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레] 일방통행

만우절 기념 단편 연성, 유키모모 공장에서 나왔지만 NCP에 모모는 등장도 안 합니다.

빠레빠레 by 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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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원본) 사진: UnsplashBasil Lade

 

유키는 텔레비전으로 가득한 가게 앞에 서있었다. 유독 햇살이 눈 부시고 바람마저 진득한 거리는 숨을 들이마시기도 내보내기도 의식적으로 해야 할 만큼 버거웠다. 어쩌면 숨 쉬는 당연한 행동마저도 이제까지 녀석이 도와줘서 겨우 하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머리 한쪽 아니면 여러 군데가 날카로운 바늘이나 뭉툭한 연필로 찌른 것처럼 따끔거리기도 지끈거리기도 했다. 시야가 파랬다가 노랬다가 다시 원색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런 와중 선명하게 들어오는 선명한 분홍색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멀어졌다. 들려오는 환호, 점등하는 전광판. 환하게 웃는 얼굴은 올림픽이라는 큼직한 글자만 아니었다면 학생으로 착각할 만큼 앳되었다. 하나둘 머리로 스미는 쓸데없는 정보가 유키를 더욱 어지럽힌다. 무심코 창문으로 손을 올리고 뜨거운 열기에 화들짝 놀라 손을 떼며 걸음을 물렸다. 크고 작은 여러 화면이 한 사람을 주목한다. 유키가 찾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 사실이 지독한 허탈감을 가져오는데 어째선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시야가 흐려진다.

 

“어디야……반…….”

 

부모 잃은 아이처럼 거리를 헤매었다. 사실상 반, 반리는 유키에게 있어서 사람 역할을 하게 하는 부모나 다름없었다. 낳은 부모가 주지 않은 관심도 수고도 완전한 타인이었던 반이 주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외딴섬으로 지내던 유키에게 부모나 친구나 동료를 알려준 것은 모두 그였다. 유키는 찾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알지 못했다. 알려주던 반이 사라졌으니까 알 방법이 없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박수와 환호 소리만이 귓속에 가득했다.

 

 

*

 

 

유키는 생물이라기엔 어딘가 부족했다. 음악을 하는 조각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음악은 사람이 삶을 즐기기 위해 만들어졌을 텐데. 유키는 음악을 위해 살았다. 사는 목적이 다르니 다른 사람과 죽이 맞을 리가 없었다. 굳이 생물로 집어넣는다면 인간과는 다른 종족에 가까운 것이 오리카사 유키토다. 아마 원래라면 다른 종족으로 태어나야 했는데 이 녀석이 굳이 음악을 하고 싶어서 기타를 쥐고 노래를 부르고 곡을 써 내릴 수 있는 사람을 고른 게 분명했다. 기타 다른 귀찮은 일은 하나도 생각 않고.

 

값이 싸고 맛있는 데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까지 겸비하고 있는 동네 라멘집은 단골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곡이 마무리되면 소소한 뒤풀이 삼아 한 번씩 들리는 가게다. 주방이 길게 이어지는 맞은 편에 일렬로 앉아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있고, 사장님과 손님 모두가 볼 수 있는 위치에 벽에 매달린 텔레비전이 있다. 사장님이 축구에 관심이 있는지 오늘은 축구 경기를 중계하는 채널이 틀어져 있다. 재빠르게 잔디를 쏘다니는 선수들 가운데 곱슬머리가 특징적인 선수가 공과 함께 골을 향했다. 덩치가 커 보이진 않는데 내제된 파워가 화면 너머로도 전해져왔다. 면발이 입안으로 다 들어간 순간 선수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되었다. 생각 이상으로 어리다. 학생 시합이었나?

 

“축구에 관심 있나?”

 

“아, 관심까지는…. 저 선수 파워풀하네요.”

 

“그렇지? 어린놈이 천하장사더라고.”

 

“역시 학생 시합인가요?”

 

“저 어린 거 말고 딴 놈들 봐 봐. 어려 보이나.”

 

말 따라 주변 선수를 보자 많게는 40대로도 보이는 선수를 시작해서 20~30대 정도의 얼굴이 여럿 보였다. 정식 시합인가 본데. 신기해하는 게 보였는지 사장님이 웃으며 너희를 나이가 비슷할 거라며 말을 덧붙였다. 선수가 세레모니를 들으면 등을 확 밀면서 더 해, 넌 더 할 수 있어! 하고 응원해 주는 느낌이라며 좋아하는 인터뷰가 스쳐 지나간다.

 

“많아 봐야 고등학생으로 보이는데.”

 

“내 말이. 응? 웬일이야 텔레비전도 보고.”

