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게임즈

소네트 18번

I.

차징 팔콘 소대는 여름을 닮았네. 지휘관은 아무 맥락 없이 그런 말을 했다.

그리고 그걸 카무가 들었다.

대검이 침식체의 머리를 꿰뚫을 때마다 지휘관의 목소리가 신경 네트워크 회로를 타고 흘렀다. 카무는 신경질적으로 대검을 내던져 멀리서 총을 겨누는 침식체의 머리를 반으로 가르고, 그대로 도약해서 뒤에서 포격을 준비하는 근위병을 걷어찼다. 주변에 스파크 튀는 소리만 남았을 무렵 카무는 다시 신경질적으로 대검을 내리꽂았다. 욕지거리를 질근질근 내뱉는 제 목소리 사이로,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수격자와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숱하게 들은 지휘관의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군인에게 문학과 예술이 등한시되는 시대였고 공중정원에서 기술과 과학이 가장 최고로 우대받는 시대였으나 지휘관은 꿋꿋하게 황금시대의 문학을 찾아 읽고는 했다. 그레이 레이븐 소대가 대기 시간마다 시집하며 단편집을 한 권씩 들고 다니게 된 것도 지휘관 탓이었고 자료실만큼은 절대 들어오지 않았던 카무이가 공개 도서 자료실에 얼굴을 들이민 것도 지휘관 탓이었다. 기어코 크롬마저 손에 삼백 페이지짜리 소설책을 손에 들었을 때 카무는 그 모든 상황에서 눈을 돌리기를 택했다. 수격자에게 가장 안 어울리는 물건 중 하나를 고르라면 책일 것이다.

"널 조각상으로 만들어서 나한테 바쳐. 구룡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을 테니까."

"……."

"농담이야. 넌 이렇게 생기 넘치는 모습이 더 좋으니까."

책을 좋아해서 지휘관을 조각상으로 만들 생각을 하게 된다면 더더욱 사절이었다.

…… 언제부터 그런 이를 신경 썼다고. 카무는 뺨을 타고 흐르는 순환액을 손등으로 훑어내며 잠시간 기억을 되짚었다. 작전의 내용과 앞으로 그가 물어뜯어야 할 적의 정보 사이를 지휘관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카무는 다시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인정하기 싫다 외치는 감정 사이로 이성이 비집고 들어와 이만 인정하고 편해지자며 백기를 은근슬쩍 내밀었다.

"인정할까 보냐."

그리고 카무는 꽤… 제법, 감정적인 편이었다.

"나랑 책 읽을래?"

"뭐?"

그러나 때때로 카무의 이성이 감정을 이길 때도 있는 법이다. 드물게 얼이 탄 카무를 바라보던 지휘관은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고 그를 휴게실에 앉혔다.

II.

카무는 지휘관이 차징 팔콘 소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여즉 기억하고 있었다. 카무이는 초여름 아침의 신록을 닮았고 크롬은 한여름 낮의 바다를 닮았다고, 협동 작전 때문에 차징 팔콘 소대를 모아두고 브리핑을 하던 지휘관을, 퍼니싱 침식 농도가 높은 곳이었기에 그런 곳을 숱하게 드나드는 수격자의 조언이 필요해서 자신이 회의실로 불려왔던 것까지 기억했다. 구조체는 고농도 침식 상태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기체기 때문에 혹여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게 위해서- 였다고. 지휘관이 그를 호출하면서 단말기로 보냈던 말도 다 기억했다. 수격자의 데이터베이스는 망각을 허용하지 않았다.

수격자는 발걸음을 죽이는 방법을 알았다. 작령의 발걸음은 소강된 전장에 남은 잿바람을 닮았고 광견의 발소리는 그믐날에 늘어지는 그림자를 닮았다. 그러니 아무리 기민한 군인이라 하더라도 지휘관이 그날 카무의 소리를 들었을 리가 없다. 카무에게는 모든 곳에 전쟁터였으므로. 헌데 지휘관은 마치 그날 문 뒤에 카무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는 듯 휴게실에 앉혀둔 그에게 여름과 관련된 말만 잔뜩 늘어놓았다. 제가 그대를 여름날에 비유해도 괜찮을까요?¹ 생동하는 낮 당신을 보게 되면 내 두 눈은 얼마나 영광스럽겠는가.² 나는 태양과 바다와 바람같이 하얀 것, 정처 없는 것을 좋아하나니³……. 쓸데없는 짓이라고 말하며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제 손목을 다 감싸지도 못하는 손이 불가항력처럼 그를 붙잡고 있었다.

"어때?"

"… 쓸데없는 짓이야."

"다음에 또 들려줄게."

멋대로 한 약속이라고 말하면서 손을 내치고 싶었다. 이런 건 불요한 짓이라고. 이런 짓을 해 봐야 자신이 인간이 되진 않을거라고, 그리 말해주고 싶었다. 허나 지휘관은 멋대로 한 약속을 정말 지키려드는지 꼬박꼬박 카무를 불러내어 황금 시대의 문학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들어보았을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저곳에서 삶을 영위했습니다.⁴ 별들이 모인 도시여, 당신은 나만을 위하여 빛나고 있나요.⁵ 도서관의 창 너머로 보이는 지구를 바라볼 때는 천문학을 노래했고 공중정원의 궤도 너머로 사라지는 노을을 볼 때면 사랑 노래를 읊고는 했다. 그런 것이 다 부질없는 짓임을 지휘관이 가장 잘 알 텐데도.

"카무."

"지휘관."

"너도 여름을 닮았어."

여름의 밤에 오는 거대한 폭풍. 지휘관의 손이 소리나게 책을 덮었다. 없는 심장이 쿵쾅거린다. 카무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III.

타나토스가 크게 횡을 그리자 오염된 순환액이 허공에 나부꼈다. 자줏빛 번개가 역안에 깃들고 이내 대검이 침식체의 머리를 꿰뚫는다. 광견은 신경 네트워크에 흐르는 단어를 드문드문 내뱉었다. 별, 사랑, 여름, 바다. 대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익숙한 목소리가 익숙한 단어를 속삭였다. 다시금 별, 사랑, 여름, 바다. 역안에 깃든 번개가 전장을 가를 때마다 광견은 익숙한 문장을 내뱉었다. 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그리고 광견은 잠시 문득 멈춘다.

군인에게 가장 등한시되는 것이 문학과 음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휘관은 황금시대의 오래된 문학들을 사랑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지구가 퍼니싱에 침식되지 않았더라면- 오래된 고서를 보는 직업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카무의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군복 대신 연구복을 입고 조심스럽게 빛바랜 고서를 훑는 지휘관의 모습이 지나갔다. 이상한 일이다. 기계는 상상을 할 수 없을텐데, 이상하게도, 그런 것이 떠올려지는 것이…….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여름이 사라지지 않고.⁶ 지휘관이 나즉히 속삭인다. 새까만 옷에 반사된 도서관 전등의 하얀 불빛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카무는 무의식적으로 공중정원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여름의 자료를 꺼내온다. 바다에 반사되는 하얀 햇빛을 닮았다. 여름이었다. 여름의 어지러운 빛이 카무의 시야를 흐린다…….

…… 지휘관은 여름을 닮았다.

일순 카무의 얼굴에 새빨간 열이 들었다.


¹ 셰익스피어, 소네트 18번

² 셰익스피어, 소네트 43번

³ 헤르만 헤세, 흰 구름

⁴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별

⁵ 라라랜드, City of Star

⁶ 셰익스피어, 소네트 18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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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페어
#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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