니 걱정하지 말라, 선생님만 믿겠으니 꼭 제 시간 안에 주시라, 걱정하지 말라, 그렇게 이야기가 오가는 한편, 츠자와는 머릿속으로는 그의 살인 동기와 살해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었다.
딱히 기가 막힌 트릭을 생각해낼 정도로 치밀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으니 끽해야 어느 추리소설에서 봤던 트릭이나 어줍잖게 흉내낼 테지. 그것도 아니라면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나서 자수를 한다든가 정도이니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을 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생각이 다른 데로 새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은 마감에 늦지 않게, 제시간에 맞춰 원고를 퇴고하는 것뿐인데 말이다. 마음을 가다듬은 츠자와가 원고를 하고 있으면 아무로는 그런 츠자와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비도 오는 평일 저녁의 포와로에 손님이라고는 마감을 목전에 두고 원고 중인 츠자와 밖에 없었으니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빗소리와 타자 소리만 카페 안을 채워가던 무렵, 츠자와가 적막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저기 후루야 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제 이름은 아무로 토오루인데요.”
단둘만 있는 자리이니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꺼낸 말이었지만, 아무로는 그럴 틈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츠자와는 속으로 매정하기가 그지없는 사람이라고 그를 매도하면서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러면 아무로 씨 한 가지만 들어주지 않을래요? 아무로 씨가 제 친구를 닮았거든요. 비가 그칠 때까지만 친구로서 있어 주실 수 있나요?”
“비가 그칠 때까지만이면 되나요?”
“이 비가 다 그친 뒤에, 그때는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도 좋으니까.”
그러니까 츠자와는 이 비가 그칠 때까지만이라도 그가 자신이 알던 옛날의 후루야 레이로서 대해주기를 바랐다. 한낱 사람이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었지만, 흉내를 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로 토오루는 아무 말 없이 츠자와의 테이블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오랜만이야, 츠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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