 

“반이 먼저 보고 있었잖아.”

 

“나야 종종 보는데 넌 이제까지 거들떠보지도 않았잖아.”

 

“그랬나?”

 

옆에서 숙주가 수북하고 무나 다시마 따위로 육수를 낸 맑은 라멘을 먹고 있던 유키가 여전히 텔레비전에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CM 광고의 BGM이나 하다못해 세레모니 소리에 반응하면 모를까 유키가 질색하는 아웃도어 활동의 정수인 축구 시합을 지그시 바라볼 줄은 몰랐다. 정확히는 한 선수를 주목해서 보는 것 같지만. 파트너를 따라 그날은 어려 보이는 또래 선수의 눈부신 활약을 지켜보며 라멘을 흡입했다. 선수가 골을 넣은 덕에 흥이 오른 사장님이 서비스로 준 두부튀김과 닭튀김이 맛있었다.

 

유키와의 밴드는 다사다난했다. 출중한 외모와 모난 성격은 합이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감정도 좋은 감정도 유키를, 정확히는 유키가 사랑하는 음악을 지저분한 색으로 덧칠했다. 모두가 색안경을 끼고 음질 나쁜 헤드셋을 낀 채 무대를 보고 음악을 들었다. 그래서는 제대로 된 유키와 내가 만든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난 단순히 유키와 힘을 합쳐 시간 들여 만든 음악이 제대로 닿지 않는 환경이 분했지만, 유키는 지쳐 보였다.

 

어렵게 인수를 채운 밴드가 다시 조각난 하루의 귀갓길이었다. 해가 저물어 어렴풋한 달빛만이 파도를 적셔 시야의 한쪽을 채우고 파도 소리 사이로 듬성듬성 자동차의 엔진과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점점이 바닥을 비추는 가로등의 노란 불빛 아래서도 한 살 어린 친구는 조각품 같았다. 비록 잔뜩 화가 난 탓에 미간에 주름이 잔뜩 잡히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죽지 않는 미모는 과연 대단했다.

 

“내가 바뀌면 내가 만드는 소리도 바뀌어. 산타를 믿지 않게 된 아이처럼.”

 

지친 끝에 나오는 어딘가 절박한 목소리였다.

 

“반은 그런 따분한 걸 듣고 싶어?”

 

물음을 듣고 걸음을 멈춰 섰다. 마침 그 사이로 도로가 있어 섬과 섬으로 분리된 것만 같았다. 도로 너머로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 반듯하게 구겨진 표정이 보였다. 미모는 여전해도 피로감은 감춰지지 않았다. 사회와 동떨어져 고고히 살 수 있는 생물처럼 보이는 주제에 유키는 지독히도 외로움을 타는 생물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모두가 제대로 좋아해 주길 바라는 욕심이라고는 그것뿐인 어린애다.

 

“나는 사랑받지 않아도 좋아. 내 노래만은 신한테도 벌레한테도 사랑받고 싶어.”

 

난 너도 네 노래도 사랑받았으면 해. 넌 모르겠지만, 너. 생각 이상으로 외로움을 많이 타잖아. 그래서 아쉬웠다. 많은 사람들 중에는 분명 네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를 통해 너를 좋아하게 될 사람이 있을 텐데.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게. 많이 아쉬웠다.

 

“유키. ‘미완성인 우리’를 완성시키자.”

 

 

*

 

 

밴드와 아이돌은 비슷한 듯 달랐다. 새로운 멤버를 찾고 조율할 필요가 사라진 대신 둘 뿐인 무대를 매력적으로 조성해야 했다. 반리는 무대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에서 보람과 재미를 느꼈지만, 아이돌은 무대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했다. 아이돌은 밴드 이상으로 팬과의 거리가 가까웠다. 거리가 가까운 만큼 문제가 다발했다. 밴드에서 아이돌로 전향했다고 유키의 사교성이나 말투가 누그러지고 좋아지는 일은 없었고 잡음은 무대 위와 아래 어디에서는 끊이질 않았다. 음악을 계속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워 보이면서도 왜 춤춰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 드문드문 비쳤다. 환호에 벅차올라 오는 청춘의 한 장면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대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은 이전과 달리 색색의 조명으로 가득했지만, 여전히 아쉬웠다. 유키는 처음 시작하고 한 달 정도는 팬에게서 받은 팬레터를 읽어보곤 했는데 외모에 대한 칭찬과 무대가 즐거웠다는 인사치레와 같은 문장의 나열만 있을 뿐인 편지가 몇 번인가 반복되자 읽는 것을 그만두었다. 반리는 아이돌로 데뷔하고서부터 줄곧 빠짐없이 팬레터를 읽고 있다. 누군가는 유키와 자신의 신호를 받아주길 바랐다. 신호는 아직도 일방통행이다.

