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nanza in Pride

1차 창작입니다

*소설의 모든 서술 내용은 한치의 진실도 없는 새카만 거짓들로, 실존하는 인물, 재산물, 단체, 행사, 기념일 등 그 어떤 것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단순한 방어용 문구가 아니라 무슨 기막힌 우연이 있는 게 아니고서는 제가 아는 한 절대 관계 없습니다.

*쓰는 중임. 꽤 오래 묵은 원고라 일단 공기 좀 쐬어둠.

*원래는… 글리프 이벤트에 내려고 부랴부랴 적던 거였는데… 자신감과 역량 부족으로 폭파^^했었음.

**작중작 내지는 작중 블로그글 컨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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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0년도 더 된 이야기이지만, 33년도 2월 초쯤에 충남 당진의 한 노변 풀숲에서 사람의 머리가 덜렁 발견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방송3사 보도에 따르면 최초 발견자는 내국인 관광객이었던 모양이고, 적어도 당시에는 성인 여성이라는 점 외에는 알려진 것이 크게 없었습니다. 웨이백머신으로도 기사 원본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만, 당시 돌던 이야기로는 최초 목격자 외에도 경찰이 출동해서 현장을 수습하기 전에 인근 주민이나 자전거 동호인들을 비롯해 다수의 행인들이 그 머리를 보았고, 여성이 아니라 단순히 머리가 긴 남성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는 모양입니다. 사건화가 된 것 같긴 한데, 적어도 찾아지는 후속보도는 없네요.

이어서라긴 뭐하지만 당월 중순에는 강원 영월에서 여성의 회음부 일부가 병원 의료폐기물 사이에서 발견이 됩니다. 다 쓴 주사기들을 모아 폐기한 비닐봉지 안에서 발견이 됐다는 것 같습니다. 보도는 경찰에서도 사건 파악을 하는 중이라는 쪽으로 나갔는데요, 그래서 사건화가 됐냐면 이건 그마저도 아예 안 된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게 발견이 된 이유는 웃기게도 마약때문이었다는 것 같네요. 제보자들은 마약류특별관리법에 의해 체포되긴 했지만, 이후 조사 결과 마약류 관리책임자나 유통책이 아니었고, 또한 제보의 공익성을 고려해 최종 형량이 다소 감경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건 언론에서 이렇게 밝힌 건 아니고, 누군가 익명 사이트에 관계자 인증과 함께 썰을 푼 글이 웨이백머신에 남아있었습니다.

사전지식을 약간 깔았으니, 이제 사기꾼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위 사건들로부터 3년 전, 2030년에 충남 당진을 사무실 소재지로 회사 하나가 설립이 됩니다. 사명은 이음올 컴퍼니, 대표는 강현중이라는 30대 중반의 남성이고요. 당시 갓 이뤄졌던 헌재의 동성혼 합법화 무효의 소에 대한 기각 결정에 따라 많은 업체가 소위 블루오션이다, 하는 느낌으로 우후죽순 퀴어들을 타겟으로 다양한 사업과 프로모션을 벌였는데, 설립 당시에는 이런 흐름을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소규모 신생 사업체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주 사업은 일단 회원제 데이트 어플리케이션 서비스인 ‘올러브’로, 기존의 대형 결혼정보업체에 비해서는 작은 규모지만 서비스가 소수자 및 퀴어친화적이고 또 특화적이라는 이유, 그리고 광고가 SNS상에서 밈이 되면서 확보한 인지도를 통해 원활한 유입이 이뤄지면서 어느정도 초기부터 안정적인 서비스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사업이 잘 되자 곧 강 대표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사업 확장을 시도해 의류 판매 플랫폼과 외식업까지 손을 댔는데, 이게 또 호응이 좋아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리는 데 성공합니다. 당시 ‘네카라쿠배당토’라고 해서 상승세인 IT 플랫폼사업체들을 모아 부르는 유행어가 있었는데, 여기 뒤에 따라붙이기도 했다네요. 요즘이야 크던 작던 성장세가 그렇게 좋을 순 없으니 그런 말이 없지만요. 물론 당시 모두가 줄임말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고, 결국 외식업 비중이 높다며 애매하게 보는 시선이 다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업 3년차인 33년 5월, 이음올은 모기업이 되는 이음사이와 주 사업을 전담하는 올러브 두 개의 회사로 분사하며 자본구조를 한번 정리하게 됩니다. 인터뷰, 강연, SNS 등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강 대표가 이 시점을 기해서 돌연 별다른 입장 표명 없이 대표직을 사임하고, 본인의 SNS에 적은 바로는 휴양을 떠나고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무렵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2월에 당진에서 발견된 머리의 주인이 강 전 대표의 연인이며, 강 전 대표는 수사망을 피해 해외로 도망친 것이다’라는 소문인데요, 이게 주로 주식 하신다는 분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는 모양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배경지식을 끼우자면, 이음올이 그 전해 말에 외식업 일부를 판매해 현금자산이 확 불어나 있었고요. 또, ‘올러브’의 특징으로 어플리케이션 내의 미려한 각종 디자인과 아트, ‘올럽성형외과’나 ‘올럽미인’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강력한 사진 보정 기능을 꼽을 수가 있는데,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신규로 NFT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하며 특유의 미감 높은 수려한 일러스트와 활발한 콜라보 상품의 발매, 나만의 NFT같은 걸 내세운 탓에 인기가 제법 폭발적이었다고 합니다.

