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세서리
레오나 킹스카라 드림
상실이라는 것은 늘 기승전결이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언제부터, 어디서, 무엇 때문에 제 곁을 떠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어떻게 되찾아야 할지 명쾌한 답이 없다. 과정을 명확히 아는 상실의 경우에는 그나마 되찾을 희망이라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희망일 뿐. 반드시 돌려받는다는 확신은 할 수 없었지.
‘진짜 어디서 잃어버린 거지.’
그러니, 때로는 제 곁을 떠난 걸 의연하게 보내줄 줄도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아이렌은 고리 끈만 남은 스마트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구매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음에도 어느샌가 사라져버린 핸드폰줄은 비즈 스트랩 부분만 뚝 떨어져, 지금 보면 무엇이 달려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냥 새로 하나 살까?’
어차피 비싼 액세서리도 아니고, 그 제품이 아니면 안 될 정도로 중요한 물건도 아니다. 그저 그 매장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고 가격도 적당해서 샀을 뿐이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큰 미련을 두지 않는 아이렌은 아쉬움에 한숨을 쉬면서도 이 감정을 오래 담아두지 않았다.
“……도서관이나 가야지.”
당장 급한 것도 아니니 새 핸드폰 줄은 이번 주 주말에 사러 가야겠다. 그리 결정한 아이렌은 곧장 교실 밖으로 나가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분 나쁜 일 하나 때문에 오늘 하루를 통째로 버리는 건 시간 낭비다. 그에게는 그걸 알 정도의 현명함은 있었다.
“어이.”
그때. 복도를 나와 중원을 가로지르던 아이렌은 그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이 목소리는 분명 제가 아는 사람의 음성이다. 그리고 그는, 무시당하는 상황을 특히나 좋아하지 않았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어간 아이렌은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앉아있는 레오나를 발견하고 물었다.
“저 부르셨어요?”
“그래. 여기에 너 말고 누가 있지?”
저 앞에 걸어가는 학생은 사람이 아니라 유령인 건가.
레오나의 부름을 듣지 못한 건지 저들끼리 떠들며 멀어져가는 학생들을 힐끔 본 아이렌은 굳이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단, 곧바로 용건을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이거.”
레오나는 구구절절 말하지 않고, 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상대에게 내밀었다.
‘아.’ 그가 넘겨준 물건을 받아든 아이렌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랍게도 제가 잃어버렸던 핸드폰줄은 여기에 있었다.
“어디서 주우셨어요? 아니, 그것보다 이거 제 물건이라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봤으니 알지. 며칠 전부터 달고 다니지 않았나?”
“그건 그렇지만…….”
그걸 기억하고 있었단 말인가. 레오나의 관찰력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는 제가 관심 있고 중요하다 여기는 것만 기억하지 않는가.
고리 부분이 끊어졌을 뿐, 그 외엔 멀쩡해 보이는 비즈 스트랩을 만지작거린 아이렌은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선배.”
“말로만?”
“……사례금이라도 드릴까요?”
“됐어. 하, 농담도 못 하겠군.”
‘하여간 매사에 진지한 꼴이란.’ 작게 중얼거린 레오나는 코웃음을 치고 앉은 자세를 바꾸었다.
그의 움직임에서 배부른 사자가 낮잠 자기 전 자리를 잡는 모습을 떠올린 아이렌은 순간 웃음이 터질 뻔한 걸 참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주우셨어요?”
“강당 구석에 굴러다니던데.”
“아하. 실전 마법 시간에 흘린 건가…….”
드디어 원인을 알아낸 아이렌은 속이 시원해졌지만, 반대로 레오나는 그 말을 듣고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너는 마법도 안 쓸 텐데, 왜 흘린 건지 모르겠군.”
“그건 저도 알 수 없으니까 물어보셔도 곤란해요.”
“짐작 가는 것도 없나?”
“뭐……. 옷에 걸린 걸지도 모르죠. 저희 식전복, 뭔가 많이 달려서 치렁치렁하잖아요?”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넣고 꺼내는 과정에서 장식 여기저기에 걸린 게 계기가 되어 떨어졌다는 건가.
