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한 구원
아이돌리쉬 세븐 유키 드림 | 소야님 커미션
어느 마을의 바로 옆에 일 년 내내 어두컴컴한 숲이 있었다. 숲속에는 오래된 성이 있으며, 사람의 피를 마시는 악마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최근 숲의 짐승들이 흉폭해져 사람을 해치게 된 것은 그 악마의 소행이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고민 끝에 고아인 청년을 억지로 악마 퇴치에 보냈다.
청년이 조심스레 성에 들어가자, 큰 방에 쓰러져있는 사람이 보였다. 달려가서 말을 건 순간, 쓰러져있던 사람이 눈을 뜨고 청년의 목을 물어뜯었다.
소문의 악마… <흡혈귀>였다.
흡혈귀는 마음대로 피를 마신 것에 대해 사죄했다. 너무나도 공복이었기에 무의식적으로 마시게 됐다, 라고. 청년은 피가 빨린 자신도 흡혈귀가 되는 것이 아닌지 당황했으나 그냥 피를 빨리는 것만으로는 흡혈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듣고 안심했다.
이야기에 따르면, 숲의 짐승이 날뛰게 되는 이유는 흡혈귀의 힘이 약화된 탓이라고 한다. 흡혈귀는 숲을 지배하는 입장이었으나 몇 년 동안 사람의 피를 마시지 않고 성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흡혈귀가 건강해지면 짐승들도 암전해진다는 얘기를 듣자 청년은 자신의 피를 주겠다고 제안했고 흡혈귀는 마지못해 수락했다. 그로부터 청년은 피를 나눠주기 위해 밤마다 성에 다녀갔다.
달이 밝은 밤. 성에 향하는 청년을 마을 사람이 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청년이 악마와 결탁하여 자신들에게 복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무기를 든 채 청년을 덮쳤다.
그날 밤 흡혈귀는 청년이 오는 것을 기다렸으나 전혀 찾아오지 않았다. 안 좋은 예감이 들어 숲속을 찾아보니 피웅덩이 속에 청년이 쓰러져있었다. 흡혈귀는 사죄의 말과 함께 청년을 깨물어 저주를 걸었다. 청년은 눈을 떴고, 자신이 불사의 흡혈귀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저주인가 구원인가, 아는 자는 없다.
또 한 명의 뱀파이어가 눈을 뜨기 전, 어두운 숲 근처의 마을에는 죽음에 이끌린 소녀가 있었다. 마을의 어른들은 모두 산짐승이 언제 날뛸지 모른다며 아이들을 숲에 접근시키지 않았지만, 소녀는 그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건 그 모든 걸 뒤에서 조종한다는 악마라는 걸 알았다.
이윽고 도저히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한 소녀는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숲으로 향했다. 소문과는 달리 악마는 커녕 흉폭한 맹수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채 무사히 도착한 성은 텅 비어있었다. 긴장이 풀린 자리에는 피곤이 몰려들었고 죽음을 기다리던 소녀는 지쳐 잠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신을 깨우는 부드러운 손길이 누군지 확인한 소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그의 피부에서는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악마는 죽음이 아닌, 영원한 삶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성에 사는 흡혈귀에게는 짐승들을 다스리며 숲의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어느 날, 숲을 둘러보고 돌아온 흡혈귀는 잠들어있는 불청객을 발견했다. 캄캄한 숲, 하물며 성까지 들어오는 인간은 드물었기에 사정을 물어본 흡혈귀는 목숨을 거둬달라는 소녀의 부탁을 거절했다. 대신 갈 곳 없는 소녀를 성에서 머물게 해준 흡혈귀는 미처 몰랐던 고독이 허물어지는 걸 느꼈으나 결코 소녀의 피를 마시려 하지 않았다. 인간의 삶이란 유한할 따름인데 그 달콤함을 알고 나면 놓아줄 자신이 없었다.
점차 죽음을 씻어내린 소녀는 마음을 바꿔 자신을 불사의 몸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지만 흡혈귀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주라고 몇 번을 말했지? 모든 걸 포기했던 소녀가 그렇게 끈질겨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도 저는 결심했거든요. …당신을, 혼자 두지 않겠다고.
흡혈귀의 곁에서 남은 생을 보내기로 마음 먹은 소녀는 말없이 떠나온 가족에게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마을에 돌아간다. 하지만 홀연히 사라졌다 악마의 성에서 살아나왔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린 소녀는 다리에 돌이 묶인 채 강에 빠져 죽고 말았다. 흡혈귀는 마을에서 일어난 소란을 눈치챘지만 물에 잠기는 소녀를 보고서도 구하지 못했다. 오직 물 앞에서만큼은 흡혈귀도 인간과 같았으므로.
억울하게 죽은 소녀는 유령이 되어 흡혈귀에게 돌아왔으나 육신이 없어 저주를 걸 수 없었다. 머지 않아 영혼이 소멸할 때까지, 이제는 영원의 고독을 알아버린 그에게 소녀는 몇 번이고… 다시 한 번 나를 당신의 궁전에서 살게 해주세요. 내가 보고 싶다면 언제든 기억 속으로 만나러 오세요. 부디 울지 말아요. 당신이 나를 잊지 않는다면, 나는 죽지 않아요. 말했잖아요. 당신을 혼자 두지 않겠다고. 그렇게 유령이 된 소녀는 여전히 흡혈귀의 기억의 궁전에서 영원을 살고 있다.