당초 강 대표가 인플루언서 활동을 하며 SNS 상에서 쌓은 신뢰도가 높았다고 하고요. 거기다 빠르게 적절한 원리원칙, 그리고 ‘시중의 편견보다 우리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내포한 DB와 모델을 수립하자’는 식의 모토를 내세워서 이음올은 다방면의 자체개발 AI 모델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상당히 금방 모을 수 있었는데, 그 AI 연산에 필요한 자원을 대여 혹은 후원의 형식으로 전개된 자체적인 블록체인 화폐 사업이 기존에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이게 이용자들로부터는 상당한 신뢰를 얻으며 사용자간 공용 화폐 느낌으로 사용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다시 이걸 바탕으로 하는 NFT 사업을 전개했으니 많은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겠죠.

거기다 사람이 몰리는 걸 보고는 돈 냄새를 맡은 새로운 수요층이 가세하며 사업의 비중이 좀 바뀌게 되었으니, 전통적인 시장에서는 기존 몇건의 대형 사기 이후 이런 사업의 가치를 좋게 평가하진 않는지라 상장 심사 대상으론 영 모양새가 좋지 않아진 겁니다. 쉽게 말하면 당시 국내 기준 약간 수상한 사업에다 꾼이 끼면서 거품이 생겼달까요. 애초에 이음올은 적극적으로 상장 의사를 내비친 적은 없었다고는 하지만, 김칫국을 정확하게 헛 마셔야 돈을 버는 게 국장에서 단타 잘 치는 방법이라고 이해해본다면 왜들 화가 났을지는 나름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닐 것 같습니다. 아무튼 당시 커뮤니티 사이트들의 과거 기록들을 살펴보면 이음올의 사업 전반이 일부 사람들이 과하게 거리껴할 정도로 아주 잘 나가고 있었다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휴식기에 접어든지 한 반년 좀 넘은, 대충 8개월째에 강 전 대표가 SNS상의 활동을 재개하며 귀국을 알립니다. 강 전 대표는 복귀하자마자 다시 이음사이의 체어맨 자리에 취임했습니다. 그리고 강 대표의 결정인지는 몰라도 모회사가 된 이음사이가 드디어 IPO를 했는데, 이걸 한국이 아니라 태국에서 했다는 게 특이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이 점이 많이 주목받았는지 관련 기사가 제법 있습니다. 어쨌든 공개되자마자 당일 시중에 내놓은 300주 전량이 거래가 이뤄졌다고 하고요. 휴식 이전의 과감한 사업 확장 경향과는 다르게 소극적인 전개를 하지 않았나 하는 평이 나옵니다.

이후 이음사이는 태국에 IPO를 한 게 다 이유가 있었다는 듯이 이음올 태국지사를 설립하고 올러브의 글로벌 서비스를 전개합니다. 한국에서의 호평을 바탕으로 잘 안착한 모양인데, 사실 아시아권 통틀어 한국이 동성혼 합법화가 시기가 가장 늦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발주자라는 불리함을 안고도 선전했다는 것이니 정말 인기가 좋았나보다 싶은 부분이네요.

