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 by 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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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사람, 사람, 그리고 사람. 수많은 군중의 향연 속에 커다란 스타디움이 우뚝 솟아 있었다. 새삼스러운 두근거림에 심장께에 손을 얹으면, 누군가가 등을 가볍게 밀었다.

“모모, 얼른 가자.”

“루리 누나……. 기껏 사람이 감상에 젖어 있는데.”

“그런 건 다 끝나고 나서도 늦지 않잖아! 자, 얼른.”

“네, 네. 알겠으니까 밀지 마.”

주변 사람들과 똑같이 파란색 옷을 입은 모모가, 다시 한번 스타디움을 올려다보더니 개운한 표정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중학교 1학년의 초여름, 모모의 첫 오사카 여행이었다.

“어디 보자, 자리가…….”

“누나, 자리보다 일단 먹을 것부터 사면 안 돼?”

“자유석이라 나중에 가면 자리 없단 말이야! 아, 이쪽이다.”

티켓과 좌석 배치도를 번갈아 보던 루리가 모모의 손을 붙잡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유롭게 도착했으니 자리는 느긋하게 잡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모모는 루리가 이끄는 대로 얌전히 뒤를 따라갔다. 배가 고프긴 했지만, 고작 음식을 조금 늦게 산다는 이유로 말다툼할 정도는 아니었다.

루리를 따라 경기장으로 들어온 모모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역시 푸른 잔디가 깔린 그라운드였다. ……여기서 하는 거구나, 일본의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 이 경기의 결과에 염원의 토너먼트 첫 진출이 여부가 달려있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모모의 부모님 또한 오늘의 경기를 직관하고 싶어 했지만, 평일, 그것도 간사이 지방에서 개최되는 경기인 만큼 시간을 내지 못해 모모에게 잘 다녀오라며 티켓을 쥐여준 게 어제저녁의 일이었다. 모모는 다행히 축구와 관련된 진로를 희망하는 만큼 학교에서 체험학습 허가를 받을 수 있었고, 루리 또한 모모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동행하게 되었다. 정작 축구 관람만이 목적이었던 모모와 달리, 마침 오사카에 가고 싶었던 가게가 있었다며 들떠있는 루리를 보면 정말로 걱정돼서 따라온 건지 의심이 되긴 했지만.

“이것 봐, 모모가 늦장 부리니까 좋은 자리는 다 놓쳤잖아.”

“우와, 거짓말……. 벌써 저기까지 꽉 찬 거야?”

“그런 것 같은데. 저쪽은 비어있는 것 같은데, 가 볼래?”

“응, 갈래. 이왕이면 좋은 자리에서 보고 싶은걸.”

순수하게 축구를 즐기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 역시 보고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프로의 경기라면 종종 보러 다니지만, 국가대표가 필드를 누비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수많은 프로 선수 중에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파란색 유니폼을 몸에 걸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다.

루리와 모모가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간신히 짐이 놓여있지 않은 빈자리를 발견해 자리를 잡았다. 축구 관람을 위해 응원 도구나 해열 시트 같은 걸 잔뜩 챙겨온지라, 등에 짊어지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으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아, 루리 누나! 짐 지키고 있을래? 먹을 건 내가 사 올게.”

“그럴래? 그럼 난 가라아게랑 오렌지 주스.”

“알겠어! 금방 갔다 올게.”

모모는 그대로 왔던 길을 돌아가, 입구 쪽에 있는 노점으로 향했다. ……후, 역시 덥다. 아직 해가 따가울 시간이라, 루리를 자리에서 쉬게 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음식을 주문했다. 한창 성장기인 데다 축구 소년인 모모의 한 끼 식사는 어지간한 성인 남자 못지않을 만큼 많이 먹었다. 결국 루리가 부탁한 것에 모모 본인이 먹을 것까지 사면 양손에 비닐봉지가 한가득이었다.

마지막 음식을 받고 나면 시간이 꽤 지나있어서, 모모는 곧바로 루리가 기다리고 있을 자리로 뛰어갔다. 관객석에 가만히 있던 루리도 역시나 더위를 피할 수는 없었는지, 앉아서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루리 누나, 여기. 먹을 거 사 왔어.”

“고마워. ……모모, 그거 다 먹을 거야?”

“응,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나왔잖아. 루리 누나도 더 먹을래?”

“아냐, 난 이거면 돼.”

루리는 모모가 내려놓은 비닐봉지 안에서 가라아게와 오렌지 주스만 쏙 빼갔다. 공복보다는 더위가 더 견디기 힘든 건지, 주스만 쪽쪽 빨아 마시고 있었지만. 모모도 그 옆에 자리 잡고 비닐봉지 안의 음식을 하나둘 꺼냈다. 닭꼬치에 야키소바, 핫도그, 축구공 모양 주먹밥, 햄버거, 핫바……. 언뜻 봐도 2인분보다 많아 보이는 음식들이 모모의 무릎 위로 쌓였다. 마지막으로 모모가 늘 마시는 음료, 복숭아와 사과의 스파클링이 손에 들리면 가득 차 있던 비닐봉지가 텅 비었다.

“모모, 약속 안 잊어버렸지? 이거 끝나면 짐꾼 해주기로 했잖아.”

“응, 기억하고 있어. 근데 내가 대신 들어줘야 할 만큼 많이 사게?”