세상에서 단둘이 영원을 살아가는 뱀파이어 이야기의 주인공은 마을 청년인 모모와 성에 사는 흡혈귀 유키예요. 불사의 몸인 그들이 생(生)을 멈추지 않는 이상 이야기는 완결을 모르는 것처럼 페이지가 늘어날 테고, 첫머리에 쓰인 서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더는 남아있지 않겠죠. 그러나 두 뱀파이어가 영원하다면 아무리 짤막한 프롤로그라도 없던 일이 될 수는 없으니. 이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졌음에도 이야기로 남아 떠도는 존재의 정체는 유키의 기억 속에 성을 짓고 사는 유령이에요.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죽은 그녀를 사람들은 신원 미상의 여자― Jane doe라고 불러요.
오래전 치히로가 살던 마을 옆에는 불길하게 어두컴컴한 숲이 있었는데, 그 숲 속의 오래된 성에는 사람의 피를 마시는 악마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산짐승들이 이따금씩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해치는 것도 악마의 짓이라는 말이 자자했죠. 그 누구도 깊은 숲으로는 발을 들이지 않았어요. 단 한 사람, 치히로를 제외하고 말이에요.
삶의 의욕을 찾지 못한 나머지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마을 소녀는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가며 제 발로 성에 사는 악마를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만난 건 악마가 아닌, 숲을 지배하는 아름다운 뱀파이어. 마을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숲을 다스리며 짐승들을 억누르던 뱀파이어 유키는 시찰을 위해 종종 밖을 나섰는데 치히로가 성에 도달한 건 바로 그때였어요. 무시무시한 악마가 살고 있다더니 텅 비어있는 성에서 죽음을 기다리다 지친 치히로는 그만 피곤을 못 이기고 잠에 드는데, 얼마나 지났을까요. 자신을 깨우는 서늘하고 부드러운 손길에 눈을 뜬 치히로는 그렇게 유키를 마주하게 되었어요.
캄캄한 숲, 하물며 성까지 들어오는 인간은 좀처럼 없었기에 사정을 물어본 유키지만 목숨을 거둬달라는 치히로의 부탁은 단칼에 거절했네요. 그 대신 갈 곳 없는 치히로를 자신의 성에 머물게 해주었고, 두 사람은 그렇게 같은 시간을 공유하게 됐어요. 사람들 틈새에서 공허함과 우울을 안고 살던 소녀는 오히려 고즈넉한 뱀파이어의 곁에서 안정을 찾았고, 서서히 치히로는 죽음에서 발을 빼내어 유키와 함께 살아갈 것을 결심했어요. 영원을 사는 그는 여전히 자신의 피를 빨아들이지 않았지만… 나의 남은 생은 당신과 함께.
그렇게 마음 먹은 치히로는 마을에 있는 가족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오기로 했어요. 돌아올 때는 음식과 옷가지도 챙겨와야겠지. 유키의 곁에 있던 잠시간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았으니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대충 해결했지만 이제는 내일을 바라봐야 하니까. 하지만 마을로 돌아간 치히로는 홀연히 사라졌다 악마의 성에서 살아나왔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렸고, 그대로 다리에 돌이 묶인 채 강에 빠져 죽고 말아요.
차라리 끝까지 유키가 몰랐다면 좋았겠지만, 마을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눈치챈 그는 치히로가 물에 잠기는 걸 보고서도 구하지 못했어요. 영생을 사는 뱀파이어라도 물에 비치면 죽고 마니까.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치히로는 유령이 되어 유키의 곁으로 돌아왔지만, 육신이 없으니 유키처럼 뱀파이어로는 될 수 없었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네 부탁을 들어줄 걸 그랬어. 죽고 싶어 했던 주제에... 흡혈귀로 만들어달라는 소리나 하고.
입맛이 까다로운 유키는 굳이 치히로의 피를 마시지 않았었는데, 그녀의 피와 살이 떠내려가고서야 그게 얼마나 사치였는가 깨달아요. 하지만 사실은― 한 번 그 달콤함을 알고 나면 돌려보낼 수 있을까 알 수 없어서. 인간의 삶이란 유한하기에 언제까지고 치히로를 숲 속에서 살게 둘 수는 없었죠. 잠시 날개를 쉬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면 유키는 치히로를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래서 언제 목을 물어줄 거냐는 치히로에게는 항상 거절의 뜻을 밝혀왔어요. 그건 저주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그리고 다시금 스스로의 말을 실감하는 때가 왔어요. 이건 정말 저주구나. 고독은 떠난 자리에서 태어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홀로 튼 둥지에서는 모르고 살아왔던 감정을 알아버린 유키에게, 이제는 영원히 그 마음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유키에게, 치히로는 분명 저주보다 오래 남는 말을 남기고 갔을 거예요. 지겹도록 되풀이하며 머지 않아 그 영혼이 소멸할 때까지―
죄 많은 사람, 부디 눈물을 그치세요. 제게는 가여운 당신을 위해 우는 것 밖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당신은 다를 텐데요. 걱정 마세요. 나는 죽지 않아요, 당신이 나를 잊지 않는다면…
나는 당신의 기억의 궁전에서 영원을 살아요.
이윽고 치히로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유키는 더러운 걸 피하듯 더이상 인간의 피를 마시지 않게 되었지만… 몇 년 후, 성으로 찾아온 모모를 만나요. 망설임 끝에 그 아이를 받아들인 건, 모모가 건넨 다정함은 조금도 불결하지 않았으니까. 비록 인간이 만들어낸 비극은 반복되었다 하더라도 이번에야말로 유키는 영원을 함께 나눌 상대를 발견했고, 두 뱀파이어는 세상에서 단둘이 영겁을 살아가는 여행의 도중에 있어요.
― 기억 속 네게 궁전 밖의 이야기를 가득 들고 만나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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