사실 글로벌 서비스 시작 자체는 IT업체들이 으레 그렇듯 별다른 특이점은 아니고,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올러브가 이 태국 사업부를 통해 신규로 P2E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사실상 한국에서 상장하지 않은 주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겠죠. 당시 현행법상으로 업체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개인이 NFT 거래를 하는 것은 딱히 불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하는 서비스가 아닌 만큼 IP 우회를 통해 접속하는 한국인 유저도 상당수 있었고, 서비스 자체도 한국어를 제공했다고 합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과정 모두가 당시의 현행법상으로 합법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 사업부인 올러브쪽으로 과징금이 좀 추징됐는데, 자세한 건 올러브 관련이 아닌 맥락도 설명이 필요해서 이야기가 길기도 하고 제 이해 밖의 일이라 그런 일이 있었다고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아무튼 태국에서의 P2E 서비스 런칭에 대해 국내 여론은 대부분 ‘우려 가득한 시선’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34년 4월쯤에 강 대표가 결혼 예정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옵니다. 정식 언론을 통해서는 아니고요, 파파라치와 타블로이드지 계열의 인터넷 언론사를 통해서 사진 몇장과 함께 의혹이 제기됐는데, 기사 자체는 평범한 가십이었지만 이후 웹상의 반응이 아주 혼란했습니다. 위에서 당진에서 머리만 발견된 시체 얘기를 했었죠? 이유가 있습니다. 이 머리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있었는데, 이미 실종신고가 접수된 점과 SNS 계정의 갱신이 줄곧 없었던 점, 그리고 자칭 관계자 썰 등으로 인해 머리의 정체가 그 분이 아니냐는, 기정사실화된 이야기가 괴담 사이트 등에서 돌고 있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하필 찌라시에서 강 대표의 결혼상대로 지목한 게 이 분이었던 겁니다. 심지어 타블로이드지쪽에서 화제성을 의식한건지 갱신이 멈춘 SNS 페이지에 올려져있던 사진을 도용하기까지 했고요.

난리가 납니다. 곧 강 대표가 자신의 SNS에 해명글을 올렸습니다. 문제의 실종자분과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길진 않은 사정 설명이었는데요. 요약하자면 사귀는 것, 결혼 예정인 것 모두 맞으며 결혼식은 비공개로 진행할 예정이고, 실종신고는 ‘종교적 신념 차이’로 연인이 가족과 불화가 있어 독립을 서두르다보니 연락이 다소 미흡해져 벌어진 소동이라 지금은 이미 해결이 된 부분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올린 사진에 대해서는 네티즌 수사대를 통해 강 대표가 휴식기에 들어가기도 전에 한국에서 찍은 사진이었던 것이 밝혀집니다. 꽤 오래 전부터 사귀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죠.

그리고 몇 년 뒤, 웹상에 폭로글이 하나 올라옵니다. 좀 기니까 이것도 요약을 좀 해보겠습니다. 작성자는 자신이 강 대표의 친누나라며, 지금 강 대표로 활동하는 인물이 강 대표 본인이 아닌 정체불명의 사기꾼이고, 꽤 긴 시간동안 진짜 강 대표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예전과 현재의 강 대표를 동일인으로 볼 수 없었다는 이유가 꽤나 많고 또 설득력이 있었던데다, 강 대표가 어느샌가 다시 출국한 상태였던 점 등 행적에 수상하다면 수상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논란에 금새 불이 붙습니다. 하지만 그 친누나라고 밝힌 쪽도 떳떳하지만은 못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여론은 그냥저냥 유산을 노린 집안싸움이 아니냐는 쪽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 소동의 와중에 밝혀진 강 대표의 가족사를 간략히 적어보자면 글의 작성자가 주장하는 신원인 강 대표의 누나인 연 씨와 강 대표는 이복남매였고, 부친인 강 씨는 부인 연 씨와는 별거 상태로 불륜 상대인 J 씨와 동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J 씨가 강 대표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치성 질환으로 단명했고, 강 씨가 혼외자인 강 대표를 부인 연 씨와의 호적에 올리며 법적으로는 연 씨와 강 대표가 남매 관계이기는 했던 것입니다. 다만 연 씨 모녀는 강 씨와 진작 의절한 상태로, 최근까지도 폴란드에서 거주하고 있었으며 누나인 연 씨는 영주권도 보유한 이민자라는 게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모친 연 씨는 영주권자가 아닌 장기체류자격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온당한 지분을 받기 위해 모녀가 함께 강 씨 부자에 대해 파고들었다는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겠습니다. 어쩌면 모친 연 씨에게는 아직 한국으로 귀환할 의사가 있었는지도 모르죠.