애초에 모모가 보호자도 없이 오사카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루리가 동행해 준 덕분이었으니 잊어버렸을 리 없었다. 막 중학생이 된 모모를 홀로 여행지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걱정하던 부모님을 설득한 건 루리였다. 물론 루리가 순수하게 모모를 위해 나선 건 아니었고, 축구 경기 하나만 보면 어른들 참견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어서라는 이유에서였지만.

루리가 오늘을 위해 돼지 저금통을 깼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모모는 별말 없이 루리의 여행 계획에 어울리기로 했다. 모모 또한 이번 경기는 꼭 현장에서 보고 싶었으니, 서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동맹 같은 거였다.

“온 김에 친구들한테 줄 기념품도 좀 사 가려고. 사달라고 부탁받은 것도 몇 개 있고, 또 엄마랑 아빠도 아무것도 안 사가면 서운해할 것 같고.”

“아, 그건 확실히……. 근데 나도 기념품 사야 하는데.”

“모모라면 다 들 수 있잖아?”

“그래도 엄청 많이는 무리니까.”

무거운 거라면 어지간한 어른들보다 더 잘 들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부피가 문제였다. 기념품은 모양새도 망가지면 안 되니 함부로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루리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을 테니 적당히 조절해서 살 거라고 믿고, 모모는 일단 눈앞의 음식에 집중하기로 했다.

모모가 사 온 음식을 반쯤 먹어 치웠을 즈음, 커다란 함성과 함께 선수 입장이 시작됐다. 드넓은 그라운드에 일본과 튀니지의 국기가 펼쳐지고 안쪽에서 선수들이 하나둘 나오는 모습은, 한창 음식을 해치우던 모모도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로 장관이었다.

“역시 굉장하네…….”

“응…….”

주변에서 파도처럼 밀려드는 환호성. 그리고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그라운드를 수놓은 푸른색의 전사들. 축구 소년의 동경을 한 몸에 받는 그 모습은 모모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푸른 열기에 이 스타디움 전체가 잠식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마치 이 공간만이 다른 세계가 되어버린 것 같다고, 모모는 생각했다.

작은 세계의 등장인물이 모두 모이면, 모두가 기다리던 국가가 울려 퍼졌다. 자랑스럽게 가슴에 손을 얹은 그 모습은, 말 그대로 꿈에 그리던 영웅의 형상이었다. 모모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그 모습을 눈에 아로새겼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휘슬 소리가 푸르른 하늘 너머로 울려 퍼졌다.


“……유키, 어때? 어울려?”

“어울려, 어울려.”

“정말?”

“정말, 정말.”

“어쩐지 적당히 대답하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런 거 아니야. 파란색도 잘 어울리는구나 싶어서.”

가늘게 뜬 눈으로 유키를 노려보던 모모가, 눈앞에 있는 전신거울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 바퀴 돌면 파란색 베이스의 의상이 궤도를 따라 팔락였다. 분명 리허설 때도 입은 적 있는 의상임에도, 몸에 두른 파란색은 어쩐지 낯선 느낌이었다. 모모는 중계 모니터에 비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유니버시아드 축구 대회. 영광스럽게도 그 테마곡을 Re:vale가 맡게 되었고, 오늘이 바로 그 대회의 개막식──곡을 처음으로 피로하는 날이었다. 개막식의 대미를 장식하는 신곡이니만큼 모모도 긴장하고 있었다. 큰 규모의 라이브 경험이야 많이 있었지만, 오늘은 특별한 무대였다.

개막식과 함께, 곧바로 첫 시합이 펼쳐질 경기장 그라운드에서 하는 라이브. 비록 선수로서 그라운드에 서는 건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의 오랜 꿈이었던 국제대회의 한복판이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만큼 들뜨는 마음도 있었지만.

“의상까지 입으니까 더 긴장되는 것 같아…….”

“왜?”

“국가대표 유니폼이랑 똑같은 색이니까!”

“헤에, 그래서 파란색인 건가.”

“아마도?”

과거에 축구 국가대표를 꿈꾸던 모모에게도 특별한 색이었다. 실제로 파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을 보면서, 언젠가 저 그라운드 위에서 나란히 설 날만을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그 미래는 무릎 부상으로 산산이 부서졌지만, 그때 품었던 마음만큼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러니 이 의상을 입고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거겠지.

“그럼 오늘 무대, 힘내야겠네.”

“뭐야, 유키도 불붙었어?”

“응. 국가대표 유니폼이 파란색이라는 얘기 들으니까. 우리도 비슷하지 않아?”

“비슷하다니?”

“국가대표 아이돌 부문.”

“푸흐흐, 뭐야 그게.”

그대로 웃음을 터트린 모모가,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 전신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당당하게 웃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아이돌 그 자체였다. ……국가대표, 아이돌 부문이라. 듣기 좋은 말이네. 지금 모모의 목표는 그라운드를 누비는 국가대표 축구 선수가 아니라, 유키와 함께 최고의 아이돌이 되는 것이니까.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응원단의 군무가 끝나갈 즈음, 린토가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유키 군, 모모 군. 슬슬 나갈 시간이니 준비해 주세요!”

“응!”

“알겠어.”

심호흡한 모모가 유키와 마주 보았다. 신기하게도, 유키와 함께라는 사실만으로 아까까지 전신을 휘감고 있던 긴장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그대로 대기실 문을 지나 그라운드로 향했다.

두 사람만의 무대──스노하라 모모세의 작은 세계가, 그라운드를 뒤덮는 건 순식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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