그렇게 튼튼하지 않은 물건을 팔아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든 것도 잠깐일 뿐. 금방 눈앞의 여자에게 생각을 집중한 레오나는 익숙하게 빈정거렸다.
“마법도 못 쓰는데 실전 수업도 성실히 출석하다니, 크루웰이 좋아하겠군.”
“하는 게 없다고 자리를 비우면 벌점을 받으니까요.”
“그래? 하지만 출석만 하는 게 의미 있는지는 모르겠군. 두들겨 맞고 져서 우는 녀석들 치료라도 해주지 그래?”
“그러면 양호 선생님은 실직하고 말걸요.”
진담같이 농담한 아이렌은 소리 죽여 웃더니 스트랩을 주머니에 잘 챙겨 넣었다. 이번에는 잃어버리지 않게 재킷 안 주머니에 분실물을 보관하는 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이었을 것이다.
그럼, 볼일은 서로 이걸로 끝일 거다.
하지만 아이렌은 레오나가 한 말이 마음에 걸리는지, 도서관으로 향하는 대신 그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무엇보다, 제가 마법을 못 쓴다고 아무 일이나 막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그건 무슨 의미지?”
“사실 그렇잖아요. 출석이야 그림의 파트너로서 당연히 가야 하는 거지만, 마법을 못 쓴다는 이유로 수업이랑 전혀 관계도 없는 행동을 하는 건 웃기잖아요? 그럴 시간에 그림이 사고 치지는 않는지 살피는 게 제 진짜 일이지 않나요?”
말하다 보니 그림이 일으킨 수많은 소동이 떠오르는 걸까. 절로 미간을 찌푸린 아이렌은 한숨을 섞어가며 제 생각을 늘어놓았다.
“필요한 노력 대신 엉뚱한 무언가를 해놓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했으니 칭찬해 달라’라니. 그런 건 미련한 짓이죠. 저는 그림을 감독하는 감독생이지 눈요기로 둔 액세서리가 아니니까요. 진짜 도움이 되는 일에 매진하는 게 노력이지, 아무거나 막 해놓고 ‘나는 노력했어!’라고 하는 건 자기 위로에요. 경비라면 문을 잘 지켜야지, 그 주변에 꽃을 잘 키워놓고 월급을 더 달라고 하면 이상하잖아요?”
쉬지 않고 쏟아지는 연설에 레오나가 눈썹을 까딱였다.
저건 제 주제를 잘 아는 이의 대단히 현실적인 발언이다. 얼핏 들으면 평소 이런저런 이상론을 늘어놓는 아이렌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현실을 알고 그 안에서 무언가 하려는 이야말로 이상주의자이지, 그저 거창한 소리만 늘어놓고 허튼짓만 하는 이는 광인일 뿐이라는 것을.
욕심이라곤 없지만 어떤 상황이든 던져놓으면 그 안에서 금방 적응해서 살아남는. 그리고 살아남은 후에는 제 나름의 뜻을 세우는, 무르지만 질긴. 전혀 다른 세계에서 날아온 생명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얄궂은 성질을 가진 눈앞의 여자를 노려보던 레오나는, 언젠가 키파지가 한 농담을 떠올렸다.
“너, 진짜 졸업하고 나면 대변인 같은 걸로 나 따라올 생각 없냐.”
“월급 얼마 줄 거예요?”
“원하는 만큼.”
“그럼 진지하게 고려해 볼게요.”
사실 돈 같은 건 별로 욕심내지도 않으면서, 저런 건 왜 묻는지. 레오나는 황당하다는 듯 눈을 감았다.
상대는 자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눈을 감자마자 꿈나라로 가버리는 능력이 있는 걸 아는 아이렌은 그제야 자리를 뜨기로 했다.
“러기 선배가 너무 찾지 않게 일찍 들어가세요.”
어차피 금방 잠들어서 제 말을 듣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할 말은 해야 하는 법이다.
아이렌은 들려오지 않는 대답을 뒤로 하고 도서관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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