어쨌거나 소송을 걸면 상속법에 의한 자격이 있으니 자기 몫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알법한 부분입니다. 그럼 결국 소송이 왜 걸렸는가를 살펴보면, 당뇨 합병증으로 이미 사망한 부친 강 씨가 소유한 재산 중에 부동산으로 서울시 소재의 아파트가 하나 있는데, 그 무렵 재개발 예정지로 정해진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재개발에 착수한 상태였습니다. 그 외에도 현재 백천 신도시 외곽지에 해당하는 지역에 평지 약 5천평정도와 상가 건물이 있었다고 하고요.

정말 저도 조사하면서 이런게 어떻게 있는지 황당해서 평화누리도 연감을 봤는데, 이게 원래는 1980년대 경기도 시절에 그린벨트로 지정되어 계속 묶여있었던 땅이었습니다. 지정 당시 토지 소유자는 강씨의 선친이었다고 하고, 정인건설이라는 건설회사를 운영했었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선친으로부터 강씨는 땅은 물론이고 정인건설의 경영권도 물려받아 운영했었는데, 정인건설은 25년에 건설업계 연쇄 어음 파동의 영향으로 최종 부도 처리가 됩니다.

당시 연쇄 어음 파동의 영향이 너무 대규모였다보니 제2금융권은 커녕 제1금융권도 안정적이기 힘든 상황이라, 정부의 특별조치로 이때 여타의 건설사들과 함께 대거 부도신청을 했음에도 별다른 자살소동같은 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음 파동의 전모가 밝혀지고 특별조치가 있기 전까지 강 씨가 가세 유지를 위해 얼마쯤 팔고 남은 게 개발도 안 되는 땅이라 팔 수도 없었던 그거였을 거라는 얘기도 있었으니 녹록하기만 했던 건 아닌가봅니다. 또한 아파트는 이음올의 사업 확대가 한참일 무렵 강 대표가 매매 당시 아버지 집 해드렸다고 직접 SNS에 언급한 바가 있어 쉽게 언제 부친의 자산목록에 추가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편이었고, 아마도 대강 이러한 연유로 재판은 긴 별거로 말미암아 재산형성과정에 기여가 없다는 것으로 연씨의 분할청구소는 기각되고 유류분 8억 6천 가량을 수령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 것 같습니다.

사기 사건 얘기를 한다더니 어째 강 대표 얘기만 하고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강 대표는 대국민 사기꾼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강 대표는 이음올을 설립한 강현중이 아닙니다. 이제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를 설명하는 게 이번 글의 기가막힌 사연이 되겠죠? 이하는 강 대표의 옥중 회고록을 재구성한 내용이 주가 됩니다.

이음올 전 대표 강현중씨에게는 직전회사에서 사내커플이었던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연인분 성함은 성하영인데, 이건 단순히 행정편의상의 이름이고요. 풀네임은 성하느님의나라에서누릴영화입니다. 성 씨는 모태 개신교로, 권사인 자당을 따라 어릴적부터 지역구의 교회에 매 주말 성실히 나가는 독실한 신자였으며, 셰례명은 샤론이었습니다. 샤론이 무엇이냐면 성경에서 말하는 하느님이 꽃이지요?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화인 무궁화의 영칭이기도 하고요. 굳이 묻지 않아도 성 씨의 집안은 제법 올드스쿨 스타일로 보수적인 분위기였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회고록 내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대체로 그러한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평범하게 모태신앙인이구나 싶은 이야기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성 씨 모녀가 다니던 시기의 강원 영월읍의 하***은* 교회가 모 이름난 개신교계 사이비 종파와 연관이 있는 교회로 지목되었던 전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해당 종파가 성 씨 모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까지는 아쉽지만 찾아볼 수 없었고요. 하지만 성 씨는 당시 심 목사가 제대로 안수를 받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한 차례 말씀드렸듯이, 성 씨는 위에서 말한 신원미상의 머리뿐인 여인의 후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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