 

 

*

 

아이돌이라는 활동을 한 지 5년 차에 들어섰다. 이마저도 반이 알려준 내용으로 그다지 흥미는 없다. 여전히 춤은 왜 추는 건지 모르겠고 곡은 매번 필사적으로 써내려 피로한 다음 반쪽짜리 만족과 반쪽짜리 허기짐을 동시에 맛본다. 무대를 내려오면 그곳은 정글의 늪이다. 피라냐 떼들이 달려들어 맛있는 고기를 찾은 듯 우리를 물어뜯었다. 지긋지긋한데 그래도 음악을 하고 싶었다. 반과 내가 몇 날 며칠을 공들여 만든 음악이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 사랑받게 하고 싶었다. 열정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필사적으로 한 무대가 있다. 평소보다 평가가 좋았지만, 그뿐이다. 평소보다 춤이 도드라져 보였다. 평소보다 표정이 진지했다. 노래가 듣기 좋았다. 알맹이 없는 칭찬으로만 들려왔다. 노래에 대한 평가를 집요하게 찾아본 적이 있다. 어느 음악 평론가가 심심해서 쓴 평론이 있었다.

 

‘섬세하고 아름답다. A 멜로디와 사비에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완성도는 비교적 출중하지만, 들을수록 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음악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게 아니라, 음악에 정이 담기지 않았다는 의미에 가깝다.’

 

최근에 쓴 곡에 대한 평가였다. 화가 나고 분한데 차마 틀린 소리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었다. 틀리지 않았으니까. 음악은 일종의 대화이고, 일종의 교류다. 나는 음악으로 전하고 싶었다. 전해지길 바랐다. 좋지 않은 녀석들이 무대에 난입해서 날뛰는 일이 있고도 아직까지 무대에 오른 건 그 때문이었다. 왜 내가 지쳐가는 걸 눈치챘으면서 내 이야기는 들어주질 않아.

 

분했다.

아이돌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가던 가운데 무대의 조명이 떨어졌다. 실낱같지 이어지던 시간이 예고 없이 끝을 맞았다.

 

기껏해야 볼이 부풀고 피멍이 드는 정도가 전부였었는데 무대 일부가 피 칠이 될 만큼 피가 많이 나왔다. 그렇게 피를 쏟았던 반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치료를 받던 도중 사라졌다. 형용할 수 없어진 감정은 분명 곡으로 쓰면 세계를 멸망시켜 버릴 저주가 담긴 멸망의 노래가 될지도 모를 만큼 마음도 시야도 새카맣게 타들어 재가 되었다. 언젠가 반에게 내가 틀렸냐고 물었던 때가 있었다. 이제야 답을 알았다.

 

“내가 틀린 거였어.”

 

아니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는데. 하다못해 같이 반을 찾아주면 좋겠는데. 아무도 없었다. 이게 물음에 대한 답이고 정답이다. 이젠 멸망의 노래를 만들어 낼 기력도 마음도 남아있지 않다.

 

반이 사라지고 반과 다닌 적이 있는 곳을 모두 쏘다녔다. 해안가, 라이브장, 자주 가던 식당, 병원, 지하철역, 상점가. 간신히 껍데기만 남은 몸으로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었다. 음악이 들려오지 않는다. 그것을 대신하는 거대한 함성, 박수갈채. 굵직한 남성의 시끄러운 목소리, 앳된 목소리. 스피커의 진동. 상점가에서 지하철로 이어지는 도로에 있는 전자제품 가게에서 나오는 소리다. 수많은 화면이 오로지 한 사람을 주목했다. 무심코 창문으로 손을 얹었다가 달구어진 열기에 놀라 다른 손으로 빨갛게 색오른 손을 감싸 걸음을 물렸다. 찾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딘가 본 적 있는 얼굴. 환한 미소. 선명한 색채.

 

환호가 쏟아져 내린다. 넘쳐흘러 스피커 너머의 여기까지.

 

“그만.”

 

웅장한 노랫소리와 묵직한 타격음이 몇 번이고 반복된다. 그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잇따른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세레모니가 등을 떠밀었다. 그게 버거웠다. 부러웠다. 무엇이 부러운지도 모르겠는데 어쩔 수 없이 부러웠다.

 

“내 노래를 사랑해 줘…….”

 

반을 찾아줘. 노래를 듣고 마음 깊이 사랑해 줘. 나아가서는 나도 함께 사랑해 줘. 누구한테 빌어야 될지도 몰라 그만 화면 너머로 빌었다. 이건 악몽이고 깨어질 꿈이라고 달래주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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